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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Aug 28. 2022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아빠와 딸

아빠와의 좋은 추억이 된 부산 해운대


 한국의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대부분은 달달한 애정 표현과는 거리가 먼 쓰디쓴 삶을 사셨다. 하지만 인생 경험이 더 짧은 젊은이들이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도 말만 같을 뿐, 그분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때로는 고도의 번역 기술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997년 일본에 첫 발을 디딘 이후로 이제껏 길어봐야 열흘, 대부분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그런데 이번 나의 한국 방문은 무려 30일간의 여정이다. 혼자 계신 엄마가 편찮으시니, 학기 중인 아들의 여름방학을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몸이 달았다.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쑤셔 넣듯 집어넣고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아, 참. 소금 사탕! 입이 쓰신 어르신들한테는 꽤 인기 있는 일본 선물이라고 한다. 엄마가 지난번에, 친구분들 나누어 드린다고 넉넉히 사 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다행히 잊지 않고 트렁크에 챙겨 넣었다.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면, 길에서 쓰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버스를 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으로 버스나 마을버스를 맘껏 타고 다니며,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한국의 느린 풍경들을 시선에 담았다.

 마을버스에서 내리면 우리 동네길이 바로 보이는데, 편의점, 은정 미용실, 무인 커피가게, 약국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은정 미용실’은 초등학교 동창 곽 준수네 엄마가 40년 넘게 지키고 계시는, 그 옛날 ‘추억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마침 아주머니가 밖에 나와 계신다.

“안녕하세요. 저 준수 동창 김 은진이에요. 저기 저 집 딸이요”.

 “아 그래? 네가? 그럼 그 일본 갔다는…”

그때 어디 계셨다가 나오신 건지, 불현듯 나타나신 준수 아버님이, “그럼 김 문간 딸이란 말이야?! 

“예, 맞아요”

“아이고 그렇구나. 더운데 들어와서 수박 좀 먹고 가 거라.” 

“아니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호칭인가 ‘김 문간 딸!’ 동네 어르신들이 군에서 공직 생활을 하셨던 아빠를 김 문간이라고 부르셨다. 25년 동안, 일본에서는 나를 ‘김상’이나 ‘은진상’이라고 불렀다. 일본에서의 호칭에 특별히 불만을 느낀 적은 없지만, 준수 아버님의 ‘김 문간 딸’이라는 호칭이 그렇게 정겹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1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빠와 작은 말다툼을 했다. “뭔 바지가 그 모양이야. 사람들이 부모 욕해” 나의 애정 하는 살짝 찢어진 디젤 청바지를 당장 벗어 버리라는 아빠의 명령이시다. (세상에 제가 나이가 몇인데 복장 검사하시는 거예요…)

“네, 아빠 당장 벗어야죠.” 아빠를 위해서 이 정도의  퍼포먼스쯤이야.라고 생각하며 옷을 갈아입었지만,내심, 마음에 준비도 없이 퍼포먼스를 실행하는  일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그만 좀 돌아다녀. 한국에 와서 집에 안 있고 그렇게 밖으로 나 돌면 동네 사람들 보기에도 안 좋아” 아빠가 나와 같이 있고 싶으신가 보다 했다. 하지만, 짧은 일정을 소화하려면 집에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결국 아빠는 모처럼 귀국한 ’ 딸‘이 아닌, ’ 딸이 끌고 온 트렁크‘만을 바라보셔야 했다.


 내가 항상 그렇게 짧은 일정을 계획했던 건 어쩌면 아빠와의 긴 대화를 피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빠와는 세대차이도 있는 데다가, 더욱이 나는 해를 거듭할수록 나 자신도 모르게 한국 정서가 많이 희석된 상태였다. 항상 동네 사람 운운하시고 아빠 기준으로만 나를 바라보시는 아빠랑 길게 대화를 이어가는 일에 괜한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성숙하지 못한 사고력은 나나 아빠나 별반 다름없었다. 아빠의 ‘동네 사람들’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서는 개념조차 뚜렷하지 않은 ‘추상명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러한 추상명사가 내 행동의 기준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준수 아버님을 뵙고 난 후, 경험하지 못한 단어의 세계를 경험한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헬렌 켈러가 물이란 단어를 손바닥으로 직접 체험했을 때의 느낌처럼. 


 아빠가 하루에도 몇 번을 걸어 다니셨을 우리 동네길을, 아빠 걸음을 회상하며, 아빠의 뒤를 따라가듯 걸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빠는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한 당신의 쓸쓸함과 나의 대한 애정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신 거란 걸. 보통의 아버지들에게는 딸이 시집을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 허전하고 서운한 일이라고 하는데, 아빠는 하나밖에 없는 막내딸을 다른 나라 남자에게 빼앗기고 마셨으니…. 아빠는 내가 한국에 와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만이라도 일본에서의 ‘김 상’이 아닌. 온전한 ‘김 문간의 딸’로, 당신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셨던 거였다. 아빠의 “찢어진 청바지 당장 벗어!”라는 문장은 ‘내게는 너무 이쁜 막내딸을 나도 동네 사람들한테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다’라는 의미였다. 단 한 번도 당신 입에 담아 보시지 못한 서 투리기 짝이 없는 애정고백이셨다.

 늦게나마 아빠의 언어를 일깨워주신 준수 아버님이 고마웠다. 다음에 한국에 갈 때는 입 쓰실 때 드시라고 달달한 소금 사탕 한 봉지 사다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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