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구 Nov 08. 2020

딸이 나의 머리칼을 만졌다

흰머리 칼도 소중해

거울을 보는 나의 뒤로 다가온 딸이 내 머리칼을 만지며 말했다. 

“아빠! 흰머리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염색하실 생각 없으세요?”

“글쎄 아빠는 흰 머리카락도 멋지고 좋은데......”

초등생인 딸은 아빠가 좀 더 젊어 보이길 원했는지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흰 머릿결을

쓸어내렸다. 조그마한 손으로 나의 머리 구석구석을 쓰다듬는데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자신의 긴 머릿결의 감촉과는 다른 아빠의 짧고 각진 머리 스타일이 색달랐나 보다.

나의 머리를 한동안 관찰하는 딸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사실 아빠는 하얀색 머리칼이라도 잘 자라나서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데......’     


30대에 들어서자 머리카락이 점점 얇아지고 힘이 없어지더니, 머리만 감고 나면 수북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버티고 있던 머리카락이 사라져 숭숭 비어 가는 공간을 바라보면 상실감이 컸다. 한 올이라도 붙들어 매고 싶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머리숱이 빠지고 속 머리가 훤해지기 시작하니 사진에 찍힌 나의 모습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두피에 좋다는 음식과 머리 관리법, 특수 샴푸 등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의 모습을 인정하는 쪽이 속 편했다. 다만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못내 편치 않았다.      


그렇게 40대에 접어들 무렵 헐벗어가는 나의 두피 상태로 인해 깊은 침체에 빠진 적이 있다.

그때는 어린 아들 하나를 두고 있던 때라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보다 가족에게 유쾌하지 못한 눈길이 번질까 걱정이 되었다. 자연스레 기도가 나왔다. 

“당신의 긍휼을..... 은혜의 손길을....... 등등을 간구하다가 어떤 한 음성이 내게 들려왔다. 

요즘 현대의학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너는 왜 그런 걸 나한테 구하니? 과학이 해결해 줄 것은

과학에 의지하고, 세상이 할 수 없는 것을 내게 구해야 하지 않겠니?”  

    

그날 이후 나는 당장 나의 회사 근처에 있는 신촌의 대학병원 피부과 두피 클리닉을 찾아갔다. 

길고 긴 클리닉의 과정을 구구절절이 풀어놓을 수는 없지만, 선생님의 표현대로 두피로 이어지는 모세혈관이 마르고 죽어가던 밭을 다시금 작물이 자라는 토양으로 바꿔가는 작업을 했다. 밭을 바꾸기까지는 신뢰에 기반한 인내와 믿음 시간과 비용 등이 뒤따랐다. 때때로 레이저 치료와 두피에 놓는 비타민 주사 등은 상당한 아픔도 동반했다. 먹는 약을 병행하면 치료가 빠르다는 선생님의 계속된 권유가 있었지만 약을 먹는 것은 거부했다. 

희박하게나마 둘째 아이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에게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약물을 복용할 수는 없었다. 동갑인 아내도 기대하지 않았고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소망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선물처럼 얻은 아이가 나의 머릿결을 쓸어내리고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내 머리를 어루만져 주시던 손길이 기억났다.

때때로 참빗으로 내 머리의 이를 훑어 주던 누이의 손길도 따사로운 기억으로 살아났다.

10대에 접어든 둘째 아이의 가녀린 손마디가 포근한 감촉으로 나의 추억들을 소환해 주었다.  

    

머리칼이 풍성하든 비어있든 그것이 더는 아무것도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