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록 밴드 해봤어?
너도 알다시피 성벽이란 그리 완벽한 게 아니야. 완벽은 아무 데도 없지. 높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니까. -사자왕 형제의 모험 P. 164
때론 약간의 불씨도 아주 쓸모가 있지. 빨갛게 불타고 있는 숯덩이를 난로에서 끄집어내다가 손끝을 약간 데더라도 말이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 P. 197
엄마, 나 밴드 오디션 봐
어 정말? 엄마도 예전에 밴드 했었는데….
정말? 무슨 밴드? 엄마는 뭐 했어? 키보드? 드럼?
아니, 아니야, 엄마는 노래했지.
싱어라고? 거짓말! 엄마 음치잖아!! 말도 안 돼!
야, 음치라고 노래 못하냐? 잘 찾아보면 노래 못 하는 밴드도 많아! 그래도 우리 인기 많았어. 밴드 페스티벌에서 인기상도 받고, 졸업 파티에도 초대받고 그랬는데…. 진짠데….
그랬다. 어떤 사회에도 틈은 있었다. 노래자랑 대회에도 인기상이란 게 있다! 노래 못 하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밴드 만들자고(그것도 ROCK!) 꼬셨던 M은 <벽을 부수자>고 했다. 그래도 가수에게 <노래 잘하는 벽>을 부수자니,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다. (프랑스의 위대한 화가 뒤 뷔페가"테크닉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숙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지만, 우리는 진심 숙달된 적도 없었다!!) M은 애 셋 낳은 지금도 예쁘지만, 그때는 진짜 진짜 예뻤다. 긴 생머리에 순정만화 속에서 튀어나올 듯한 커다란 눈과 하얀 피부로 영문과 동기는 물론이고 다른 학교에서도 구경 오는 애였다. 그런 M이 따라다니면서 밴드를 만들자고 하니 사실 인기는 있을 것 같았다. 망신은 내 차지인가? 나는 M의 미모를 돋보이게 할 꽃받침 정도 되려나…. 그런 생각할 때, M이 쐐기를 박는 말을 했다.
스무 살에는 나, 록 밴드 했었는데!라고 말하는 인생은 얼마나 멋져? 인기가 있어도 멋지고, 없으면 더 멋있잖아! 서른 살까지 밴드 하자는 게 아니야! 스무 살, 남아있는 8개월만 밴드 하자! 스무 살 만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안 해서 평생 후회 말고 하자! 하자! 은아야 너도 진짜 멋진 인생 살아봐야지!
뭐라니, 내 인생이 어때서... 후지진 않았... 에라 모르겠다. 그날로 우리는 가죽 잠바를 입고 멀쩡한 청바지를 찢고 점심시간마다 목이 터져라 신해철의 <이중인격자>를 불렀다. 그리고 신입생 밴드 페스티벌에 나갔고 인기상을 받았다. 이 상금으로 <미치코 런던> (미치코 런던은 94년에 런던에서 유명한 나이트클럽의 이름을 딴 잘 나가는 클럽이었다. 아무나 못 들어가서 거기 한번 가보고 죽고 싶다는 애들이 수두룩 했음 )에 M의 입김으로 94학번 신입생을 모두 데리고 갈 수 있었다. M의 말처럼 우리는 단단했던 가수의 벽을 록으로 깨부수고 밴드를 만들어 신나게 놀았다. 노래를 잘해야, 영어를 잘해야, 얼굴이 뛰어나야, 몸매가 끝내줘야…. 등등 여자에게 붙어 다니던 조건들을 깨버리면서 그냥 악쓰고 살았는데, 그걸 또 좋아해 줬던 사람들은 도대체 누굴까? 우리가 귀여웠을까? 절대 아니다. 그냥 그들이 차마 할 수 없었던 불덩이를 용기를 내어 끄집어내 소리쳐줬던 게 M의 말대로 먹혔다.
우리의 노래를 들은 선배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했었다.
저 또라이들 뭐야? 노래는 못하는데…. 되게 진지하네….
그게 바로 록의 정신이다. 벽을 부수자! 불씨를 끄집어내느라 조금 데더라도, 괜찮아.
스무 살이잖아! 내 딸이 나처럼 기타도 못 치는데, 베이스 기타 오디션에 합격했다니(여기도 일단은 뽑아놓고 뭘 하는... 이상한 밴드), 밴드는 스무 살이면 꼭 해봐야…. 하는 거다.
아무것도 못 해도 말이다. 잘해야 하는(?) 벽을 부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