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벗고 봄꽃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오늘의 햇살은 분명한 봄볕이다.
점심을 먹고 거니는데 기온은 포근한 반면 공기는 상큼했다. 곧 꽃이라도 피워낼 기세다.지난주 봄을 맞으러 찾았던 제주에서도 느끼지 못한 상춘의 들뜸을 갑자기 서울에서 맞았다.
입춘이 한참 지나도록 두꺼운 겨울옷을 떨치지 못하게 만든 추위가 오늘은 온순해졌다.
따스한 햇살이 내비치는 창가로 바싹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활자 위로 떨어지는 태양 빛을 즐기며 책을 읽는다. 나른한 식곤증과 따스한 햇살의 간지러움이 스미는 시간이다.
잠시나마 이런 여유를 갖는 것만으로 흡족할 때가 있다. 책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끄덕이며
공감하다 보면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러워진다.
한 챕터를 읽고 나서 몸을 한번 움직인다. 물도 마시고 커피도 다시 리필해서 자리한다.
추운 겨우내 수많은 부고의 소식을 접해야 했다. 어른들이 대게 8~9십에 이르러 죽음을 맞은 것이지만 감기가 폐렴으로 번져 돌아가신 경우가 많았다. 직접문상을 다녀오기도 하고 성의만 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겨울 추위는 연로하신 분들에게 더욱 혹독했다.
그래서인지 고도를 바꿔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는 태양이 반갑다.
실내로 들여놨던 화초를 다시 베란다로 옮겨 놓을 때다. 추위에 얼지 말라고 내부에 머물렀던 만큼 이 생명들도 야외의 신선한 공기가 그립다. 봄이 오면 목련을 필두로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피어나겠지만 아직은 꽃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
동백꽃
지난주 제주에서 묵었던 집 마당엔 붉은 꽃이 피어 있었다.
빨간 봉우리 안에는 노란 꽃술이 수 놓인 강인한 꽃.
차를 몰고 제주를 누비다 보면 노란 유채꽃도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유달리 동백의 단아한
꽃 봉오리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다른 꽃들과 달리 추운 겨울에 피어나 그 꼿꼿한 아름다움을 피워낸 것이기 때문일까?
모진 바람과 살을 에는 한기를 견디며 눈보라 속에서도 빨간 생명을 보여서일까? 4·3의 상징이 되어 영혼들이 붉은 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쓰러져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일까?
다시금 맞이할 봄으로 인해 설렌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움츠렸던 위축에서 벗어나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시간.
생명의 역동과 꽃 향기 가득한 봄날의 산책을 꿈꿔본다.
표지 : 제주 판포리에 위치한 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