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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Oct 14. 2023

고양이 같던 나, 병아리같던 아이들

- <삐약이 엄마> 


그림책 수업 시간 중에 선생님이 백희나 작가의 <삐약이 엄마>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수업 내용도, 그림책 소개도 특별히 더 '감성'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수업 과정에서 활용할 도서로 <삐약이 엄마>를 보여주시는데, 



'이웃들은 악명높은 '니양이'라는 이름 대신   


'삐약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 고양이를 부르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암탉들이 나란히 서있는 한 편에 그 거대한 몸집을 숨길 수 없는 니양이가 자신의 아기 삐약이만을 바라보며 서있는 장면, 그 장면에서 울컥 눈물이 솟아 올랐습니다. 눈치없이 흐르는 내 눈물에 책을 소개시켜주시던 선생님 입장께서는 '도대체 왜?'라고 하실 수 밖에 없었고, 나 역시 '내가 왜?'라는 생각에 무안하기 이를 데 없었지요. 그저 요즘 내가 마음이 많이 약해졌나보다라며 넘어갔습니다. 



 








  



요즘은 크로스 오버 그림책의 등장으로 어른들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여전히 주독자층인 그림책 공부를 하다보면 암만해도 '육아'의 이런 저런 상황이 등장하게 되고, 본의 아니게 그 시절을 되돌이켜보게 됩니다. 그런 그림책들을 보던 어느날 늦게 귀가한, 이제는 다 커버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엄마가 어떤 엄마였냐고? 



니양이같은 엄마 


혹시 엄마가 말 끝마다 니들 땜에 못살겠어? 이러면서 키우진 않았냐고?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물어본 질문이었습니다. 그렇지는 않았다고 하면서도, 언젠가 수업을 마치도 돌아온 엄마가 해놓으라는 것도 해놓지 않고 집안을 저지레 해놓은 걸 보고서는 사온 요구르트를 패대기 친 적이 있었다는 후일담을 전합니다. 



패대기를 쳤다니! 그렇게 '폭력적인 행동을!',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 지나고 보니 그저 나는 큰 소리도 치지 않고 아이들을 온화하게 기른 엄마였다고 은근히 자족하듯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기억에는 저런 해프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왜 니양이가 삐약이 엄마가 된 그 장면에서 눈물이 울컥 솟았는지 깨달아졌습니다. 



 








  



<삐약이 엄마>는 뚱뚱하고 먹을 것을 밝히는데다 작고 약한 동물을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니양이라는 고양이가 주인공입니다.  딱 한 눈에도 '조폭'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우락부락한 포스의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먹을 걸 밝힌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암탉들이 외출나간 닭장에 남겨진 노오란 황금 달걀을 날름 꿀꺽 삼켜버린다. 



그런데 그 삼켜버린 황금 달걀이 소화되는 대신 '부화'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아이고 배야'하고 니양이가 힘을 줬는데, 삐약이가 태어납니다. 



백희나 작가, 대형 서점 그림책 코너에 가면 작가의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곳이 있듯이, 그림책 계의 명불허전 베스트 셀러 작가입니다. 특히 우리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길어내는데 일가견이 있지요. 



니양이가 '응가'를 하는 줄 알고 삐약이를 낳는 장면에서부터 나는 묘한 '공감'이 들었습니다. 첫 아이를 낳던 날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는데 나도 니양이처럼 '응가'인 줄 알고 화장실에 가 한동안 걸터앉아 있었더랬지요. 한참을 앉아있고서야 아, 이게 아이가 나오는 건가보다 하고 허겁지겁 병원을 달려갔던 기억이 묘하게도 삐약이의 탄생 순간과 겹쳐졌습니다. 혹 백희나 작가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니양이는 삐약이를 낳았습니다. 니양이의 뱃속에서 나온 삐약이는 엄마 품을 찾아들듯 니양이의 배 위로 올라갑니다. 그런 삐약이를 니양이는 할짝 핥습니다. 그러자 삐약이는 기분좋게 눈을 감고 '삐약'하고 답합니다. 니양이가 핥아보는 순간, 많은 독자들이 '위기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니양이의 본성과 그간 행태를 알기에. 그런데, 삐약이의 저항감이라고는 1도 없는, 니양이에게 무한의지하는 그 대꾸에 니양이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삐약이를 키우는 니양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 처음부터 '엄마'가 된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림책은 니양이를 먹을 것밖에 모르고 약한 동물을 괴롭히는 조폭같은 고양이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흡사 아이를 낳기 전 온세상이 나만을 향해 수렴되던 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해낸 듯 보입니다. 그렇게 나만이 잘 사는게 삶의 목표였던 사람이 아이를 낳고, 임재범의 노래처럼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아이의 순진무구한, 세상에 오로지 나만을 '의지처'로 삼는 그 모습에, '니양이'처럼 '뭉클', 변화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변화의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종족이 다른 니양이가 삐약이를 키우는 시간이 쉽기만 했을까요. 니양이 품 속으로 파고든 삐약이처럼, 그 해맑은 눈빛으로 나에게 온전히 의탁한 생명에 가슴이 뭉클 저려오지만, 누군가는 자신에게서 태어난 한 생명이 버거워 '산후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아무리 육아 책을 보아도 거기서 다 가르쳐 주지 않는 예측불가한 해프닝의 연속에 눈물로 밤을 세우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좋은 엄마였다 자족해보니 아이들의 기억 속에 요구르트를 패대기쳤던 기억 한 자락으로 남는 '본투비 니양이'의 시간들 또한 '삐약이 엄마'가 되기 까지의 또다른 산통의 시간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런 실수와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서도 삐약이에 마음을 빼앗긴 니양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처지에서도 삐약이만은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 하듯 내 아이에게 좋은 걸 먹이려 안달하고, 자동차가 다니는 위험한 길을 다니지 않도록 알려주듯 위험한 것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 던져진 내 아이에 대한 노파심에 전전긍긍했고, 성질나쁜 개 집 앞을 지날 때 털을 꼿꼿이 세우듯 세상에 맞짱이라도 뜨는 심정으로 아이를 키워가며 '엄마'가 되어갔습니다. 



 








  



그래서 암탉들 옆에서 오로지 삐약이만을 바라보는 삐약이 엄마가 된 니양이의 모습이 다름아닌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가진 니양이 임에도 '삐약이'와 같은 아이들을 키우며 전전긍긍했던 내 자신처럼 여겨졌기에 눈물이 터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행이다'란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니양이였던 내가 '삐약이'들을 그래도 잡아먹지 않고 '엄마인 척'하며 무사히 키워낼 수 있었음에, 물론 제법 니양이를 닮은 삐약이 모습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여전히 조마조마한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새삼 감사함을 느낍니다.  니양이였던 엄마를 삐약이 엄마로 성장시켜 준 내 아이들에.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삐약이 엄마'로 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 채 평생 내 먹을 것에만 눈에 불을 켜는 '니양이'처럼만 살다 가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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