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켠 Sep 02. 2024

해피 고 럭키

평화롭던 사무실에 총성이 울린다.

불안과 공포 @anxiety and fear 


지금 NK 빌딩 1층 로비에서 큰 폭발음 들림. 유리 다 깨지고 대피 중. 피 흘리는 사람들도 있음. 큰 사고 아니었으면…


[속보] NK 사옥빌딩에서 폭탄 폭발 


[앵커]


긴급 속보입니다. 조금 전 오후 한 시 경 NK 사옥 빌딩 1층 로비에서 사제 폭탄이 폭발하여 수십 명이 다치고 현재 빌딩 내 모든 인원에게 긴급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현장에 나와 있는 김새벽 기자 연결해 보겠습니다. 김새벽 기자, 현재 상황 자세히 전해 주시죠.


[기자]


네 지금 저는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여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처참합니다. 출근시간 엘리베이터 쪽에 몰린 직장인들을 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상자는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 중이며 사망자는 없습니다. 폭탄은 압력 밥솥에 못과 유리조각을 넣어 제조되었으며 폭탄 테러범의 신원과 행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장의 목격자 만나 보겠습니다.


[목격자]


엘리베이터 쪽에서 폭발음이 들렸어요. 출근하려고 엘리베이터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이 다쳤어요.


[119 구급대원]


환자가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인터뷰 금지입니다. 비켜 주세요.


[기자]


경찰은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며 용의자의 행방이 확인되는 대로 긴급 체포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NK 빌딩에서 전해 드렸습니다. 김새벽 기자였습니다.


[앵커]


NK빌딩 폭탄 사건은 추가로 소식 들어오는 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불안과 공포 @anxiety and fear 


폭탄 때문에 엘리베이터 운행 중단되어서 계단으로 사무실 올라왔더니 총성이 들린다. 폭탄 테러범하고 동일인인지는 모르겠는데 사무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총 쏘는 중.


불안과 공포 @anxiety and fear 


엄마 아빠 사랑해요.



[단독] NK 사옥빌딩에서 묻지마 총기 난사…폭탄 테러범과 동일인


[앵커]


긴급 속보입니다. 조금 전 사제 폭탄이 폭발했던 NK빌딩에서 총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김새벽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김새벽 기자, 현장 상황 전해주시죠.


[기자]


네 저는 지금 조금 전까지 총소리가 들렸던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열한 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없습니다. 범인은 NK빌딩 1층에서 압력밥솥 사제폭탄을 터뜨렸던 테러범과 동일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아직 경찰의 공식 발표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 있죠?


[기자]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제보자의 신원은 밝힐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앵커]


1층에서의 폭발과 총격 사이에 관련이 있나요?


[기자]


범인은 1층에서 폭탄을 폭발 시켜서 혼란을 야기하고 주의를 돌린 후에 사람들의 관심이 1층에 몰린 틈을 타서 바로 16층으로 이동해서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앵커]


왜 무차별적으로 총기 난사를 한 겁니까?


[기자]


총기 난사가 아니라 한 명씩 처형하듯 조준하여 발사했습니다. 사망자는 모두 콘텐츠 큐레이션팀 팀원입니다. 범인이 회사로부터 계약연장불가 통보를 받은 몇 달 전부터 해외 사이트에서 총기 부품을 구매한 후 조립하였고 실탄 사격장에서 사격 연습을 한 것으로 미루어 이 사건은 철저한 계획 범죄로 보입니다.


[앵커]


총격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자]


유서를 입수하였습니다. 범인은 최근 회사로부터 재계약 거부 통지를 받았으며, 큐레이션 업무가 AI에게 넘어가면서 우울증을 앓았고, 다른 팀으로 전배 가려고 했지만 팀장이 ‘네 성격과 그 업무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해하고 실장은 인사고과를 낮게 줘서 ‘침몰하는 콘텐츠 큐레이션팀’에 끝까지 붙잡아 두고 잡무를 시켰다고 유서를 남겼습니다. 또한 범인은,


[앵커]


네 시간 관계 상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김새벽 기자, 범인은 현재 어떤 상태입니까? 경찰이 진입한 것 같은데 피의자 신병 확보했습니까?


[기자]


피의자는 총격 이후 현장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앵커]


회사 측의 입장은 나온 게 있습니까?


[기자]


NK그룹은 이 사건은 피의자 개인의 일탈이라고 선을 그었으며, 숨진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위로금으로 각 1억 원을 지급하기로 하였습니다. ‘뉴스앤뉴스’ 김새벽이었습니다.


영상 취재 : 김새벽


영상 편집 : 김새벽


1758 개의 댓글


airs****


시신 하나하나 훑듯이 보여주는 거 토 나온다. 상처를 최소한으로 블러 처리해서 절단된 부위가 다 보이잖아.


ㄴ tona****


네가 예민한 거임.


News****


지금 저 기자는 제보를 받고도 경찰에 신고를 안 해서 살인 사건을 막지 않고 자기가 단독하는데 쓴 거냐? 뉴스앤뉴스에 얼마 받고 기사 팔았을까?


Shop****


꼴랑 총 맞아 죽은 거 가지고 하루아침에 1억 원을 받을 거면 내가 저기 가 있을 걸…


ㄴ tobe****


사람 죽었는데 마무리로 돈 얘기하는 기자가 미친 놈.


ㄴ asis****


궁금한 거 알려준 것 뿐인데 어떰?


Doctor****


범인이 상담한 안락사 센터입니다. 정신과 의사의 상담 후 디그니타스에서 사용하는 약물로 고통 없이 단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02-1599-0101



[2030 기자가 보는 세상] 그렇게 기레기가 된다.


[굿뉴스]


뉴스가 콘텐츠 중의 하나가 되어 유튜브, 예능, SNS와 독자들의 여가 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나는 언론인이 되고 싶었다.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기자는 못 되더라도 소외된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누구나 SNS에서 공론화할 수 있고 유명 유튜버에게 제보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그런데 내가 ‘소외된 사람’ 이었다. 지금은 기자 중에 정규직이 없다. 다 프리랜서 기자다. 언론고시에합격한 ‘틀에 박힌’ 기자 말고, 누구나 기자가 되어 ‘좋은 기사’를 발굴해서 자유롭게 취재하고 언론사에 기사를 판매한다. 기자는 언론사의 논조에 갇히지 않고 개성을 발휘하고, 변호사가 법률 관련 기사를 쓰는 등 전문가 기자가 활약할 수도 있고, 회사원이 퇴근 후에 ‘우리동네 기자’로 가외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이상은 그렇다.


현실에서는, 학자금 대출받아서 언론학과 졸업해서 대학-언론사가 ‘로스쿨을 본 따’ 설립한 ‘저널리즘 스쿨’ 과정을 대학원 수준의 학비를 내고 나와야 언론사에 프로필이라도 돌릴 수 있다. 취재비는 사비로 해결한다. 기자들은 고정된 월급이 없는 상태에서 학자금 빚을 지고 커리어를 시작하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 기사를 팔아야 한다. 언론사에 제일 팔기 좋은 기사는 독자들이 가장 흥미 있어 하는 기사다. 사건사고 현장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유가족이나 희생자의 사연을 가장 신파적으로 각색한 기사의 조회수가 늘 높다.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잘 쓴 기사는 독자들이 ‘어려워서’ 안 읽는다.


데스크도 계약직으로 고용해서 A언론사에서 데스킹하던 분이 B언론사로 가고 그 후에는 C언론사로 가고, 몇 년을 서로서로 언론사를 돌고 돌면 다들 ‘그 나물에 그 밥’이 되는 마당에 언론사의 ‘논조’는 옛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뉴스보다 재미있는 OTT 콘텐츠와 유튜브 채널이 많은 시대에 아무리 언론사에서 20대 인턴들에게 유행어를 써서 ‘요즘 취향에 맞게’ 기사를 가공하라고 해도 SNS에서 화제가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 언론사들은 ‘컨펌’을 하는 데스크가 꼰대인 줄도 모르고 애꿎은 20대 인턴만 쓰고 버린다. 그러니 어느 언론사가 미녀 피해자의 사진을 단독으로 실었는지 시신이나 부상자의 사진에서 모자이크 면적을 줄였는지로 차별화를 한다. 이 칼럼을 실어 준 ‘굿뉴스’는 사건사고 전문 언론사다.


이러다 보니 프리랜서 기자는 파파라치 기자가 된다. 누구나 처음에는 학자금 대출만 갚으면,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지면 ‘참 언론인’이 되어 ‘진짜 기사’를 써서 지금의 죄책감을 떨치고 속죄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빚을 갚으면 또 다른 빚이 생긴다. ‘진짜 기사’는 팔리지 않는다. ‘이번 한 번만’이 자기 변명이 된다.


직장에 다니는 독자들이 재계약을 하기 위해 사측의 부당한 요구에 따르듯이,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퇴사하거나 사업을 접지 않고 ‘먹고사니즘’을 핑계로 대듯이 기자들도 그렇게 신문사에서 의뢰한 기사를 쓰고 판매하기 좋은 기사를 찾아 다닌다.


그렇게 기레기가 된다.



김새벽 기자 daybreak@gmail.com

※ NK 사옥 대량학살 현장 풀영상은 굿뉴스 사이트에서 프리미엄 고객으로 가입하시면  무료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언론사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녹취록 - 닥터 케보키언의 진료실


의사 : 안녕하세요. 상담 하고 약 처방 받고 싶다고 하셨는데, 여기는 일반 정신과 병원이 아니어서요. 실업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된 분이 오시면 상담을 하고 안락사를 도와 드리는 ‘안락사 센터’인데요. 알고 오신 건가요?


환자 : 네, 그래서 온 거예요. 의사 선생님께선 죽음을 많이 지켜 보셔서 저를 이해하실 수 있으실 거 같아서요.


의사 : 제가 하는 일은 일반 의사랑 달라요. 다른 의사들이 환자 분 말씀대로 진료하고 처방한다면, 저는 조력 자살하러 온 사람들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만류해 보는 일을 해요. 법적으로 안락사 전에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해서 진짜로 죽고 싶은 건지 알아보게 되어 있으니까요. 저는 죽으러 온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희망을 가져요’ 이런 말을 하지요. 한강 다리에 투신하려는 자살 시도자들 보라고 써 놓은 글귀처럼요. 환자분은 조력자살 하려고 오신 게 아니니까 이런 판에 박힌 위로는 필요 없으실 텐데요.


환자 : NK 사옥 빌딩 총기 살해 사건 아시죠? 제가 그거 취재했는데, 현장에서 숨진 범인이 사건 전에 의사 선생님께 진료 받았더라고요. 제 마음을 제일 잘 아실 의사가 선생님이실 것 같아서 여기로 왔어요.


의사 : 환자와의 상담 내용 유출은 안 되니까 조금씩 변형해서 말씀 드릴게요. NK 범인이 진료 받으러 왔을 때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우울증 환자 아닌 사람이 희귀하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는 “회사에서 문제가 있으면 회사를 그만 둬야지 왜 인생을 그만 두려고 해요”라고 했었죠. 여기서는 조력 자살 약물 밖에 처방하지 않으니까 다른 병원을 가 보라고 했죠. 환자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아가길래 제가 환자를 잘 치료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환자가 자살을 한 거죠.


환자 : 자살이요? 그걸 자살이라고 하나요?


의사 : 콜롬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처럼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 자기도 죽는 것도 자살이죠.그 환자가 찾아 왔을 때 제가 치료를 잘 했다면 우울증에서 벗어나 자살도 하지 않았을 거고, 총을 들고 회사에 출근하지도 않았겠죠.


환자 : 그러니까 이번엔 저를 잘 치료해 주세요.


의사 : 그럼 먼저 상담 내용을 녹음하는데 동의한다는 동의서에 서명 부탁드립니다. 녹음은 1차적으로는 조력 자살 전에 환자가 적절한 의료적 조치, 그러니까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았다는 증거자료가 되고, 2차적으로는 상담 내용을 AI에 학습시켜서, 환자의 말 내용을 분석하여 AI가 그에 맞는 위로를 말하도록 하는 AI 개발에 사용됩니다.


환자 : 그런 AI가 완성되면 정신과 의사도 필요 없겠네요?


의사 : 중산층에서 돈 잘 벌 수 있는 직업이 의사라서 코피 터지게 공부해서 의대 갔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정신 질환자가 증가할 거라고 해서 정신과를 택했더니 AI에 자리 뺏기게 생겼네요. 아직은 의사가 치사량에 이르는 약물을 처방하고 주사하지만 조만간 의사의 역할도 기계에 대체될 거래요. ‘안락사 캡슐’이란 게 있는데 1인용 우주선처럼 생긴 캡슐 안에 안락사 희망자가 있으면 그 안에 질소를 주입하는 거죠. 맥도날드에 키오스크가 들어왔을 때부터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거라고 예상 했어야 했는데.


환자 : (동의서에 서명한다.) NK 빌딩에서 취재를 한 이후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맨눈이 아니라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시신을 봐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시신이 환시처럼 눈 앞에 왔다갔다 하고요. 평범한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몰려와서 길을 걷다가도 멈춰서서 숨을 고르게 되고요. 강박적으로 제 기사를 찾아 보게 되는데 저더러 기레기라는 악플들이 너무나 맞는 말이라서 계속 머리 속에 맴돌아요. 범인은 제가 사건사고 전문 기자라서 저한테 연락했다고 했는데요. 교통사고부터 살인현장까지 사건사고를 꾸준히 취재해 왔는데도 이번 사건은 유독 힘이 드네요. 사실, NK 빌딩에 갈 때까지도 설마, 했어요. 1층에서 압력솥 폭탄이 터질 때까지만 해도 여기서 끝이겠지, 했어요. 16층에 올라가서 살육전에 카메라를 들이댈 때까지도 현실감이 없었어요. 취재 의뢰가 왔을 때 만류했어야 했는데…특종 욕심에 사건이 종료될 때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어요. 유가족들은 아마 저를 원망하고 있겠죠.


의사 : 왜 이제서야 오셨어요? 회사에서 PTSD 치료 지원 안 해줘요?


환자 : 사비로 병원비 내려니까 돈을 모아야 해서요. 소속된 회사가 없는데 치료를 지원해 주는 곳이 어디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사람이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응급구호조치를 하거나 범인을 설득하지 않은 제가 무슨 낯짝으로 치료를 받아요. ‘수단의 굶주린 소녀’ 라는 퓰리처 상 받은 유명한 사진 있죠? 기아 상태의 어린애 뒤에 독수리가 기다리고 있는 사진이요. 사진 찍을 시간에 독수리를 쫓아내고 아이를 구해야 하지 않냐고 비난 받은 끝에 자살했죠. 언젠가 저도 그렇게 될 지도 몰라요.


의사 : 기자로서 환자분은 현장에 개입할 수 없었겠죠. 환자분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 현장을 취재했을 거고요.


환자 : 저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어요. 벌벌 떨면서요. 죄책감이 들어요. 총을 든 사람을 막았어야 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잘 설득했으면 안락사를 택하지 않았을 환자들을 떠올리면, 트라우마 없어요? 범인이 찾아왔을 때 내가 치료를 잘 했다면 이런 사건은 없었을 텐데, 이런 후회 안 하세요?


의사 : 실직해서 조울증이 온 환자에게는 리튬이 아니라 직장이 약이죠. 그런데 이 진료실에서 취업 알선을 해 줄 수는 없는 거니까요. 설득은 제 일이고 선택은 환자의 몫이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를 그을 줄 알아야죠.


환자 : 의사 선생님은 지금 하시는 일에 만족하세요?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죽이는 일을 하시는데. 저출산이 문제라더니 AI발달로 인한 무인화 속도가 사람이 자라는 속도를 뛰어 넘어서 인적 자원이 남아 돌고, 취업자가 적으니 소비가 줄어서 불경기가 오고, 경기 회복을 위해 기업들 원하는 대로 직원들을 모두 계약직으로 고용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러니 언제 잘릴까 불안해서 저축을 늘리느라 소비를 안 해서 또 불경기가 오는 악순환 속에서 국가가 내 놓은 대책은 기본소득이었는데, 25만 원을 줬더니 집주인들이 월세를 25만 원 올리고, 100만 원을 줬더니 고용주들이 월급을 100만 원 깎았죠. 기본소득도 효과가 없으니까 ‘일하지 않은 자 숨쉬지도 말라’는 마인드로 6개월 이상 실업자에게 안락사를 권하고 있죠. 사람이 남아 도는데 사회적 자원으로 부양하지 못 하니까. 의사 선생님은 쓸모없는 사람은 순순히 없어져도 된다고 믿으세요?


의사 : 환자분이 ‘알 권리’를 위해 일하듯 저는 ‘죽을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어요. 실직은 큰 스트레스 요인 중에 하나에요. 안락사 센터가 있기 전에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투신, 목맴사, 음독 등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어야 했어요. 저는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존엄을 지켜주고 있어요.


환자 : 저는 아니에요. 저는 고분고분 잘리고 조용히 안락사로 사라지느니 NK 사옥 빌딩의 그 범인처럼 찍 소리라도 내는 걸 원해요. 그게 살인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서 범인이 컨택했을 때 받아들인 거에요. 저도, 매번 언론사랑 기사 계약할 때마다 초조하니까요. 먹고 사는 게 불안하니까요. 계약 따내겠다고 언론사가 원하는대로 잔인하고 참혹하게 사건 현장 담아내고 댓글에서 기레기라고 욕 먹는 건 제가 감당하는 거 힘들 때가 있어서요. 언제 한 번 크게 사고 치고 때려 부수고 싶은 게 늘 마음 한 구석에 있는데 NK 범인이 저 대신 사고 쳐 주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취재 요청을 받아 들이고 현장에서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지켜 본 거예요.


의사 : ‘스무 살 때의 나’ 그리고 ‘십 년 후의 나’ 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요?


환자 : ‘스무 살 때의 나’는 ‘나는 이런 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하고, ‘십 년 후의 나’는 ‘살아남느라 수고했다’ 고 할 거 같아요.


의사 : 여기 앉아 계시는 환자 분이 친구라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환자 : …도망가지 않고 버티느라 너무 고생했다고…


의사 : 그 말을 자신에게 들려 주세요. 여기서는 안락사 약물 밖에 처방할 수 없으니까 다른 정신과 병원 가서 진료 받으시고 약 처방 받아서 드세요. 꼭이요. 아셨죠? 약 버리거나 과다복용하지 마시고요. 요새 약은 과다 복용해도 간만 망가지지 죽지 않아요.


환자 : …네. 약 좀 강한 걸로 처방해 주세요. 꿈 꾸지 않고 푹 잘 수 있는 약으로요. 아예 생각을 멈추게 하는 약이면 더 좋겠어요.


유서 – 동생에게


아무 문제 없이 좋은 동료들과 열심히 일하는 줄 알고 있었던 내가 갑자기 이런 사건을 일으키고 떠나게 되어 너에게 미안하다. 엄마아빠는 보기보다 심약하신 분들이니 네가 정신 차리고 마음 단단히 먹고 엄마아빠를 챙겨야 한다. 최대한 수습해 놓긴 했지만 그래도 네가 정리 해야할 게 있으니 메모 남겨 놓는다.


SH은행에서 적금, 보통예금을, SH보험사에서 보험금을 수령해라. 직장 생활 내내 모은 돈은 저금해 뒀으니 나름 목돈이다. 부모님 채무 갚고 부모님 돈이랑 네 돈에 내 돈 합쳐서 집을 하나 사서 월세를 놓으면 부모님은 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월세는 이번 달까지만 계약했고, 옷과 책, 반찬, 영화와 드라마, 식물, 청소와 세탁 서비스도 이번 달까지만 구독하기로 했다. 집 안에 내가 소유한 것은 없으니 치울 것 없이 그대로 두면 된다. 사무실의 내 물건도 모두 버렸다. 소유한 게 없으니 미련도 없다.


혹시 사건 현장에서 내가 죽지 않고 치명상만 입었다면 병원에 치료하지 말고 시간을 끌어 내가죽을 때까지 내버려 둬라. 치명상이 아니라면 상의 주머니에 권총이 있으니 그걸로 심장이나 머리를 겨누어 죽여라. 총 쏘는 방법은 요즘 네가 보는 드라마에서 많이 봤으니 잘 알 것이다. 내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면 연명치료 하지 말아라.


내 시체는 NK 병원에 기증하여 해부 및 장기 기증에 사용하기로 서약했다. 남은 시체는 NK병원과 연결된 화장장에서 화장하여 NK 납골당에 안치하면 된다. 기증자에 대한 예우의 일환으로 NK병원에서 장례식은 치러 주기로 했으니까 시체 기증 후의 절차는 모두 NK 병원에 문의하면 된다. 내 장례식에 조의금 낼 사람들 명단은 휴대폰 ‘장례식’ 그룹에 있으므로 계좌번호 보내주면서 조의금 내라고 해라. 좋게 죽은 것도 아닌데 번거롭게 장례식에 조문객 부를 필요는 없다. 대신 조의금은 꼭 받아내라. 내가 축의금 낸 사람들이니까. 메일에 예약 발송으로 주소록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내 죽음을 알렸다. 혹시 답메일이 오면 회신해 주어라. 내 제사는 지낼 필요 없다.


내가 죽인 사람들의 유가족에게 고개 숙일 필요 없다. 죽을 만 해서 죽였다. 내가 그들을 죽인 이유는 이 유서 뒷장에 적어 두었다.


부모님과 너는 싸우는 걸 귀찮아 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죽인 사람들의 유족들과, 네티즌들과, 기자들에게 시달리게 해서 미안하다. 내가 남긴 돈이 그 정도 값어치는 한다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앞으로의 인생은 안락사 밖에 없으므로 지금 죽는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나만 조용히 죽는 걸로 끝나는 게 아쉽고 아깝고 억울해서 시끄러운 방식을 택했다. 내 죽음이 뉴스에 나오고 사회적 논의를 불러 일으키기를 바란다.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큰 일을 저질렀으니 미안하다고만 하겠다. 뒷정리를 부탁해서 미안하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으면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고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고 퇴근 후와 주말에는 일하지 말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유서 – 회사에게


To. 김주실 실장


인력 이탈을 막으려고 큐레이션 업무가 완전히 자동화 될 때까지 실원들에게 괜찮다, 문제 없다, 자동화 되어도 사람은 계속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해서 다른 부서로 갈 기회를 놓치게 했다. 8년 동안 매일 국내 모든 주요 언론사 기사를 보면서 중요도와 재미, 언론사의 다양성 등을 판단해서 어느 위치에 놓고 어떤 기사로 이어갈 지 큐레이팅했는데 그걸 모두 AI에게 학습시켜서 개인화, 자동화 시킨 이후로 내 경력은 물경력이 되었다. 네티즌들에게 중요하고, 잘 쓴 기사를 읽게 한다는 사회적 책임과 자부심이 사라졌다. 은행 창구에 정규직 대신 계약직, 계약직 대신 스마트뱅킹이 있을 때 나도 언젠가 AI에 대체되리란 걸 짐작하고 실장 말을 믿지 말고 어떻게든 다른 부서를 알아 봤어야 했는데. 다른 부서도 하나둘씩 AI로 대체되고 있긴 하지만.


인터넷은 24시간 돌아가야 했기에 3교대 근무를 하느라 건강이 망가져서 휴가를 요청했을 때도 내가 휴가를 쓰면 다른 사람이 야간근무, 새벽근무를 해야 한다며 휴가를 못 쓰게 하고, 다른 부서를 알아보는 걸 눈치채자마자 내 인사고과를 최하로 줘서 다른 부서에서 날 거부하게 했다.


그리고 AI가 도입되고 내 업무가 자동화 된 날 나에게 계약연장 불가를 통보했다. 친절하게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일이나 다른 팀을 찾아 줬으면서.


To. 박문범 팀장


같은 야마의 기사가 다수 들어오면 중요도 ‘상’에 체크하는 게 AI의 한계였다. 덕분에 뉴스 큐레이팅이 자동화 된 후에도 신제품 출시 보도 기사가 쏟아져 중요한 기사로 체크되면 체크박스를 클릭하여 광고성 기사를 메인 화면에 노출되지 않게 해야 했다. 실시간으로.


그 간단한 노동을 누가 하냐면, 8년째 뉴스 큐레이팅을 하는 나 였다. 다른 팀원들은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뉴스 기사의 중요도를 점수로 매겨 AI에 학습시키는 업무를 맡았다. 보자마자 기사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건 그들보다 오래 뉴스 큐레이팅을 한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팀장은 내게 맡긴 일도 중요하다고만 했다. 더 이상 팀장에게 요구했다가는 계약연장이 안 될 것 같아서 물러 났다.


남는 인력을 다른 팀으로 보내 줄 때도 팀장은 나에게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나를 다른 팀으로 보내 주지 않았다. 내가 꼼꼼하지 못해서, 여려서, 뉴스 일만 계속 해서 그 자리에 맞지 않는다고. 광고성 기사를 끄는 그 간단한 일을 할 누군가가 있어야 하니까. 그 ‘누군가’가 팀장이 보기에 가장 하찮은 나니까. 팀장 덕분에 이직이나 전배에 요구되는 ‘본인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획서 등의 산출물’이 없어서 갈 곳이 없어졌다.


To. 김희진


남들은 우리가 이 팀에서 제일 친하다고 믿고 있겠지. 하지만 너는 늘 나보다 앞서 갔다. 내가 언제 AI에 대체될 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삼교대 근무를 할 때 너는 기획자가 되어 AI TF에서 개발자들, 디자이너들과 토론하고 기획서를 쓰고 AI개발이 어떻게 어느 정도 진척되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물어 보면 기밀이라고, TF 일이 힘들다고 뻐기듯 말했다.


퇴근 후 추리소설을 쓴다는 내게 너는 행복해서 추리 소설 같은 건 읽지 않는다고 했다. 사내 결혼한 너의 남편은 계속 계약 연장 되고 있었다. 행복한 너는 아이를 둘이나 낳아 길렀다. 아이가 특권이자 부의 상징인 이 시대에. 나는 너의 행복을 부수고 싶다. 다시는 행복하다는 거만한 말을 하지 못 하도록.


To. 정도환


너와 나는 같은 시기에 입사했다. 네가 술을 잘 마신다며 술자리에서 임원의 맞은 편 자리에 너를 앉혔다. 너와 임원은 술자리에서 친해졌다. 나에게는 왜 잘 웃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너에게는 묻지 않았다. 초반에 내가 한 자잘한 실수들은 그대로 내 선입견과 편견이 되어 업무에 익숙해지고 실수가 줄어든 후에도 나는 ‘실수가 많아 중요한 일은 맡기지 못 할 직원’이 되었다. 너도 실수를 했지만 대범하게 넘어 갔다. 너는 정치, 경제, 사회 같은 ‘하드’ 섹션을 맡았고 나는 나머지 생활, 세계, IT 같은 ‘소프트’ 섹션을 맡았다. 너와 나의 차이는 처음부터 벌어지고 있었다.


나에게 왔어야 했을 기회들은 너에게 갔다. 정치 섹션을 맡았다는 이유로 너는 지방선거, 대선,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선거 대응 TF’에 들어가서 경험과 이력을 쌓고 선거 때마다 없으면 안 될 인력이 되었다. 너와 내가 시작은 같았는데 끝은 다를 줄 알았겠지. 하지만 너와 내가 끝도 같게 해 주겠다.


To. 이수빈


삼교대로 뉴스 큐레이팅을 할 때마다 두 명이 같이 했다. 나는 나보다 늦게 입사한 너와 함께 많은 새벽과 밤을 보냈다. 한 명이 실수하거나 속보를 놓치면 다른 한 명이 얼른 발견해서 바로잡기 위해 두 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각자 자기가 맡은 섹션 기사만 보기에도 바빴고 또 졸렸다.


너는 실수가 잦았다. 너보다 하루라도 더 일한 내가 ‘선배’로서 네 실수를 다른 사람이 보기 전에 고쳐 놓아야 했다. 그러나 너와 내가 같이 새벽에 일하던 날, 너는 정치 섹션을 맡아 보다가 대선에 출마한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오타를 냈다. D일보는 잽싸게 오타를 캡처해서 NK가 고의로 야당 정치인의 이름을 틀리게 적었다고 기사를 냈다. 야당에서는 선거철을 맞이하여 기강을 잡아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사옥을 방문하여 공식 항의를 했다.


팀장과 실장은 위에서 한 소리 듣고 왔는지 너와 나를 불러다가 정신 차리라고 혼을 냈다. 실수가 잦다는 내 평소 이미지 때문에 나를 더 혼냈다. 그 외에도 네가 자잘하게 실수한 게 몇 번 더 있었다. 그 때마다 너와 근무하던 내가 더 혼났다. 그럴수록 내 이미지는 ‘실수하는 덜렁대는 애’로 굳어졌다. 그러니 너는 나를 원망하지 못 할 것이다.


To. 민주영


모두들 당신을 팀장의 오른팔이라고 했다. 당신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당신은 팀장의 왼팔이었고 오른팔은 따로 있었다. 당신도 나처럼 팀장이 자잘한 궂은 일을 시키기 위해 끝까지 팀에 남겨 둔 사람이었다. 당신은 팀원들의 요구사항을 다 받아들여 3교대의 근무 스케쥴을 짜고, 팀장과 실장이 ‘더 중요한 일’에 몰두하느라 버려 둔 내 일을 관리 감독했다. 신제품 출시 보도자료가 쏟아지면 중요한 기사라고 판단하는 AI를 관리하는 내 일 말이다.


당신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나에게 밥을 사 주며 얼른 이 팀을 떠나라고 충고해 줬으니까. 팀장과 실장의 달콤한 뱀의 미소에 홀려 당신 자신이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 때에.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당신은 나보다 오래 뉴스 큐레이션 팀에 있었음에도 AI와 관련된 일은 범접치 못 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당신은 이 팀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너무 늦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당신을 받아 줄 팀은 없었다. 팀장은 내게 했던 수법을 당신에게도 했다. 당신은 나의 미래였다. 나는 당신처럼 되기 싫었다.


To. 최수현


당신은 내가 신입이던 시절 나의 사수였다. 내가 실수를 많이 한다는 팀장의 고정관념은 당신이 만들었다. 수빈의 사수 노릇을 할 때 나는 수빈이 실수하면 조용히 메신저로만 애기했다. 내가 실수했을 때 사수였던 당신은 의자를 박차고 내 자리로 와서 남들도 다 들릴 만 한 큰소리로 내 실수를 지적했다. 지나 보니 별 거 아닌 실수였는데. 당신 덕분에 실수 투성이에 덜렁댄다는 내 이미지가 굳어 졌다. 나는 하루 종일 당신을 흘깃 보며 당신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이기만 해도 깜짝 놀랐다. 스트레스를 받고 또 받다가 대상포진에 걸렸다.


당신은 팀장의 오른팔이었다. 팀장이 당신에게 나에 대해 물었을 때, 당신은 내게 유리한 말을 하지 않았다. 팀장은 당신 말만 믿고 내가 일 못하는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왜 그랬을까. 당신의 성격이 성급해서 처음의 어설픈 내가 나이질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못나고, 가르치기 힘든 인간이어야 사수인 당신이 고생한다는 소리라도 한 번 더 들을 수 있을 거라 계산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신이 느리고 덜렁댄다고 봤던 나는 훌륭하게 성장하여 당신에게 총을 겨눌 것이다.


To. 심성민


너는 뉴스 큐레이터에서 기획자가 되어 뉴스 AI가 기사를 셀렉하는 기준을 세웠다. 1. 기사 수가 많을 것 2. 같은 야마일 경우 속보를 우선시할 것 3. 조회수가 높을 것.


사람이 편집할 때는 중요하게 여겼던 심층 기사, 분석 기사, 기획 기사는 네가 세운 기준에서 메인 페이지에 가기 어려웠다. 메인 페이지에는 언론사가 뉴스 판에 노출시키려고 일부러 사회나 생활로 섹션을 수정한 연예기사가 인기도가 높아서 상위에 뜨거나 정치인의 스캔들 기사, 사건사고 기사가 기사 수가 많아서 메인으로 갔다. 내가 좋아하고 자부심 느꼈던 ‘중요한 기사’는 메인에 없었다.


네가 죽은 후 기사들은 너의 사연을 신파로 소비할 것이다. 내 범행 동기를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뉴스를 자동화한다는 게 국민들의 알 권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기사화하지 않을 것이다. 죽은 너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것이다. 이게 네가 열심히 한 일의 결과다.


To. 박지아


너는 회사를 믿지 않았다. 연말이면 당연하다는 듯이 계약 연장을 했지만 너는 언제라도 회사가 직원을 버릴 수 있다고 했다. 너는 자기계발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언제라도 버려질 회사에 필요한 기술 같은 걸 왜 하냐고 했다. 너는 주영 님에게 부탁해서 최대한 새벽 근무와 심야 근무를 뺐다. 네가 비운 자리는 나 같은 회사에 충실한 멍청이들이 채웠다.


너는 칼출근 칼퇴근하고 남는 시간에 남편과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고용이 불안정한 시대에 뭘 믿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나 했더니 너는 재테크를 했다. 일은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대충 하고 화장실을 간다며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주식을 하고 부동산 카페에 들어갔다. 너는 주식으로 돈을 벌어 집을 사서 임대업을 해서 마흔 전에 제 발로 회사에서 나가서 일 안 하고 아이의 공부를 봐 주고 남편과 여행 다니겠다고 했다. 네가 그런 꿈을 꾸며 대충 일하는 동안 네가 놓친 속보는 내가 챙겼다.


너는 은퇴하지 못 할 것이다. 네가 꿈꾸던 삶은 시작만 하고 끝날 것이다. 네가 자신 있게 꾸린 가족도 다시는 못 볼 것이다. 그러게 너만 챙기지 말고 네 몫을 했었어야지.


To. 심서연


너는 발이 넓었다. AI를 도입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여기저기 인맥을 동원해서 찔러 보았다. 나는 너에게 분명히 부탁했다. 네가 요즘 뜬다는, 즉 사람이 부족하다는 숏동영상 팀으로 갈 때 그 쪽 부서에 나에 대해 잘 말해 달라고. 그러자 너는 그런 부탁 했던 사람이 나 말고도 있다고 했다. 늘 뉴스 기사만 보던 사람들이 숏동영상 PD가 되는 건 자연스러워 보였으니까. 그러나 웹툰 팀에서는 기사만 보던 사람들이 아니라 웹소설을 오타쿠 수준으로 읽는 사람을 원했다.


너는 숏동영상 팀에 내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예정했던 날보다 빨리 이 일을 하기로 했다. 네가 숏동영상 팀으로 가기 전에 이 일을 벌이려고. 내가 숏동영상 팀에 갈 수 없다면 아무도 갈 수 없다. 이건 나를 거부한 숏동영상 팀에 대한 내 답이기도 하다.


To. 이 유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유서를 다 읽고 의아할 것이다. 겨우 이런 사소한 이유들이 밝은 대낮에 동료, 상사, 후배를 총으로 쏘아 죽일 이유가 되나? 하고. 그 사소함이 8년을 쌓이면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된다. 내가 배제된 팀에 애정을 가질 이유는 없다.


나는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8년차가 할 만 한 업무 대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잡무를 주었다. 나는 실수가 잦은 허술한 직원이라며. 그건 내가 신입일 때 잠시 그랬던 것 뿐인데 윗사람들은 나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내가 제자리에서 곧 없어질 허무한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동안 다른 직원들은 새로운 일을 맡았다. 이 조직이 나를 따돌렸다. 나는 나를 폐허에 버려 둔 상사와, 다른 일을 맡아 살 길을 찾았다고 좋아하는 어리석은 동료와 선후배를 죽음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내가 일을 할 수 없다면 당신들도 일하지 못 해야 돼.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직이지만 그래도 8년을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했다. 8년 동안 부려 먹던 직원의 계약을 더 이상 갱신해 주지 않을 때 어떤 예우를 해 줘야 하는지 회사와 사회에 알려 주려고 한다. 해외 사이트에서 부품을 하나씩 주문해서 조립하고 실탄 사격장에서 팀원들 대신 과녁을 맞추며 연습하던 동안 나는 피해자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나의 희생자가 될 사람들에게 모두 한 번 씩 점심을 사며 내가 이 유서에 썼던 얘기를 했다.


실장은 건강이 좋지 않다는 나에게 회사를 그만 두고 쉬면서 치료하라고 했다. 팀장은 내가 처음에 비해 나아진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최근에 실수한 적 있냐고 물으니 답하지 못 했다. 너는 남편과 아이가 즐겁게 놀고 있는 사진을 보여 주며 아이 이야기만 해 대면서 행복을 과시했다. 너는 요즘 맡고 있는 선거 TF가 골치 아프다며 누가 당선될 것 같냐고 물었다. 누가 당선되건 네가 죽은 후의 일이 될 텐데. 너는 명랑하게 AI가 완전히 도입되면 실수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사람이 편파적으로 뉴스를 큐레이팅한다고 정당에서 항의하는 일도 없어질 거라고 했다. 너는 그래도 팀장이 자기를 다른 팀으로 보내주지 않겠냐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팀장은 내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듯이 당신의 계약도 모른 척 할 것이다. 너는 팀장에게 내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내가 팀장에게 들었는데. 너는 완성되어 가는 AI에 자부심이 있었다. 나의 실직보다 자신의 연말 성과에 관심이 많았다. 너는 내게 부동산을 추천했다. 나에겐 추천 받은 집을 살 돈이 없었다. 너는 벌써 웹소설팀에 간 것처럼 웹소설 얘기만 했다. 나는 잘난 사촌을 보는 마음으로 배가 아팠다.


아무도 내 말을, 내 경고를 듣지 않았다. 나는 이 사건을 가장 선정적으로 보도할 기자를 골랐다. 유서를 기자들에게 메일로 뿌렸다. 사람이 손으로 큐레이팅하면 메인에 가지 않을 기사, 죽은이와 죽인이의 존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을 기사를 AI는 메인에 올릴 것이다. 그 기사가 최초 기사고 따라서 인기가 가장 많을 테니까.


그 기사 속의 나는 살인광이고 죽은 사람들은 회사에서 거액의 위로금을 받으니까 아무것도 더 요구할 수 없는 비련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회사는, 유가족들은, AI에 손 대지 못 하고 당할 것이다, 콘텐츠 큐레이션팀 팀원들이 자동화를 위해 열심히 일한 덕분에. 그게 콘텐츠 큐레이팅 자동화의 첫번째 결과가 될 것이다.


지원 기관 : 안전과 사회 기념관

지원 직무 : 큐레이터


1.   지원 동기를 쓰시오.


저는 안전과 사회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참사의 유가족이자 생존자입니다. 참사 이후 유가족 모임에서 뉴스 기사,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 SNS, 참사를 다룬 예술작품, 영상물 등 각종 기록물을 아카이빙하는 일을 맡아서 정리된 자료를 기념관에 기증했습니다. 기념관 관장님께서 방대한 자료를 꼼꼼하게 잘 정리했다고 감탄하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기념관에서 일하면서 제가 모은 자료들을 제 손으로 관리하고 전시하고 싶습니다.


기념관의 전시를 통해 향후 유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람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념관의 교육적 측면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시는 저 같은 유가족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2. 지원한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가진 역량을 쓰시오.


추진력과 돌파력이 있습니다. 참사 기념관을 참사 현장에 지을 것인지, 유가족이 많은 판남에 지을 것인지, 참사를 국가적 재난으로 보아 다시는 광화문에 지을 것인지 여론과 유가족들과 국회의원들의 이견이 갈렸을 때 참사가 유가족들만의 일이 아닌 국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한 국가적 참사라는 의견을 유가족들에게서 이끌어 냈습니다.


그 후 한겨울에 광화문에 텐트를 치고 시민들에게 왜 기념관을 지어야 하고 기념관이 광화문에 있어야 하는지 알리는 팜플렛을 건네고, 삼보일배로 국회까지 가서 국회의원들을 만나서 호소하고, 예술가들에게 참사에서 영감 받은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희생자들이 다녔던 학교에 전시하고 연예인들에게 참사와 관련된 발언을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렇게 지금 이 안전과 사회 기념관이 광화문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저는 이벤트와 전시를 통해 타인을 설득하는 것에 능합니다.


3. 입사 후 하고 싶은 일을 쓰시오. 


원래 참사이름을 따서 기념관을 지으려고 했는데 참사가 있었던 지역 주민들이 참사와 연관된 지역은 집값이 떨어진다고 해서 모호하게 ‘안전과 사회’ 라고 이름 붙인 걸 알고 있습니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와 ‘안전하기 위한’ 사회의 역할에 관한 자료를 보관하고 전시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NK 사옥 총기난사’관련 전시회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직장 내 총기난사는 처음이라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유서나 사용된 총기를 전시하고 유가족들을 찾아다니면서 희생자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유서에 적힌 말은 사실인지 취재하려고 합니다. 저도 유가족이라서 유가족에게 접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즉사한 범인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합니다. 원래 폭력성이 있었는지 아니면 회사에서 문제가 있어서 반쯤 미친 건지. 사건 전 회사 분위기는 어땠는지. 회사가 범인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간 건 아닌지.


범인의 범행 동기에서 멈추지 않고 안전과 ‘사회’ 기념관에 맞춰 정부는 적절하게 대응했는지, 회사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재발을 막으려면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시를 통해 질문하고자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의 기록을 기념관에 전시하고 싶습니다.


안전과 사회 기념관 “총기 난사범도 희생자” 발언 논란


[뉴스이즈] 안전과 사회 기념관 큐레이터가 NK사옥 총기난사범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안전과 사회 기념관은 최근 NK 사옥 총기난사 전시에서 희생자 소개에 사망자 열 명에 총기난사범을 포함한 열한 명을 전시했다. 전시 팜플렛에도 ‘희생자 11명’이라고 적혀 있다. 담당 큐레이터는 기자에게 “진정한 가해자는 직원의 커리어패스를 관리하지 않고 직장 갑질을 못 본 척하고 직원들간 불화에 무관심하다가 끝내 계약 해지를 하여 평범하고 성실했던 사람이 총을 쏘게 한, 우리 시대의 선망 받는 대기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살인은 죄가 맞지만 살인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보면 살인범도 희생자입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기념관 측은 “최초 보도에서 기자가 현장에서 총기 난사범까지 포함하여 열한 명이 사망했다고 발언했고, 다른 언론사들이 속보 경쟁을 하느라 우라까이해서 계속 사망자가 열한 명이라고 보도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보를 미처 걸러내지 못 하고 희생자를 11명이라고 표기한 데 대해 사과한다.”고 해명했다.


안전과 사회 기념관의 ‘NK사옥 총격 사건’ 특별전은 매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으며, 희생자 별로 평소 고인의 성품에 대한 주변인들의 증언과 사건 당시 행방을 VR로 구현한 점이 눈에 띈다.


김주실 실장에게는 올해 사립 영재중에 입학한 딸이 있었다. 종종 주변인들에게 “딸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회사에 오래 붙어 있어야 한다”고 자랑삼아 말하고 다녔다. 평소 풀메이크업과 화려한 패션을 즐겼던 김 실장은 사건이 있던 날 스틸레토힐을 신고 도망치다가 신발을 벗어 던졌다. 현장에는 바닥에 나뒹구는 스와로브스키 큐빅이 반짝이는 구두가 당시 상황의 급박함을 전달하고 있었다. 김 실장은 책상 아래 숨었으나 살인범의 총격을 피하지 못 했다. 책상 아래에서 숨진 김 실장의 명품 구두가 벗겨져서 피에 젖은 채로 발견되었다.


박문범 팀장은 비혼으로, ‘일과 결혼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수시로 야근과 새벽근무를 했다. 윗사람에게 깍듯했고, 완벽주의 성향이라 아랫사람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기지 않고 직접 하곤 했다. 사건 당일에도 원래 휴가였으나 회사에 나와서 일에 열중하다가 도망칠 기회를 놓쳐 자리에 앉은 채로 관자놀이에 총을 맞았다. “나 회사에서 쓰러지면 화장해서 회사 화장실 변기에 재를 넣고 물 내려 줘”하는 시니컬한 농담을 했으나 유족들은 “총격이 아니었으면 과로사로 죽었을 것”이라고 하며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납골당에 고인을 모시기로 했다. 동생에게 용돈 주는 오빠이자 부모에게 매일 전화를 하는 살가운 아들이었던 팀장의 죽음에 가족들은 빈소에서 내내 울기만 했다.


김희진 씨의 장례식장에서는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영정 사진을 가리키며 엄마는 왜 오지 않냐고 물어 조문객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사내결혼한 남편은 양 무릎에 아이 둘을 앉히고 죽음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다가 오열했다. 엄마를 쏙 빼 닮은 두 아이는 장례식장 분위기가 무겁자 칭얼거림을 그치고 불안해 하며 주변 눈치를 보다가 조문객들의 울음에 같이 울음을 터뜨렸고 아이들의 아버지는 더 크게 울었다. 김희진 씨는 얼굴 중앙에 총격을 당해서 시신을 확인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게 살해 당했다.


정도환 씨는 여초인 팀에 처음 들어온 남자였던 덕분에 귀여움을 받았다. 앉아서 일만 하느라 살이 쪄도 판다처럼 귀엽다고 할 정도였다. 최근 러닝을 시작했던 정도환 씨는 총격전 당시 재빠르게 도주했으나 총알보다 빠르지는 못 해서 뒤통수에 총을 맞았다. 정도환 씨는 올해 초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어 이사를 하지 못 할 뻔 한 아찔한 경험 이후로 “더 이상 집 때문에 골치 아프지 않게” ‘영혼까지 끌어 모아’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야 전철을 탈 수 있는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를 장만했다. 정도환 씨는 “1억 원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녔으나 1억 원의 위로금이 나온 지금 정도환 씨가 새로 산 집에는 아무도 없다.


이수빈 씨는 팀의 막내여서 주변에서 늘 주시하며 실수하면 고쳐주고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 줬다. 범인은 이수빈 씨를 지나쳐서 갔다가 뭔가 결심한 듯 다시 돌아 와 이수빈 씨에게 총을 발사했다. 이수빈 씨는 도망치다가 넘어진 상태에서 총을 맞았다. 취업난이 심한 시국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NK란 대기업에 계약직으로나마 입사한 이수빈 씨는 아직 취업하지 못 한 친구들에게 자주 밥을 사 주었다. 장례식장에는 고인에게 밥을 얻어 먹었던 친구들이 와서 마지막으로 육개장을 얻어 먹고 있었다.


민주영 씨는 평소 범인과 친하다고 믿었기에 설마 범인이 자신에게 총을 쏠 줄은 몰랐던 듯 했다. 그러나 범인은 정면에서 민주영 씨를 겨냥해서 총을 쏘았다. 민주영 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돌보기 위해 계약이 만료되면 1년 정도 일을 쉬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민주영 씨는 한 달 후에 사무실에서 짐을 챙길 계획이었고 사건이 있던 날은 팀원들에게 쿠키를 돌리며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다. 총소리가 멎은 후에 민주영 씨의 책상에서는 피 묻은 쿠키들이 쌓여 있었다. 유난히 조용하고 내성적이어서 민주영 씨가 생전에 걱정했던 아들은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고 의젓하게 조문객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최수현 씨는 희생자 중 가장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잔인하게도 최수현 씨의 다리에 총을 쏴서 도주를 막은 후 팔과 복부에도 총격을 가했다. 최수현 씨는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 갔다. 김미연 씨는 시험관 시술로 딸을 낳아서 애지중지 했다. 딸에게 백화점 브랜드 옷만 입히고 유기농 재료로만 손수 요리를 해서 먹였다. 최수현 씨는 책상에 놓인 가족사진을 손에 쥐고 보면서 죽어 갔다. 아직 아기인 최수현 씨의 딸은 장례식장이 어색한 지 칭얼대며 울었다. 영정사진의 최수현 씨는 아이를 따라 시선이 움직이는 듯 했다.


심성민 씨는 범인과 격투를 시도했다. 180cm이 넘는 큰 키로 160cm가 안 되는 범인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 했다. 그러나 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던 범인이 아무데나 쏜 총알이 옆구리에 총상을 입혔다. 심성민 씨는 AI가 조회수에 목마른 언론사들이 쓰는 대로 자극적인 기사를 메인 페이지에 올린다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다. 힘들 때마다 입버릇처럼 “아, 죽겠네” 라고 했지만 진짜로 죽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외동아들이던 심성민 씨의 빈소에는 나이든 부모만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박지아 씨의 남편은 영정 사진을 보며 멍하니 “몇 년만 더 고생하면 된다고 했는데..”라는 말만 반복했다. 박지아 씨는 월급은 종자돈으로 쓰고 돈은 재테크로 벌었다. 회사 일하는 시간 빼고는 투자 설명회에 가거나 공인중개사무소에 들러 투자를 논의하느라 쉴 틈이 없엇다. 몇 년만 더 이런 생활을 하면 은퇴하고 투자만 해도 되는 돈을 모아 여행도 다니고 아이도 영재중에 보낼 수 있겠다며 무리했다. 박지아 씨는 사건 당시 화장실로 가서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옆 칸의 변기 뚜껑을 딛고 올라가 박지아 씨를 겨냥했다. 박지아 씨의 남편은 NK에서 위로금으로 1억 원을 준다는 말에 “사람이 죽었는데 그 돈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울부짖었다.


심서연 씨는 다른 조직으로의 전배를 하루 앞두고 참변을 당했다. 하루 차이로 생사가 갈렸다. 심서연 씨의 모니터에는 읽다 만 오피스 로맨스 소설이 있었다. 하지만 심서연 씨에게 오피스는 로맨스의 무대가 아니라 끔찍한 살인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평소 꾸준히 PT를 받아서 체력에 자신 있었던 심서연 씨는 사무실에서 도망치려 달렸지만 총알은 심서연 씨의 다리보다 빨랐다. 심서연 씨는 인맥관리를 위해 많은 동호회와 스터디모임에 가입했다. 빈소에는 동호회 회원들과 스터디 모임 멤버들이 끊이지 않고 조문을 왔다.


강새봄 씨는 그 날 누구보다 빨리 출근했다. 100% 사람 손으로 뉴스 큐레이팅하던 시절 새벽 당직을 할 때 출근하는 새벽 5시였다. 1층에서 압력솥에 못을 넣은 폭탄을 터뜨려서 관심을 돌린 강새봄 씨는 출근하는 뉴스 큐레이션 팀 팀원들을 침착하게 한 명 씩 조준했다. 도망치는 사람은 쫓아가서 쏘았다. 옆 팀 팀원들은 강새봄 씨가 사건 몇 달 전부터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과도하게 열심히 쉬지도 않고 단순 반복적인 ‘광고 기사 클러스터 OFF 업무’를 했다고 증언했다. 화장실에서 강새봄 씨가 문을 걸어 잠그고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강새봄 씨는 학살에 가까운 살인이 끝난 직후 경찰이 진입하고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가 말릴 틈도 없이 총으로 자신을 조준했다. 이제 콘텐츠 큐레이션 팀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강새봄 씨의 빈소에는 유가족도 조문객도 없이 기자들만 바글거렸다.


경찰은 ‘묻지마 총기난사’라고 했던 초기 수사결과를 뒤집고 ‘우울증 환자의 계획된 범죄’ 라고 우울증을 범죄 원인으로 지목하는 듯 한 결론을 내렸다.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박샛별 정신과 의사는 “의사가 정신감정을 해서 범죄가 우울증 때문인지  본인의 선택이었는지 판단합니다. 우울증 환자의 주된 증상이 무기력인데 이런 범죄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 우울증 환자가 저지르기 어렵습니다”라고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반박했다.


NK는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고 ‘콘텐츠 큐레이션 자동화 TF’를 출범시켜 콘텐츠 큐레이션 팀이 진행하던 ‘콘텐츠 큐레이팅 자동화 및 개인화’ 업무를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TF 구성원들은 콘텐츠 업무를 해 보지 않았다. 시사 이슈에 빗대어 SNL식 유머를 공유하며 웃던 콘텐츠 큐레이션 팀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업무인 빅데이터, 검색, 쇼핑, UGC관련 업무를 하던 직원들이 어떤 AI를 만들어낼 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NK는 직장 내 갑질 및 괴롭힘은 사망한 직원들을 추모하는 현 상황에서 적절치 못 하고 커리어패스 관리는 1년 계약하는 회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 회사 측의 직원 관리 소홀 논란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NK는 충격을 받은 직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팀 별로 집단상담을 실시했으나 팀 내에 현재 자신이 심리적으로 취약해서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고 생산성이 낮다는 상태를 드러내면 다음 계약 때 재계약이 되지 않을 것을 우려한 직원들의 상담 불참 및 상담 시간 내 침묵으로 집단상담은 효과를 거두지 못 했다. NK는 우울증을 이유로 계약해지를 하지 않는다고 직원들에게 정신과 진료를 받기를 권했으나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직원은 “회사가 하는 말을 어떻게 믿어요? 실제로는 우울증 때문에 계약을 해지하지만 겉으로는 ‘중대한 경영 상의 이유’ 같은 모호한 사유를 대면 그만”이라며 직원들이 회사 지정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NK 주가는 사건 직후 급락했으나 사건에 NK의 책임이 없다는 수사 결과와 NK의 각종 수습대책에 힘입어 현재 사건 직전의 주가까지 올라간 상태이다.


김새벽 기자 daybreak@gmail.com


뉴스이즈 관련기사ㅣ 해당언론사에서 선정하며 언론사페이지(아웃링크)로 이동해 볼 수 있습니다.


〮 테러 모방 예고하면서 압력밥솥 폭탄 제작…SNS 영상에 ‘충격’


〮 희생자 조롱하는 익명 채팅방 개설돼 ‘경악’


뉴스이즈 주요뉴스ㅣ 해당언론사에서 선정하며 언론사페이지(아웃링크)로 이동해 볼 수 있습니다.


〮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 불륜으로 맺어진 커플, 쌍방 불륜으로 이혼


〮 발기부전인 줄 알았더니…남편의 숨겨둔 사생아 미모에 ‘헉’


1537 개의 댓글


Team****


팀장이나 실장이 책임지고 끝까지 팀원들을 보호하다가 죽어야지 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다가 죽냐 ㅋㅋㅋ


ㄴWork****


회사는 직원을 책임지지 않으려고 계약직으로 고용하는데 직원은 목숨 바쳐야 하나.


stock****


주가가 회복되어서 다행. 웬 미친x 때문에 개미들 한강 갈 뻔 했네.


hue****


머슴을 하려면 대갓집에서 하라더니, 그래도 NK니까 심리상담도 해 주지. 중소기업이었으면 직원들이 직접 청소하면서 핏자국 지워야 한다.


Corp****


해외 사이트에서 총기 부품 사서 조립하고 사격 연습하고 사람 쏠 정성과 노력이면 이직을 하겠다.


Doctor****


범인이 상담한 안락사 센터입니다. 정신과 의사의 상담 후 디그니타스에서 사용하는 약물로 고통 없이 단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02-1599-0101


닥터 케보키언의 일기


정신과 의사로서 술이 약이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지만 요즘 쏟아지는 NK 사건 관련 뉴스는 맨정신으로 보기 힘들다. 중독이라는 걸 알면서도 시간이 남으면 SNS를 보고, 그러면 보지 않으려고 해도 쏟아지는 NK 뉴스를 보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의대 시절 친구를 만났다.


성형외과 의사인 친구와 새로 생긴 라멘집에 갔다. 여기도 무인 식당이었다. 키오스크에서 메뉴를 고르면 밀키트처럼 포장된 식재료가 나오고 식탁에 있는 인덕션을 켜서 포장된 식재료를 데워 먹으면 된다. 어렸을 땐 동네에 손맛 좋은 주방장이 있는 식당이 많았는데 이제는 프랜차이즈 식당 밖에 없다. 프랜차이즈는 본점에서 재료를 대량으로 주문해서 저렴하게 밀키트를 지점으로 보내고 주방장과 홀서빙하는 직원의 인건비도 들지 않으니까 동네 식당이 당해낼 수 없다. 업무 자동화로 직장에서 잘린 사람들이 만만한 게 먹는 장사라고 퇴직금과 대출금으로 식당을 차렸다가 줄줄이 망했다. 망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간 걸까. 내가 일하는 안락사 센터에도 망한 지 6개월이 지난 자영업자들이 오기도 했다. 친구가 라멘을 먹다가 말을 걸었다.


“이러니까 기술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지지. 그런 사람들이 네가 있는 안락사 센터로 가는 거 아냐.”


변호사도 최저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시대니까 의사가 안락사 센터에서 월급 받는 것도 감지덕지다.


“의대 다닐 때 교수님이 그랬는데. 앞으로는 정신과 의사가 인기있을 거라고. 길가는 사람 아무나 잡아 와도 정신과 환자라면서. 일하면 번아웃, 일이 없으면 우울증이니까. 그런데 의사가 사람 치료하지 않고 죽이는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 이럴 거면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왜 했나 몰라.”


내 일은 유기견 보호소의 수의사와 같다. 보호소 자리가 꽉 차면 나중에 오는 유기견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보호소에 오래 있는 유기견들을 안락사 시키듯이 이 사회가 수용하지 못 하는 인간들이 가득 차면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인간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안락사 시킨다. ‘실직한 지 6개월이 되면 안락사 할 권리를 갖는다.’ 이 법 한 문장이 있어서 내가 일할 수 있다.


“야, 나는 매일 조커를 만들잖냐. 인상을 좋게 하려고 입꼬리를 올라가게 수술하는 거지.”


“면접은 AI가 보지 않아?”


“AI가 외모도 평가 하잖아.”


“지금 취업에 나섰으면 너랑 나도 실업자다.”


“그렇지. NK 사건으로 일자리 11개가 없어졌는데 신규 채용 안 하고 기존 직원들에게 TF 겸직하게 하잖아. 기술은 발달하고 일자리는 없어지고 기업들은 사람을 쥐어짜니까.”


“’NK 사건’이라고 하지 마. NK한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라. NK에서 보도자료 냈잖아. ‘NK 사건’ 말고 ‘강새봄 사건’이라고 부르라고.”


시발, 내 맘대로 부르지도 못 하나. NK 직원들이 죽고 죽였는데 배경은 싹 무시하고 범인 하나만 괴물로 몰아가면 다 해결되나. 키오스크에서 맥주를 주문했다. 배출구에서 캔맥주가 나왔다. 캔맥주를 한번에 다 마셨다.


“야 너 내일 출근해야지. 술도 약한 애가…”


“괜찮아. 내가 환자들에게 하는 말은 정해져 있으니까. 하도 많이 해서 취해도 입 밖으로 술술 나와. 옛날에 한창 유행하던 힐링 메시지들 몇 개 읊으면 되니까. ‘죽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나요’, ‘환자 분이 죽으면 슬퍼할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려 보세요’ 이런 멘트를 연극 배우처럼 슬퍼하는 연기를 하면서 읊는 거야. 이렇게 하면 대부분 울던데 강새봄 씨는 울지 않고 총을 들고 살인을 했어. 내가 연기력이 모자랐던 걸까. 왜 안락사 대신 살인을 택했지? 왜? 나는 열 한 명, 아니 기자까지 합해서 열 두 명, 아니 나까지 포함해서 열 세 명을 구하지 못 했어.”


“끝난 일은 털어 버려.”


NK직원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출근하고 퇴근한다. 회사는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한다. 사건 관련 기사들도 점점 잦아들 것이다. 나는 환자들에게 늘 그랬듯이 “그건 강새봄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 상황에서 강새봄 씨가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회사에 다니지 않고 그냥 쉬는 삶도 괜찮아요.”라고도 했다. 강새봄 씨는 자기 탓이 아니라 회사 탓을 했다. 월급 없이 그냥 쉬는 삶은 괜찮지 않았다. 나는 그 날 진료실에서 “그건 본인 탓이에요. 다 본인 잘못이에요. 본인이 일을 못하면서 왜 동료와 상사를 욕해요?”라고 밀어 붙이고 비난했어야 했나. 그러면 강새봄 씨는 다른 환자들처럼 자기 탓을 하며 안락사를 했을까. 아무도 죽이지 않고.


나는 한 명의 목숨을 버리고 열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까. 내가 상담을 잘 했으면 열 명이 아니라 그 유족과 기자와 나까지 포함하면 수십 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강새봄 씨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계획을 털어 놓게 해서 미리 신고했어야 하는 건데. 사건 이후 찾아 오는 환자들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끔 “네 그렇군요”하는 추임새만 넣으면서 그저 듣고 있기만 한다. 내가 무슨 말이건 했다가 또다시 사건이 터지면 내 책임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정신과 의사라도 사람 속을 어떻게 다 알겠냐. 사람을 죽이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


친구의 ‘위로’가 귓가에 앉았다가 떠나간다. 강새봄 씨에게 했던 말을 나에게 한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내가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었겠냐고. 내가 뭐라고 말했건 그 환자는 그 날 그 곳에서 그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 누가 그 날 그 진료실에서 그 환자에게 뭐라고 했건 사건은 벌어졌을 거라고. 그건 다 회사 탓이고 죽은 팀원들 탓이고 강새봄 씨 본인 잘못이었다고. 내 잘못은 없다고. 나는 하던 일을 했을 뿐이라고.


사건을 보도했던 기자가 진료실에서 자기 자신에게 했던 말을 곱씹어 본다. 도망가지 않고 버티느라 너무 고생했다고…그런데 내가, 의사인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인 있나…


“야 한 캔 더 하자.”


환자들에겐 술 마시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오늘 취하고 싶다.


시말서

담당 : 부서장/관장

부서 : 전시기획 1팀

직위 : 계약직

성명 : 김실비


위반내용 (상세히 기술요망)

이번 NK사건 기획전시에서 경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을 전시 하여 국가기관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현장을 보도한 기자가 경찰에게 미리 16층에서 총격이 있을 거라고 신고하지 않았지만, 16층에서 탈출한 직원들의 신고와 그 시간에 SNS에 올라오는 글과 현장 생중계를 보고 16층에 진입할 수 있었는데 1층에서 압력밥솥 폭탄을 처리하느라 16층에 늦게 진입해서 희생자들을 살리지 못 했다고 생각해서 경찰의 실책에 전시 공간을 할애했습니다.


국정감사 때 국민행복당 김선규 의원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안전과 사회 기념관이 적자인 것은 세금낭비라고 질타하였습니다. 이에 부장님께서 전시에 흥미요소를 더 넣으라고 하셔서 체험형 전시를 구상하였습니다. 게임처럼, VR 안경을 낀 관객이 뉴스 큐레이션팀 팀원이 되어 살인자를 피해 살아 남는 내용이었습니다. 관객이 늘어서 전시는 흑자가 났지만 참사를 FPS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해 반성합니다. 스릴러나 액션 영화가 아닌 실제 사건은 건조하게 다뤘어야 했습니다. 김 의원이 이 사건을 ‘테러범에 의한 테러’로 부르자고 했는데 ‘NK 사건’이라고 해서 김 의원과 NK그룹 양측에서 반박하게 하여 기념관에 누를 끼쳤습니다.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사연과 그들이 각각 어떤 꿈이 있었는지 가족을 비롯한 타인들에게는 어떤 사람이었고 직장에서는 어떤 직원이었는지를 전시하는 공간에 강새봄 씨도 전시하고, 총 사망인원에 강새봄 씨를 포함하여 11명이라고 해서 유족들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산업계 전반에서 무인화가 퍼져 나가고 빅데이터와 AI가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는 이 때에 회사와 국가가 일자리를 잃게 된 개인을 어떻게 대우해야 소외감이나 분노를 느끼지 않고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다같이 고민해야 다시는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국가와 회사, 사회가 한 게 ‘실직 6개월 이상이면 안락사 신청 가능’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관람객에게 생각할 공간을 주기 위해 ‘국가의 역할’, ‘회사의 대응’ 전시공간을 텅 빈 채로 두었는데 전시를 하다 말았다는 피드백이 자꾸 들어온 점에 대해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10년 전 버스사고에서 쌍둥이 동생을 잃고 살아 남았습니다. 자율주행차가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 운전석에 앉아 있던 운전사는 사고 당시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졸다가 사고를 피하지 못 했습니다. 사고 직후 알려진 바로는 운전기사는 네 시간만 자고 20시간 째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소주 한 병을 마시고 겨우 잠들어서 혈중 알코올농도가 높았습니다.


기자들은 현장에 오지 않고 유족들을 인터뷰 하지도 않고 오직 정부의 보도자료에만 의지하여 기사를 쏟아 냈습니다. 이제 막 상용화되기 시작한 자율주행차량 기술에 흠집이 나는 걸 쉬쉬하고 싶어 한 업계 관련자들은 자율주행 기능이 왜 고장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취재를 거부하고 운전기사의 업무태만을 문제 삼았고 정부는 업계를 따라 사고 원인을 운전기사에게 돌렸습니다. 기자들이 파파라치처럼 운전기사에게 따라붙었고 경찰은 운전기사를 취조한 내용을 기자들에게 흘렸습니다. 사고와는 상관없는, 운전기사가 외도로 이혼했고 치킨집을 하다가 빚을 많이 졌다는 인생사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운전기사가 사고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했을 때 유가족은 황망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개인을 악마로 만들어 모든 책임을 덮어 씌우고, 그를 제거하면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건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문제 뒤에 있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 부딪혀서 균열을 내야만 합니다.


유가족들이 정말로 원한 건 만만하게 욕하기 쉬운 개인인 운전기사가 아니라 ‘경제 발전을 위한 규제완화’를 이유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율주행 기술을 버스에 적용하게 해 준 정부와 아직 불안한 자율주행 차량이 도로에 나와도 된다고 우긴 자율주행차 업계와 운전기사가 피곤에 찌들게 업무 스케쥴을 짠 버스 회사가 사고의 원인과 향후 대안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유족들은 광화문에서 시위했지만 자율주행차 업계, 정부, 버스 회사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그나마 그 사건을 계기로 ‘안전한 사회’를 위해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시민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이 ‘안전과 사회 기념과’이 건립되었습니다. ‘자율주행’, ‘버스’, ‘정부’란 단어는 기념관 안팎에 없었습니다.


제가 방대한 자료를 제공했지만 여기 안전과 사회 기념관에 유족들의 요구는 거의 전시되지 않고 사고 현장과 운전기사의 주의 태만을 입증하는 기사와 인터뷰 자료만 전시되어 있습니다. NK 사건에서도 정부는 해외 사이트에서 총기 부품을 구하지 못 하도록 막는 것에서 나아가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지고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등의 근본적인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은 범인을 이유 없는 사이코패스로 치부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게 이 사건을 ‘테러’나 ‘강새봄 사건’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입니다.해외사이트에서 총기 부품을 구할 수 있는 루트를 막겠다는 정부의 대책은 제 2의 사건을 막지 못 합니다. NK가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업계 전반의 노동 실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저는 NK 사건 전시에는 제가 겪은 사고와는 달리, 범인 한 사람만을 악마로 몰고 가지 않고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사건이 끝난 이후까지를 다 보여주고 관객이 생각할 수 있도록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습니다. NK 관련 전시장을 빈 공간으로 둔 이유는 NK가 사내 기밀을 이유로 뉴스 큐레이션 팀의 인사고과나 메신저 대화, 메일을 기념관에 보내주지 않고, 계약직 직원은 직원이 아니라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대응책을 내놓지도 않고 한 번의 해프닝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상 NK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하지 않고 하지 않을 예정임을 보여주려는 계획이었는데 의도가 관람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음에 저의 부족함을 절감합니다.


본인은 이러한 잘못으로 기념관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업무에 태만하여 주위 동료들에게 피해를 입힌 점을 깊이 반성합니다. 이에 따른 처벌을 감수하며 향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유의하여 업무에 임하고 재발이 없을 것을 서약합니다.


상기 기록사실에 허위가 없습니다.


20  년 월 일

작성자 김실비 (인)

부서장        (인)

안전과 사회 기념관


기자님, NK 사옥 테러는 어땠나요                       XXXX-XX-XX(토) 07:28


보낸 사람 강새봄<newspring@nkcorp.com>


받는 사람 김새벽< daybreak@gmail.com>


안녕하세요 기자님, NK 콘텐츠 큐레이션팀 강새봄입니다.


이 메일을 읽고 계신다면 NK 사옥에서 테러가 성공하고 저는 죽었겠군요. 테러 전에 이 메일을 예약발송 해 두었으니까요.


유서는 공개되었겠지요. 저는 어느 회사에나 있을 수 있는 사소한 팀 내 갈등에 퇴사나 안락사가 아닌 총격으로 대꾸한 ‘괴물’이 되어 있나요.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미친 X’이 되어 있나요.


사람들은 쉽게 ‘평화적인’ 방법을 말하겠지만 제가 이런 사고를 치지 않았더라면 누가 ‘뉴스 자동화’에 얽힌 이 복잡한 이야기에 주목했을까요. 물론 대부분의 독자들은 ‘누가, 왜’ 사건을 저질렀는지 보다는 ‘어떻게, 무엇을’에 더 관심을 가지겠 지만요.


저도 사람 몇 죽는다고 분기에 영업수익 1조 원이 넘는 커다란 회사가 자동화를 멈추고 인사부에서 팀장과 실장이 제게 무슨 짓을 했는지 조사해 주지 않을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하는 짓이 ‘러다이트’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 몇이라도 죽어야 그나마 회사에서 관심이라도 가져 주겠지요. 자동화를 멈추진 않겠지만 멈칫이라도 하겠지요.


왜 너 혼자만 죽지 죄 없는, 아니 사소한 잘못을 한 팀원들까지 죽이냐고 하시겠지요. 그렇지만 이 정도 규모와 장소는 되어야 언론에 한 줄이라도 나가잖아요. 식당과 카페에 키오스크와 밀키트가 들어오면서 노동자들이 한창 일터에서 밀려날 때 분신한 분들 소식이 단신으로나 나갔었나요. 그러니 언론이 좋아하도록 판을 키워야지요.


제가 정말로 사무실에서 한 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눈을 보면서 총을 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살인은 처음이라. 경찰이 저를 막을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다른 회사에서도 유사 사건이 일어나면 어쩌냐고 걱정하셨지요. 그럴까 봐 정부가 아마 총기규제를 할 거라고 예상해 봅니다. 회사를 어쩌진 않고요. 그러면 저처럼 회사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고 싶은 직원이 총 아니라 다른 무기로 사내에서 연쇄 살인을 벌이겠지요.


이런 일을 벌일 정성과 노력으로 이직을 하거나 6개월을 기다려 안락사를 하라는 댓글이 달리겠지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은 참기 싫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무슨 짓을 하든 자동화는 피해 갈 수 없을 거라 하셨지요. 하지만 총격 사건을 계기로 회사가 ‘사람이 자부심을 가지고 ‘좋은 기사’를 한 땀 한 땀 큐레이팅하던 시절을 기준으로 삼아 자동화를 하기를 바랍니다. 제 8년의 경력이 헛되지 않게요. 이 메일이 기자님께 도달하는 때 까지도, 아마 저는 끝까지 후회하지도 반성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강새봄 드림.



RE:기자님, NK 사옥 테러는 어땠나요                       XXXX-XX-XX(일) 17:36


보낸 사람 김새벽< daybreak@gmail.com>


받는 사람 강새봄<newspring@nkcorp.com>


안녕하세요. 김새벽 기자입니다. 강새봄 씨가 그 현장에서 살아 남아서 어딘가에서 이 메일을 보시기를 바라며 씁니다.


그 사건 이후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콘텐츠 큐레이션은 예정대로 자동화 되었습니다.


강새봄 씨도 뉴스 관련 업무를 했으니 아시겠지요. 교통사고, 폭행, 화재, 절도 등등 세상에는 하루에도 많고 많은 사건사고가 터지고 기사가 나옵니다. 어제의 기사는 오늘의 기사에 밀려나고 한 시간만 있어도 새로운 사건사고가 쌓여 있지요. 유튜버들은 사건을 계속 재생산했습니다. 유튜버들은 제가 촬영한 사건 현장에서 희생자의 얼굴만 클로즈업해서 보여 줬습니다.


며칠만 참으니 유튜버들도 더 이상 사건 현장 관련 영상을 퍼뜨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금세 싫증을 내고 지나간 사건에 흥미를 잃습니다. 제가 쓰는 기사는 역사로 남지 않고 허공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NK 빌딩에서 있었던 일이 저는 매일매일 생생한데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려하시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라시던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범인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죽었으므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뉴스 큐레이션 팀은 없어졌습니다. 이제 아무도 그 날의 그 일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유족들은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판을 키우기 위해’ 여러 명을 총으로 쏘고 자신의 목숨마저 거두었는데도 회사도 경찰도 정부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 예상하신 대로 총기는 규제했습니다.


지금도 그날, 그 자리에 제가 없었다면, 하고 생각합니다. 다른 기자가 갔으면 강새봄 씨를 말릴 수 있었을까요.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좀 더 경력이 오래 된 기자가 갔다면 심층 취재를 해서 총기 테러가 아닌 자동화, 직원의 정신건강 등에 대해 지금쯤 모두들 한 마디 씩 하고 있었을까요.


가끔 강새봄 씨가 왜 저를 찍었을 지 궁금해서 제가 썼던 기사들을 다시 들춰보곤 합니다. 저는 여전히 사건사고 현장을 쫓아 다니며 조회수를 올릴 수 있도록 최대한 자극적인 기사를 여과 없이 씁니다.


제가 아니어도 다른 기자들이 강새봄 씨의 이름과 신변잡기를 알아내어 옐로페이퍼 같은기사를 썼겠지만, 그래도 제가 강새봄 씨의 이름을 보도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크라이스트처치 총기난사 때 뉴질랜드 총리가 테러범이 악명을 얻지 않도록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듯이 말입니다. 강새봄 씨의 이름을 강새봄 씨와 저만 알고 있었다면 희생자들의 이름이 더 불려 졌을까요. 이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게 될까요.


감사합니다.


김새벽 드림.


강새봄의 버킷 리스트


1.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기


2. 평일 아침에 회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출근하는 직장인들 구경하기


3. 호캉스 가서 호텔 애프터눈 티 세트 먹기


4. 취할 때까지 독한 술 마셔 보기


5. 퇴사하기


6. 6개월 동안 저축한 돈 다 털어서 혼자 해외 여행 가기


7.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 가기


8. 가족끼리 여행 가기


9. 살찔 걱정 없이 맛집 투어하기


10. 회사에 절대 입고 가지 못 할 것 같은 옷 사기


11. 회사에 절대 하고 가지 못 할 것 같은 메이크업 하기


12. 하루 종일 책 읽고 넷플릭스 보면서 뒹굴 거리기


13. 신문도 안 읽고 저녁 방송 뉴스도 안 보기


14. 제과 제빵 배우기


15. 유기견 임시 보호 하기


16. 책상 위에서 수경 재배하고 있는 행운목 꽃 피우기


17. 좋은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고 나쁜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하기


18. 클럽 가 보기


19. 속보 알람 앱 지우기


20. 한복 맞추고 고궁 가서 사진찍기


21. 소설 써서 출판하기


22.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밥 사 주기


23. K-POP 댄스 배우기


24. 유튜브 채널 개설하기


25. 소개팅 하고 고백도 하기


26. 계획도 의무도 없이 마음대로 살아 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