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는 일본인이며 한국어를 꽤 잘하는 친구였다. 여자치고도 꽤 작은 체구였으며 밤하늘 수많은 별 중에서도 작은 별을 닮아 있었다. 그 친구는 항상 노트를 들고 다니며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고 있었고 사소한 이야기조차 메모했다.
예전에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책을 쓰는 작가님과 4일 정도 붙어서 생활했던 적이 있기에 메모하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주로 어떤 생각들을 메모하는지, 글로써 표현은 어떻게 하는지, 책은 어떻게 출간하는지 등 물음과 대답이 오가다가 자연스럽게 그 친구의 인생을 아주 조금이나마 듣게 되었다. 우울증에 걸렸던 시절과 큰 사고로 기억을 잃어 메모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솔직히 그 말들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었고 지금은 아주 좋아졌다며 웃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득 고통스럽고도 잔인한 우울증에 걸린 이유가 궁금했다. 염치없지만 왠지 그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것처럼 느껴졌다. 과연 무엇이 그 친구의 발목을 잡고 넘어트렸을까 묻자, 그 친구의 대답은 내 29년 인생 처음 듣는 말이었다.
“우울한 친구와 대화하다가 그 우울한 기분을 느꼈고 위로를 해주다 보니 나의 우울인 것처럼 느껴져 우울증을 가지게 되었어요.”
하, 그 누가 남의 감정을 고스란히 자신의 감정으로 끌고 올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던 위로라는 단어조차 의미를 잃어버려 1년이 지난 지금도 “위로”라는 단어의 진정성을 못 찾고 있다.
짧은 시간이 흘러 그 친구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안부를 알 수도 없게 되었다. 대신 그의 생각 그득한 종이책 한 권은 항상 내 책상 위에 있고 가끔 들여다보며 우울한 감정을 나누고 있다.
그의 책 덕분에 나는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로라는 단어가 던지는 퀴즈를 여전히 풀어가고 있다. 어쩌면 위로는 공감을 넘어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하고...,
ps. 자신의 책을 읽지 말라고 했다. 우울한 내용이 가득하고 우울한 감정을 느낄 것이기에 추천하지 않는다고.. 실제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작은 배에 올라타 아무 생각 없는 내가 되어 버린다.
고맙다고 전한다.
우울하게 해주어서,
슬프게 해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