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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Aug 13. 2020

읽는 내내 행복했기에

서양미술사 ( EH 곰브리치 지음)


책장을 넘기는 내내 행복했다.

그림과 내용 하나하나에 빠져 집중하며 음미하느라 부러 더디게 읽어갔다.

시스티나 성당의 좁은 복도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간 예배당의 드넓은 천장과 사방을 뒤덮은 명화에 압도된 때의 감동과 희열이 되살아났다.


아담의 창조 (미켈란젤로)  by pixabay


루브르 박물관의 계단을 힘겹게 오르던 끝에서 마주한 승리의 여신상에 매료된 때가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포스에 넋이 나갔었다. 역시나 많은 사람에 둘러싸인 모나리자의 미소가 감미롭고 매혹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거대한 도판 위에 그려진 커다란 그림이 주는 마력이 더욱 강렬했다.

한적한 미술관에선 순백의 대리석으로 조각한 남성의 근육질에 매혹되어 나도 모르게 손이 조각을 더듬고 있는 몰상식을 범하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 사람들의 놀란 눈과 황급히 다가오는 경비원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돌이라는 질감에 어떻게 저런 생명력과 볼륨감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본능이 이성을 압도했던 정신 나간 순간이었다.


니케 (승리의 여신)   by pixabay

                                                                       

오르세는 역을 활용한 공간의 구성뿐 아니라 이름이 익숙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로 풍성했다.

반 고흐 미술관에는 수 없이 많은 고흐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전시되어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반가웠다.

대영박물관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통째로 뜯어와 타국의 전리품을 버젓이 전시해 놓았지만, 그 아름다움만큼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매트로폴리탄 미술관도 타국의 예술품들로 장관이었다.      

나는 그렇게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책을 사서 틈나면 다시 펼쳐보곤 했었다.

그런데 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보니 그간 내가 모았던 책들을 꿰뚫어 미술사 전체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게 했다. 세련된 종이의 질감 위에 칼라풀한 그림의 도판을 인쇄했고 큰 브로마이드로 뽑은 그림도 마음에 든다.


별이 흐르는 밤 (반 고흐) by pixabay

    

                             책의 서두 역시 강렬했다.

미술 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색깔 있는 흙으로 동굴 벽에 들소의 형태를 그리는 그런
사람들이 미술가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물감을 사서
게시판에 붙일 포스터를 그리는 사람들이다.......

 미술이라 부르는 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며.....     



1950년에 저술한 책이라고 하기엔 그 무게감이 여전한 듯하다.

그림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구도와 표현 숨겨진 의도 작품에 기울였을 작가의 열정과 고뇌 삶 등......    

몇 년에 걸쳐서 쳅터 별로 그림 조각 건축을 보고 읽으며 시대를 감상했다.


마지막 장에 다다른 게 조금은 아쉽고 섭섭하기도 하며 뿌듯하다.

아마도 생각날 때마다 다시 열어보게 될 책이다.

명작은 접할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감흥 같은 게 있다.

실제로 접한다면 더없는 감동과 기쁨이겠지만 이렇게 찬찬히 들쳐 보는 맛도 그에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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