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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드라마와 소설 사이에서

원작과 영상의 다름을 발견한다

by 준구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된 파친코를 감상하면서 어느 한 지점의 전개에서 강한 의문이 일었다.

노아가 야쿠자 한수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충격으로 가족을 떠나는 장면이었는데, 그는 엄마인 선자를 만나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 없이 애절한 눈빛과 사랑의 포옹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지는 작별을 고했다.

선자는 그것이 사랑하는 아들과 영원한 이별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시청하는 나 역시 먼 도시로 떠나서 이후에는 영상으로 표현되지 않는 노아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1,2편에 이르는 드라마 시리즈를 마치고 원본 소설을 읽어 나간 이유는 그러했다. 소설을 드라마 한 영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드라마의 연출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점은 과거 1910년대 선자의 모습에서 1980년대 손자 솔로몬의 현재가 수시로 교차한다는 것이었다. 70여 년이란 시간과 공간의 간극이 유기적으로 넘나드는 구성이 몰입과 흥미를 유발했다. 원작에서는 연대기적 순차적으로 기술된 것을 재구성해서 입체적 역동을 덧입힌 것이다.

영상의 마지막에 일본에서 살아가는 노령의 재일 한국인 어르신들의 인터뷰 영상은 진한 감동을 주었다. 원작에는 없는 서비스컷 같은 여운이다.


글로 묘사하는 것은 아주 디테일하고 자세할 수 있으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

이것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상당한 비용이 요구된다. 세트와 배우와 스텝을 운용할 자본이 필요하다.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수위도조절해야 하고 표현도 절제해야 하는 적절한 줄타기가 필수다. 솔로몬과 하나의 이른 일탈적 유희를 다 보여줄 수 없었고, 일본인이지만 가난한 하나 가족의 파괴된 성윤리와 몸을 팔아서 생존과 바꿔야 할 처지를 일일이 표현하지 않았다.


영상의 은유라는 메타포를 통해서 시청자들이 유추하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영상에서는 노아의 행방을 알 수 없게 연출해서 궁금했는데 원작에서 그 답을 찾았다.

두 작품의 스토리를 달리 한 것이 내겐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작에서 노아는 떠나던 날에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왜 자신이 존경했던 아버지 이삭의 아들이 아닌 건달 야쿠자의 피를 받아 태어났냐고? 엄마는 어떻게 그런 사람을 사랑했었냐고? 따져 물으며 혼란을 야기시킨 선자에게 울분을 토해냈다.

그렇게 대학을 중퇴해서 가족과 이별했고 먼 도시로 떠났다. 일본인 아내를 만나 결혼해서 자녀 셋을 나아 기르는 동안 그는 조선인 신분을 숨기고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았다. 버는 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매달 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한수가 결국 노아가 사는 곳과 일하는 장소를 알아내서 선자를 태워 그곳을 찾아갔을 때 노아는 수십 년 만에 만나는 엄마를 맞아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끌어안았다. 다음번엔 동생 모자수와 함께 만나자는 엄마의 제안에 끄덕거리며 대답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런 부푼 기대감으로 한 주를 기다렸는데 들려온 소식은 노아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였다.


원작에는 없지만 드라마에서 관동대지진을 다루며 재일조선인의 암담하고 억울한 처지를 조명한 씬은 역사인식을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야쿠자 폭력배로 거칠고 야비하게 그려질 수 있는 한수라는 인물을 드라마는 생존을 위해 납득할 만한 행동을 하는 그럴싸하게 매력적인 인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영상은 원작의 근간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개인의 서사와 감정선을 키우고 사건에 집중했다.

대신 생략할 것은 줄이고 확대할 것은 힘을 주워 확대했다.


원작은 발품을 팔은 오랜 자료조사를 토대로 탄탄한 스토리의 뼈대를 만들어 냈다.

글은 영상보다 표현에 대한 자유로움과 묘사의 디테일이 더 세밀하고 섬세할 수 있음을 발견한다.


원작이 좋았고, 이를 영상으로 옮긴 드라마작가의 역할에도 박수를 보낸다.

이를 구현해 낸 연출자나 역을 소화해 낸 배우 역시 두말할 나위 없다.


영상에 이어 책으로 감상하면서 스토리와 구성 연출의 상관성을 음미해 본다.

씹고 맛보고 여운을 느끼며 깊이를 체감하는 중이다.

영상 이미지와 텍스트의 무게감이 진한 여운의 파장으로 남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zRqeMj-MGUE&t=9s 다큐인사이트 " 파친코와 이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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