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ve Jun 14. 2024

비가 오는 날엔

.

나의 인생 자체가 후회 덩어리는 아니지만 번개가 치듯 떠오르는 기억들이 몸을 경직시키기엔 충분하다.  장마철, 미친 듯이 내리는 빗줄기 사이에 아슬하게 줄타기하듯 서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시계는 낮을 가리키지만 해는 나를 보고 있지 않은 하루, 나의 발끝으로 휩쓸려오는 물줄기가 괜스레 겁이 났던 하루였다.


과거를 후회하기 딱 좋은 날이다.  위에서 아래로 머리끝에서 발끝으로 찌릿하며 불안하고도 부정적인 번개가 나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물어볼 시간은 주지 않으며 들어줄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후회는 여유가 없다. 어찌 보면 슬픔이라는 감정보다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후회는 극복할 수 없다. 후회는 복수도 할 수 없으며 작은 후회라도 우리 마음속 사진첩에 지워지지 않은 채 존재한다.


슬픈 날에 슬프지 않은 법을 익혔고 힘든 날에 버티는 법을 익혔지만, 후회가 막심한 날에는 뚜렷한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듯하다. 아니,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다고 하는 게 더 맞을 듯하다. 모든 감정이 희망적일 수는 없으니까, 후회는 후회대로 가져가야 하니까. 후회는 슬픔처럼 이겨낼 수 없었고 힘든 하루처럼 버틸 수 없는 것이다. 후회에서 悔(회)라는 한 자가 뉘우칠 “悔”인 그것처럼 스스로를 꾸짖고 채찍질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잠시 자존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해보자면, 자존감은 “내가 최고야.” “난 자신 있어.” “난 나를 사랑해.”를 자존감이라 부르지 않고 자기 자신의 현재 상황과 위치를 인정하는 것이 자존감이라고 한다.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 아닌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이 후회를 받아들이는 자세라는 것처럼.


우리는 또 다른 후회를 만들어갈 것이다. 후회 없는 삶은 없고 후회 없는 사랑은 없다.  언젠가 또다시 불안하고 찝찝한 장마철에 내리치는 번개처럼 후회도 내리치겠지만 인정한다면, 뉘우친다면, 또 스스로를 꾸짖는다면 극복하지 않아도 후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후회는 그래야 후회로서 내 안에 남을 테니까,

이전 07화 사랑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