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에 눈을 떴다.
여섯 시를 살짝 넘긴 시간이다. 습관처럼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토요일인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평일이라면 마지못해 일어나야 하는데 토요일 오전은 몸도 여유롭고 상쾌하다. 잠시 누워서 핸드폰을 살피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8시쯤에 거실로 나왔다.
커피가 생각나서 볶음 콩을 갈아 뜨거운 물을 내린다.
커피 향을 깊이 들이마셔야 하루를 잘 시작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정성스럽게 드립을 하며 올라오는 향을 음미한다. 과일도 깎고 계란 프라이에 빵을 구우면 아침 상으로 그만이다.
9시쯤 식사를 마치면 라디오의 볼륨을 크게 틀어 놓고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한다.
모아둔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로 방과 거실을 훔치다 보면 음악이 빠질 수 없다.
방마다 문과 창을 열어 환기시키고 청소기가 닿지 않는 부분은 다른 부속들을 연결해서 먼지를 빨아들인다. 청소할 때 흘리는 땀에는 약간의 희열이 있고 음악은 더욱 흥겹다.
토요일 아침의 청소는 대략 군생활 이후의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간부들의 간섭이 없는 토요일 아침에 누리는 자유는 내무반을 쩌렁하게 울리는 음악소리에서 확인된다.
스피커가 웅웅 거려 젊은 피들을 무한히 설레게 만들고 누군가가 면회라도 오거나 편지라도 올 것만 같은 착각과 희열을 상상하게 만들던 시간.
청소에 이어 걸레질까지 마치면 1시간이 뚝딱 지나간다.
10시를 넘길 무렵, 아내는 장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린다. 장인 장모님의 몸이 부쩍 쇠약해지시고 귀도 멀어지시니 전화의 통화는 점차 목소리가 높아지고 대화도 반복된다. 먼저 연락드리지 않으면 섭섭해하시니 가급적 오전에 전화드리고 주말에 한 번쯤은 찾아뵈어야 한다. 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것이 내 삶의 패턴이었다면, 이제는 그 돌봄이 장인 장모님으로 향한다.
50대를 살아간다는 건, 위로는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사실이고 필연인데 버겁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갑자기 팔을 들 수 없고 어깨 돌아가는 각도가 전처럼 자유롭지 않음을 느꼈을 때 말로만 들었던 오십견과 석회화건염이란 생소한 단어들의 진단을 받는다. 나도 아내도 이러한 단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11시쯤에 앞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딸과 함께 둘레길을 걷고 점심은 멋지게 외식하기로 했다.
산길에 접어드는 순간 초록의 잎들이 생기를 덧입고 연한 색을 넘어 짙게 변해가는 숲의 생명력에 감탄한다. 가지만 앙상하던 나무들에 파아란 잎과 꽃들로 만발했다.
물소리를 듣고 꽃의 향을 맡고 노랑과 빨강의 색감에 취해서 숲 속 길을 걸었다.
적당히 배고플 무렵 도착한 싱싱 식당.
아내와 나는 담백하게 끓여먹는 복지리를 딸은 낙지볶음을 주문한다. 아들도 함께 있으면
좋으련만 학교에 머무르고 있으니 대신 우리만 맛나게 먹기로 했다.
진한 복지리를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니 노폐물은 빠져나가고 기운이 좀 보충되는 느낌이다.
가격도 맛도 만족스러워 우리만 먹기가 미안하던 차에 장인 장모님께 좀 싸다 드려야 할 것 같은 눈빛을 교환한다. 포장이 정성스러운데 맛난 반찬까지 담긴 걸 보니 잘한 선택인 것 같다.
휑하니 차를 몰아 음식을 전해드리고 과일을 깎아 잠시 담소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4시쯤이 되었는데 몸이 흐물흐물하여 잠시 눈을 부치고 이내 탕에 물을 받아 거품까지 풀고 몸을 담는다. 대중탕엘 못 가니 소규모 탕이라도 이게 어딘가.
몸이 노글노글해지도록 뜨거운 욕조에서 핸드폰으로 드라마 시리즈를 보며 한가로움을 즐겼다.
한동안 뜸했던 글이라도 올린 요량으로 노트북 앞에서 자판을 두드린다.
일상의 평온함이 밀려오는 저녁, 아내가 끓이고 있던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소리를 울리며
"밥 먹고 하세요 밥 먹고 쉬세요" 하며 나를 부른다.
50대에 진입하고도 마음만은 늘 청년으로 살고 있지만
오늘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시점이고 찬란한 때란 걸 잊지 말아야겠다.
정렬적인 붉은 노을이 창으로 스며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