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미디어 소비 변화
여기저기서 코로나 시대에 미디어의 소비가 늘고 있다는 보고가 넘쳐난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의 경우 어떤 이유로 매체를 즐기는 시간이 늘어났을까?.
현상이 집계되었으니 이젠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구체적 실제인 나의 가정을 살펴본다.
거실엔 책장과 긴 탁자가 놓여있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교제하는 것이 주가 되기를 바라는 배치였다.
안방으로 들어갔던 조그만 TV는 침대 위에서 보거나 바닥에 앉아서 시청했다.
그다지 불편할 점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오래 보자면 이내 허리가 불편해져서 곧 시청을 마치게 된다는 효율적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따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 별안간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서 딸은 두려움 속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되었다. 약간 긴장한 상태에서 생각보다 깊게 콧속으로 파고드는 면봉의 공격에 놀라, 그만 눈물을 떨구며 컥컥거리며 힘겨워했다. 그 후로 딸과 아들은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달리 갈 곳도 없었고 환영하는 곳도 없었다.
방학을 맞아 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으면 좋으련만 자의 반 타의 반의 집콕 생활이 이어졌다.
조그마한 스마트폰에 고개 숙이며 응시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이왕에 볼 거면 커다란 모니터로 영상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관도 못 가고 여행도 못하는 데 화면이라도 크고 좋은 화질로 감상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여러 제품을 저울질하다가 적당한 선에서 TV를 구입하고 거실에 놓을 자리를 마련했다.
물건을 배송받아 설치를 하고 나니 기존에 사용하던 TV 받침대가 작았다.
당장 받침대를 알아보려고 이케아를 방문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찾아 헤매었다.
가로 세로 높이 등을 가만하고 디자인을 따져서 적정한 가격의 물건을 사는 것도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당근에서 본 받침대가 눈에 띄어서 그것으로 정하고 물건을 실어왔다.
기다란 받침대에 올려진 TV가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TV 앞에는 푹신한 소파가 놓였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니 햇살이 TV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방향의 베란다에는 블라인더를 달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빛을 가려야 했다. 분주하게 몸을 움직여 블라인드를 사 오고 드릴을 사용해서 뚝딱 커튼을 달았다.
TV 하나가 거실의 중앙으로 나오면서 모든 배치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소비가 이루어졌다.
TV가 좋아졌으니 이제는 그에 걸맞은 콘텐츠를 소비할 차례가 되었다.
IP TV를 시청하고 있었지만 한 달 맛보기가 가능한 OTT 넷플릭스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다.
4K급 이상을 구현하는 디바이스에 4K급 이상의 화질을 서비스하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눈이 돌아간다.
‘아름다운 지구’의 다큐나 고퀄리티의 영화 화질을 큰 화면으로 본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와 완성도 높은 시리즈물을 시청했다.
물론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영상미디어에 소비하는 것은 서로가 주의하자고 약속하면서 말이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 가정의 미디어 소비 패턴이 변하고 플랫폼도 바뀌어가고 있다.
택배를 이용한 구매와 배달음식 소비의 증가는 어느 가정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쌀과 라면 부식을 사는 횟수도 증가하는 것 같다.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집에서 주로 소비하게 되는 것 같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아내는 책을 많이 구입해서 읽고 소비하는데, 정작 나 자신은 영상을 제작하면서도 영상을 소비하고 분석하며 이에 대해 지불하는 데에는 소극적인 면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OTT 이용 증가
넷플릭스가 우리의 안방을 점령하며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다.
디즈니와 애플도 가세하면 우리 토종 브랜드는 더욱 분발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나의 자녀들에게 양날의 검을 쥐어주기 시작했다. 서투른 손놀림이라면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고, 잘 활용한다면 맛난 음식을 조리하며 효용을 가져다줄 것이다.
오늘 나의 안방극장에선 세렝게티의 대평원을 달리는 얼룩말의 역동이 나를 대리 만족의 세계로 이끌 것이다. 당분간 우리가 달리고 자유로이 날 수 있기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