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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May 30. 2021

딸기 한 알도 따먹지 못할 줄 알았다

기름진 자연예찬

밭에 마음을 둘 여력이 없었다.

부지런한 이웃의 농부들은 시와 철에 맞춰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느라 바빴다.

아침저녁으로 땅을 돌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연농답게 손수 음식물로 퇴비를 만들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나는 마음이 분주하기도 했고 뙤약볕을 마다하며 작물에 애정을 쏟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아내도 흙을 돌보는 노고보단 나무 아래의 휴식을 취하고 싶어 했다. 나도 일요일만큼은 안식을 선택하고

싶었다. 전에는 밭에서 땀 흘리는 수고가 오히려 도심에서 찌든 피곤함에 활력을 심어주었는데 이제는 그냥 자연 속에서의 쉼으로 몸을 충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전나무 숲


높다란 전나무 숲 사이로 그네를 걸고 해먹을 놓아 더위를 피했다. 

주일 예배를 드리며 삶을 성찰하고 잠시의 평안을 누린다.

이내 건물 바깥으로 나와 전나무 숲으로 들어왔다.

높은 나무 위에 매단 기다란 그네에 몸을 맡겨 허공을 가른다.

춘향이가 담장 너머 저잣거리를 바라다보는 시선으로 건너편 산과 들을 눈에 담는다.

숲의 신선한 기운이 내 마음을 뻥 뚫어 준다.

해먹에도 누워 게으른 하품을 내뿜으며 하늘로 뻗은 나뭇잎 사이로 번지는 햇살을 즐긴다.

한가롭고 평화롭다. 마스크를 내던진 호흡이 상쾌하다.      


                                                     

해먹에 누워서 바라본 하늘


성실한 농부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겨우 씨 뿌려 놓은 밭으로 향한다.

아직은 가녀린 수줍은 상추들이 순한 잎을 피워내고 있다.

돌보지 않은 딸기밭엔 놀랍게도 상큼하고 탐스러운 빨간 열매가 맺히고 있다.

다년생 딸기의 생명력이 경이롭고 이웃의 밭을 내버려 두지 않고 돌봐준 손길의 정성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올해는 딸기 맛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아까워서 못 삼킬 만큼 달콤하다.      

딸기 몇 알을 따서 딸과 함께 나눠 먹으니 벚나무의 열매가 눈에 들어온다.

제법 빨간색을 띠는 게 다음 주쯤이면 먹기 좋게 붉게 익을 것 같다.

뽕나무의 오디도 알이 굵은 것이 6월이면 제법 튼실하게 먹기 좋은 빛으로 변해갈 것 같다.  

   

벗지와 딸기
상추와 파

올해는 그냥 배짱이 모드로 살려고 한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의 삶에 방점을 두고 닮아가라고 평생을 배웠지만, 배짱이의

풍유에 귀 기울이며 강약을 조절하는 삶의 묘미를 헤아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내리는 비로 궂은날이 잦더니 오늘은 햇살이 쨍쨍하고 하늘도 청명하다.     

비 온 뒤의 계곡에 물이 가득하니 다음엔 흐르는 물에 발 담그고 과일이나 씻어 먹어야겠다.     

코로나에도 무던한 자연의 넉넉함에 기대어 산다.

아름답고 경이롭다.   






예배당 옆의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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