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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켠 Sep 02. 2024

작고 예쁘고 쓸모 없는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그렇지만 나만은..

얇은 벽 너머 신혼부부의 비음 섞인 교음과 웃음. 일렁이는 향초 불꽃. 눈이 크고 입술이 뾰족한 베이비돌. ‘울면 안 돼’에 맞춰 목각인형이 돌아가는 오르골. 실금이 간 스노우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미니어처 인형의 집. 가챠로 뽑은 피규어들과 다이소 마스킹 테이프. 은으로 된 악세사리들. 글리터 네일 폴리쉬. 불 꺼진 내 원룸을 채우는 것들.


“어, 엄마, 나는 잘 지내. 별 일 없어. 평일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엔 데이트를 해. 회사 사람들은 다 좋고 일은 쉽고 편해. 밥도 잘 챙겨 먹고 잠도 규칙적으로 자고 저축도 꼬박꼬박 하고 있어. 아무 걱정 하지 마.”


통화를 마치고 입 안에 초콜릿을 넣고 위스키를 머금었다가 삼킨다. 사실은, 얼마 전 피를 뽑았다. 격년마다 해야 하는 건강검진이었다. 빈혈, 비타민 D 부족, 갑상선 기능 저하증. 병명은 다르지만 증상은 모두 동일했다. 우울, 무력감, 만성 피로. 다행이었다. 우울증은 아니어서.


사무실에선 분양 받은 아파트가 억이 올랐다거나 애들 데리고 방학 때 유럽을 다녀올 계획이라거나 와이프 회사의 성과급이 대박이라거나 하는 얘기가 오갔다. 나는 그들의 삶을 엿듣기만 했다. 하루 종일 두 팔 너비도 안 되는 좁은 책상에서 모니터를 보며 일했다. ‘내년에 결혼할 자상한 남자친구’는 처음부터 없었다. 저축은 안 한다. 퇴근길에 먹거리 대신 작고 예쁘고 싸고 쓸모 없는 것들을 사 와서 공간을 채운다. 끼니를 거르고 밤마다 술을 마시고 술기운이 채 가시기 전에 들뜬 목소리로 본가에 전화를 한다.


“이번엔 또 얼마가 필요해? 부쳐 줄게. 아냐, 안 힘들어. 모은 돈 있어. 내 걱정 말고, 건강 챙겨.”


왜 내가 돈을 좀 모았다 싶으면 우리 집 식구들은 번갈아 가며 아프고, 월세가 오르고, 스마트폰이 맛이 갈까. 나는 자식도 없는데 늙으면 누가 내게 돈을 보태 줄까. 당장 월급이 안 들어오면 살 수 있을까.


밤이면 불 켜진 맞은 편 오피스텔 내부가 훤히 보였다. 보일러를 끈 차가운 어둠 속에서 알몸에 암막 커튼을 두르고 벽에 귀를 대고 옆집의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따스하고 밝은 집들을 구경한다. 아이와 놀아 주는 젊은 부부와 식탁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 다정한 커플들. 보고 듣는 걸 멈출 수 없다. 역겹다. 빈 속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머리가 무겁다. 취기가 머리 끝까지 오르나 보다. 스노우볼이 뒤집히듯 작은 집의 행복한 사람들이 핑글 돈다. 혀가 꼬인다. 배알이 꼴린다.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내가 야근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 있거나 가족이 있다. 다이소에서 트리 대신 스노우볼을 사고 하얀 생크림 케이크와 화이트 와인을 들고 퇴근해야 겠다. 어른이 되니까 혼자 케이크 한 판을 숟가락으로 퍼먹을 수 있어서 좋다.


언제부터 저 자리에 피아노 학원이 생겼지. 원래 저 자리가 카페였나 빵집이었나. 기억 나지 않는다. 내가 사라지고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도 그러겠지. 피아노 학원에서 ‘울면 안 돼’가 흘러 나온다. 더럽게 못친다. 딱 정직하게 건반을 두드린다. 어른은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줘도 ‘날 위한 선물’을 살 수 있다. 어디서 협박질이야. 학원 문을 열고 들어 간다. 연습실 창문 너머로 피아노 치는 사람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렸을 때 살던 지방 소도시의 피아노 학원에는 금색 액자에 서울의 음대 졸업장이 끼워져 있었다. 피아노 구석엔 늘 누군가의 코딱지가 말라 붙어 있었다. 한 번 칠 때마다 악보 위의 동그라미 하나를 지워야 하는데 두 개씩 지우고 다 쳤다고 검사 받았다. 가끔은 남의 연습만 듣다가 동그라미를 다 지우고 뻔뻔한 얼굴로 나올 때도 있었다. 학원 원장은 늘 짜증을 내며 음이 틀릴 때마다 손등을 자로 때렸다. 내가 건반을 힘껏 두드리기만 한다고 했다. 만화 주제가는 언제 치냐고 하면 늘 ‘바이엘, 체르니를 다 떼면’이라고 했다. 흑백의 끝없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피아노 의자 아래에 빨강 노랑 옷을 입은 요정을 숨겨 두고 요정의 비명을 피아노 소리로 감춰 주고 있다고 상상했다.


엄마에게 피아노는 클래식, 교양의 대명사였다. 엄마는 늘 딸이 집에서 우아하게 피아노 치는 풍경을 꿈꿨다. 아빠의 반대에도 부득부득 피아노를 사서 안방에 꽉 차게 들여놨지만 난 음치였고 바이엘, 체르니는 지겨웠다. 작은 집으로 옮겨가면서도 이삿짐 업체에 추가 요금을 내고 챙겨 왔던 피아노는 에어컨이 없던 집에서 기록적인 폭염에 혼자 피아노줄 끊어지는 소리를 내다가 ‘피아노 컴퓨터 삽니다’ 트럭에 팔려 갔다. 엄마가 꿈꾸듯이 나중에 프러포즈 할 때 피아노 연주 하면 얼마나 근사하겠냐고, 내 딸에게까지 물려주라고 했는데.


그 때 그 피아노 학원에서 내 인생은 결정되었다. 네모난 연습실, 네모난 책상에서 ‘체르니만 떼면’, ‘수능만 치고 나면’ 내가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위안하며 사는 삶. 고양이도 아닌데 피아노 학원의 조그만 연습실, 좁은 사무실, 벽 얇은 원룸에 몸을 끼워 맞추고 산다. 이건 고양이도 아니다. 양계장의 닭이다. 이러다 죽으면 관에도 못 들어가고 납골당에 맞는 사이즈의 유골함에 우겨 넣어 지겠지. 올 크리스마스엔 케이크에 와인 말고 치킨에 맥주를 먹어야 할까. 요정은 무사히 도망갔을까.


새해에는 피아노를 다시 배워 볼까. 엄마한테 피아노 학원에 돈을 쓰느라 집에 부쳐줄 돈이 없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빅데이터나 코딩이나 영어 학원 말고 피아노를 배우는 건 또 무슨 ‘작고 예쁘고 쓸데 없는 것’에 돈을 낭비하는 짓일까.


밤은 어두워지고 가로등은 밝게 빛나고 사람들은 즐거운데, 텅 빈 피아노 학원에 앉아 원장이나 직원이나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불꺼진 연습실 밖은 어두워서 테이블 위에 놓인 향초에 불을 붙인다. 수강료를 물어 보고, 집에 가기 전에 뭐든 크리스마스 만찬과 선물을 사 가야 하는데. 빨리 집에 가서 산타로 변장한 부모와 양말을 머리맡에 놓는 아이들과 옆집 부부의 잠자리를 관음해야 하는데. 혹시 옆집에선 쿵쿵 무언가 때려 부수는 소리가 들리고, 부모는 아이를 때리고, 남편은 아내를 강간하고 어느 집에선 살인이 일어나지는 않는지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이런 음습한 일상이 어느 순간 튀어나올 까 봐 친구도 애인도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자꾸 누군가에게라도 내 상상을 지껄이고 싶다.피아노를 치면서 하는 것보다 피아노 위에서 하는 게 더 좋겠다고.


어쩌면 연습실 안에서 피아노 치는 사람이 원장일지도 모른다. 학원 벽에 졸업장 액자는 없지만. 아니면 내가 피아노를 못쳐서 탈출을 못한 요정이거나. 연습실 유리 창문에 얼굴을 대고 연주가 멈추기를 기다린다. 향초는 점점 녹아 내리고 카페도 빵집도 문 닫을 시간이다. 연습실 천장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은 점점 더 내리고 연주자가 빙글 돌아 나를 본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그렇지만 나한테만 특별히 선물을 주겠대. 나는 어른이니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고.


연습실 창문에 대고 입모양으로 말한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숨쉬어지지도 않게 해 달라고. 향초의 불이 꺼진다. 머리가 핑 돈다. 피아노가 뒤집힌다. 조그만 연습실 안에 눈이 내린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 피아노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는다. 밖에서 누군가의 눈이 연습실 유리창 너머로 나를 본다.


“엄마, 나 저 스노우볼이 갖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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