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향이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
어떤 음식을 대할 때면 불현듯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르곤 한다.
양념게장.
빨간 고춧가루에 향긋한 참기름을 더해 버무린 양념게장을 유난히 맛깔스럽게 드시던 생존의 모습.
밥을 먹으려다 의도치 않게 추억을 소환한 빛깔과 향기에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H마트에서 울다’는 식재료와 음식이 전하는 진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는 함께 먹고 마시며 대화할 수 없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우리만의 고유한 의미와 정신이 녹아 있다.
미역국은 출산한 어머니들이 몸을 빨리 회복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면서, 동시에 태어난 사람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정성으로 조리하는 영양식이다. 음식이면서 문화와 역사적 의미가 담긴 상징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에겐 서양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반찬이 있고 철마다 나오는 각종 나물이 있다.
H 마트는 북미대륙 서양의 문화와 먹거리에서 한국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같은 동포와 아시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미국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한국의 육개장과 설렁탕 떡볶이와 순대는 물론이고 짱구 과자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열손가락에 끼워서 즐겁게 먹었던 고국에서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위로와 안식의 공간이며 교포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인 것이다. 1980년대에 자리 잡기 시작한 한아름의 H는, 힘겹던 교민들의 삶을 달래주었고, 이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한 한국의 국력과 K 먹거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의 딸로 태어난 작가이기에 H마트는 더욱 강하게 어머니의 향수를 자극했다. 식재료를 고르며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고 한국음식을 먹을 때 이렇게 저렇게 조리해서 먹을 것을 가르쳤던 어머니의 따스한 간섭이 그리워졌다.
불현듯 엄마의 김치가 먹고 싶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그 맛과 향이 그리워 김장을 시도해 보지만 그 맛이 아니다.
김치는 재료를 준비해서 다듬어고 마늘 양파 고춧가루를 버무려 속을 넣고 숙성하는 과정으로 완성되는 음식이다. 작가 스스로 만들어 보려니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으로 이뤄지는 것임을 깨닫는다. 엄마가 되어 보기 전에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그 깊고 넓은 부모의 마음.
절반의 한국인으로서 묘사하는 산 낙지를 먹는 모습의 묘사가 낯설면서 재밌다.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사람들의 고스톱 놀이는 또 얼마나 생경하면서 익살스러웠을까?
대중탕에서 떼를 밀리는 광경을 묘사하는 것에서도 해학이 느껴진다.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새삼스러울 것 없는 모습을 외국인의 관점으로 기술하는 것이 묘한 재미가 있었다. 영어본에는 우리말을 그대로 영어식으로 (tteokbokki, Jjigaes) 표기했다. 영어권 독자들이 우리 음식을 사전으로 찾아보느라 애를 좀 먹겠다 싶고 반대로 우리는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으니 통쾌했다.
작가가 음식의 맛과 향기로 어머니를 추억하고 소환해서 그 생생한 기억들을 글로 옮겨 놓았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과 공감이 이는 작품이었다. 이제는 서서히 소멸해 가는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희미해지는 추억을 무엇으로 되살리며 기억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기록이 주는 생생한 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