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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켠 Aug 29. 2024

하얀 저승 검은 이승

어느 날 팀장이 과로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회사에서 자살했다. 

“안에 누구 안 계세요?.”


직감이 왼쪽 귀에다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절대 열지 말라고. 직감이 오른쪽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이 안에 팀장이 있다고.


“계시면 안에서 똑똑 두드려 주세요. 응답 없으시면 강제로 열겠습니다.”


눈을 감고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별 일 없을 거야. 팀장은 매일 조금 피곤할 때마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스쿼트를 했고 가끔 정말 너무너무 피곤하면 변기에 앉아서 쪽잠을 잤고 이사한테 깨지면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고 화장실에서 소리를 줄여가며 아이와 통화를 했고 하여튼 업무 외의 모든 일을 잠긴 화장실 칸 안에서 해결했다. 팀장이 사무실에 없으니 화장실에 있겠지. 별 일 아닐 거야. 팀장은 전에 변기에 앉자마자 잠들어서 회의 알람에도 못 깨어나는 바람에 중요한 회의에 지각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일 거야. 화장실 문에 대고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팀장님? 격주 금요일마다 이사님하고 팀장님들 회의 있는 거, 이번주에 하는 거 아시죠? 좀 이따가 회의 시작하는데요.”


허리를 숙여 바닥을 보았다. 발이 보이지 않는다. 변기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나 보다. 회의를 주재하는 이사는 욕쟁이로 유명했다. 팀장들은 이사의 취향에 맞춰 지난 2주간 무엇을 개선했는지를 도표와 그래프로 범벅한 화려하고 현란한 PPT로 발표해야 했다. 팀장은 회의 전날마다 야근을 했다. 야근 수당을 받으려면 이사에게 근무 리포트를 결재 받아야 했다. 이사는 “업무 시간 배분을 못 하거나 능력이 없으니까 야근을 하는 거 아냐?”라고 했다. 그 후로는 아무도 결재를 올리지 않았다.


회의는 언제나 살벌한 분위기인 듯했다. 회의가 끝나면 팀장들이 핼쑥해진 얼굴로 줄줄이 회의실을 나왔다. 이사는 2주마다 ‘수치로 보여지는 결과’를 원했다고 한다. 우리 서비스처럼 복잡하고 오래된 서비스는 2주 만에 드라마틱하게 개선할 수 없으니 언제나 이사의 성에 차지 않았다. 팀장은 회의실이 도살장 같다고 했다. 격주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사는 회의실의 모두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게 중얼거리며 쌍욕을 퍼붓는다고 했다.


“시발, 이거 밖에 못하면서 팀장 달고 있으면 쪽팔리지도 않나? 나 같으면 이딴 거 회의에 들고 들어와서 깨지고 개망신 당하느니 내 발로 나가 뒈지겠다.”


용감한 팀장들 몇몇이 인사팀에 이사의 폭언을 신고했지만 혼잣말은 징계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사가 대표와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인사팀이 꼰지렀는지 다음 회의에서 이사는 인사팀에 갔던 팀장들을 하나하나 쳐다보면서 또 중얼거렸댔다. 평가 시즌이 다가올수록 이사의 혼잣말은 더 커졌다.


“일도 못 하는 것들이 항상 불만만 가득차서 멀쩡한 사람을 음해하지. 일만 잘 해 봐라. 내가 뭐라고 하나.”


그렇게 말하는 이사도 일을 못했다. 멀쩡한 서비스를 하루아침에 갑자기 개선한답시고 뒤집어 놓아서 사용성은 떨어지고 유저 항의가 빗발치게 만들어서 우리 팀 전원이 야근수당 없이 야근해서 다시 롤백 시켜 놓아야 했다. 그럼 너네가 서비스 개선안을 가져오라고 해 놓고 가져가면 계속 반려해서 지친 팀장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니 “그건 서비스 담당자가 알아서 해야지,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라고 해서 이사가 오케이할 때까지 스무고개를 해야 했다.


그래도 인사평가에서 물먹는 건 우리 팀장일 거다. 이사가 팀장의 목줄을 쥐고 있으니까. ‘목줄을 쥔다’는 건 말 그대로였다. 이사는 팀장의 사원증 목걸이줄을 잡아당기면서 “남자였으면 진작에 옥상으로 갔을 텐데, 내가 참는다”고 했다. 이사도 사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걸 ‘알아서 잘’ 하지 못 했으니 이사가 팀장의 고과를 낮게 줄 게 뻔했다. 이러니 팀장이 이사 배석 회의에 들어가기 싫어서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을 만했다.


“팀장님? 문 딸게요.”


설비 담당 직원이 잠금 장치를 부쉈다. 문이 이상하게 묵직했다. 그 때 도망쳤어야 했다. 눈을 가리고. 비겁하지만 설비 담당 직원에게 뒷수습을 맡기고. 그런데 보아 버렸다. 팀장은, 화장실 안에 있었다. 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가방 걸이에 목을 매고. 손에는 초등학생인 딸의 사진을 꼭 쥐고. 사내 메신저가 계속 울렸다. 이사의 비서였다. 팀장님 왜 아직도 안 들어오시냐고. 메신저에 답을 하는 대신 119를 불렀다.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후들거리는 다리로 자리에 돌아와 가위와 펜과 종이와 테이프를 들고 다시 화장실로 갔다. 설비 담당 직원은 아직도 새하얗게 질려서 아무 것도 못 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가위로 팀장의 목을 조인 끈을 자르고 팀장을 화장실 바닥에 눕히고 종이에 펜으로 크게 ‘출입 금지’라고 써서 화장실 문에 붙였다. 사내 시스템에서 팀장의 이름을 검색했다. 사원 정보에 있는 비상시 연락처를 찾았다. 남편의 폰 번호가 나왔다. 문자를 남겼다. 최대한 간결하게. ‘김수련 팀장 사망. 판남 서울대 병원 이송 예정.’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어요?”


누가 나중에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했다고. 팀장의 자리에 나를 넣어서.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몰래 팀장을 미워하고 있었다고. 팀장은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팀장은 나에게만 서비스 운영을 맡기고 다른 팀원들에게는 이사에게 보고하는 기획안을 맡겼다. 다른 팀원들은 기획안을 팀장에게 제출하고 팀장은 수정 사항을 일일이 표시해서 ‘빠꾸 멕이고’ 지적당한 팀원은 다시 팀장에게 기획안을 검사 받고.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제외되어 있었다. 나도 기획을 하고 싶다는 말을 팀장은 언제나 ‘다음에’라고 받았다. 갑상선 기능 저하로 쉽게 피곤해져서 좀 쉬고 싶다는 내 말에도 ‘다음에’라고 했다. 나 없으면 누가 운영 업무를 하냐고. 누가 하긴. 기획 업무 하던 사람이 하면 되지. 어차피 운영은 성실하기만 하면 되고 기획은 머리가 잘 돌아가야 하는 일이니까.


이사가 점점 우리 서비스를 쪼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압박을 받았는지 팀장은 다들 칼퇴하라고 하고서 혼자 머리 싸매고 새벽까지 야근하면서 기획안을 작성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다 마음에 안 차고 자기만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일을 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이사가 그랬고 팀장이 그랬다. 팀장이 새벽까지 야근했는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팀장이 매일 자기 입으로 새벽까지 끙끙대며 일하느라 피곤하다고 뻐기듯이 여기저기 반복해서 말하고 다녔으니까.


팀장은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했다. 그러니 내게 ‘너 일 못한다’고 하지 않고 ‘다음에 기획시켜 줄게’라고 하고, 기획하는 팀원들에게는 ‘그런 기획안 내밀면 이사가 지랄한다’고 하지 못 하고 ‘이제부터는 내가 할게’라고 했다. 그러니 다른 팀에서는 팀장이 계속 수정시킨 기획안이 이사의 눈에 들어 ‘에이스’가 되는 팀원이 나왔지만 우리 팀에서는 다들 무능해서 팀장만 혼자 불쌍하게 과로를 했다. 팀장은 매일 티나게 피곤해했다. 입술엔 누드톤 립스틱을 바르고 다크서클엔 컨실러를 바르지 않았다. 팀장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우리 팀 팀원들은 말도 안 되는 업무지시를 하는 이사와 공범이었다.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팀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회사에서 죽는 상상을 수없이 했다. 주머니에 팀장을 욕하는 유서를 넣고 회사 근처 다이소에서 산 등산용 로프로 고리를 만들어 목에 걸고 로프를 화장실 가방 걸이에 걸고 뚜껑을 닫은 변기 위에 올라섰다가 뛰어내리면 목이 졸리고 누군가 화장실 문을 강제로 열고 119에 연락해서 시체를 병원으로 싣고 가고 주머니에서 유서가 발견되고 팀장은 인사팀에 불려가 해명을 하고…마음 속으로 수백 번 수천 번 시뮬레이션했으니까 실제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침착하게 머리 속에 있는 매뉴얼대로 대처할 수 있었다. 내가 아니라 팀장이 죽었다는 게 현실과 상상의 다른 점이었지만.


곧 119가 왔고, 화장실 문에 ‘출입금지’ 라고 적힌 종이는 떼어 졌고 청소 여사님은 화장실 대청소를 하고 나는 내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게 목격자 진술을 했다. 현장이 다 정리된 후에도 아무도 그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고 윗층이나 아래층 화장실로 다녔다. 이번주 금요일 오후의 이사 배석 회의는 취소되었다.


금요일 오후의 자살 소동으로 뒤숭숭한 퇴근길이었다. 인사팀에서는 이번 사건과 이번 분기 인사평가에 대해 다다음주 월요일 오후에 해명 겸 설명회를 열겠다고 했다. 퇴근길 전철 안에서 팀장 없는 팀장의 집을 상상했다. 팀장은 딸 하나 밖에 없으면서도 늘 아이가 뒷전이었다. 깔끔한 완벽주의자였다. 주말 내내 밀렸던 빨래와 청소를 하고 다음 주에 먹을 반찬까지 요리해서 냉장고에 집어넣고 나서야 다리에 매달리는 아이와 놀아준다고 했다. 아이가 직장 어린이집에 다닐 때에는 늘 제일 늦게 아이를 데리러 갔다. 팀장네 아이는 아이를 데리러 오는 엄마들이 오면 쪼르르 달려나가 안아 달라고 해서 ‘짠한 아이’로 소문이 났다. 팀장은 주말마다 백화점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인형 같은 옷을 사 주었다. 그런 팀장이 죽을 때는 아이 사진을 쥐고 죽었다. 팀장의 빈 책상에는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엄마 얼굴과 ‘엄마 사랑해요’라고 적힌 카드가 액자에 담겨 놓여 있었다. 화목한 가정이 있는 팀장 말고 아이도 남편도 없는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유족’ 따위 없게.


주말엔 팀장의 빈소에 다녀왔다. 사진 속 아이가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흰 국화꽃 한 송이를 영전에 바쳤다. 향도 하나 태웠다. 꺼칠한 몰골의 팀장 남편이 퀭한 눈으로 물었다.


“누구…?”


“회사…”


팀장 남편은 내게 화를 내야 하는지 예의를 차려야 하는지 고민했다.


“팀장님네 팀원이요.”


그제서야 팀장 남편은 “아아…네…”라며 물러났다. 묻고 싶겠지. 팀장이 왜 죽었냐고. 이사나 인사팀에서 조문 오면 멱살을 잡고서라도 팀장의 사인을 밝히고 싶겠지. 팀장의 재킷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는 유서엔 이사 얘기가 적혀 있었다고 했다. 팀원들 얘기는 없나 보다. 이사 하나만 죽일 놈 만든다고 끝날 일은 아니지만 조질 놈은 조져야지. 이사가 과연 조문을 올까 궁금해졌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이사는 빈소에는 가지 않고 근조 화환만 보냈다고 했다.


월요일에 인사팀에서 이번 분기 평가보상에 관한 설명회 겸 팀장의 죽음에 관한 해명회가 있었다. 질문을 미리 받아서 답변하는 방식이었다. 평가보상에 관해 설명하면서 인사팀은 계속 “조직장의 권한이다.”, “조직장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조직장의 평가에 전적으로 다 맡길 거면 인사팀 너네는 뭘 하는데?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누군가가 “조직장이 무능하거나 조직장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인사팀은 계속 “조직장을 믿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회사가 교회도 아닌데 믿긴 누굴 믿어.


주 52시간을 넘기는 추가 노동은 어떻게 줄일 거냐고 누가 사전 질문지에 적어 보냈나 보다. 말은 바로 해야지. 주 52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이지. 인사팀은 자발적으로 단기간에 바짝 초과근무를 하고 여유 있을 때 단시간 근무를 하거나 휴가를 가고자 하는 직원도 있으므로 현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할 경우 수당은 확실하게 챙겨주기로 했다. 인사팀이 추가 노동을 하는 직원들과 면담이나 제대로 해 봤을 지 의심스러웠다. 팀장이 바짝 야근하고 휴가 가려고 그렇게 야근한 게 아니었는데. 야근을 하는 데는 100명이 100가지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용감한 누군가가 물었다. 직장 갑질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되냐고. 누가 들어도 이사를 겨냥한 말이었다. 인사팀도 알아들었는지 징계위원회를 했다며 3개월 감봉 카드를 꺼내 보였다. 장난 하나. 이사급이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평범한 직장인도 아닌데 3개월 감봉에 쫄기나 할까. 생중계로 인사팀 설명회를 보고 있던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이사를 채용한 대표는 어떻게 책임을 질 거냐는 문의가 들어왔다. 인사팀은 다 준비를 해 두었다. 대표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경고를 받았다. 대표에게 인사팀의 경고가 퍽이나 무섭겠다. 하나마나한 징계였다.


노동조합 대표가 질문했다. 첫째, 사내복지기금이 쌓여 있다. 둘째, 사내에서 최근에 직장갑질 및 과로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 인사팀의 계획은? 정답은 ‘사내복지기금을 활용하여 갑질을 방지하고 과로를 예방하는 조치를 취한다’였지만 우리의 인사팀은 역시나 상상을 초월하는 오답을 내놓았다.


“사내복지기금을 활용하여 본인 사망 시 유족 위로금을 인상하겠습니다.”


이번엔 웅성거림도 없었다. 다들 어이가 없어서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인사팀은 답변이 만족스러웠는지 더 이상 질문이 없으면 설명회를 종료하겠다고 하고 화면을 껐다. 옆자리 동료가 사내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      아마 팀장님 부군도 팀장님 사번이랑 비번으로 접속해서 설명회 보셨을걸?


-      조문 갔을 때 나한테 팀장님 사번 물어보시더라고.


팀장의 비번은 딸 이름과 생일의 조합이었다. 외우기 귀찮아서 모든 사이트에 똑같은 비밀번호를 사용한다고 했다. 팀장의 사번과 비번으로 사내 시스템에 접속했다…그런데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본인 사망에 의한 퇴사’ 처리되어 있었다. 팀장이 혹시 나에 대해 뭐라고 뒷담화한 게 있는지 보려고 했는데. 욕을 먹기도 하기도 싫어했던 팀장은 분기마다 평가 때 모든 팀원에게 공평하게 중간 단계를 체크했다. 그래도 팀장도 사람이니까 입사동기나 친한 팀장에게 우리 팀에서 날로 먹고 있는 나에 대해 하소연을 했을 것 같았다. 이제 그 기록은 날아갔다. 팀장이 초과근무를 불평하거나 이사에게 모멸감을 느낀 후에 이사 욕을 했을 메신저와 메일도 증거 인멸되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내가 죽었어도 내 메일과 메신저 기록이 사라졌겠지. 한 때는 내게 쓴 메일함에 팀장의 만행을 일지 적듯이 적어 두면 내가 죽은 후에 인사팀에서 메일함을 뒤져 내 기록을 발견하고 팀장을 징계해 줄 거란 상상을 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노동부에서 실태조사를 나왔다. 이사의 폭언폭행을 신고하라고 했다. 노동조합에서도 제보를 받았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 다 끝난 일이라 귀찮기도 하고 해서 노동부와 노동조합의 메일을 휴지통으로 보내 버리고 회신하지 않았다. 차기 팀장으로 승진이 유력한 차장은 노동부와 노동조합에 메일을 보냈을까. 만약 화장실에서 죽은 사람이 팀장이 아니라 나였다면 ‘동료’ 중에 누가 나를 위해 신고와 제보를 해 주었을까. 팀장은 내가 왜 죽었는지 생각해보고 반성을 했을까. 하루아침에 팀장을 잃고 무슨 고아처럼 다들 일손을 놓고 팀장의 빈 자리만 흘긋거리는 팀원들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내가 죽었어야 했어. 아, 그럼 차장은 승진을 못 하겠지.


직원들 생각은 나와 달랐는지 노동부와 노조로 ‘메일함이 터질 정도로’ 제보 겸 성토 메일이 쇄도한다고 했다. 블라인드에도 ‘개 같은 이사’ 밑에서 고생했던 직원들의 증언이 넘쳐 났다. 다들 우리 회사의 참혹한 노동 실태를 고발하며 이 사건을 널리 퍼뜨려 달라는 비참한 투사들이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남들이 기획안 짜내느라 야근하고 있을 때 무능한 나는 할 일이 없어서 일찍 퇴근했고 이사가 쌍욕을 한다는 회의는 나와 아무 상관없었다. 팀장이 일을 안 줘서 본의 아니게 놀고먹은 나는 이 판에 낄 수 없었다. 팀장은 이사의 피해자였지만 나에겐 가해자였다. 나는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지.


노동조합에서는 1층 로비에 추모공간을 조성했다. 흰 현수막에 검은 글씨로 ‘초과근무 실태 조사하라’. ‘대표와 이사에 대한 징계수위 높여라’, ‘직장갑질 근절하라’, ‘우리는 정시퇴근하고 싶다’ 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렇잖아도 출근길이 저승길 같은데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장례식장 같아서 꼴보기 싫었다. 출근하는 직원들은 하나 둘 노조가 미리 준비해 둔 흰 국화를 영정 대신 ‘지난 X월 X일 우리의 소중한 동료를 잃었습니다’로 시작되는 노조의 조의문 앞에 바치고 방명록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저 추모의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 했는데. 일 욕심 많은 팀장 대신 출근하자마자 ‘어떻게 하면 퇴근 시간까지 버티다가 칼퇴근할까’ 라는 생각부터 하고 있는 내가 ‘소중한 동료’가 되었어야 했는데. 내가 죽었다면 회사도 조용할 텐데. 저 넘치는 추모가 내 것이어야 하는데. 내가 죽을 땐 회사와 팀장에게 엿을 먹이고 죽어야 하는데.


다들 예상했던대로 차장이 팀장으로 승진했다. 대체 이게 무슨 행운이야. 팀장이 승진하지 못 하면 만년 차장으로 있었을 사람이었다. 팀장이 팀장 이상으로 승진하려면 이사가 되어야 하는데 이사 자리가 그리 쉽게 나는 건 아니니까 차장도 팀장으로 승진하려면 하세월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팀장이 죽어서 빈 자리를 잽싸게 꿰차고 차장에서 팀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 중이라 메신저로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팀장이 죽은 건 죽은 거고 승진은 축하해야지.


-      축하드려요!


-      축하드립니다!


누구 덕에 출세했네. 새로운 팀장도 이제 이사가 주재하는 회의에 들어가 쌍욕을 듣겠지. 사람 쉽게 바뀌는 거 아니니까 그깟 ‘감봉 3개월’ 징계에 입을 다물 이사가 아니다. 새로운 팀장님은 나에게 업무를 주실까나. 새로운 팀장은 한 명 씩 화상으로 개별면담을 하겠다고 했다. 새 팀장은 나에게 어떤 업무를 하고 싶냐고 묻고 내가 그 업무를 해야 하는 이유를 대라고 했다.


“김 대리님이 하는 일 저도 같이 하고 싶은데요…”


“왜 하고 싶어요?”


“…남들 다 하니까요.”


“하면, 잘 할 수 있어요?”


“해 봐야 알 거 같습니다.”


“일단 알았어요.”


이번에도 글렀나 보다. 차장을 화장실에 목매다는 상상을 했다. 내가 뒷정리는 잘 해 줄 수 있는데. 차장까지 죽으면 일손이 부족해서라도 내게 기획을 시키겠지. 사내에서 두 명이나 죽으면 이사도 감봉 3개월이 아닌 정직 3개월쯤은 받겠지. 내가 죽거나, 아니면 팀장이 죽거나. 누가 죽는 게 더 나을까. 쓸모없는 내가 죽으면 아무 타격 없겠지. 그러면 역시 새 팀장이 죽어야 할 것이다.


“이윤 대리, 나는 이윤 대리 포기 안 해요. 이윤 대리가 우리 팀 중에 제일 학벌 좋잖아. 그럼 일도 잘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이윤 대리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고민해 볼 테니까 이윤 대리도 같이 고민해 봐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차라리 새로운 팀장이 날 포기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 팀은 나만 1년 전에 내가 있던 TF가 폭파되면서 어디든 받아주는 곳을 찾아 굴러들어왔고, 나머지는 경력직 채용을 해 대서 나 빼고 다들 이쪽 업계에서 잔뼈가 굵다 못해 통뼈가 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나만 혼자 겉돌면서 다른 사람들이 척척 하는 일을 어버버 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날 붙잡고 하나하나 생초보 가르치듯이 교육할 여유도 없고.


“이윤 대리도 자기한테 어떤 업무가 맞는지 고민해 봐요. 이윤 대리가 가고 싶은 팀이 있으면 갈 수 있도록 최대한 알아봐 줄게요.”


전 팀장이 나를 이용해 먹었다면 새 팀장은 나를 배제하려고 한다. 역시 화장실에선 내가 목을 맸어야 했다. 새 팀장에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골칫덩이였다. 1년 동안 업무를 익히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하지만 나에게 일 다운 일을 줬어야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거잖아.


내게 하고 싶은 업무를 물었던,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던, 내가 다른 팀에 가는 걸 도와주겠다던 새 팀장의 팀장 노릇은 초반부터 고되었다. 아직 팀장 자리를 장악하기 전인데도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감봉 3개월’ 이사의 메신저가 쏟아졌다. 메시지가 오고 나서 5분 내에 응답하지 않으면 전화가 걸려 왔다. 새 팀장은 샤워할 때도 폰을 들고 들어간다고 했다. 환청으로 메신저 알림음이 들린댔다. 이사는 전 팀장의 죽음 이후 뭔가 대오각성하셨는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겠다고 했다. 이사가 연락하는 이유는 “서비스 알림음이 큰 것 같으니 조금만 줄여라. 이용자가 놀라서 죽을 일 있냐”는 식으로 사소하고 쪼잔한 이유였다. 지금까지 알림음에 놀라서 죽은 이용자는 한 명도 없는데. 이사가 아니라 진상 고객 같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사가 고치라면 고쳐야지. 고쳐 놓으면 다시 전화해서 “내가 언제 그 정도로 줄이랬냐. 이렇게 해서 들려? 김 팀장 귓구멍엔 이게 들리냐고!”하고 버럭댔다고 했다.


이사는 나이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이제 꼰대인데도 자기가 힙하다고 생각했다. 주말에 인기가요 1시간 보는 것 가지고 힙스터가 된다면 나도 너도 다 힙할 수 있겠다.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이랑 콜라보를 하든가, Z세대도 열광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란 말이야!”라고 이사는 업무지시를 내렸다. 아이돌과 콜라보는 예산 문제로 결렬되었지만 우리 팀에서 제일 나이 어린 대리는 젊다는 이유만으로 ‘Z세대가 열광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 내야 했다. 나에게 그 과제가 왔으면 어땠을까. 나도 아이돌과 콜라보라는 쉬운 해결책을 내놓았겠지. 막내 대리는 야근 수당도 못 받고 야근하면서 ‘귀여운 캐릭터 활용’이라는 이사 못지 않은 아이디어를 냈고 새 팀장에게 수정 받아서 기획안을 이사에게 올렸다. 그 정도 아이디어는 나도 내겠다. 하지만 나에겐 기회가 없겠지. 캐릭터를 곳곳에 심는 거나 아이돌과 콜라보나 뭐가 그리 크게 다를까 싶었는데, 이사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사 회의실에서 큰소리로 쌍욕이 터져 나왔다. 팀장이 죽은 이후 오랜만에 듣는 큰소리였다. 이사님 아직 살아 계시네. 정정하신 거 보니 안 잘리고 오래오래 임원직 유지하시겠네.


회사 로비 1층에 분향소가 놓이고 차장이 팀장으로 승진한 걸 제외하면 바뀐 게 없었다. 노조는 추가 노동과 직장 갑질을 하지 못 하도록 시스템을 점검하고 문제 있는 임원을 책임지고 퇴직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개 같은 이사 하나 제대로 내쫓지 못 하고 있었다. 아, 개 같다는 건 이사가 대표에겐 꼬리치고 부하직원에겐 짖는다는 의미다. 노조는 죽은 팀장을 직장내 부조리에 항거한 투사로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사실 그냥 이사와의 회의가 두려워서 죽음으로 도피한 나약한 인간 아니었을까. 이사와의 회의에 들어가는 팀장 중에 그 팀장만 죽었다. 팀원들에게 일을 나눠주지 않고 자기 혼자 끌어안고 끙끙대다가 망했다. 차장에게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 해 줬다. 나한테 매번 ‘다음에’라고 하더니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팀장이 바뀌면 ‘다음에’가 ‘이번에’가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일 잘 하는’ 팀장 말고 ‘일 못하는’ 내가 죽었으면 노조도 ‘직장갑질’이란 말을 못 하겠지. 나에게 하는 욕은 ‘직장갑질’이 아니라 정당한 질책이 되었을 테니까. 그러게 일 못하는 나도 살아 있는데 왜 자기 혼자 일을 끌어안고 끙끙대다가 죽었을까.


“헌화하시고 방명록 작성해 주세요.”


퇴근길에 분향소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니까 분향소를 지키던 노조원이 다가와서 흰 국화를 내밀었다.


“아,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나도 모르게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말에 노조원이 어색하게 물러났다. 방금 내가 전단지 알바 뿌리치듯이 해서 기분 상했을까. 노조는 팀장의 죽음을 산재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팀장이 산재라면, 나도 우울증을 산재로 처리해서 한 세 달 정도 휴직할 수 있을까. 팀장이 바뀌어도 내 업무와 팀 내 위치는 변화가 없는데. 석 달쯤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나면 팀장의 죽음도 묻히고 죽고 싶은 내 마음도 가라앉지 않을까. 아니면 석 달 동안 이직을 알아 볼까. 이직은 안 되겠지. TF는 산산조각 공중분해 되어서 경력이 물경력이 되었고 이 팀에서는 일 같은 일을 못 했으니까. 새삼 죽은 팀장이 미워 진다. 이미 죽은 사람 미워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아는데도.


“그거, 주세요.”


노조원에게서 흰 국화꽃을 받았다. 내가 죽어도 노동조합은 분향소를 세우고 회사와 싸워 줄까. 내가 죽으면 ‘업무 부적응’으로 죽었다고 할 텐데 그게 회사와 노동부에 호소할 이유가 될까. 흰 국화꽃을 들고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사내 편의점에서 500ml짜리 생수를 샀다. 사무실로 돌아가 내 책상으로 가서 화병 대신 생수통 뚜껑을 열고 흰 국화꽃을 꽂았다. 사원정보에 있는 증명사진을 확대해서 프린트했다. 입사할 때 찍은 사진이었다. 패기있게 웃고 있는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조금이라도 예상 했을까. 회사 근처 다이소에 가서 액자를 사 왔다. 액자 안에 증명사진을 넣고 흰 국화꽃 앞에 놓았다. 나만의 작은 분향소였다. 아무도 내 죽음을 추모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면 되겠지. 팀장이 죽었던 화장실 칸은 아직까지도 항상 빈 칸이었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변기 뚜껑을 내리고 그 위에 올라서 보았다. 아차, 다이소에서 등산용 로프도 사 왔어야 했는데. 번지점프를 하듯 변기에서 뛰어내렸다.


노동부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죽은 팀장뿐 아니라 여러 부서에서 주 52시간을 넘는 초과근무를 하고 있었다. 회사는 서비스 출시일을 맞추느라 초과근무를 한 직원들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벌금도 내고 초과근무수당도 지급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이사와 대표의 징계에 대해서는 말을 얹지 않았다. 노조는 이사의 해임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못 들은 척 했다.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났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투였다. 팀장의 유족들에게는 조의금 1억 원이 지급되었다. 전직원에게 대표의 ‘해명’ 메일이 왔다. 앞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무슨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결국 이렇게 끝, 이었다. 팀장은 생전에 말했다. 전업맘들이 워킹맘은 자아실현하려고 회사 다니는 줄 아는데, 자기는 생계유지를 위해 출근한다고. 남편이 사업하는데 돈이 잘 벌리지 않아서 팀장이 가장이라고. 가장을 잃은 값이 1억 원이면 충분할까. 이제 팀장의 남편은 사업 대신 어디든 취직해서 월급을 받아와야 딸을 학원 뺑뺑이 돌릴 수 있겠지. 팀장의 남편은 1억 원을 받고 더 이상 회사에 항의하지 않고 조용히 살 수 있을까.


팀장의 남편 자리에 우리 부모님을 넣어 봤다. 나는 남편도 아이도 없으니까. 부모님은 항상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했다. 1억 원이 있으면 지금 살고 있는 집 전세금에 더해서 집을 살 수 있다. 부모님은 늘 전세살이를 청산하고 내집마련을 하고 싶어했으니까 1억원이 있으면 요긴하게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은 데모를 싫어하니까 노조가 시위하는 것도 말릴 것이다.


노동부의 조사가 끝난 후 노조는 퇴근길에 회사 로비에서 구호를 외쳤다.


“이사를 해임하라!”


“대표와 이사에 대한 징계수위 높여라!”


“직장갑질 근절하라!”


“우리는 정시퇴근하고 싶다!”


다들 대학 다닐 때 운동권이 아니었는지 엇박이 나고 목소리도 어딘지 쑥스러웠다. 힘주어 외치기엔다들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사는 해임되지 않고 대표는 경고 처분에서 끝날 것이며 직장갑질은 근절되지 않고 시간외 근무는 여전하리하는 걸. 시위대에 합류하지 않고 멀찍이서 나와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구호를 들었다. 누군가 날 위해 퇴근 후에 시간을 내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나는 이런 요란스러운 죽음이 부러웠다. 나도 원래 계획했던 대로 화장실에서 목매서 죽으면 연쇄살인처럼 보여서 노동부가 아닌 경찰에서 수사를 나올까. 회사를 또 한 번 시끌벅적하게 뒤집을 수 있을까. 두 번째는 다른 방법으로 죽어야 할까.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많이…아플까?


이미 죽은 팀장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유서를 주머니에 넣고 죽으면 고인을 징계할 수 없어서 유야무야 묻혀 버릴까. 회사의 책임이 줄어들까. 어떻게 해야 전현직 팀장들과 회사를 다 엿먹일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시위도 야근으로 셈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구호 외치는 소리가 귀에 왱왱거려 노조원들을 헤치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정시출퇴근해서는 승진 못 해”라던 팀장 말이 생각났다. 전임 팀장의 자리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우리 팀에선 정리한 사람이 없으니 죽은 팀장의 남편이 들러서 정리했나 보다. 내 자리에는 내 사원증 사진이 영정사진처럼 검은 틀 액자 안에 있었다. 물에 줄기를 담가 둔 흰 국화는 벌써 시들거렸다. 국화꽃 향기를 맡았다. 사무실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신임 팀장의 자리를 건너다보았다. 전임 팀장이 일을 시킨 것도 아니고 인수인계를 세세하게 해 준것도 아닌데 어느 날 덜컥 팀장이 되어 버린 전 차장 현 팀장은 나름대로 사는 게 버거워 보였다. 그러니 내게 맞는 일을 찾아 준다고 해 놓고서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지. 나는 그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꽁꽁 숨어서 웅크리고 있다가 월급이나 받아 먹어야지. 솔직히 팀장이 무슨 업무를 준대도 잘 할 자신이 없었다. 너무 오래 방치되어 있었다. 팀장이 일을 주면 나는 사직서를 줘야지. 어느새 공무원 시험 합격 수기를 검색해서 읽고 있었다.


나는 일이 무섭고 회사가 두렵다. 이러니 일을 못하지. 나는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언제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숨어 지낼 수 있을까. 출근할 때마다 세상이 무너져서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었음 좋겠다고 빌었다. 나 대신 전임 팀장의 세계가 무너졌다. 회사는 아무 일 없이 잘 굴러갔다. 세상은, 회사는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먼저 힘들고 지치고 어쩌면 무너질 것이다. 팀원들은 왜 팀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지 못 했을까. 왜 아무도 팀장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까. 괜찮냐고. 팀장은 왜 죽기 전에 이사에게 아무 말 못 했을까. 나는 지금 괜찮지 않다고. 팀장이 내 말을 안 들어줬듯이 이사가 팀장 말을 듣지 않을까 봐 그랬을까.


전임 팀장의 빈 책상을 손으로 쓸었다. 벌써 먼지가 내려앉았다. 책상이 언제까지나 비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차장이 팀장의 자리를 물려받았듯 누군가 이 책상을 쓰게 되겠지. 시간이 지나면 팀장이 목을 맸던 화장실 칸에서도 누군가 폰을 들여다보고 졸고 울고 싸고 숨을 것이다. 팀원들은 새로운 팀장이 나눠 준 업무를 하면서 새 팀장의 업무 스타일에 맞춰 갈 것이다.


내 자리를 정리했다. 컴퓨터를 끄고, 휴대폰 충전기를 뽑고, 휴가 다녀올 때마다 하나씩 사 왔던 자석들을 파티션에서 떼 내고, 프린트한 자료들을 세단기에 넣어 갈아 버렸다. 회사에서의 몇 년이 박스 하나 안에 다 담겼다. 텅 빈 책상 위에 흰 국화꽃과 사원증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만 남았다.


박스를 안아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시위가 끝난 로비는 조용했다. 이사는 해임되지 않고, 대표는 경고 처분으로 끝나고, 직장갑질은 근절되지 않고, 야근은 없어지지 않고, 분향소는 어느새 없어질 것이다.  분향소 방명록을 한 장 뜯어 유서를 썼다. 오래 생각해서 급하게 쓴 유서를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분향소에서 흰 국화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무엇인가 떨어졌다. 전 팀장이 변기 뚜껑 위에서 뛰어내렸듯이. 지금까지의 회사 생활이 부서지고 박살 나고 흩어졌다. 사무실로 돌아와 내 자리에 섰다. 시든 국화꽃을 버리고 새 국화꽃을 물병에 꽂았다.


흰 국화꽃이 나를 향해 웃었다. 꽃잎이 흔들렸다. 내게 손짓하듯이. 나는 기꺼이 흰 국화가 내민 구원을 손 내밀어 잡았다. 머리에서 흰 꽃잎이 돋아났다. 몸통이 줄기가 되고 팔다리가 이파리가 되었다. 책상 위에 흰 국화와 내 사진이 놓여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내가 어수선한 회사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내가 한 송이 국화꽃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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