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맛잇기로 만나는 세상
영화를 보았어. 주인공 직업이 연극 감독 겸 배우여서, 유명한 외국 작가의 소설을 각색한 연극의 대사와 장면이 등장했어. 그 외국 작가는 실제 작가였어. 내용은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전에도 들어본 작가라 그의 이름이 좀더 뚜렷하게 각인 되었지.
평범한 일상을 살던 어느 날, 우연히 그 작가의 책을 만났어. 그러면 난 그 책을 읽고야 말아. 운명 같은 인연처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야.
이건 마치 끝말잇기 같은 거야. 영화의 끝에 남은 작가 이름으로 나는 작가의 책을 읽게 되는 일은 소멸과 생성 같은 끝말잇기같아. 그 끝의 말로 새 낱말이 연결되듯, 영화의 조각이 새로운 무엇으로 이어지거든. 나는 이런 끝말잇기를 정말 좋아해. 감탄 같은 전율이 흐른달까. 이런 면에서는 무슨 자기장이 있는 것마냥 막 끌려와. 전체 그림은 모르겠지만 조각의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아. 그런 느낌을 너무나 좋아하지.
내가 본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였고, 작가의 이름은 '안톤 체호프'다. 그리고 전자책 앱에서 체호프의 '자고 싶다'라는 제목의 단편집을 보게 되었다. 영화에서 체호프를 접하지 않았다면, 그는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내가 인식했기에, 그것이 내게 머물 수 있었다.
체호프 단편의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길이가 꽤 짧은 작품도 여럿 보인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단편이라고 칭하는 분량보다는 짧다.
나는 단편보다는 장편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여러 작품을 묶어 놓은 단편집은 다 읽고 나면 모든 내용이 연기처럼 휘리릭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런 말은 꽤 실례지만 아님 말고식의 던져만 놓기만 해서 책임감이 살짝 부족해 보일 때도 있다. 묵직함이 부족해! (물론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 장르인 '봇코짱'만큼은 좋아했다.)
단편의 매력은 뭘까. 체호프의 작품을 읽고서 어렴풋 단편을 이런 맛에 읽는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의 단편은 극적이고 임팩트 있으며 극단적이다. 단편을 읽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짧은 길이 안에 기승전결을 담아내는 속도감, 인상적 한방 혹은 여운을 남기는 암시, 매력적 소재. 순간 집중력이나 벼락치기 같이 피치가 급상승하는 기분을 줄 수 있는 장르적 특성. 짧은 구성 안에 독자를 사로 잡거나 끝난 후에도 머물게 만들 정도의 공간을 남겨야 승부가 가능한 것 같다.
단편소설의 완성자라 평하는 체호프. 기 드 모파상,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단편소설을 확립한 작가. 이후에는 막심 고리키,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어니스트 헤밍웨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레이먼드 카버, 존 치버, 앨리스 먼로 등의 작가들이 단편의 맛을 살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체호프의 단편집 ‘자고싶다’에는 블랙 유머격의 웃픈 상황과 인물이 나온다.
몇 개의 에피소드를 얘기하자면, ‘관리의 죽음’에는 상관에게 재채기를 한 관리의 피말리는 순간이 담겨있다. 직속 상관도 아닌데 한 번의 재채기가 그 관리에게 불러온 불안이 안타깝지만, 왜 저럴까 싶게 구는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말리고 싶을 정도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자고 싶다’는 정말 주인공 아이가 자고 싶다는 내용이다. 잠을 잘 수 없는 아이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보면 흠칫 놀라게 된다. 이거야 말로 비극이구나 싶은 상황이다.
‘우수’와 ‘반카’는 슬픈 내용이다. 굉장히 짧은 길이임에도 그 인물에 몰입하게 한다.
이번 끝말잇기도 대성공. 작가는 짧고 응축된 서사를 던지지만 독자의 상상 영역은 넓어지는 것 같다. 장편은 작가가 완결에 대한 책임으로 전체를 꽉 채운다면, 단편은 나머지를 독자에게 맡겨두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