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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Oct 10. 2024

자연스럽게~

<오늘은 이게 유행이라고>, <자라고 자라서>


자연스럽게~ 라는 단어로 이경규 씨가 광고한 모 짜장라면을 떠올린다면 '연식'이 드러나는 겁니다. 찾아보니 무려 1987년도 광고더라구요. 광고에서 중국 사람처럼 분장을 한 이경규 씨는 약간 과장된 어조로 '자연스럽게' 짜장라면을 비벼야 한다고 하지요. 후발 주자로 등장한 이 라면은 이 '자연스럽게' 광고 덕에 인지도를 꽤 올렸답니다. 또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경규 씨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자연스럽게~'가 따라다녔답습니다. 생각해보면 짜장라면을 자연스럽게 비빈다는 게 뭐라고? 싶지만 인스턴트 라면에 '자연스럽게'라는 언밸런스한 조합이 사람들의 시선을 끈 듯합니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것이 뭘까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고도 하고, 순리에 맞아 당연한 거다 라고도 하네요. 또 힘들이거나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구구절절 '자연스럽다'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는 건 2월의 그림책으로 '자연스러움'을 지향하는 두 권을 소개해 볼까 해서입니다. 바로 앙드레 부샤르의 <오늘은 이게 유행이라고?(도도)>와 마리 도를레앙의 <자라고 자라서(JEI 재능교육)>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권 다 프랑스 그림책입니다. 



 








  



스웨터를 발명한 깊은 뜻? 


<사자는 사료를 먹지않아(폴리 당크르 상 수상)>, <엄마 가방은 괴물이야> 등을 만든 앙드레 부샤르, 그에 대해 출판사는 ' 사실과 상상, 환상과 일상의 혼합, 그리고 적당한 유머러스함과 부조리함'을 담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의 그림책을 읽어보면 이 보다 더 적확한 설명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그림책은 불만이 가득한 알프레드라는 양으로 시작됩니다. 그가 불만인 이유는 바로 '유행'때문입니다. 양들이 사는 세계에는 도대체 어떤 게 유행이라 저리 불만인 걸까요? 다음 장에 나옵니다. 세상에 양들이 하나같이 곱슬곱슬한 양털을 쫘약 피고 다니네요. 그러더니 올해는 털을 짧게 깎는 게 유행이라며 양들이 헐벗고 거리를 누빕니다. 유행인 것만이 아닙니다. 헐벗은 양들은 알프레드처럼 털을 남겨둔 양을 비웃었어요. 덕분에 알프레드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산책을 다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늦은 밤 산책을 하던 중 그만 털을 깍이게 되는 봉변을 당하고 맙니다. 



털을 쫙쫙 피거나, 헐벗거나 유행에 휘둘리는 양들의 모습은 두 말 할 것없이 인간 세상을 Ctrl  V 한 거겠지요. 사람들은 어느 틈에 세뇌에 되어 트렌드에 지갑을 열곤 합니다. 알프레드는 그저 '자연스럽게' 자기 모습 그대로 살고싶었지만 그 조차 맘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나와 다름을 다른 양들이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알프레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복수할거야!,  알프레드는 점을 찍는 대신 책을 읽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후 신기한 기계를 만들어 냈어요. 그 동안 추운 겨울이 찾아왔지요. 든든했던 양털을 자른 헐벗은 양들은 추위에 떨었어요.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어요. 알프레드였어요. 알프레드는 양들에게 '스웨터'라는 걸 전해주었어요. 바로 양들의 깍은 털로 만든 옷이었어요. 그 다음은? 스웨터는 양들 세계 F/W 시즌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되었어요. 알프레드는 패션계의 대스타가 되었답니다.



이게 알프레드가 생각한 '복수'였을까요? 어느 날 모든 방송 매체들을 불러모은 알프레드는 스웨터를 훌떡 벗었습니다. 그동안 자라서 다시 곱슬곱슬해진 알프레드의 양털은 패션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새로운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자연스러운 그 본래의 양털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양털의 모습을 찾아가기 위해 알프레드는 참 먼 길을 돌아왔네요. 이른바 양털계의 '복고 트렌드'가 된 걸까요? 복고라며 80년대 아저씨들이 입던 잠바와 마의를 남녀 가리지 않고 입는 요즘 트렌드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진정한 '복고'로 '복수'를 성공한 알프레드의 이야기가 웃픕니다. 



 








  



꼼꼼씨네 정원에서 무슨 일이?


앙드레 부샤르의 '자연스러움'이 본연의 자기 모습을 존중받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다룬 거라면 <어떤 약속(랑데르노 문학상)>, <아킬레스의 풍선>의 작가 마리 도를레앙의 자연스러움은 비슷한 듯 다른 뉘앙스를 가집니다. 하지만 두 권의 그림책 모두 인간 세상의 부조리함을 유머러스하게 논박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의 주인공은 꼼꼼씨네 가족입니다. 다양한 체크 무늬 옷을 입은 가족은 그들이 선호하는 옷의 디자인처럼 자신들의 정원도 '재단'하려 합니다. 자랑스럽게 그 동네의 '푸른 숨통'이라고 하지만 그 넓은 정원은 키도, 간격도, 기울기도, 나뭇잎 넓이도, 잔디 길이도, 색깔 까지도 철저하게 정해져 있었어요. 자를 들고 정원 이 곳 저 곳을 빈틈없이 감시하는 두 부부 덕에 정원사 꽃돌 씨는 쉴 새 없이 싹둑싹둑 가위질을 해대야 했어요.



7월의 어느 날, 자라나는 어린 싹이랑 꽃눈을 잘라내고 뽑는 일에 꽃돌 씨는 지치고 말았어요. '사랑하는 정원아, 난 너희들이 마음대로 자라고, 퍼지고, 꽃도 잔뜩 피게 뇌둘거야.'



때마침 한 여름, 풀려난 풀과 꽃들은 활기를 띠고 자라기 시작했어요. 꼼꼼 씨 부부가 가위를 들고 나서봤지만 역부족이었어요. 우체부가 편지를 배달하는 일이 쉽지 않을 정도로 꼼꼼 씨네 정원은 무성해졌어요. 물리치려 할 수록 격렬하게 힘차게 모든 곳으로 밀고 들어왔지요. 여름이라는 계절에 자연이라는 기세가 올라타 승승장구했어요.



결국 꼼꼼 씨네 식구는 항복했어요. 항복을 하고 대신 모험을 떠났답니다. 아침이 되자 몰려오는 수많은 새들, '봐요, 그냥 내버려두니까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워요'라고 외치는 것 같았답니다. 덕분에 긴 잠에서 깨어난 듯한 가족들은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신비로운 자연의 세계로 나아갔어요. 그 모험의 세상은 숨은 그림찾기처럼 무궁무진합니다. 



꼼꼼 씨네 정원을 점령해버린 '자연스러운' 세상, 그런데 이 그림책의 서사는 그저 '정원'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꼼꼼 씨네 집으로 기세좋게 쳐들어오는 '자연'의 세계는 어쩌면 우리의 마음이라는 세계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공된 정원처럼 싹둑싹둑 미처 싹이 나기도 전에 잘라버린 내 마음의 가지들은 제 아무리 잘라내도 결국 무성하게 내 마음을 점령해 버리고야 마는 것이 아닐까. 외려 항복해 버린 꼼꼼 씨네처럼 내 마음의 정글을 탐색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말이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자연스럽게'를 추구하는 두 권의 그림책을 골라보았습니다. 알프레드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이든, 혹은 꼼꼼 씨네를 점령한 자연이든 한번 보며 닫혔던 내 마음에 숨통을 틔여주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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