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하리
열세 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세리 덕분이다. 세리는 달리기도 잘하고 자전거도 잘 타고 운동을 곧잘 잘했다. 반면, 나는 행동이 느릿느릿 굼떠서 100미터 달리기 기록도 27초였다. 머리를 질끈 묶고 쌩쌩 달리는 세리가 좋아 보였다. 내가 가르쳐 달라고 한 건지 세리가 가르쳐준다고 한 건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세리가 몇 주동안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줬다. 페달을 세 번만 굴리면 옆으로 넘어지는 통에 아프기도 아픈데 잘 타지는 것도 않으니 억울했다. 아프면 잘 타지 기라도 해야지... 어쨌든 내가 혼자 연습했으면 여기서 포기했을 수 있지만 세리는 강력했다. 스파르타 입시학원 선생님처럼 나를 불러냈다. 페달을 세 번 돌리고 넘어지고 돌리고 넘어지고를 몇 번쯤 반복했을까. 거짓말처럼 어느 순간 자전거가 굴러갔다.
아홉 살, 체육 시험으로 스카이콩콩을 타야 했다. 30번 이상 콩콩 하면 100점이었나?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스카이콩콩도 자전거 급으로 꽤 어려운 종목이었다. 자전거는 페달 세 번이 한계였지만 스카이콩콩은 콩 한 번이 한계였다. 올라타면 넘어지고... 너무한 놀이기구다. 그리고 자전거는 이동수단이라는 장점이라도 있지만 스카이콩콩은... 이걸 타고 옆동네까지 갈 수도 없고... 이때까지만 해도 선생님이 시키시는 일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모범생(?)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밤낮으로 연습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게 그런 끈질긴 면이 있었다는 게 신기할 만큼. 여차저차 100점을 받았다.
나는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했는데 실무위주의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 중 하나가 졸업학기에 들었던 '인쇄광고 실습'이었다. 우리가 받은 과제는 '단추'를 컨셉츄어링하고 팔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단추를 어떻게 팔까. 단추 세트가 아닌 단추 한 개였다. 어떤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은 매 순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스트레스받는 일주일 넘게 시간을 보내면 어느 순간 딱 떠오른다. 그때 내가 냈던 아이디어는 '첫 단추'였다. 누구에게나 첫 단추를 끼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당신의 처음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팔겠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교수님은 내 생각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다른 수업에서 A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 수업만 A+을 받았기 때문이다. A+ 하나로는 내가 재능이 있는 사람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게 카피라이터의 꿈은 접었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떼써본다.(ㅎㅎ)
몇 주동안 못 타던 자전거를 다음 날 탈 수 있게 되는 것, 끊임없는 고민의 시간 끝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처럼 해냄의 순간에 도달하는 시간에 대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장하고 있는 1분 1초를 느낄 수 없지만 그 시간들이 모이면 날 다음 페이지로 이끈다. 그다음 페이지에는 해냄 이후의 삶이 시작된다. 세리와 함께 정했던 이 브런치의 이름은 for the next page 였다. 이미 존재하는 주소라 할 수 없었지만 우리가 글을 쓰는 본질은 그것이다. 각자의 방어기제에 대해, 왜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우리가 목표하는 열 번째의 글이 완성되면 지금 느끼고 있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상처는 치유되고 있을 것이며, 날 감정적 찌부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어떤가가 명확해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