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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켠 Sep 02. 2024

아찔하게 허무한

'희망도 꿈도 열정도 능력도 없는' 여자의 남편이 전철역에서 자살한다.

-      여자


대체 왜 그랬을까.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퇴근 시간의 전철에 뛰어들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남편이 죽는 모습을 전철역 CCTV가 찍은 영상으로 확인했다. 자살이었다. 4호선을 타고 집으로 오는 대신 남편은 전철에 치여 죽었다. 남편은 그 날 술 한 방울, 약 한 알도 입에 대지 않은 맨 정신이었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승강장 사이를 건너려는 듯 다리를 뻗어 선로 위에 떨어졌다. 남편에게는 자살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직장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나와의 관계도 예전과 다를 게 없었다.


옷장과 신발장을 뒤졌다. 입을 만한 옷이 한 벌 밖에 없었다. 구두도 딱 한 켤레 있었다. 취직하려고 면접 보러 다닐 때 입었던 옷과 신었던 구두였다. 남편과 나는 같은 회사에 지원한 지원자로 면접장에서 처음 만났다. 면접에서 남편은 합격하고 나는 탈락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했다.


늘 입고 있던 목 늘어진 홈웨어를 벗고 정장을 차려 입고 거울을 보았다.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유능한 직장인 같았다. 거울 앞에서 “어이, 조 대리, 일 그 따위로 할 거야!”하고 드라마에 나오는 상사들 흉내도 내 보며 킥킥 웃었다. 약속이 없었다면 계속 그렇게 거울 앞에 있었을 것이다. 남편의 자살을 촬영한 CCTV에는 한 사람이 더 찍혀 있었다. 남편이 선로에 떨어지자 승강장에 있던 한 남자가 남편을 따라 선로로 뛰어내렸다. 그 사람이 남편을 밀쳐 내려고 하는 와중에 전철이 들어왔다. 남편은 죽었고 그 사람은 다리를 잘렸다. 지금 그 사람을 만나러 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      남자


병실 문이 열리고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의 치마 아래로 드러난 희고 늘씬한 다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여자의 얼굴이 아닌 다리만 계속 보고 있었다. 사고 이후로 다른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의 다리만 보인다.


“안녕하세요. 저 그 사람…아내였던 사람이에요.”


뭐라고 해야 할까. 당신 남편을 살리지 못 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당신 남편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여자는 남편을 위해 선로에 뛰어들어줘서 고맙다고도, 남편 때문에 이 꼴이 되게 해서 미안하다고도, 왜 남편을 구하지 못 했냐고도 하지 않았다.


“죽은 남편과 저는, 이혼을 고려중이었어요.”


병실에는 다른 환자들이 있었다. 여자더러 밖에 나가서 둘이 얘기하자 하고서는 휠체어를 탔다. 내 환자복 바지는 무릎 아래가 허했다. 휠체어에 타자마자 무릎담요를 덮어 다리를 가렸지만 휠체어 발판 위에 발이 없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왜 왔어요?”


여자가 봉투를 꺼냈다.


“남편 장례식 때 들어 온 부의금이라도 일단 드리려고요. 그리고,”


“이혼하려고 했던 남편이라서 부의금마저 꼴 보기 싫어서 저 주시려구요? 옛다, 다리도 없는 병신아, 이거나 먹고 떨어지고 괜히 엉겨 붙지 말아라 이렇게?”


“제 남편 때문에 안 좋은 일 당하신 건데 어쨌든 제가 와이프였으니 인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됐어요. 제가 뛰어든 거였는데 이럴 필요 없으세요. 다리 잘린 사람 구경 다 하셨으면 이만 가시죠. 남편도 죽은 마당에 절 보면 어쩌겠다고 오셨어요.”


“이러실 거면 왜 제가 온다고 했을 때 오지 말라고 안 하셨어요?”


“남편 분이 왜 자살했는지 듣고 싶어서요. 왜 하필 내 앞에서 자살했는지 알고 싶어서요.”


“저도 남편이 왜 죽으려고 했는지 알고 싶어요. 그 사람이 선로에 떨어지기 전에 무슨 말 안 했나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죽었어요. 이혼하려고 했다면서 죽은 이유는 알고 싶어요? 죽어 버린 사람이 왜 죽었는지 굳이 알려고 할 거면 이혼은 왜 하려고 했는데요? 왜? 그렇게 알고 싶으면 죽기 전에 이혼이니 뭐니 하지 말고 죽는 거나 좀 말리셨어야지.”


“남편이 지긋지긋하고 무서워서 숨도 쉴 수 없어서 나 좀 살고 싶어서, 살려고 이혼하자고 했어요. 하지만 남편은 내가 이혼하자고 했다고 자살할 사람은 아니에요. 신혼 초부터 이혼하자 이혼하자 그러면서 살았는데요.”


-      여자


남편은 외향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누구든 10분 안에 자기와 형, 동생 하는 사이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를 처음 만난 날도 나는 반드시 면접에서 합격할 거라고 방방 띄워 주고선 그 날 저녁을 함께 먹었다. 남편이 어찌나 나를 띄워줬는지 면접을 망쳐 놓고서도 남편 말을 듣는 동안은 이미 신입사원이 되어 들떠 있었다. 결과는 물론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나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긴장을 너무 해서 준비해 온 자기 소개는 다 잊어버리고 지원 동기를 묻는 질문에는 “광고에는 현실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이 상품을 쓰면 행복해질 거라는 환상만 있어서, 그래서, 좋아서, 재미있는 것 같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카피를 쓰고 싶었습니다”하고 어버버대고 말았다. 서류는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르겠지만 광고 관련 학과도 아니었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고 공모전 수상 실적이라고는 대학교 신문사에서 탄 소설공모전입상 정도 밖에 없었으니 면접관들이 별 질문도 하지 않고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었던 것도 당연했다. 그 회사 뿐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거의 서류 탈락, 학벌 덕인지 서류를 통과해도 면접에서 탈락이었다. 급한 마음에 닥치는 대로 입사 지원을 했지만 시절이 불경기여서, 아니 남편 말을 빌자면 ‘내가 못나서’ 죄다 불합격했다. 900점이 넘는 토익, 4.5 만점에 4.3의 학점, 좋은 학벌로는 부족했다. 남편 말대로 나에게는 매력이 없는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끌리지 않는 것이다. 대학 내내 학교 도서관 집만 오가며 재미없게 살았던 것은 나도 내가 무엇을 하기에는 흥미도 열정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물론 내가 매력이 없다는 말은 나와 결혼 후에 한 말이다. 남편은 연애하던 시절에는 기업이 보는 눈이 없어 인재를 못 알아본다고 했다. 자기 회사 신입 사원 중에 나보다 능력 없는 사람들도 많다고. 그깟 10분의 면접과 기록으로 보이는 수상실적 만으로 진정한 실력, 잠재력을 어떻게 평가하겠느냐고 했다. 연이어 취업에 실패해서 기가 죽어있던 내게 잘해줘서 끌리기도 했고 취직을 못 하면 시집이라도 가야 할 것 같아서 남편이 짧은 연애 후에 결혼하자고 했을 때 나는 튕길 것도 없이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 결혼 준비에 들어갔다. 내게 그나마 자랑할 만 한 게 학벌 밖에 없었던 건지 남편은 시가 쪽 친척들에게 나를 “S대 나왔다”한 마디로 소개했다.


결혼 후에도 한동안 계속 아무데에나 취업하겠다고 지원서를 들이밀었다. 남편 말대로 유부녀에다가 마땅한 경력도 없어서 다 떨어지고 나서야 나는 남편에게 내 계획을 말했다. 글을 써서 작가가 되겠다고. 요새 문학상 중에 상금이 1억인 것도 많으니까 한 번에 남들 몇 년치 연봉을 벌어서 그 동안 백수짓 한 것도 만회하고 ‘작가’라는 직업도 생기고 좋지 않겠냐고. 작가가 되는 것은 내 오랜 꿈이었다. 꿈도 희망도 열정도 없는 내가 그나마 ‘꿈’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지원을 했던 것도 카피라이터는 글을 쓰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어서였다.


“차라리 로또를 해서 당첨되는 게 더 빠르겠다. 어쨌거나 네가 해 보고 싶으면 한 번 해 봐. 기업체 탈락하듯이 한 몇 년 소설공모전에서 헛물을 들이켜 봐야 정신을 차리지. 지가 봐서 잘 쓴 글을 써서 응모에 놓고서는 수상작 발표 날 때까지 기대감만 부풀다가 수상자 명단에 자기 이름 없으면 심사위원 눈이 삐었나 보다 해서 다른 공모전에 글 내면 같은 과정 반복. 그렇게 줄창 해 봐야 ‘아, 내가 쓰는 손도 없고 보는 눈도 없구나' 뼈저리게 깨닫는다니까.”


남편은 곧바로 내 면전에서 빈정댔다. 반드시 등단을 해서 남편 말을 반박해 주리라. 나는 열심히 썼다. 열심히 살았다. 뉴스를 보고 신문을 읽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생활비를 빠듯하게 주는 남편 때문에 무릎 늘어진 면바지를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썼다. 집안일은 잘 하지 않았다. 집안일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잘 하지도 못 했고 무엇보다 글 쓰느라 시간이 없었다. 야근을 곧잘 하는 남편은 집구석에 대해서는 특별히 타박하지 않았다.


남편은 가끔 밤늦게 들어와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콘을 들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너는 열정이 없어. 사는 게 왜 그 모양이야? 밖에 나가서 뭔가 교육이라도 받고 알바라도 해야 경력이 한 줄이라도 생기고 그래야 남들이 알아주지. 허구헌날 집안에 자빠져서 뒹굴거리면서 남들이 못 알아준다고 탓이나 하고 살지 마. 나는 네가 지겨워. 네가 이렇게 사는 꼴이 보기 싫어. 대체 왜 이러고 살아?” 라고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글 쓰잖아”하면 “그딴 건 개나 소나 다 써. 네가 진짜 작가들처럼 치열하게 쓰기나 하냐구. 너는 그냥 놀고 먹는다고 하기 뭣 하니까 취미로 시간 때우려고 끄적이는 것 밖에 안 돼”라고 대꾸했다.


내가 화를 내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을 참으면 남편은 내가 소설 쓰려고 조사 한 자료들을 다 흩어버렸다. 내 허락 없이 내가 쓰는 글을 프린트해서 읽다가 “열정도 없고 능력도 없고 뭐 하나 건사할 줄 아는 게 없어”하면서 원고 뭉치를 박박 찢어 내 면상에 흩날렸다. 그러면서 “능력은 타고 나는 거야. 포기해. 능력이 없으면 열심히라도 해야 예쁘게 봐 줄 텐데 글 쓰는 흉내만 내면서 빈둥대는 꼴 좀 봐. 요새 세상에, 내가 억대 연봉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키울 애들이 있어서 와이프가 육아 때문에 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애 때문에 참고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네 부모도 아니고, 그런데 내가 왜 돈 벌어서 너를 봉양하고 살아야 하는 거야? 응? 작가 하나 만들겠다고 꿈나무에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넌 기생충이야. 지금 네가 사는 꼴은 내 집에서 내 월급 빨아먹으면서 빈둥빈둥 네 취미생활 나부랭이나 하는 거야. 야, 불쌍한 불우이웃 하나 도우면 칭찬과 감사라도 따라오는데 너 먹여 살려서 내가 얻는 게 뭐냐?”라고 퍼부었다. 술김도 아니고 말짱한 맨정신이었다. 내가 “어떻게 할까? 손가락이라도 잘라서 피로 글을 써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일라나?”하고 맞받아치자마자 “씨팔년, 내가 이 꼴 보려고 이 집구석에서 너랑 이러고 살아?”라고 욕이 튀어나왔다.


남편은, 밖에서는 유쾌하고 매너 있고 활달해서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술자리도 잦고 친구도 많았다. 광고주도 금방 남편과 친구가 되었다. 남편의 휴대폰에는 몇 백 개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런 남편은 내 앞에서는 돌변했다. 매일매일 마주치면 듣는 폭언에 말라 죽을 것 같았다. 그 무렵에는 살기 위해 글을 썼다. 매일 혼자 빈 집에서 TV를 틀고 광고에 빠졌다. 허구와 환상의 세계로 도망쳐야 했다.


회사에는 취업이 안 되고 집 근처 마트에 파트타이머 캐셔로 취직한 날, 남편은 “너 고작 마트 계산원 하려고 S대 나왔냐? 그게 네 그릇이냐? 네 부모가 너 과외 시켜 가면서 S대 보낸 게 아깝다.”고 빈정댔다. 그러더니 “씨발년아, 좋은 말 할 때 때려 치워라. 너는 너 능력 없다는 거 그렇게 온 동네에 자랑하고 싶냐? 집구석에 쭈그려 있으면 안 보이니까 무능력한 거 들키지는 않는데 굳이 그렇게 밖에 나가서 ‘나 능력 없어서 이런 일 해요’하고 동네방네 알려야겠냐? 안 그래? S대 졸업생?”하며 내 머리를 툭툭 쳤다. 결국 나는 얼마 못 가서 그만 두었다.


매일 그렇게 폭언만 퍼부었다면 이혼하자고 말만 하지 않고 집을 뛰쳐나왔을 것이다. 남편은 내게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회사의 일거리를 종종 집으로 가져왔다. 가져와서 내게 카피를 쓰고 아이디어를 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디어 정말 좋다고, 감각 있다고 드물게 칭찬을 해 주었다. 한 번은 내가 낸 아이디어를 남편이 다듬은 카피가 CF로 제작되어 TV에 나온 적도 있었다. 아무리 평소에 나를 개같이 대한다 해도 그나마 가끔이라도 내게 ‘일’을 주고 나를 인정해 주고 내게 칭찬을 해 주는 이는 남편뿐이었다. 남편이 아니면 내게 잘 한다고 소질 있다고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게 카피라이팅이라는 ‘S대 졸업생이 할 만한 일’을 가져다 주는 사람도 남편뿐이었다.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이혼하자 이혼하자 공갈협박 같은 말이 나올 때쯤 남편은 일감을 들고 퇴근했고 내게 일을 시켰고 나를 칭찬해 주었다. 남편의 칭찬은 다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달콤함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      남자


이제 나에게 과거는 없어졌다. 다리를 잃기 전 나는 발레리노였다. 의족을 하면 걸을 수는 있겠지만 춤을 출 수는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촉망받던 젊은 무용수에게 닥친 비극’이 되어야 하겠지만 나는 그냥 그저 그런, 한 명쯤 있어도 없어도 티 나지 않는, 군무를 추는 무용수였다. 나는 소질이 있는 편이 못 되었다. 다리가 있었어도 은퇴할 때까지 군무만 추었을 것이다. 환상 속의 내 다리가 군무의 스텝을 밟는다. 내가 없어도, 공연은 잘 될 것이다. 침대 귀퉁이에 앉아 생각한다. 내 인생에 이렇게 드라마틱하고도 허술하고 엉성한 일이, 이런 우습고도 황당하면서도 절망적인 일이 생길 줄 예상했던 적이 있었나.


나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착한 사람도 용감한 사람도 아니었다.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다. 내 옆에서 전철을 기다리던 사람이 아주 자연스럽게 선로로 떨어졌고 그 순간 나는 그를 따라 같이 뛰어내렸다. 내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사실은 함께 죽고 싶었던 걸까. 전철이 달려 들어왔고 선로에 떨어진 남자는 죽었고 나는 다리를 잘렸다.


나에게는 현실이 없다. 발가락 하나가 간질간질하다. 종아리가 이따금 따끔거릴 때가 있다. 없어진 다리가 시치미를 뚝 떼고 잘 붙어있는 척 한다. 나는 무릎 아래 허공을 긁는다. 의사는 이 증세를 환상통이라고 했다. 원인도 치료법도 모른다고 했다. 내 다리는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다리인가 보다. 분명히 있는데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서 보지 못 하는 건가 보다. 아니다. 내 다리는 전철에 잘려 나갔다. 내 다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환상이다. 내게 닥친 일이 과장되게 실감나는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라 환상 같다. 누군가 내게 거대한 장난을 치는 것 같다. 누군가 “속았지?”라고 하면서 내 눈에 감긴 천을 풀면 내 무릎 아래가 있을 것 같다.


사고 당시에 선로에 떨어진 사람은 취객이 아니었다. 자살하려고 작정하고 뛰어내린 사람이었다. 그대로 혼자 죽으라고 내버려 두었어도 본전치기는 되었을 것이다. 전철에 치이지 못 했으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죽었을 테니까. 난 그런 사람의 자살을 방해하려고 뛰어든 셈이었다. 더군다나 유족이라는 여자, 그 남자의 아내도 남편의 죽음을 별로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가 죽는다고 슬퍼할 사람도 없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그 남자와는 일면식도 없던 내가. 그래도 내가 그 사람을 살리거나 아님 같이 죽었으면 ‘용감한 시민’이라도 되었을 텐데 그 사람은 죽고 나는 다리만 잘리고 살았으니 ‘성과’가 없어서 ‘용감한 시민’도 못 되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      여자


남편이 죽기 전에 나와 같이 만들던 광고는 새로 론칭하는 여성용 구두 브랜드 광고였다. 힐을 처음 신는 여대생이나 사회 초년생을 위한 구두라인이었다. 남편은 나더러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했다.


“음…동화 패러디는 어떨까? 인어공주 같은 거. 인어공주가 난파선에서 구두를 얻고서는 구두를 신기 위해 인간이 되는 거야.”


“뭐 좀 유치하지만 괜찮은 편이네. 아트디렉터가 이미지만 좀 몽환적으로 잡아주면 쓸 만 할지도 모르겠네.”


남편은 내 아이디어를 받아 적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남편이 가져 온 그 브랜드의 구두 사진들을 보았다. 나는 구두를 신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결혼 전에는 멋을 내고 공부할 필요는 없어서 멋을 안 낸 건지 못 낸 건지 하여튼 그랬다. 결혼 하고 나서는 구두가 너무 비싸서 못 샀다. 돈도 못 벌면서 비싼 구두를 사 신을 수는 없었다. 아니, 후줄근한 옷에 구두가 어울리지 않아 사지 않았다. 사진 속의 구두들은 예뻤다. 구두를 신고 밖에 나가는 상상을 했다. 예쁜 구두를 신고 그 구두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옷에 어울리는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하고 한껏 꾸미고 밖에 나가는 거다. 이 싸구려 옷 따위는 세탁기에 처박아 두고.


남편이 죽고 나서 정말로 그렇게 했다. 대기업 계열 광고 회사에 다녔던 남편은 연봉을 많이 받았었다. 여기저기 투자해 놓은 것들도 있었다. 남편은 결혼해서 사는 동안 내게 꼭 필요한 돈만 주고 자기 재산은 말하지 않았다. 나도 남편의 재산내역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서 몰랐는데 남편에게는 돈이 꽤 있었다. 남편은 이재에도 밝은 사람이었다. 남편의 장례식장에 찾아왔던 남편의 대학시절 투자 동아리 회장에게서 남편이 대학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주식이며 펀드 따위를 해 왔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남편의 유산을 정리해 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남편은 그렇게 자살할 거였으면서 이 돈을 왜 그렇게 모았을까.


나는 내가 가진 단 한 벌의 정장을 입고 백화점에 가서 남편의 유산으로 쇼핑을 했다. 세일도 안 하는데 구두를 사고 옷을 사고 화장품을 사고 머리를 하고 귀를 뚫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와인을 마셨다. 너무 좋았다. 남편이 죽었는데,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껏 꾸미고 번잡한 시내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세상에는 예쁜 것들도 화려한 것들도 많았다. 돌아다니다가 지치면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옆 의자에 앉아 백화점의 ‘고객님’들을 오랫동안 구경하곤 했다.


-      남자


아침부터 계속 머뭇거리고 뒹굴거리고 어찌해야할까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뜻밖의 손님이 병실에 찾아왔다. 내 옆에서 있다가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한 남자의 아내였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훨씬 예뻐졌다. 오늘도 치마를 입고 왔다. 꽃무늬가 화려한 하늘하늘한 시폰 원피스다. 다리가 가늘고 곧았다. 화장도 속눈썹부터 입술까지 완벽하게 하고 머리도 미용실에서 하고 왔다.


“남편이 죽고 나니까 얼굴이 확 피셨네요. 오늘은 왜 또 오셨어요?”


“이젠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요.”


“갈 데가 없어서 다리 잘린 병신 위로해 주려고 다리 다 보이게 치마 입고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치마를 입어야 예쁘잖아요.”


여자는 전혀 악의 없는 순수한 얼굴로 내 앞에서 한 바퀴 팽그르르 돌아 보이기까지 했다.


“딴 용건 없으면 이만 가시죠.”


“백화점도 가보고 스파도 가보고 레스토랑도 보고 영화관도 가보고 나니까 이젠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요. 집은 지긋지긋해서 싫고. 그래서 호텔에서 잠도 자 봤어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지금 나가면 또 정처 없이 돌아다녀야 되는데…….”


다리 잘린 장애인 앞에서 참 해맑게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해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친 거 아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미친년은 아니에요. 나 S대 나온 여자예요.”


“S대 나왔는데 뭐 어쩌라구요?”


“그냥 그렇다구요. 사실 그거 밖에 내세울 게 없어요. 머리도 나쁘고 능력도 없고 열정도 없고 매력도 없고…….”


환상통이 느껴졌다. 발가락이 간지러웠다. 환상통을 잊으려 TV를 켰다. 여자는 내 침대에 앉아 나와 함께 TV를 보았다.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없어서 광고만 멀거니 보았다. 구두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인어공주가 구두를 신기 위해 바다 속에서 헤엄쳐 나와 다리를 가진 인간이 되었다. 구두를 신고 왕자를 만났다. 나는 무심결에 뭉툭하게 잘린 내 다리를 더듬었다. 나도 다리를 얻을 수 있을까. 광고 속의 저 인어공주는 어떻게 다리를 얻었을까. 내 다리는 어디에 있을까. 저녁에 공연에 가면 내 다리가 춤을 추고 있을까.


“저 광고, 제가 아이디어 내고 남편이 만든 광고예요.”


여자는 멍하니 화면을 보며 말했다.


“남편은 되게 능력 있는 카피라이터였어요. 열정 있고, 잘 생기고 말 잘하고 술 잘 먹고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열심히 살았더라고요. 평생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을 거에요. 초중고생 때는 우등생이었대요. 비록 재수해서 S대는 못 가고 다른 명문대를 가긴 했지만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대요. 딱 하나 있는 컴플렉스가 S대였죠. 대학 가서도 못 놀았어요. 동아리 활동을 몇 개를 했는지 몰라요. 그러면서도 토익도 좋고 학점도 좋고 봉사활동도 하고 공모전해서 상도 타고. 대학 시절 내내 스펙 관리를 한 거죠. 그 와중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재테크도 하고. 취직하고서는 워커홀릭이었어요. 퇴근 후와 주말에는 인맥관리하고요. 개인 시간도 없이 정말로 열심히 살았어요. 남편은 항상 제게 능력도 없고 열정도 없고 매력도 없다고 했어요. 맞는 말이에요. 작가가 될 거랍시고 글은 써 댔지만 운도 없고 실력도 없어서 등단도 못 했으니. 정말 바위에 글을 새기듯 열심히 쓴 것도 아니긴 했고요. 그런데요, 왜 저는 이렇게 말짱하게 잘 살아있고 남편은 자살을 했을까요?”


“그건 나도 그쪽 남편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왜 죽었냐고. 왜 죽어서, 왜 내 눈에 보이는 데서 전철에 치어 죽어서 봉사활동이고 기부고 헌혈이고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내가 전철에 함께 뛰어들었는지 나도 궁금해서 미쳐버리겠어요.”


“그러게요. 그 때 왜 남편이 하필 거기서 죽었을까요. 다른 시간에, 다른 역에서, 다른 승강장에서 죽었으면 남편 혼자만 죽었거나 다른 사람이 그 쪽 대신에 죽거나 다쳤을지도 모르는데요.”


“그러니까, 다 우연이고 운명이었다는 건가요? 내가 이렇게 된 게?”


“잘 모르겠어요. 뭐라고 대답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네요.”


여자와 나는 서로 할 말이 없어서 두세 시간 동안 멀거니 TV만 보았다. TV드라마 속의 연인들은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했고 알고 보니 운명의 장난으로 하필 남녀의 부모들은 원수 지간이었고 우연히 사고에 휘말리고 각본대로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 드라마가 끝난 후 광고 속의 연예인들은 광고에 나오는 제품만 쓰면 마법처럼 행복해질 거라고 걱정도 고민도 없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발이 욱신거렸다.


“공연 보는 거 좋아해요? 발레 같은 거.”


“한 번도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S대라서 공부만 하시느라고 문화생활도 안 하셨어요?”


“중고등학생 때는 대학 가고 나서 놀자, 대학 가고 나서는 취직하고 나서 놀자 그런데 취직도 못 하고 돈도 못 벌어서 지금껏 못 놀았어요. 영화도 한 번 제대로 본 적도 없었는데 공연은 봤겠어요?”


“그럼 오늘 저녁 때 발레 한 번 같이 보러 안 가실래요? 제가 장애인이라서 1층 장애인 특별석에 앉을 수 있어요. 보호자도 그 옆에 앉을 수 있고. 1층 앞자리면 무용수들 토슈즈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까지 다 들릴 거에 요.”


여자는 좋아라하며 승낙했다. 나는 수속을 밟았다. 여자는 공연 보러 간다고 들떠서 내가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간호사가 여자에게 나와의 관계를 물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애매한 관계라서 어물어물 넘겨 버렸다. 여자는 손이 야무지지 못 했고 나는 초보 장애인이어서 옷을 갈아입고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나서기까지 여러 모로 불편했던 일들이 있었다. 나는 짜증을 조금 냈고 여자는 “왜 모두들 나만 싫어하는 거야. 날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나는 보기만 하면 싫어지는 타입인가 봐. 백화점 점원들 밖에는 내게 잘 해 주는 사람들이 없어. 하지만 그건 내가 물건을 사니까 그런 거고.”라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혼잣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혼잣말도 습관이 된 듯 했다. 나는 그 혼잣말을 못 들은 척 했다.


나와 여자는 공연을 관람했다. 내가 그 속에서 춤출 때는 몰랐는데 객석에서 보니 참 좋은 공연이었다. 음악도 좋고 안무도 좋고 무대도 좋고 무용수들 기량도 좋았다. 나는 내가 있어야 했을 자리를 살폈다. 군무 맨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자리. 누가 나 대신 그 자리에서 내가 춰야 할 춤을 대신 추고 있었다. 내 자리를 대체할 단원들은 많았다. 물론 프리마돈나도 무슨 일이 생기면 대체될 수 있다. 이 세상에 대체 불가능한 것은 없다. 다른 점은, 프리마돈나의 대체인물은 신데렐라가 되지만 나를 대체한 후보단원은 공연 후에도 그냥 후보단원, 잘 해야 군무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것, 그 뿐이라는 것이다. 발끝에 느낌이 왔다. 잘려나간 내 다리가 안무를 기억하고 춤을 췄다.


-      여자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남자가 말했다.


“만약에 그 날 아무 일이 없었다면 제가 원래 그 무대 위에 있었어야 했어요.”


“공연 정말 멋있었는데. 원래대로였으면 무슨 역이셨어요?”


“한 번 맞춰 봐요.”


“음…왕자 역이었어요?”


“역시 소설 쓰는 사람다우시네요. 소설 속에선 주인공이 추락하는 게 드라마틱하고 재미있죠? 그런데 잘못 찍으셨어요. 인생은 소설이 아니에요. 전 군무였어요. 맨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그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 안 나시죠? 보지도 않았을 거야. 군무는 그냥 덩어리로만 보니까, 다들.”


나는 말없이 휠체어만 밀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어서 다리 잘려서 춤을 못 춘다 해도 안타까워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공연에 아무 지장 없다구요. 나는 소질도 없고 신체조건도 뛰어나지 않고 악착같이 연습하는 발레리노도 아니었어요. 주연이 될 가능성도 없고 은퇴할 때까지 군무만 추다 말 그저 그런 무용수였어요.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은퇴 후의 계획도 없고 연습을 더 이상 열심히 할 생각도 없고 춤은 그냥 돈 버는 직업이고 해 왔던 거니까 하는 거고 열정도 없고. 그래서 내 다리가 잘린 건가요? 주인공은 춤을 춰야 하고 엑스트라는 다리가 있으나 많으니까 그래서 내 다리, 바로 내 다리가 잘린 건가요? 말씀 좀 해 보시죠. 세상이 제대로 돌아 간다면 그 쪽 남편은 열심히 잘 살고, 우리 둘이 같이 전철에 치였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주연은 말짱하게 잘 살고 엑스트라인 내 다리가 잘린 것처럼요. 이게 세상이 현실적으로 돌아간다는 증거잖아요. 왜 저는 다리만 잘렸을까요? 나는 아예 죽어버려도 좋았을 텐데. 카피라이터는 다리가 없어도 되니까 다리 잘리고 살아남고 발레리노는 다리가 잘리느니 죽었어야 하는 건데.”


“그러게요. 왜 춤추는 다리는 잘리고 딱히 꼭 어디 돌아다닐 일은 없는 제 다리는 왜 말짱할까요.”


이 사람은 왜 나한테 퍼붓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모두 나를 싫어할까. 그건 내가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해서다. 기껏 고액과외다 뭐다 투자해서 S대 보내놨더니 다른 집 애들이 모두 고시 패스하고 대기업에 가고 하는 동안 나는 잘난 남자와 결혼하여 전업주부가 되어버렸고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성적이 좋을 때는 좋은 아이였고 성적이 나쁘면 나쁜 아이가 되었다. 시험 잘 보는 것 외에는 잘 하는 것이 없어서 애들은 시험기간에만 나와 친하고 평소에는 “쟤 잘난 척 한다”며 나를 싫어했다. 취업하려고 했을 때 면접위원들은 내가 S대생이라서 괜찮을 줄 알았더니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구직자여서 실망했다. 남편은 내가 ‘기업이 못 알아보는 인재’일 줄 알았는데 ‘인생 낙오자’여서 나를 미워했다. 이 발레리노는 내가 남편 죽고 불쌍하게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잘 살고 있어서 나를 싫어한다. 아하, S대를 나온 머리 좋은 나는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지. 그런데,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구. 기대를 한 당신네들이 잘못한 거지, 내가 잘못한 거야?


“우리, 같이 죽어요. 둘 다 살 필요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잖아요. 나는 죽은 남편 유산이나 까먹고 살 테고 당신은 부모한테 기대서 살 텐데 그렇게 살아서 뭐해요. 식충이들처럼. 차에 치여서 같이 죽자구요. 전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잖아요.”


나는 공연장 앞 대로로 휠체어를 밀었다. 신호는 빨간 불이었다. 남자가 휠체어 바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달려오던 자동차가 급정거했다.


“병신이면 집에나 있을 것이지 왜 기어 나와! 죽고 싶어?”


자동차 운전자는 그러고서도 한참동안 쌍욕을 퍼부었다. 나와 남자는 운전자의 분이 풀릴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욕을 다 들어주었다. 욕을 먹다 보니 초록불이 되었다. 차들이 멈췄다. 근처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나와 남자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려서 한동안 길바닥에 휠체어를 세워 두고 쪼그려 앉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남자도 나도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남자는 부모님이랑 같이 산댔다. 집에 들어가기 싫댔다. 나도 ‘못난 자식’이 되고부터는 부모님 기대에 못 미치는 내가 죄스러워 부모님을 피했다. 갈 곳이 없어서 결국 남편과 살던 집으로 갔다. 집 안은 지저분했다. 나는 남자에게 남편의 포토폴리오를 보여주었다. TV나 신문에서 봤던 광고들이 나올 때마다 남자는 신기해했다. 나는 그때마다 그 광고를 할 때 내가 냈던 아이디어나 썼던 카피들을 설명해 주었다. 남자도 나도 남편이 꽤 능력 있는 카피라이터였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포토폴리오의 마지막 광고는 그 구두광고였다.


“잘 만든 광고는 광고를 보면 그 물건을 사고 싶어지는 광고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광고는 잘 만든 광고 같아요. 저도 이 광고 보고 구두를 샀거든요. 남편 죽고 나서. 요새 신고 다니는 구두가 바로 그 구두예요.”


나는 전직 발레리노였지만 지금은 무릎 아래가 없어진 남자 앞에서 그 구두를 신고 어설프게 탭댄스를 추는 흉내를 냈다.


-      남자


이유를 알아야 했다. 나는 내 다리가 잘린 이유를 알아야 했고 여자는 자기가 살아있는 이유를 알아야 했고 우리는 ‘이 구두가 너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 거야’라는 카피를 쓰고 전철에 뛰어든 남자가 죽은 이유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내 환상통이 멎을 것 같았다.


죽은 카피라이터의 포토폴리오들을 보고 나서 산 여자의 습작들을 보았다. 평론가가 아닌 내 눈에도 여자의 소설들은 문학적으로 아주 잘 쓴 편은 아니었고 그냥 조금 잘 쓰는 소설가 지망생 수준이었다. 문학성이 부족하면 재미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하기는 나도 그저 그런 발레리노였다.


나와 여자는 여자와 남편이 살았던 집에서 하루하루를 탕진하며 살았다. 어질러진 집을 더 어지르면서 컴퓨터 모니터와 스피커로 죽은 그 남자의 광고 동영상 파일을 24시간 재생시키면서, 나는 그 남자의 속옷과 옷을 입고, 여자와 나는 여자와 남편이 잤던 침대에서 잠을 자고, 그러면서 계속 죽은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자는 그 남자가 살아있었을 때를 이야기했고 나는 그 남자의 죽기 직전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죽은 남자의 SNS에 들어가 그 남자의 지인들이 남긴 댓글을 읽었다. 집 안에서의 삶과 집 밖에서의 삶이 전혀 달랐던 그 남자가 왜 그렇게 이중적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완벽하고,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던 젊고 잘 생긴 남자가 왜 자기 자신을 죽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여자와 나는 역으로 다시 현장 답사를 갔다. 내 기억과 여자가 봤던 CCTV 속에서 남자는 이쪽 승강장과 반대쪽 승강장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다리가 있어 그 다리를 건너려는 것처럼 발을 내디뎠고, 선로로 추락했다. 전철이 들어오고 있었고, CCTV속에서 나는 남자를 한 번 보더니 망설임 없이 선로로 뛰어내렸다고 여자가 말해 주었다. 아마도 나는 그 남자를 구하려고 뛰어내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여자와 나는 그 남자와 내가 추락했던 승강장에 서서 전철을 기다렸다. 그 때 나는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남자는 죽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완벽했던 사람이, 저 빼고 다른 사람들에겐 다 좋았던 사람이 저한테만 못되게 굴었으면 저한테 잘못이 있었던 거겠죠? 제가 남편이 바랐던 대로 유능하고 열정적이고 사근사근한 아내였다면, 남편이 저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까요? 다 제가 잘못했던 걸까요?”


여자는 휠체어 뒤에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있었고 나는 휠체어를 탄 채로 앞을 보고 있어서 여자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애초에 아무도 안 태어났으면 되었게요?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 말도 맞는 말이네요. 저는 왜 태어났을까요. 부모님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우리 부모님이요, 중매로 만나서 후다닥 결혼해서 허니문 베이비로 얼결에 저 임신하신 거예요. 우리 엄마는 임신, 출산,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아기 때는 저를 미워도 했었대요. 저는, 안 태어났어도 좋았을 텐데. 그러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 말에 부정을 했어야 했지만 그 일이 있었던 승강장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던 나 자신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나는 “그래요. 대체 왜 태어났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어버렸다. 전철이 도착했고 나는 내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려 전철을 탔다.


“나한테 좀 친절하게 대해주면 안 돼요? 그 동안 휠체어 밀어주면서 나도 좀 쓸모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인 것 같아서 조금 뿌듯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뿌듯했으면 장애인 시설 가서 평생 봉사하시면서 감사하다는 인사 받고 사시든가.”


여자는 아무 대꾸 없다가 나를 두고 다음역에서 혼자 내려버렸다. 이제 어디로 갈까. 그 일 이후로 병원에 있다가 여자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는데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까. 문득 의족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 아래로 의족을 달면 무릎 아래로 다리가 생기니까 환상통이 사라질 것 같았다.


다리에 의족을 착용했을 때, 이물감이 들었다. 의족으로는 발끝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의족을 하고 전신거울을 보았다. 내 모습이 낯설었다. 무너져버린 몸매가 눈에 들어왔다. 그 일 이후로 춤을 추지 않아서 근육이 다 허물어져 버렸다. 다리가 잘린 것뿐인데 이전까지의 인생이 다 잘려 버렸다. 열심히 춤을 춘 것도 아니었지만 춤 외에 다른 것을 해 본 적도 없었다. 이제 이 가짜 다리로 무엇을 해야 할까. 의족을 받아 들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이 의족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까. 가상의 발이 쿡쿡 쑤셨다.


-      여자


역에서 내려 다리 위를 걸었다. 왼쪽으로 한강이 보였고 오른쪽으로는 차들이 달렸다. 한강은 생각보다 컸다. 비릿한 물내음이 났다. 차 달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한강을 보며 다리를 왕복했다. 이제까지 신던 구두를 벗고 새 구두를 샀다. 힐 높이가 10cm도 넘는 ‘킬힐’이었다. 그 킬힐을 신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다리를 걸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내가 건넌 다리를 검색했다. 주식투자를 실패한 사람도, 우울증을 앓던 갑부 할머니도 거기서 한강으로 뛰어내려 자살했다. 나는 킬힐을 신고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하고 날마다 한강을 바라보며 다리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킬힐을 벗고 맨발로 불 꺼진 집 안에서 쉬고 있는데 남자가 찾아 왔다. 두 다리로 서 있었다. 의족을 했댔다. 헤어질 때 입고 있던 옷이 죽은 내 남편의 옷이었다고 했다. 그 옷을 돌려주러 왔다고 했다. 돌려주건 말건 상관도 없는 옷이어서 나는 그 옷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남자는 집 안으로 들어와 불을 켰다.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여전히 남편의 광고가 재생 중이었다.


“다리가 생겼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내 진짜 다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한강 물 속에 가라앉아 있어요.”


그 때 내 눈빛은 투명하게 맑았다. 마치 백치처럼. 어디로 갈 지 몰라서 내가 사는 집에 다리를 찾으러 온 남자는 내 눈동자보다 내 발을 먼저 보았다. 좁고 높은 킬힐을 신느라 빨갛게 붓고 물집이 잡히고 피가 나는 내 맨발을 의족을 멋은 남자가 손으로 만졌다.


“발이 왜 이래요?”


“아직 길이 안 든 높은 힐을 신고 발에 반창고도 안 붙이고 매일 한강다리를 걸어 다녀서 그래요. 한강이 너무 크고 깊더라고요. 있잖아요. 인어공주가 인간이 되고 나서 걸을 때마 다 발이 쑤시는 듯 아팠다고 하잖아요. 그건 아마도 인어공주가 하이힐을 처음 신어봐서 그랬던 걸 거예요. 새 구두를 신으면, 처음으로 구두를 신으면 발이 너무 아프거든요.”


남자는 이제 의족을 착용하고 걸을 수도 있게 되었는데 나는 그 동안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걸으면서 내가 왜 살아 있을까를 생각했다. 내 글은 도저히 밥벌이를 할 수준은 못 되었다. 나에게는 경력도 인맥도 능력도 열정도 매력도 없었다. 희망도 의욕도 없었다. 발 없는 남자가 더럽고 냄새나고 상처 난 내 발을 자꾸 만졌다. 만지고 또 만졌다. 이상하게도, 상처에 손길이 닿을 때마다 쓰라려서 발을 움찔거리면서도 짜릿한 쾌감이 들었다.


“대체 나는 왜 그 때 전철에 뛰어든 걸까요. 내 다리는 왜 잘린 걸까요.”


“그건 생각해 봤는데요. 인어 공주가 구두가 신고 싶어서 인간이 되려고 했는데 물고기의 하반신 그대로는 인간이 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인간 남자가 자기 다리를 잘라서 인어공주한테 줬어요. 인어공주는 다리를 얻어 인간이 되어 구두를 신었어요. 구두는 인어공주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었어요. 왕자가 사는 궁궐로요. 그런데 왕자는 인어공주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인어공주는 궁 안에서만 살았어요. 그러다 왕자가 죽었어요. 왜 자살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래서 왕자는 죽고 인어공주는 살아서 구두를 신고 궁 밖으로 나오고 인간 남자는 다리를 잃은 거죠.”


“그게 그 광고의 숨겨진 이야기인가요? 인간남자만 불쌍한 놈 됐네요. 아니, 셋 다 잘된 놈은 하나도 없네요.”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대체, 왜 죽은 사람은 죽었으니까 쿨하게 잊고, 남은 사람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새 구두를 신고 새 옷을 입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복하게, 밝게 그렇게 살지를 못 할까요. 용기와 희망 따위는 왜 광고에서처럼 15초 안에 생겨나지 않을까요. 나는, 이게 다 꿈이고 환상이고 동화 속 이야기였으면 좋겠어요. 책을 덮고 TV를 그면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좋겠어. 그냥 다 끝나버렸으면 좋겠어. 그래서 그 인간 남자와 인어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뻔한 마무리 없이 다 끝나버렸으면 좋겠어.”


남자가 여전히 내 발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희망도 꿈도 의지도 계획도 없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그 다음 이야기 없이 여기서 끝이 나기를. 구두와 의족이 나와 남자를 어느 곳으로도 데려가지 않고 깊은 한강 물 속에 가라앉아 버리기를. 죽은 시체와 잘린 다리와 부은 발이 화려한 광고 속에서 ever after, forever,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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