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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평화공원을 가다-

잠들지 않는 남도를 추념한다

by 준구 Feb 25. 2025

제주를 여행하는 가장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먼저 4.3 평화공원으로 향했다.

3박 4일이라는 넉넉한 시간이 주워졌지만 공항에서 내리자 마자 기대감으로 차를 몰았다. 제주 시내를 벗어나니 인적이 드문 한라산 중산간 지역이 나왔다. 주위는 황량한 겨울의 들판이 펼쳐졌고 군데군데 말을 기르는 목장과 목초지가 펼쳐졌다. 왕복 1차선의 조촐한 아스팔트 길의 마른 초원은 흡사 누렇게 바랜 갈대 뒤편으로 사자와 야생동물들이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닐 것 같은 아프리카다. 눈이라도 내려 사방을 하얀 세상으로 뒤덮는다면 한강 작가가 서술했던 “작별하지 않는다”의 무대 배경처럼 천지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조바심에 휩싸일 듯하다.


대학에 들어서서 비로소 인식하게 된 4.3의  역사 앞에서 정신이 멍해졌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젓은 유채꽃이여……"

가사와 운율 하나하나가 가슴에 절절히 박히며 울리는 안치환의 노래를 따라 부를 땐 깊은 애도의 눈물이 흘렀다. 대학이라는 확장된 공간에서 나의 각성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느끼며, 좁음에 탄식했고,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과  이산하시인의 “한라산”을 읽으며 분노로 애곡 했다. 더구나 처참하게 죽은 자들로 인해 삶을 지탱하기 힘든 산자들이 슬픔에 좌절하지 않고 사랑으로 승화한 한강의 작품에 감사했다.

기억하며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유족들의 노고로 마련된 공간을 염원 했던 이유다.

제주도를 찾는 건 휴가와 관광에 방점이 있지만, 이런 역사를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갖는 것 또한 동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의미 깊을 것 같았다.  


4,3 평화공원은 드넓고 광활한만큼 황량한 찬 바람이 더 매섭다.  여전히 추운 겨울 날씨에 제주의 칼바람이 더해져서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들었다. 평화기념관을 거쳐 위령탑을 지나 위령광장으로 향하는 길이 고행의 여정처럼 무겁다. 맨 먼저 마주한 각명비에 새겨진 희생자의 명단에서 그만 턱 숨이 멎었다. 길게 늘어선 대리석 기둥의 석상이 커다란 원형으로 둘려 있다. 제주도 면 전체의 마을마다 4.3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생애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 빼곡했다. 어린아이와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을 대거 학살해서 매몰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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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희생자 각명비

엄마가 자녀를 품에 안은 체로 총에 맞아 추위호 몸이 얼어 동사한 모녀상 앞에서 나의 몸도 굳어졌다. 이 조각상 하나가 사건의전체를 상징하는 듯 보였다. 광장을 돌면서 얼어 붙은 몸을 녹이려 4.3 평화기념관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의 동굴로 진입하는 것이 전시의 출발이었다. 1945년의 해방은 우리의 손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전해졌다. 일제는 제주도라는 공간에서 연합군과의 마지막 항전을 대비하며 섬 전체를 요새화 시키고 있었다. 일본 오사카와의 정기 뱃길로 이미 많은 제주의 인력들이 일본에서 징용을 살거나 유학 중이었다. 불시에 찾아온 해방으로 원주민들은 다시 원근 각처에서 제주로 몰려들었고 해방된 한반도에서 하나 된 조국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했다. 일제와 협력했던 부역자들을 몰아내고, 시민 스스로가 자기의 주권을 행사해서 자신의 지도자를 세우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미군정의 통치와 개입은 자주적 주권을 염원하는 도민의 바람과 상치되는 부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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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상 / 어두운 터널에서 광영의 공간으로

전시실을 돌아보면서 그동안 파편적으로 알았던 역사의 큰 줄기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1948년의 제주도민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리는 것에 반대하며 선거를 거부했고, 상대를 극단적으로 악마화하는 냉전의 적대성이 왜곡과 편협으로 치우치기 시작했다.  조급하고 설익은 성찰하지 못하는 편협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장 연약한 나라의 지역민들은 무자비한 폭력에 내몰렸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더 잔인한 폭력을 자행 했다.  



'무지한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인간의 존엄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잔악한 폭압에 치를 떨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현재 아프리카 콩고지역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피난민의 발생에도 깊은 유감과 안타까움을 표하게 된다.  


작별하지 않으려는 공간을 둘러보고 나서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누구든 이 전시관을 찾아오면 역사의 진실 앞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으니 말이다.  

유형의 공간에서 무형의 인식을 확장하고 강화한다.


상식과 성찰이 평화를 견인하기를......

         

제주 4.3 평화기념관제주 4.3 평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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