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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켠 Sep 02. 2024

아름다운 괴물

살찐 '나'는 인육파티를 열어서 내 몸을 먹는다.

37세. 여성. 150CM. 68.4kg.


27세에 취업에 성공해서 신입사원이 된 이후로 10년 동안 꾸준히 20kg이 불었다. 그녀의 체중은 그녀의 역사다.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선 그녀는 볼이 터질 것처럼 퉁퉁 하다. 욕심 많은 햄스터가 볼에 먹이를 빵빵하게 채워 넣은 것 같다. 이마와 코와 볼이 기름기로 번들거린다. 점심 때마다 화장실에서 기름종이로 얼굴의 기름기를 찍어 낸다. 헤어스타일은 늘 손질하기 쉬운 단발이다. 직모라서 뭘 해도 얼굴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은 검정색 헤어밴드로 넘겨 검정색 머리끈으로 반묶음을 했다. 코는 오똑하지 않고 뭉툭하다. 웃으면 볼이 빵빵해져서 이목구비가 묻히기 때문에 늘 웃지 않고 무표정을 유지한다. 매일 8시간 씩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일하는 사무직인 그녀는 심한 안구건조증으로 인해 렌즈 대신 안경을 착용한다. 안경을 맞출 때마다 늘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안경을 주문하지만 작고 쌍커풀 없고 근시가 심한 두 눈은 안경으로 보정하려고 해도 답답해 보인다. 예리해야 할 턱선이 무너진 얼굴은 뭘 해도 만만하고 불퉁해 보인다.


안경이 있으므로 눈화장은 생략하고 얼굴에 쿠션 파운데이션을 두드리고 눈썹을 그리고 콧대와 광대에 하이라이터를 칠하고 볼에는 블러셔를 바르고 턱에는 쉐딩을 한다. 둥글넙적한 얼굴에 조금이나마 입체감이 생긴다. 화장은 재미있다. 사람의 얼굴에는 왜 눈이 두 개, 코가 하나, 볼이 두 개, 턱이 하나 뿐 일까. 화장으로 원래 얼굴을 감출수록 만족스럽다. 그녀는 귓불을 만지작거린다. 언젠가 작고 반짝이고 화려한 것이 어울리게 볼살이 빠지고 얼굴이 갸름해지면 귀를 뚫고 귀걸이를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지.


처지기 시작한 가슴은 솟아오른 윗배에 걸쳐져 있다. 그녀가 양쪽 가슴에서 니플 패치를 떼어 낸다. 가슴 둘레가 넓어지고 가슴과 윗배가 겹치는 부위에 땀이 차면서부터 브래지어가 명치를 압박하고 숨 쉴 때마다 갑갑하고 이물감이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 브래지어를 잡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니플패치를 붙이게 되었다. 이제야 숨쉬는 게 편하다. 브래지어로 봉긋하게 보정하지 않은, 스모선수처럼 쳐지는 자연스러운 가슴이 그대로 보이는 달라붙는 옷이나 민무늬 상의는 더 이상 입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겨드랑이에는 털이 수북하다. 팔뚝 살이 덜렁거리므로 그녀는 민소매 옷을 입지 않고 그러므로 겨드랑이 털도 소매 속에 감춰져 있다. 언젠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 때 제모해도 늦지 않다, 고 그녀는 생각한다. 대신 ‘겨드랑이 워터파크’가 개장하지 않도록 양 겨드랑이에 데오드란트를 꼼꼼이 바른다. 어떤 일이 있어도 팔을 번쩍 들고 나서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겨드랑이에서는 식초 냄새가 난다. 그녀의 팔뚝과 손가락 마디에도 겨드랑이처럼 털이 수북한데 네일 아트와 반지와 비즈 팔찌를 좋아하는 그녀는 제모기로 공들여 팔과 손가락의 털을 민다. 일할 때도 키보드 위의 손과 손목을 보고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나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날 때도 손끝을 미세하게 움직여 네일아트를 관찰한다.


가슴보다 튀어나온 불룩한 배는 어떤 옷을 입어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임신 6개월 정도 되어 보인다. 임신부 마냥 튼살이 있다. 그녀는 아직 임신한 적 없고 앞으로도 임신할 계획이 없다. 여성용은 허리에 맞는 바지가 없어서 남성용 바지를 사 입는다. 바지에는 반드시 고무 밴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앉을 때도 편하다.


불록한 배 가운데 있는 배꼽은 세로로 파여서 아주 귀엽다. 그러나 튀어나온 배에 비키니나 스포츠 브라나 크롭티를 입을 일이 없으므로 그녀의 배꼽은 그녀만 아는 매력포인트가 되고 만다. 배꼽부터 하복부까지는 구레나룻처럼 검은 털이 나 있다. 배가 보이는 옷을 입을 일이 없으므로 그녀는 배에 난 털을 제모하지 않는다. 배에는 얼룩덜룩한 멍 자국이 있는데 최근 식욕억제제인 삭센다를 스스로 주사하면서 생긴 멍이다. 삭센다를 주사하면서부터 음식을 빨리 많이 먹으면 메슥거려서 꼭 구토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입 짧은 어린애들처럼 식탁에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면서 오랫동안 밥을 먹는다.


그녀의 거웃은 길고 검고 윤기 나고 허벅지까지 퍼져 있다. 그녀의 허벅지는 굵고, 짧은 바지를 입을 일이 없으므로 왁싱을 받을 일도 없다. 그녀의 엉덩이에는 흉터가 있는데 어릴 적에 장독 위에서 뛰어 놀다가 장독이 깨져 사금파리가 살을 찢어 생긴 것이다. 엉덩이가 볼록해서 바지를 입으면 엉덩이 핏이 예쁘다는 게 그녀의 자랑거리지만 허리에 사이즈를 맞춘 바지는 엉덩이 사이즈가 펑퍼짐해서 그녀의 핏을 살려주지 못 한다. 그녀의 겨드랑이 털, 다리 털은 거웃처럼 검고 굵다.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아서 수영복을 입을 일도 없고 여럿이 몸을 담근 욕조는 비위생적이라서 찜질방도 가지 않고, 이 나이를 먹도록 제대로 연애 한 번 해 본 적이 없으므로 누구에게 보일 일도 없어서 그녀는 자신의 생식기를 관찰해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연애도 결혼도 하지 못 할 것이라고 그녀는 믿는다. 그녀가 20kg의 살덩어리를 몸에서 빼내기 전까지는.


그녀도 생리를 한다. 너무 마르거나 뚱뚱하면 생리를 안 한다는데 고도비만 판정을 받은 그녀가 여전히 생리를 하는 걸 보면 얼마나 더 쪄야 생리를 안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생리할 때는 생리대에 연한 살이 짓무르지 않도록 탐폰을 질에 더듬어 넣는다. 탐폰을 쓰면 처녀막이 찢어진다는 말도 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브래지어가 숨쉴 때마다 가슴을 압박할 때와 한 달에 한 번 생리할 때가 그녀가 자신이 여성임을 자각하는 때다. 브래지어는 니플패치로 해결했지만 생리는 탐폰을 사용해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탐폰을 사용해도 신경이 쓰인다. 서너 시간마다 탐폰을 교체해야 하고 탐폰이 잘못 삽입되거나 너무 오래 착용하면 생리혈이 새기 때문에 생리 기간에 그녀는 잔뜩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이 된다. 탐폰보다 편하다는 월경컵을 쓸까도 알아봤지만 월경컵도 8시간에 한 번 교체하려면 한 번은 회사 화장실에서 손을 씻어가며 갈아야 하기에 일회용인 탐폰을 쓰기로 한다. 그녀는 탐폰 가격과 미레나 시술 가격을 계산해본다. 미레나 시술을 받는다고 다 무월경이 되는 건 아니란 사실에 미레나 시술은 접어 둔다. 그러나 여전히 자궁을 적출해서라도 확실하고 부작용 없이 생리를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어한다. 그녀는 지금도 앞으로도 그녀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으니까.


그녀를 낳은 어머니는 그녀를 볼 때마다 살을 빼라고 야단이다. 그녀의 옷장 안에는 그녀가 지금보다 20kg 덜 나갔던 젊은 시절 입었던 원피스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새내기에게 어울렸던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부터 상견례할 때 입으면 좋겠다는 단아한 ‘청담동 며느리룩’ 원피스까지.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다시 날씬해져서 그 원피스들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자리에 저렴하고 단순한 유니클로 2XL옷들을 넣기를 바란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게을러서 살을 빼지 못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가 마른 게 예민한 성격 탓이라 대꾸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생리를 하지 않고 모유 수유를 했던 가슴은 축 쳐져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제왕절개로 그녀를 낳았던 배는 배꼽부터 절취선처럼 수술 흉터가 남아 있다. 그녀는 더 이상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 그녀는 한 입 씩 어머니를 잡아 먹는다. 그녀의 어머니는 조용해지고 그녀의 배는 임산부처럼 불룩해진다.


그녀의 허벅지에는 뱃살처럼 튼살이 있다. 앉으면 퍼지는 허벅지살 때문에 그녀는 늘 ‘쩍벌’로 앉는다. 종아리도 알타리무처럼 굵다. 다리에는 겨드랑이털처럼 길고 굵고 검은 털이 빽빽하게 나 있다. 만지면 제법 부드러울 정도로. 다리털을 제모기로 뽑으면 모낭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 다리털이 각질 사이로 파고 들어 두번째부터는 제모하기 어렵다. 매년 여름마다 몇 십 만원을 들여 피부과에서 레이저 제모를 받을까 하다가 귀찮고 돈이 아까워 피부과 문턱만 밟고 돌아온다. 다리털을 제모하지 않고 종아리에도 알이 있다 보니 짧은 치마나 바지는 못 입고 발목까지 가리는 긴 치마나 바지만 입는다. 레깅스나 미니스커트, 숏팬츠를 입은 여자를 보면 저절로 눈이 돌아간다. 아마 그녀도 그런 걸 입고 싶은 모양이다. 늙으면 자연스레 털이 빠진다는데 몇 살이 되어야 폐경이 되고 제모가 될 지 그녀는 아득해진다.


예전에는 발톱에도 페디큐어를 칠했는데 배가 나온 이후로는 몸을 구부리고 발톱에 색칠하는 게 어려워져서 민발톱으로 다닌다. 양쪽 새끼 발가락은 젊을 때 신고 다닌 하이힐 때문에 휘어서 샌들을 신을 때마다 물집이 잡힌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신지 않는 하이힐을 내다 버리고 편안한 플랫슈즈나 스니커즈를 신고 다닌다. 타투를 한다면 발등에 꼬리를 끊고 도망가는 도마뱀을 새겨야지, 하고 그녀는 여름마다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그녀는 매년 옷을 산다. 작년에 샀던 옷은 몸에 맞지 않다. 옷 사이즈가 매년 한 치수씩 계속 커진다. 20대 때는 천천히 찌던 살은 30대부터는 거침없이 불어났다. 원피스에 가디건을 걸쳐 ‘인형같이’ 입고 다니던 이십 대 시절이 오래된 옛날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남성복에 맞는 치수가 있지만 더 살이 오르면 남성복도 못 입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이 찔 줄 알았으면 입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고 다양한 옷을 입어볼 걸 생각한다. 레더 재킷도 시폰 원피스도 스키니진도.


그녀는 자신의 몸이 스모 선수 같다고 느낀다.


그녀가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낮은 도수의 고열량 맥주 한 캔 대신 40도의 위스키 한 잔을 마신다. 다이어트용 밥그릇에 50g의 밥만 먹는다. 식판엔 밥과 건더기가 국물보다 많은 국과 계란 후라이와 나물 반찬과 고기 반찬. 과자를 비롯한 간식은 절대 먹지 않고 음료수는 칼로리가 없는 아메리카노나 티 종류만 마신다. 매일 밤 공원을 달린다. 그래도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 짐작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살이 빠지면 해결될 거라고 믿는다.


살이 빠지면 수더분하거나 게을러 보이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예민하고 까칠해 보일 것이다. 유일하게 살찌지 않은 부위인 혀로 나오는 모든 말이 지금보다는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더 자신 있게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온몸을 제모하고 매끈한 깐 달걀처럼 되어 옷 바깥으로 몸을 드러낼 것이다. 돌아오는 여름에 조금이라도 더 시원할 것이다. 남자를 소개받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살 것이다. 아니, 지금의 몸에서 성별만 남자로 바뀌면 더 좋을 것이다. 뚱뚱한 여자보다는 뚱뚱한 남자가 낫고 남자는 다리에 털이 수북해도 반바지를 입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날씬하고 제모를 하고 다녔던 20대에 했던 몇 건의 소개팅에서 그녀는 남자와 대화가 아닌 토론을 하려 들었고 소개팅 이후 두 번 다시 소개팅 상대를 만난 적이 없으며 따라서 결혼도 못 하고 집도 못 사고 시간이 흐르고 살이 올라서 삼십 대가 되었다.


만약 남자가 될 수 있다면 아예 늑대인간이 되어도 좋겠지. 털 많고 힘 세고 덩치 큰. 아니면 인어가 되어 하반신을 비늘 속에 감추고 벌거벗은 상반신을 드러내도 좋고. 상반신만 관리하면 되니까 공원을 절반만 돌아도 되고. 물 속에서 숨 쉴 수 없다면 켄타우로스가 되어도 좋을 걸. 그녀의 다리는 튼튼하니까. 그러나 그녀가 가장 되고 싶은 건 우로보로스.


선배, 회사에서 남자 후배가 부른다. 둘 다 신입사원이던 시절, 그녀가 반 년 먼저 입사했기에 후배가 부르던 호칭이다. 나이는 후배가 한 살 아래다. 회사 사람들이 알기로 후배는 현재 여자친구가 없다. 그녀는 남몰래 혼자 후배와 결혼까지 생각한다. 상상 속에서 후배는 맹목적이고 일방적으로 그녀를 쫓아다닌다. 그녀는 그녀의 집에 후배를 초대한다. 스테이크와 곱창을 대접한다. 맨 다리 사이에 와인잔을 두고 생리혈과 점액을 받아낸다. 그녀가 혼자 했던 대로 인육파티를 시작한다. 침대 위에서 그는 화장을 지운 그녀의 맨얼굴을 마주한다. 그녀의 얼굴은 기름으로 번질거린다. 입술엔 각질이 일어났다. 봉긋하지 않고 평평한 가슴과 투박하게 도려낸 배와 허벅지에 손이 닿는다. 그녀가 팔을 번쩍 든다. 제모하지 않은 겨드랑이가 후배의 눈 앞에 놓인다. 배꼽 아래부터 생식기를 거쳐 발목까지, 검고 길고 매끄럽고 보드라운 털이 쓰다듬어지기를 기다린다. 후배는 달아난다. 피부에 탄력이 떨어졌는지 후배가 누른 자국이 오래 남는다. 그녀에겐 숭덩숭덩 썰어 놓은 지방과 덤벙덤벙 잔에 받아낸 피만 남았다.


그녀는 파티에 후배를 손님으로 초대한다. 후배의 허벅지살을 베어 기름 두른 뜨거운 프라이팬에 올린다. 돼지고기 뒷다리살 같은 맛이 난다. 그녀의 거추장스러운 가슴을 잘라 함께 굽는다. 붉은 색이 도는 ‘레어’다. 그녀와 그의 배를 갈라 위와 장을 절제한다. 그녀는 피하지방도 내장지방도 두껍다. 지방이 탄다. 곱창 굽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난다.


전신거울을 맞은편에 둔다. ‘인바디’보다 ‘눈바디’가 효과적이라 해서 산 거울이다. 거울에 그녀 자신이 비친다. 알몸의 그녀에게 칼질을 한다. 상처투성이의 몸을 먹고 벌어진 상처가 봉합되고 빠진 살이 다시 붙는다. 그녀는 알몸의 그녀에게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공주님 드레스’를 입혀 주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드레스에는 그녀의 치수가 없다. 그가 그녀에게 갓 베어낸 싱싱한 날고기를 권한다. 방금 받아낸 비릿한 피를 내민다.


그녀는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잡고 먹은 것을 토해낸다. 이 구토는 체중감량을 위해 맞고 있는 삭센다 주사의 효과라고 그녀는 믿는다. 변기를 닦고 이를 닦으면서 그녀는 먹은 것이 소화되지 않고, 즉 지방으로 축적되지 않고 몸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살이 쪄서 그런지 그녀는 곧잘 쉽게 피곤해 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이 오고 밥을 먹고 나면 졸리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니려니 어쩔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잠들면 지각이고 점심 먹고 나서 눈 붙일 곳은 없으니 그녀는 늘 졸리다. 주말이면 그녀는 운동 대신 잠을 선택한다. 늦잠을 자느라 아침을 건너 뛰고 점심저녁만 먹는다. 운동을 안 하는 대신 식사를 두 끼만 하므로 살이 찌지 않을 것이다.


잠을 자면 꿈을 꾼다. 꿈 속에서 그녀는 게으른 식충이가 아니라 한 마리 흉측한 해충이 된다. 곤충은 살이 찌지 않으니 살을 뺄 필요도 없다. 절대 뛰지 않는 여러 개의 가느다란 다리를 움직여 본다. 곤충은 옷을 입을 필요도 회사에 갈 필요도 없다. 누군가 그녀에게 사과를 던진다. 그녀는 사과가 등에 막히기 전에 다리로 잡아 아주 맛있게 먹는다. 벌레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아니 꽤 좋다.


꿈에서 깬 그녀는 멘즈 스포츠웨어를 입는다. 남자 사이즈 옷을 입을 때마다 남자가 되는 상상을 한다.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쓸모 없는 가슴을 도려내고 자궁을 들어내면 가능한데. 공원 운동장을 달린다. 온몸의 살들이 출렁인다. 금방 호흡이 가빠진다. 다리가 땅기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다. 달리기에서 걷기로 종목을 바꾼다. 주위를 둘러본다. 공원엔 강아지와 견주가 많다. 강아지가 있으면 같이 산책할 수 있을 텐데, 그녀에겐 강아지가 없다. 그녀의 인생에 아기는 없을 테니, 강아지가 조건 없이 그녀를 사랑해줄 것이다. 강아지는 그녀의 몸무게와 체형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강아지가 있으면 그녀는 부지런해질 것이다. 강아지가 있으면 그녀는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움직일 것이다. 강아지는 그녀 인생의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강아지만 있으면 그녀는 괜찮아질 것이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그녀는 폰에 유기동물 보호소 앱을 설치한다. 이제 그녀는 자기 전에, 출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식사하면서, 앱을 수시로 들여다본다. 귀여운 강아지를 데려오는 상상을 한다. 귀여운 강아지가 곁에 있으면 자신도 귀여워질 것 같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 강아지는 짖지도 똥을 누지도 살이 찌지도 목욕을 하지도 않는 그저 산책을 같이 하고 그녀를 사랑해주는 귀여운 인형이다.


그녀는 친구를 만난다. 그녀와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입사한 동갑내기다. 친구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승진을 하고 집을 넓혀 이사를 했다. 그녀가 살이 찌고 살을 빼고 다시 더 찌는 동안. 그녀가 체중계 숫자를 보는 동안 친구는 소개팅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친구는 꽃무늬 원피스를 살랑거리며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그녀와 친구는 피자와 파스타를 나눠 먹는다. 그녀는 먹는 대로 족족 찌는 체질이고 친구는 먹어도 먹어도 안 찌는 체질이다. 그녀는 체중 조절하느라 버린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셈한다. 그녀의 체질이 친구처럼 ‘안 찌는 체질’이었다면 그녀도 친구처럼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친구의 행운을 훔치고 싶다. 그녀는 놓쳐버린 모든 기회에 체중을 탓한다. 만약 체중이 정상이었다면 작은 눈을, 뭉툭한 코를, 두 겹인 턱을 탓했을지도 모른다. 체중이 정상이었다면 그녀도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여행을 다니며 살았을까.


또 다른 친구를 만난다. 유튜브를 하는 친구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브이로그를 올리는데도 퇴사하고 유튜브만 하면서 살 수 있을 정도다. 특별한 건 외모다. 쌍꺼풀이 짙고 볼이 통통하고 몸매가 글래머러스한 친구는 뭘 입고 뭘 하든 다 잘 어울린다. 원래부터 그러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 말끝을 뭉개면서 끝을 살짝 올리는 말투에서 애교가 뚝뚝 떨어진다. 댓글엔 예쁘다고 칭찬하는 내용이 많다. 그녀는 친구의 유튜브 화면에 자신을 대신 넣어 본다. 펑퍼짐한 옷을 입고 깨작거리는, 달달함을 담당할 커플도 없고 귀여움을 더할 아기나 반려동물도 없는, 젊지 않은 37살의 뚱뚱한 여자의 유튜브를 누가 볼까. 자꾸 유튜브를 권하는 친구가 가고 나서 그녀는 배에 삭센다 주사를 놓는다.


혼자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연다. 필명 뒤에 숨어 소설을 쓴다. 절대로 사진과 본명을 노출하지 않는다. SNS도 외양이 드러나지 않는 트위터만 한다. 혹시나 책을 발간하게 되어 마케팅이 필요해져도 얼굴이 나가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할 작정이다. 그녀의 얼굴은 책 판매에 도움될 만큼 예쁘지 않다. 그녀는 아마, 확실하게, 유튜브는 못, 아니 안, 할 것이다.


그녀는 습관처럼 몸을 만진다. 입술 각질을 뜯어 질겅질겅 씹는다. 이빨로 입안을 상처 낸다. 팔뚝 살을 만지작거린다. 사무실 에어컨에 차가워진 팔뚝은 비즈 쿠션 같다. 말랑한 아랫 뱃살을 주물럭 거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손톱의 거스러미를 떼어 내다가 기어이 피를 본다. 그녀만의 작고 소소한 파티가 열린다. 그녀는 팔뚝 살을 물고 손가락을 빨고 손톱을 핥고 머리카락을 녹이고 뱃살을 씹고 허벅지살을 삼킨다. 그녀가 먹은 살이 다시 그녀의 몸이 된다. 그녀는 거울을 깨서 날카롭고 차가운 얼음조각으로 경동맥을 긋는다. 와인잔에 피를 디캔팅한다. 멜론 차트 100을 재생한다. 눈을 감고 춤을 춘다. 그녀의 볼살이, 팔뚝살이, 허리를 두른 살이, 허벅지살이 출렁출렁 흔들린다. 그녀는 출렁거리는 살을 베어내어 굽고 먹고 살찌고 다시 여분의 살을 요리한다. 그녀의 살이 소화되어 지방이 된다. 그녀의 살이 그녀의 몸이 된다. 그녀는 살찐 몸을 계속 베고 굽고 먹는다.


그녀의 하루와 매일은 무료하다. 그녀는 운동도 식이요법도 육아도 유튜브도 재테크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소설을 쓰는 거다. 소설의 3대 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 중에 사건이 없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아주아주 실험적인 소설을 쓰고 싶다. 그녀 자신에 관한. 징그러울 정도로 세세한 묘사 만으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을 쓰고 싶다. 그녀의 몸에 관한. 그 소설은 아마 호러 아니면 판타지. 그녀의 악몽과 몽상에 관한. 그녀의 주변인들이 읽고 나면 혹시 그녀 자신의 이야기인지 궁금해할 만 한. 일상화 환상이 뒤섞인. 욕망이 난망한. 이 소설이 그런 소설이 되기를 바란다.


그녀는 옷을 벗고 알몸으로 욕조 안에 들어가 태아처럼 둥글게 몸을 감고 세운 무릎에 얼굴을 묻고 팔로 다리를 감싼다. 뱃살이 접친다. 이런 걸 쓸 시간에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안다. 그래도 그녀는 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자전적 소설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상소설인지 알 수 없다. 묘사가 사실인지 궁금해할 필요 없다. 그녀는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사지를 자르고 토르소만 남긴다. 체중계에 올라선다. 팔다리가 없어진 만큼 체중이 줄었다. 그녀의 모든 환상은 그녀의 머리 속에 있다. 그녀는 환상을 글로 옮긴다. 그것은 꽤나 짜릿한 행위다. 20kg의 여분의 살과 함께 그녀는 살아간다. 그녀의 몸은 그녀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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