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진도가 잘 안 나가서 덮을까도 생각했다.
그래도 쉽사리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톰과 조지 가족의 운명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가슴 조이고 안타까워서 결말을 보아야만 했다.
누군가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사람을 쳐다보고 노골적으로 평가를 해댄다면 그 상황이 얼마나 무례하고 기분이 나쁠까? 남자가 여자를 음탕하게 바라보고 여자들이 남자들을 탐욕스럽게 바라본다면, 아니 누구든 그 대상을 그런 시선으로 대한다면 말이다.
나름 선량한 주인의 노예로 생활하던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어느 날 노예시장의 상품으로 진열되었다.
몰락해가는 주인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흑인 노예 부부와 자녀가 갑자기 시장에 진열되어 뿔뿔이 팔려가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인간이 아닌 상품을 대하는 사람들은 한치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함부로 묶인 노예의 몸을 만져보고 치아의 상태도 확인하며 과일의 상태를 살피듯 건강상태를 확인한다.
자녀를 잠시 어린이집에 맡기는 이별도 가슴 아픈데 아이들이 팔려가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생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기막힌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누군가는 신앙의 이름으로 노예제를 당연시 여기고, 다른 이들은 폐지를 외치며 인간의 평등을 외쳤다.
그 사이에서 좋은 노예 주인의 길을 택한 사람도 있고, 이들의 탈출을 목숨 걸고 도와 자유의 땅 캐나다나 노예제가 폐지된 주로 보내주는 조력자들도 있었다. 작가 스토아가 이러한 현실을 생생히 기록해주지 않았더라면 남부 노예로 살아가는 흑인들의 삶을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읽는 첫 장에서 나는 노예 가족이 맞이한 운명이 너무도 서럽고 아파서 마음에 멍이 들었다. 조심스레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난에 맞서 가기를 기원하며 읽어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탈취해서 노예 삼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가 있었다. 우수한 인간이 열등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자신들을 향한 신의 축복이라 생각하는 부류가 있었다. 한편, 인간은 만인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는 이들도 나타났다. 신앙의 양심으로 인간이 인간을 부리는 것을 죄로 여기는 사람들이 생겼다.
농업이 지배적인 미국의 남부는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노예를 부리는 것을 당연시했다. 종교도 이를 뒷받침해줬다. 북부는 같은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이 인간을 노예 삼는 것이 신앙에 위배됨을 강조했다. 북부는 공장을 중심으로 공업이 발전하며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남부는 북부에 원재료를 공급하며 예속되는데 북부는 상공업의 부를 축적하는 동시에 노예 노동력을 뽑아가려고 해방을 운운한다고 곡해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인간에 대한 가치의 문제와 경제적 이해득실의 욕망이 교묘하게 중첩되어 있었다.
작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졌고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어떠한 형태로든 양심의 요동침을 느꼈을 것이다. 그 후 몇 년 뒤 미국에선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역사는 그렇게 진일보해 나갔다.
압제당하는 노예 톰에게는 복음이 유일한 삶의 희망과 기쁨이었고 신앙을 받아들여 믿음과 일치된 삶을 살아가려고 애썼다. 나는 톰의 순수함에 매료되었고, 그의 사람됨에 반했기에 그의 굴곡진 삶과 이른 죽음이 끝내 가슴 아팠다.
포악하게 노예를 부리는 사람, 노예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 노예를 부리되 인간적으로 대하는 사람,
불쌍히 여겨 자유의 땅으로 가는 것을 돕는 사람, 적극적으로 노예제도의 부당함을 선포하고 이를
폐지하려는 사람......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이란 미명 하에 자신의 경제적 신념 하에 행동을 선택했다.
고전이 주는 묵직함이란 이런 것같다.
너는 이 시대에 어떤 가치와 생각으로 사느냐고,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고 있느냐고.
작가의 물음이 울림처럼 요동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