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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May 01. 2021

나의 문어 선생님

문어가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바다 생명체와의 교감

‘나의 문어 선생님’이 마침내 다큐멘터리 부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쾌거로 한껏 흥분한 수상자들의 표정을 보니 나도 그들의 기쁨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애초에 누군가가 좋은 다큐멘터리라며 추천을 했지만, 솔직히 제목이 썩 공감되지 않았다.

‘문어’가 어떻게 인간의 스승이 될 수가 있다는 건지?

석연치 않은 의구심으로 시작한 프롤로그에서 나는 점차 바닷속 깊은 심연의 아름다움과 하찮게만 여겼던 생명체가 인간과 맺어가는 교감에 흠뻑 빠져들기 시작했다.   

   

출연한 감독이 영상제작에 염증을 느끼고 현장에서 떠나 쉼을 얻으려는 순간 그는 사그라진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평소 제작자로서 작품에 매달리다 보면 가정에 충실하기 힘겨운 상황을 토로하는 인간적인 갈등이 나의 마음에 깊은 공감을 불러왔다.

    

그는 손수 카메라를 들고 남아프리카 바다 광활한 심연의 해초숲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그는 주변의 환경에 자기의 몸 색깔을 바꾸고 해초와 조개로 위장하며 때론 다리로 걷는 문어라는 생명체를 만난다. 녀석의 다양한 면모에 호기심과 신비함을 느끼기 시작하며 감독은 자신의 카메라를 들고 매일 바닷속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인간의 조심스러운 접근에 스스로 경계의 빗장을 푼 문어가 처음으로 사람의 손으로 자신의 촉수를 조심스럽게 옮겨서 다리 전체와 몸을 내어 맡기고 허그하는 순간을 맞는다.

그때 내 몸에는 전율 같은 감동이 일었다. ET에서 외계인과 소년이 손가락으로 서로를 터치하는 광경 이상의 경이로움이었다.      


영상의 도입이 그러하듯 이 다큐는 제목 타이틀이 뜨기 전까지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한 현란한 바다의 영상과 문어의 신비로운 행동들을 보여주며 일시에 긴장과 집중의 매력을 발산한다. 물론 이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본 내용에선, 어떤 생명체 인지도 모를 기괴한 모습의 해초와 조개류로 뒤섞여 움직이던 녀석이 문어였다는 위장술에 경탄한다. 자신의 천적인 바다상어로부터 몸을 숨기는 놀라운 기술의 소유자.

천적으로부터는 자신을 감추고 자기의 먹이인 게와 다른 생물에게는 침착하게 사냥을 하며 삶을 유지하는 명석한 생명체.     


인간과 친구가 된 문어는 이제 스스럼없이 사람의 몸을 타고 너른 바다를 함께 유영하며 친구 같은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던 중 감독은 문어를 촬영하다가  카메라 렌즈를 그의 몸으로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한 순간의 사람의 부주의가, 자신의 생명을 위해하는 위협으로 여긴 문어는 거처까지 옮기며 사라졌다.

문어를 더 이상 촬영할 수 없고 스스로의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좌절의 시간에 감독은 문어를 다시 찾아 나선다. 사죄하고 싶은 마음으로 문어와 바다 환경을 분석하면서 그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맨다.

제작이 중단될 위기에서 천신만고의 노력으로 다시 문어를 만나게 된 순간  감독은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문어를 바라보았다. 문어 역시 다시 자신을 찾아온 인간의 진정성을 받아주었다.   

   

외적인 위기는 계속 존재했다.

천적인 상어가 문어의 은신처를 알아차렸고 위장한 문어를 냄새로 찾아냈다.

감독은 끝내 상어가 문어에게로 접근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고, 다리 몇 개가 뜯겨 나가는 모습을 숨죽이며 바라보아야만 했다. 자연의 질서에 개입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절감하면서 말이다. 숨 가쁜 순간이 지나고 감독은 조용히 문어를 곁을 지키며 스스로 빨리 회복해 나가기만을 가슴 졸였다. 때로는 조개를 까서 그의 앞에 두기로 했지만 문어는 스스로가 깊은 정적과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아픔을 승화해 나갔다.

며칠 후 다시 문어를 찾아왔을 때 뜯겨 나간 다리엔 아주 가녀린 다리가 새싹처럼 자라나 있었다. 상대적으로 긴 인간의 삶이나 짧고 강한 문어의 삶이 동일한 약육강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게를 옴짝달싹 못하게 사냥하며 사는 문어는 늘 그를 노리는 상어의 밥이다.


이번엔 제대로 상어의 표적이 되었다. 먹물을 뿜고 필사적으로 바위틈을 돌고 해초 사이에서 위장했지만 끈질긴 상어의 추적을 피할 수 없었다. 드디어 먹혔다고 생각한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상어의 입속에 있어야 할 문어가 상어의 등에 올라탄 것이다. 나는 경이롭다 못해 충격이었고 문어의 혜안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위험을 피하다 못해 파고에 올라 탄 것이다.


상어도 자신의 등위에서 빨판을 밀착한 채 떨어져 나가지 않는 문어로 인해 어리둥절하기 시작했다. 황당함으로 문어를 떨쳐내려 바위틈에 몸을 비비지만 허사다. 스스로 지칠 지경에 이르자 식욕은 고사하고 귀찮은 문어가 떨어져 나가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생명을 보존한 문어.


문어는 그렇게 생을 이어갔다.  

나중엔 수 만 마리의 새끼를 낳고 이를 지키면서 자신의 몸을 희생시키며 막을 내린다.

이제는 모든 생명체가 자신을 먹을 수 있도록 기꺼이 바다에 내준 것이다.      

사람의 생과 어쩌면 이리도 닮아 있을까?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이 절로 연상되었다.

실로 문어는 우리의 선생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고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감독들이 부럽고 그 집념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스스로 내레이터가 되고 촬영자가 되어 자신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드니 말이다.

기승전결의 구성 중 적절한 긴장과 작은 스토리들의 연결과 배치가 모두 마음에 든다.

아름다운 비주얼에 멋진 음악도 훌륭하다.      


이 다큐멘터리가 내게 큰 자극과 도전으로 다가왔다.

나도 어디선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나의 스승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으면 좋겠다.

천천히 사려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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