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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꽃

김영하의 소설 속에서 절망했다

by 준구

책을 다 읽고 나서 개운치 않은 헛헛함에 휩싸였다. 혹시나 소설의 말미엔 행복한 스토리가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염원 같은 바람이 끝끝내 무참히 짓이겨진 안타까움이었다.

1905년 대한제국민은 멕시코와 4년 간 노동이민계약을 맺고 장밋빛 환상에 젖어 미지의 대륙으로 떠난다. 국권을 잃어가는 조선땅에서 소망 없이 살던 천여 명의 사람들은 변변한 정보도 없는 신대륙에서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꿈꾸며 배에 오른다. 그 계약이라는 게 인신매매 수준의 사기극이며 대한제국은 곧 망하고 일본이 한반도를 통치해서 자신들을 대변해 줄 나라 없는 신분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로.

결국, 일본의 대륙식민회사가 농간을 부려 대한제국의 백성들을 일손이 부족한 멕시코의 농장에 4년간의 채무노동자로 팔아넘긴 것이었다.


“대륙식민(부사장 日向輝武)은 1903년 도쿄의 중앙 이민 회사를 중심으로 출자액 100만 엔, 취급 예정 인원 3만 1,000명으로 해서 전국적으로 설립되었고, 한국 지사 책임자로는 오니와 간이치(大庭寬一)를 임명하였다.”

어렵사리 배 삯과 여권을 마련해서 승선한 사람의 면면은 다양했다. 몰락한 양반 가문의 지체 높던 권세가를 비롯해서 조선의 군인과 평민 역관 상놈 박수무당 농민 사기꾼 고아와 남녀노소 등 계층이 넓었다. 조선의 성리학적 신분질서 내에서는 서로 상종할 수도 없었던 신분의 사람들이 여객선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수개월을 함께 실려갔다.

배는 영국 국적의 일포드 호로 조선의 백성들은 영국 제국주의의 통제와 규율에 따라야 했다.

조선에서 날고 기던 양반이라도 식사 때는 상놈 평민과 똑같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밥을 먹을 수 있었고 화장실 사용과 모든 삶의 방식이 그러했다. 누구든 빨리 움직여야 좋은 자리를 차지해서 잠을 청할 수 있는 열린 경쟁의 구조하에 놓여 양반의 특권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이 왕조의 신분질서에 기반하는 사회라면 , 배 안은 봉건질서가 사라지고 서구의 근대적 사조와

평등의 사고로 새롭게 재편된 질서의 공간이었다. 상하고저의 신분제가 사라지고 남녀의 유별이 철폐된 곳이었다. 더구나 제한적이고 밀폐된 공간이었기에, 신분제도 하에서는 서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만날 수도 없었던 양반가의 규수와 평민 고아 청년이 욕망에 따라 눈을 맞추게 되는 것이었다. 흔들리는 선창 바닥에서의 생활은

냄새와 오물로 진동하는 것이었고, 칸막이 없이 서로를 주시하며 사는 것은 인간의 존엄이 훼손받는 환경이었고, 씻는 물이나 빨래할 물 하나 변변치 않는 몇 개월의 시간을 버티는 것은 남녀노소를 떠나 모두에게 죽음과 같은 고역이었다.

그렇지만 배에 탄 사람 모두가 열악한 환경에 놓인 것은 아니었다. 영국인 선주와 독일 네덜란드 선원 일본인 주방장은 배의 귀족계급으로 조선인들과는 신분이 다른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싱싱한 과일을 먹고 물을 풍족하게 사용하는 선민들이었다.

하등 국민으로 취급받는 조선인 중, 눈치 빠른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더 쓸모가 있어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지 깨닫는다. 지배자들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함을 느끼고 스페인어를 열심히 배우고, 동포들보다 멕시코 농장주의 맘을 사려고 애쓴다. 신대륙 멕시코는 중세 봉건질서가 사라지고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급속히 이식되면서 강대국에 원료를 생산하는 농업기지로 전락했고 애니깽을 생산하는 노동자가 필요했다.

막무가내로 노동에 몰린 사람들은 살인적인 더위와 농장에서 폭리를 취하며 생필품을 강매당하는 악순환 속에서 힘겨운 생존을 이어간다. 꿈을 찾아왔지만 현실은 더욱 가혹했고 이젠 되돌아갈 나라도 모은 돈도 없이 무정부 상태와 혼란의 남미 대륙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간다.


낯선 땅의 법과 제도는 멕시코 국민과 농장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나라 없이 팔려온 외국인을 위한 보호조치는 없다. 돌아올 희망도 다른 나라로 옮겨 갈 여력도 없는 사람들은 자포자기하거나 폐인이 되었고 더러는 자신만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혁명군으로 들어간다.

여인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해서 짝을 맺을 수가 없었다. 이 농장 저 농장으로 팔려가는 신세라 자신을 보호해 줄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 생을 맡겨야 했다. 자식을 낳아 준 남편을 기다릴 수 없어서, 자신을 보호해 줄 남자의 후처로 들어갔고, 중국인에게 팔렸다가 다시 자신을 구해준 이와 함께 살아가야 했다. 자식을 되찾아오고 악착같이 살아남아 그 사회에 뿌리를 내린 것이 결국엔 화류계의 확장과 돈놀이를 통한 생존이었다.


혈연도 없이 중년을 향해 나이 들어가던 사내들은 무정부 상태에 빠진 대륙에서나마 자신들의 율도국을 건설해서 정착하려는 꿈으로 혁명군의 편에서 무장투쟁하지만 종국엔 허망한 죽음이 기다릴 뿐이었다.

나라를 잃고 누구 하나 보호해 줄 법과 제도 없이 버려진 조선의 백성은 서로를 도와가며 그렇게 살아남았고, 희망을 꿈꾸다 그렇게 죽어갔다.


소설의 끄트머리 어디에서라도 행복한 웃음 한 조각을 기대했던 독자로서, 희망이 댕강 잘려나간 듯한 결말이 못내 아쉬웠지만, 역사와 허구적 소설 사이 어딘가에서 피어나는 강인한 삶의 의지에 경의를 표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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