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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Apr 02. 2021

'종이의 집' 강도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맘은 뭐지?

구성의 매력

시즌 1의 후반부로 치닫자 강도들에게 이상하리만큼 우호적인 감정이 일었다.

계획이 성공해서 돈을 들고 유유히 세상 밖으로 탈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고나 할까.

 ‘아니! 조폐국의 돈을 털러 들어간 강도들을 심적으로 응원하고 있다니’

놀라움이 이는 건, 시청자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교수와 강도 일당에게로 향하게 하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사회에서 눈총 받는 사람들을 모아서 치밀하게 계획을 주도하는 교수의 천재성에 놀라고

조폐국을 털되 사람을 헤치지 않고 생명을 존중한다는 철학에 매료되고 있었다.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두었지만 무자비하게 가해하거나 죽이지 않았다. 임신한 여인이 자신의 아이를 지우려 할 때에는 오히려 강도들이 생명의 존엄을 이야기하며 극진히 보호해 주었다.

강도들이 필요한 것은 조폐국에서 돈을 찍어내는 시간을 버는 것이었지 생명을 해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경찰과 협상하는데 필요한 존재일 뿐이었다.    

  

때로는 생명을 헤쳐야만 하는 상황이 있었다. 자신들의 완전 범죄와 성공을 위해서 누군가를 살상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흐름이다. 그런 전제에서도 나는 결단코 살인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하며 마음 졸였다.

아무 낌새도 차리지 못하는 상대방을 간단히 제거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늘 눈동자가 흔들렸다. 증인을 없애는 것만이 유일한 길에선 생각지도 못한 차선책과 반전의 장치가 등장했다. 킹스맨의 장난스러운 살상과는 다른 격으로 나를 몰입시켰다. 격한 긴장감으로 몰고 갔다가 안도의 한 숨을 뱉게 하는 이완의 카타르시스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소소한 갈등의 작은 스토리가 몰입으로 이어져 절정으로 치달으면 극적 반전과 갈등이 해소되어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물론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캐릭터들이 간간이 펼치는 육감적인 러브신 때문에 거실에 있는 큰 TV로는 정주행이 어렵다. 미성년인 아이들도 배려하며 시청해야 하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내는 핸드폰으로 출퇴근과 점심시간에 짬짬이 감상하는 중이라 나보다는 늘 시즌이 앞선다. 나는 여전히 강도 대표인 교수와 협상 대표인 여 경찰의 호감과 아슬아슬한 사랑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고 긴장되는데 말이다.        


이들이 멋지게 돈을 갖고 튀어서 원 없이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나의 바람을 말하자 아내는 성공해서 그렇게 돼라고 짧게 말한다.     

‘중요한 스포일링을 아직 진도를 못 뺀 나에게 미리 말하다니’ 맥이 풀리고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스토리를 풀어냈길래 그 엄청난 경찰과 특수부대의 방어선을 뚫고 나올 수 있었을까 더 경이롭게 다가오니 말이다.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같은 장편 문학이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한 권씩 출간되었을 때 그 사이사이의 기다림과 설렘이 달콤하고 짜릿했다. ‘종이의 집’ 역시 같은 맥락 속에서 하나씩 음미하며 시즌 1을 마치며 시즌2로 접어들려 한다. 그러면서 왜 이 스토리에 빨려들었던가를 생각해봤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더욱 매력적으로 플롯을 전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잠긴다.      

아침 출근길에 긴 줄을 보곤 한다.

명당으로 소문난 로또 판매점에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뜨거운 여름이나 한결같음에 놀란다. 그리고 퇴근 무렵에 늘어선 줄도 만난다.

오후 5시 무렵에 어김없이 주섬주섬 모여드는 마로니에 공원의 무료급식 줄.

행운을 기대하며 만들어내는 줄과, 생존을 위해 서야 하는 줄.     


종이의 집에 늘어선 줄은 교수와 강도 일당이 나래비 선 줄이다.

행운이 내게 와주기를 염원하는 수동성이 아니요 허기를 달래기 위함도 아니다.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돈을 획득하기 위한 당당한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돈을 털러 들어간 강도들이 나쁜 놈들인지 바깥의 경찰과 정보부의권력자들이
더 강도 같은 놈들인지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의식도 없는 자, 인식은 있지만 실천이 부족한 자, 인식하고 실천하는 자.

이 정도는 가려야 하는데 구분할 능력이 안 되는 자.


적어도 아는 것과 삶을 일치시키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의 최소한의 책임은 아닐까?     

이 순간 노회찬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바야흐로 선거의 국면이다.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교수의 혜안은 늘 경찰과 정보부의 계산보다 앞서갔다.

모든 것이 미리 설계되었고 예측 가능했으며 의연히 대처해 나갔다.

단 하나 계획에 없던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경찰과의 사랑에 빠진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생각한 데로 안 되는 게 인생이지만 그런대로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것도 삶의 자세인 것 같다.

드라마 간간이 캐릭터의 주인공은 격무에 지치고 힘들지언정 사랑은 빼먹지 않으려는 것처럼

무엇이 중한지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야겠다.  

   

천천히 다음 시즌도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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