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왕 형제의 모험 2

-신의 실수는 인간이, 인간의 실수는 신이 고친다.

by 바비



오솔길에 나타날 그 모습을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졌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후베르트가 나타날 오솔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 p.118


아무리 남을 시기하더라도 본디 마음은 착한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는 오래전부터 후베르트를 벚나무 골짜기의 반역자라고 믿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후베르트가 하는 일마다 모조리 나쁘게만 생각한 거지요. -사자왕 형제의 모험 p.127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침부터? 나 열받으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지금! ”

남편은 큰 맘먹고 산 내 양가죽 로퍼 240밀리 구두에 자신의 280밀리 발을 밀어 넣고 있었다. 나의 앙칼진 소리에 “미안해”가 아니라, “씨발”이라고 말하며 등을 돌리고 내 마음을 밀치듯이 문을 밀고 후다닥 나가 버렸다.



밉다 밉다고 하니까, 별게 다 밉다더니 새벽에 조용하게 일어나 슬그머니 불도 안 켜고 나가는 그의 발소리조차도 거슬렸다. 물 마시려고 나왔다가 현관을 따라가 보니 황당한 짓을 하고 있었다. 비싼 신발을 샀다고 화가 난거지? 진짜 쪼잔해서 내가 번 돈으로 샀는데, 왜 이런 일에 화를 내는 거야? 가격표를 미리 제거했어야 했는데…. 기어코 찾아내서 화풀이하는 거지! 진짜. 뭐 저런 인간을 남편이라고!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화가 치밀었다. 내 생을 망친 저 인간에게 적당한 이름을 지어주고 두고두고 놀려먹어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순식간에 떠오른 이름이 “로이”였다.


내가 남편을 로이라고 부르면, 사람들은 어머나! 낭만적이다라고 한다. 혹은 남편이 아직도 그렇게 좋냐고도 묻는다. 그들은 아마 가수 로이킴을 떠올리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떠올린 로이는 30년 전 본 <프라이멀 피어>의 남자 주인공 에드워드 노튼의 극 중 이름이었다. 주교를 처참하게 살해한 19세 소년은 다중 인격장애를 겪고 있었는데, 그 다중 인격체 중 <로이>는 최악의 인격이었다. 사람들은 30년 전의 로이는 잊고 2025년의 로이에 열광했다. 그따위 이름을 만들어 부르면서까지 나는 남편을 지켜봤다. 안 보면 될 것을 나도 스코르판처럼 그가 나타날 길을 노려보면서 그를 기다리고 못마땅해하고 미워했다. 나는 그가 신의 실패작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들이 모조리 못마땅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일들이 매번 일어났다.

그는 내 앞에만 서면 긴장해서 더 많은 실수를 했다. 내가 차를 탈 때마다 백미러를 접었다! 아니 왜 매번 문을 열어야지?! 시동을 꺼?! 소리를 지르면 그는 긴장해서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차를 따라가면서 소리를 꽥꽥 지르고 그는 당황해서 함부로 욕을 해댔다.


"아니, 어떻게 매번 그래? 차산지가 3개월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조수석 문 오픈버튼과 백미러 버튼을 혼동하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하면서 어떻게 운전을 해?" 나는 혀를 찼다.


그의 숨소리도 밥 먹는 소리도 짜증이 났다. 일부러 그러는 거지? 저건... 나 보라고 일부러 하는 짓이야! 진짜 진짜 왕 짜증! 남편은 내가 자신에게 진저리를 친다는 걸 알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마다 내 물건들을 하나씩 망가트린 걸까? 목이 부러진 야도르 인형, 크리스털 화병에 꽂아둔 꽃이 새벽이면 쏟아져 바닥에 뒹굴던 일, 내 스타벅스 리미티드 한정판 우산을 깔고 앉아서 망가트린 일, 큰맘 먹고 생일날 내 돈 주고 산 라코스테 울 니트가 건조기에서 쪼그라져서 나온 일, 반찬통에 물이 가득한 채로 그릇 선반에서 발견 된 일... 어디 두고 봐! 나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겠어! 나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샀다. 벽에는 러시아 지도를 붙여두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남편으로부터 멀리멀리 도망가는 꿈을 꾸었다.


30년 전, 내가 그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가 얼마나 특이하고 이상한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그러나 또 얼마나 순수한지!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그의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게 분명하다며 세상 유치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말려도 나는 거침없이 그의 손을 잡았었다. (망할!)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내가 아닌 사람처럼 들떠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남편의 험담을 늘어놓는 피곤한 대화상대였다. 스물두 살의 나와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선명하게 눈에 보이게 또박또박 적어 내려가고 싶었다. 목표가 생기니, 글 쓰기가 쉬웠다.

나의 마흔아홉 번째 생일날, 남편이 식탁 위에 편지를 남겼다.


“새 구두를 신으면, 발이 아플까 봐 늘려 주려고 했어... 당신이 너무 화를 내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어... 미안해. 당신이 나를 지켜보니까... 자꾸 긴장이 돼.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은지 모르겠어...

당신이 떠날까 봐 두려워.”


남편, 로이 신의 실수... 그의 다른 인격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가슴이 아직도 떨렸다.

그가 했던 모든 일들을 다시 떠올려 보니,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내가 실패작이었네.


미움과 사랑은 같았다.


사랑하는 것들에 미움이라는 단어를 넣어 보았다.


-오솔길에 나타날 그 모습을 생각만 해도 좋았습니다. 나는 후베르트가 나타날 오솔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오솔길에 나타날 그 모습을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졌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후베르트가 나타날 오솔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신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미움과 사랑을 만들었다.

신도 없애버리고 싶은 인간이 있었다(신의 실패작),

그러자 인간에게 “사랑”하라고 예수 그리스도는 명령했다.

그것이 인간을 만든 신의 원리였다.


신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실패작 인간은 이 두 감정에 잡아먹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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