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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Apr 12. 2021

여수는 낮에도 아름답고 순천만은 광활했다

여수 순천 여행

여수를 한눈에 내려다보기엔 케이블카 만한 것도 없다.

돌산도와 여수를 상공으로 이어놓은 케이블카에서 바다와 섬들의 지형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6명의 인원이 한 공간에 앉자마자 주의 방송이 들린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흔들림이 있으니 유념하라는 내용이다. 방송 때문이었는지 좌우로의 흔들림이 더 강하게 전해지며 싸늘한 바람 소리에 몸이 위축됐다.

고소공포증에 물을 두려워하는 처형의 혈색이 허옇게 변하더니 두려움의 고성을 내뱉었다. 초등생 딸도 덩달아 불안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긴장하던 나는 어느새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쥐기 시작했다. 아내와 장모님만 덤덤한 모습으로 멀리 보이는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소소한 대화를 건네며 화제를 돌리자 순식간에 엄습했던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며 허공의 높이에 적응해 나갔다. 동남아에서 살고 있는 처남은 우리의 바다 빛깔과 관광지가 아름답고 깨끗하다며 연신 감탄을 쏟아 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아기자기한 형태와 섬과 배들의 역동이 한 폭의 그림이자 평화로움이었다.   

  




오동도를 거닐었다.

아주 오래전 내가 현재 딸의 나이였을 때 아버지와 함께 왔었던 섬이다. 그때는 비가 심하게 내려서 섬을 세세히 둘러보지 못하고 사진 한 장만 추억처럼 남겼다.

아내와 딸의 손을 잡고 거니는 동안 애잔한 향수가 일었다. 동백의 빨강 잎과 노란 꽃술이 더욱 아련하고 강렬하게 무언가를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자그마한 섬의 곳곳에는 대나무 숲과 동백나무 군락과 묘하게 하늘을 나누며 자라는 나무들로 울창했다. 바다와 맞닿은 바위 사이로 파도가 치고 골바람도 매서웠다. 남해의 바다가 한없이 펼쳐지는 전망대의 풍경은  자유와 해방의 창구와도 같았다.


그때 케이블카가 설치되기 전, 한려해상공원의 기암절벽과 섬을 보려면 대체로 유람용 선박을 이용했다. 출렁이는 물살을 몸으로 느끼며 흔들리는 선상에서 바라본 기암절벽의 섬과 비경을 오늘은 걸으며 느낀다. 딸도 경치를 즐기고 거닐며 사진을 찍는데, 내가 선친을 기억하듯  훗날 너도 엄마 아빠에 대한 추억의 장으로 남으면 좋겠다. 또 그렇게 너의 자녀와 함께 다시 찾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고......

여수 밤바다는 조명이 수놓은 아름다움과 잔잔한 밤공기로 해안산책이 매력적이다. 다리를 빛내는 조명에 반사되는 공원을 따라 바다 내움과 상쾌함을 가슴에 담아낼 수 있었다.   

 

  


해안가 펜션에서 맞이한 아침은 한적함과 여유로움이었다.

예스럽고 소박한 어촌마을의 새벽은 조그마한 어선의 조업으로 싱그러운 역동이 일었다.

테라스에 나와 이 모든 광경을 한 눈으로 만끽한다는 게 경이롭고도 행복했다. 가족과 처가 식구들까지 함께 여행한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까다로운 신경 쓰임이 있지만 그래도 지나고 나면 아쉽고 그리워지기 마련인 것처럼 말이다. 여수 쪽에 비중을 두고 움직이던 터라 순천만은 잠시 들리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숙소에서 가까운 와온해변으로 차를 몰고 나오니 마음이 변했다. 순천만으로 이어지는 해변의 널따란 뻘과 한적한 섬이 내뿜는 풍광이 따뜻했다. 마을 어귀의 논과 밭이 정겹고 가로수 양편의 나무들이 포근했다. 한가로운 길을 따라 순천만 생태공원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갈대로 가득한 습지가 펼쳐졌다.

바람에 일렁이는 누런 갈대들의 춤사위 같은 물결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유유자적한 날갯짓에 잠시 멍한 시선을 보낸다. 생태공원으로 들어서니 왼편 1.5km에는 김승옥 문학관이 전방 2Km에는 순천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소설이 시의 아름다움을 내포할 수 있다는 놀라움을 선사한 ‘무진기행’을 찾아 왼편으로 갈 것이냐 자연의 조화를 구경할 것이냐 망설이다가 이내 갈대숲의 길을 따라 걷기로 한다.

전망대에 목적을 둔 발걸음도 아니고 이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삶의 여유와 순간을 누리는 것이 주가 되었다. 잠시 휴게실에 앉아 아내와 커피 한잔을 기울이고 아이에게 음료와 과자를 사 준다. 드 넓은 순천만 일대를 전부 걷는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가 있는 것이고 그나마 눈에 담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차를 마신다.

이런 곳은 며칠 머무르며 부지런히 발로 움직여서 완상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종종 일하러 와서 후딱 촬영하고 떠나가는 게 일상이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여행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행복이다. 생을 다한 늙고 누런 갈대 사이엔 가냘픈 초록의 여린 갈대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 습지의 바닥에는 조그마한 게와 짱뚱어가 기어 다닌다.





딸이 걷는 게 힘들다며 서울로의 귀경을 서두르는 바람에 전망대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온다.

봄날의 낮 기온에 바다 바람이 얹히니 시원하면서 뜨겁다.


새벽과 밤에 사위가 안개에 휩싸일 무진의 시간을 상상해 본다.

다음번엔 아마도 새벽안개에 가려진 무진의 갈대숲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끝없이 걸어서 닿은 무진의 저녁엔 해 질 녘의 낙조를 바라볼 것이다.      

천천히 음미하며 즐겁게 누리면서.


그때는 누구와 동행하고 있을까 생각하며

다시 떠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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