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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를 행진하는 엇갈린 시선

작은 땅의 야수들

by 준구

1919년 3.1 대한독립을 외치며 거리로 나선 가녀린 십 대 소녀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소년이 있었다.

외모로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앳된 기생들이 '왜 군중 속에 뒤섞여 위험한 행진에 동참한 것일까?'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나라 잃은 조선백성의 함성을 잠재우는 방법은, 일본 군경이 무자비한 칼과 총으로 찌르고 사살해서 해산하고 주동자들을 잡아들이는 것뿐이었다. 구경꾼처럼 행진을 바라보던 서울의 부랑자 소년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관망하고 있었다. 이런 무모한 항거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 대열에 자기 나이대인 어여쁜 소녀들이 함께 하고 있음이 마음 한편에 큰 충격과 물음으로 자리했다.


비렁뱅이 소년들은 부모를 잃은 고아와 촌에서 서울로 무작정 모여든, 도시에 버려진 아이들이 생존을 위해 뭉친 무리였다. 반면 소녀들은 가난한 부모가 숙식을 부탁하며 평양의 기생학교에 맡겨진 자녀다. 행여라도 기예를 익히고 학문에 조예가 깊어진다면 풍류를 아는 예인으로 살거나 양반가의 자제와 연을 맺어 굶지 않고 살기를 바라며 등 떠 밀린 소녀들이었다. 버려지긴 매 한 가지라 기생 수업을 받는 소녀들은 거리의 부랑아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먹을 것을 나눠 주었다. 나라를 빼앗긴 조선이 거둘 수 없는 사람들 스스로가 서로를 감싸며 어려운 시간을 버티는 중이었다.

나라는 망했지만 여전히 신분질서와 빈부의 차이가 극명한 시절이었다.

누군가 굶주린 하층민에게 다가와 인간의 고귀함을 전해주고 사랑을 나누었을 때 버려진 자들은 그런 선행과 사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 손길을 내민 이가 종교인이었다면 소년은 기독교나 천주교 또는 천도교인이 되었다. 그간 조선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신분제의 부당함, 인간 존중과 자유, 평등은 그 자체가 구원의 복음이 되기에 충분했다. 종교적 신념이 아니더라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삶은 소년의 마음을 뒤 흔들어 놓았다.

덕망 높고 재산이 많은 조선의 양반(이명보)이 하층민을 존중하고 평등한 동지와 친구로 대하며 버려진 소년을 긍휼히 여겨 교육시키고 먹일 때, 그 사상과 실천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 가르침에 힘입어 제국주의의 생리를 알고, 그 폭압에 신음하는 조선의 현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저항하게 되었고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되었다. 개인의 안위와 행복의 추구가 아닌 민중의 자유를 위해 만주와 시베리아의 위험과 추위를 무릅쓰며 젊음을 내놓고 해방을 위해 힘썼다. 기생으로 수련받았던 소녀들은 유명한 여배우로 자라났고, 게 중에는 틈틈이 모은 자금으로 독립에 사용하도록 조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는 동안 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1960년 박정희 시대 초반까지 시간이 흐른다.


시베리아 호랑이를 사냥하던 용맹한 남경수는 일본군 장교 야마다와 얽히며 서로의 생명을 살린 인연을 맺게 되고, 그 연으로 야마다는 다시 남경수의 아들 남정호를 살게 한다. 야마다는 제국주의 국가에 충성했지만 패망할 즈음에야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이행하고 있었음을 자각한 셈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매진해서 해방된 조국을 맞았지만 남정호는 1960년 어느 날 부끄러운 팻말을 목에 두른 채 종로 한복판을 걷게 된다.

“불량배 척결”

군사정권의 등장은 사회정화를 빌미로 불량배척결이란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깡패, 노숙인, 전과자를 앞세우고 뒤에는 반공을 내세우며 좌익 성향의 정치세력들을 잡아들여서 세웠다. 생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사상가와 혁명가들의 삶이 군사정권에 의해 순식간에 거부당하고 짓밟힌 것이다.

군중은 진실을 알지도 못한 채 군사정권에 의해 불온한 존재로 낙인찍힌 존엄한 애국지사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야유하기 시작했다. 노회 한 남정호는 묵묵히 종로의 길을 걸었고 이번에는 최고의 배우로 우뚝 선 옥희가 그를 안타까이 바라보는 입장에 섰다.


1919년 행진하던 사람들을 바라보던 소년이 오늘은 부끄러움을 강요당하는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40년 전에 그 거리를 누비던 소녀는 독립운동가의 생을 무참히 깎아내리는 현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

자신의 국가에 충성했던 사람들.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과 북으로 나뉜 국가권력에 또 다른 탄압을 받는 사람들.

고난과 역경, 시대의 아이러니와 숭고한 사랑.

이념과 그에 맞는 실천

인간의 고귀함

보편적 인류애

신념과 가치

온갖 단어들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




P.S : 원작으로 읽느라 혹시나 내용 파악에 실수는 없었는지......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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