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그림책>
찾기위해 떠나다', 주어가 없습니다. 어디로? 무얼 찾으러? 여기 서로 다른 주어로 풀어내는 두 권의 그림책이 있습니다. 바로 <킨츠기>와 <화살을 쏜 소녀>입니다. 제목으로 보자면 '화살을 쏜 소녀'는 주인공이 무엇을 찾으러 갈 지 바로 알 수 있도록 '직관적'입니다. 반면 깨진 도자기 조각을 이어 붙이는 일본의 도자기 기법인 '킨츠기'는 제목 만으로는 모호합니다. 하지만 표지를 보니 토끼 한 마리가 파란 찾잔을 따라 헤엄치네요. 토끼가 찾으려는 건 찻잔일까요?
▲ 킨츠기 킨츠기 ⓒ 책빛
▲ 화살을 쏜 소녀 ⓒ 도도
1996년 시작되어 매년 열리는 볼로냐 국제아동 도서전은 아동 도서계의 대표적인 축제입니다. 여러 부문에 걸쳐 라가치상을 수상하는데, 2024년 라가치 상 대상은 이사 와타나베의 <킨츠기>가 받았습니다.
일본인이지만 페루로 이주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사 와타나베의 첫 그림책 역시 길을 떠나는 <이동>입니다. 여우, 토끼, 악어, 코끼리 등 한 무리의 동물들이 생명을 잃은 숲을 뒤로 하고 바다를 건너 꽃이 피는 땅을 향합니다. 검은 바탕에 동물들의 모습들만이 오롯이 드러난 그림책은 2021 소시에르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번 라가치 상을 수상한 <킨츠기> 도 검은 바탕에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이동>에 비해 한층 상징적이고 은유적입니다. 보다 보면 작가가 펼쳐 놓은 매혹적인 세계에 흠씬 빠져버리고 '킨츠기'의 뜻을 되새기며 상념에 빠져들도록 만듭니다.
▲ 킨츠기 ⓒ 책빛
시작은 주인공 토끼의 잘 차려진 식탁입니다. 그의 식탁에는 푸른 나뭇가지들이 뻗어있고 그곳에는 삶에 필요한 물건들이 열매처럼 달려 있습니다. 빨간 새 한 마리와 파란 찻잔도 있습니다.
그런데 푸르른 나뭇가지가 하얗게 말라버리는가 싶더니, 새도 하얗게 변해 날아가 버리고, 열매처럼 달렸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허공으로 붕~. 토끼는 날아가 버린 새를 향해 달려갑니다. 살아남은 푸른 이파리 하나를 쥔 채 말이죠.
희망은 한 마리 새/ (중략)그칠 줄 모르고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참으로 매서운 폭풍일지라도/ (중략)작은 새의 노래를 멈추지 못하리
책의 맨 뒷 장 한 켠에 앉은 빨간 새, 그 아래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저 시가 적혀 있습니다. 새의 노랫소리가 들렸을까요? 토끼는 떠납니다. '정글 숲을 기어서', 심지어 깊고 깊은 심해의 바닷속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빙하에 의지해 떠오른 토끼의 손에는 푸른 이파리 뿐입니다.
나는 몹시 추운 땅에서도/ 낯선 바다에서도 그 노래를 들었네.
하지만 희망은 결코 내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네
시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숲과 바다를 헤매였건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은 희망, 토끼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귀를 축 늘어뜨린 채. 그를 기다리는 건 산산이 부서진 잔해들 뿐입니다.
▲ 킨츠기 ⓒ 책빛
망연자실 하던 토끼, 하나 씩 자신의 물건들을 '킨츠기' 해갑니다. 파란 컵의 반쪽은 하얀 컵으로 맞춰지고. 그 파랗고 하얀 컵에 가지고 떠났던 그 푸른 이파리를 심습니다. 그 이파리는 다시 푸르른 나뭇가지로 자랐습니다. 거기에는 갖가지 '킨츠기'된 물건들이 다시 열매처럼 자라나고 있습니다.
와비사비('侘び寂び)란 일본어가 있습니다. 부족함이란 뜻의 와비와 빛바램 등을 뜻하는 사비가 합쳐진 이 조어가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술품이 바로 '킨츠기'입니다. 깨져버린 것, 하지만 그로부터 역설적으로 삶의 불완전성이 주는 아름다움이 탄생됩니다. 그 어느 곳을 헤매어도 찾을 길 없는 희망, 그건 '킨츠기'처럼 스스로 다시 이어붙일 때만이 찾아지는 것이라고 이사 와타나베는 말하고 있습니다.
▲ 화살을 쏜 소녀 ⓒ 도도
안 테랄이 글을 쓰고 상드 토망이 그림을 그린 프랑스 그림책 <화살을 쏜 소녀>는 글이 이끌고 그림이 배경이 되어주는 그림책입니다.
'어디로 날아갔을까요? 혹시 누군가의 심장을 맞췄을까요?' 소녀는 화살을 찾아 떠납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소녀를 말려요. '얘야 더는 가지마' 라거나, '넌 지금 혼자야', '아직 강하지 않아' 라면서요. 깊은 숲 속에 이르자 '길을 잃었구나, ' 라며 다그치기도 하지요.
하지만 소녀는 계속 나아갑니다. 처음에는 그저 혹시 누가 맞았을까 걱정된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 앞에 펼쳐진 큰 숲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소녀는 '목소리'에 맞서 자꾸만 더 나아갑니다. 우거진 숲을 지나 새들의 노랫소리, 꽃들의 한숨, 메뚜기의 딸꾹질, '나는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이끼 덮힌 바위를 품에 안으며 '나는 약하지 않아' . 소녀는 화살을 찾고, 또 다른 세상도 찾고 싶습니다.
화살을 찾는 직관적인 이야기인 듯 했던 그림책, 하지만 소녀의 용기 있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저 화살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소녀는 화살을 쏘았습니다. 소녀가 살던 세상을 넘어서 날아간 화살, 소녀의 마음은 화살을 따라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자꾸 소녀를 막아서는 목소리, 그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소녀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초자아(*)'의 경고이겠지요. 우리도 그렇지요. 누군가, 무엇인가의 핑계를 대지만 사실 늘 우리의 발목을 잡는 건 내 안에서 솟아 오르는 목소리 아니였나요? 하지만 소녀는 그 목소리를 무릎 쓰고 한 발 한 발 나아갑니다 .
▲ 화살을 쏜 소녀 ⓒ 도도
<킨츠기>도 , <화살을 쏜 소녀>도 모두 떠났다가 돌아옵니다. 하지만 돌아온 주인공들은 처음 떠날 때의 자신과 다릅니다. <킨츠기>의 토끼도 떠나보았기에, 다시 돌아와 그릇을 맞출 수 있지 않았을까요. 드디어 화살을 찾은 소녀, 하지만 화살을 두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화살을 찾아 떠났지만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찾으러 떠난 자신'이, '멀리 떠나본 자신', '울타리를 넘어선 자신'이 소녀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길을 떠납니다. 실제 여정에 나설 수도 있고, 혹은 마음의 행로에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그 행보를 통해 무언가를 찾고 돌아올 수도 있고, 혹은 빈 손으로 터덜터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삶의 모든 행로는 <킨츠기>와 <화살을 쏜 소녀>처럼 있으면 있는 대로, 빈손이면 빈손인 채로 쥐어주는 게 있는 듯합니다. 잡히지 않는 희망의 새에 안타까워하는 대신, 멀리 날아간 화살에 주저하지 말고, 내 여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래봅니다.
*초자아 ; 삼중 구조 모델의 세 가지 체계 중 하나로서, 이상과 가치, 금지와 명령(양심)의 복잡한 체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심리적 대리자를 가리키는 용어. 초자아는 자기를 관찰하고 평가하며, 이상과 비교하고, 비판, 책망, 벌주기 등 다양한 고통스런 정서로 이끌기도 하고, 칭찬과 보상을 통해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한다.(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