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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켠 Aug 29. 2024

로프 텐트 나이프

나는 사이코패스이며 엄마다. 나는 내 아이를 해치지 않을 수 있을까.

남편이 돈을 주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이를 임신한 후부터 그랬다. 연애할 때는 늘 더치페이를 했다. 영화 보고 영화관과 가까운 식당에서 밥 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영화 얘기하는 심심한 데이트였다.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 때 본 영화가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수도권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입사동기 사내 커플이었기에 취향도 씀씀이도 소득도 자산도 비슷했다. 대학을 졸업했으니 취업을 하고 취업을 했으니 결혼을 해야 겠다, 하던 차에 신입 사원 연수 때 같은 팀이던 남편과 사귀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게 접근했다. 목석처럼 무심한 게 그의 매력이었다. 그와 함께라면 웃을 일은 없겠지만 화낼 일도 없을 거라 예측했다.


나는 튀지도 모나지도 않게 굴곡 없이 무난하고 안정적으로 살아왔다. 취향도 취미도 특기도 없었다. 남들처럼, 남들 하는 거 하고 남들만큼 사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삶의 단계를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올라갔다. 연애를 했으니 결혼을 해야 했다. 프러포즈는 내가 했다. 회사 근처 신도시에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청약을 넣어야 한다는 말에 남편은 “응,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결혼 후에는 생활비를 공평하게 절반씩 부담했다.


결혼을 했으니 아이가 있어야 했다. 규칙적으로 시도했고 계획한대로 임신을 했다. 산부인과에 가고 아기용품을 사들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남편은 생활비 계좌에 돈을 입금하지 않았다. 잊지 말고 자동이체를 해 놓으라고 할 때마다 남편은 내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응, 알았어.”라고만 했다. 왜 입금을 하지 않냐고 하면 남편은 “할게”라고 하고선 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당장 해”하고 하면 남편은 입도 벌리지 않고 “응”이라고만 하고 입금하지 않았다. 남편은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오고 주말에도 집에만 있었다. 바람을 피우지도 않고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지도 않고 취미에 돈을 쓰지도 않았다. 그냥, 돈을 안 내도 되니까 안 낸다. 남편이 돈을 내지 않아도 내가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을 내니까.


사람은 안 해도 되면 안 한다. 만만해 보이면 무시한다. 이게 내가 직장에서 배운 교훈이다. 나는 일을 꽤 잘 한다. 나는 친절하지 않은 고객서비스 담당자다. 내가 직접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는 건 아니고, 본사에 근무하면서 고객센터를 관리한다. AI 자동 콜을 도입해서 콜센터 인력 감축을 하고, 고객센터 상담원들이 입으로는 전화를 받으면서 손으로는 채팅 상담을 해야 도달 가능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콜센터의 불만을 찍어 누르고 실적을 관리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업무는 고객 센터에서 응대를 하다하다 포기한, “책임자 나와!”하고 악쓰는 악성 진상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다. 이번에는 본사 사옥에서 분신자살을 하겠다는 고객님이다. 고객님이 듣지도 않을 “어머 많이 속상하시겠어요”같은 쿠션어는 버리고 침착하게 고객님을 상대한다.


“고객님의 자살을 말리지 않으면 제가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고객님의 번호를 경찰에 제출하겠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하면 ‘긴급한 생명의 위협’이 있을 경우에는 고객님의 개인정보를 경찰에 제공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이 번호로 연락 드리면 될 지 확인 부탁드립니다…자살을, 안 하신다고요? 처음 통화할 때 안내멘트 들으신 대로 이 통화는 녹음되고 있는 거 아시지요? 고객님께서 자살을 안 하신다고 하셨으니 일단 경찰에 연락은 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더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네, 없으시다고요. 좋은 하루,”


진상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또라이에게는 개또라이로 응수해야 한다. 피가 돌고 심장이 뛰고 즐거워 미칠 것 같다. 인간의 악의와 공격성을 마주하는 일이 짜릿하다. 이 일은 나에게 천직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무표정한 얼굴로 통화한 내용을 정리해서 자살협박 고객을 대하는 매뉴얼을 만든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내면의 공격성과 광기를 적확한 상대에게 합법적으로 표출하면서 나를 통제해 왔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나서부터는 나를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자꾸 생겼다.


아기가 태어나기 거의 직전에 아파트가 완공되었다. 나와 남편과 아이가 입주한 아파트는 신도시에서 첫번째로 착공되어서 제일 좋은 입지에 위치했다. 모델하우스에서 들은 설명대로라면 아파트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전철역이 들어오고 단지 내에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품고 아파트와 연결된 대형 상가에 마트부터 카페에 학원까지 다 들어왔어야 했다. 하지만 아파트를 분양받은 시점은 부동산 경기가 꼭지점에 다다른 때였고 그 후 집값은 계속 떨어졌고, 옆 단지에 짓고 있던 대단지 아파트는 철근을 빼먹은 부실공사가 적발되었다. 재시공을 해야 했지만 불경기에 비용을 감당할 수 없던 건설사는 짓다 만 흉물만 황무지에 남겨 두고 손을 놓았다. 그게 신호였는지 다른 아파트들도 줄줄이 착공이 연기되었다. 우리 아파트만 허허벌판에 등대처럼 우뚝 솟아있었다.


전철역은 착공도 하지 않았고 상가는 텅텅 비었다. 신도시에서는 잠만 자고 출퇴근이든 쇼핑이든 하려면 다른 도시로 나가야만 했다. 택시는 신도시에선 승객이 잡히지 않는다며 신도시로 들어오지도 신도시에서 나가지도 않으려 했다. 신도시에서 자가용 없이 밖으로 나가려면 공터에 드문드문 서 있는 정류장을 어쩌다 지나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가서 전철을 타야만 했다. 입주민들은 집값의 90% 정도 가격에 전세를 놓고 갭투자로 10%만 대출을 받아 집값을 해결하려 했지만 교통도 불편하고 편의시설도 직장도 없는 신도시에 그런 터무니없는 전세금을 내고 들어올 호구는 없었다. 대출 금리는 올라갔고 자금을 조달하지 못 하고 입주를 포기한 빈 집이 드문드문 충치처럼 새 아파트에 박혀 있었다.


남편이 나보다 일찍 일어나 차를 타고 출근해 버리면 나와 아기만 집에 혼자 남았다. 차를 한 대 더 살까 했지만 이 집을 사느라 대출받은 돈을 갚으려면 차 한 대를 더 굴릴 여유가 없었다. 프랜차이즈 카페도 없는 동네에서 독박육아를 하려니 아기를 유아차에 태우고 아파트 주위를 돌아다니며 흙먼지를 마시는 게 유일한 기분전환이었다. SNS에 보면 아기가 '작은 남친' 같을 정도로 사랑스럽다는데 나에게 아기는 '작은 짐승' 같았다. 먹고 싸고 울고 먹고 싸고. 나는 아기가 나를 조건 없이 온 힘을 다해 사랑해줄 거라고 기대했다. 아이의 세상에는 아직 나 밖에 없으니까. 그럼 나도 이 작은 인간을 사랑해주고. 나도 '사랑'이라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줄 았았다.


그러나 내 젖을 빠는 파충류는 내 사정 따위 전혀 봐 주지 않는 독재자였다. 아무 이유 없이 숨 넘어가게 울어댔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어색하게 달래주고 비싼 분유를 정확한 온도로 데워 먹이고 장난감을 쥐여 주고 흠뻑 젖어 가며 목욕을 시켜줘도 아기는 악을 쓰며 울었다. 나는 아기를 똑바로 보면서 연하고 부드러운 몸을 눌렀다. 이래도 울 거야? 이래도? 나는 이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평생 깨어있는 시간 내내 나를 잘 통제해왔는데 내가 낳은 아기가 나를 잠깐 통제불능으로 몰아갔다. 아마 1초만 더 눌렀으면 아기는 조용해졌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엄마의 모성애가 아니라 살인범의 머리로 뒷일을 염려했다. 병원에 가면 어른 손으로 눌러 작은 뼈가 뚝뚝 부러진 골절상이 있을 테니 영아돌연사라고 우길 순 없을 테고, CCTV가 없는 신도시 외곽에 암매장을 한다 해도 출생신고를 해 버렸으니 아이가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되면 공무원들이 왜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지 조사할 테니 여기서 멈춰야 겠다고.


퇴근한 남편에게 담담하게 아기를 죽이려고 했다고 하며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육아휴직을 다 쓰지 않고 출근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흔한 산후우울증이라고 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데 아기가 원장 앞에서 내 상의를 죽 잡아 당기더니 옷 속에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다. 내가 하지 말라고 찰싹 때렸는데도 내가 당황하는 꼴을 보며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웃었다. 집에서는 본 적 없는 웃음이었다. 원장은 아기들이 아직 '뭘 하면 안 되는지' 몰라서 그런다고 했지만 나는 알았다. 이 아기는 가슴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엄마인 내가 창피스러워하는 게 재미있는 거다. 내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니 이 정도 '복수'는 하는 거다. 나도 어릴 적에 유치원에서 어른들한테 주목받고 싶어서 “이건 비밀인데, 아빠가 엄마 때려요”라고 거짓말을 했다. 어른들은 아이가 거짓말을 못 하는 줄 알고 나를 불쌍하게 보고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아기들에게도 악의는 있다. 내 자식은 내가 가장 잘 안다. 이 아이는 내 핏줄이다. 나의 동족이다.


복직 후 매일 마을버스 막차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리며 야근을 했다. 퇴근을 하면 남편이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 와서 먹이고 씻기고 재워 놓았다. 일이 많냐는 남편의 말에 “네가 돈을 안 주니까 야근수당이라도 받아야지”라고 대꾸했다. 남편과 나는 각방을 썼다. 밤에 아기가 울어도 나는 일어나지 않고 눈 감고 누워 있었다. 내가 남편보다 늦게 퇴근하니까 내가 더 피곤하다. 남편은 스마트폰 알람을 진동으로 해 놓아도 아침에 깨서 출근하는 사람이니까 나보다 아이 울음소리가 잘 들릴 것이다. 신혼 초 맨발에 먼지뭉치가 밟혀도 나는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고 남편이 청소기를 잡을 때까지 잘 참았다. 남편은 우는 아기를 달래다가 결국 아기와 같이 잠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회사에 가면 자기가 육아를 다 한다는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라고 푸념하듯 자랑했다. 사내커플인데 남편이 가정적이면 나는 회사적인가. 남편은 집에 돈을 안 준다는 말은 회사에서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한 말을 전했다. 아이가 친구의 포크를 뺏아서 친구를 찔렀다고 했다. 선생님이 다른 곳을 보는 사이에 그랬다고. CCTV가 있어서 선생님 잘못이 아니란 게 밝혀져서 친구의 엄마와는 원만하게 넘어 갔다고. 유아용 포크라서 뾰족하지 않아서 상처도 없었다고. 직장어린이집이라 친구 엄마도 우리 회사 직원인데, 우리집 아이가 문제아라고 소문나면 어쩌냐는 내 걱정에 남편은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큰다고 했다. 남편은 아이는 우려하지 않고 직장에서 평판을 신경쓰는 엄마가 이상하지도 않은가 보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 말 안 듣고 친구를 괴롭히면 친구도 선생님도 엄마도 너를 미워하게 될 거야. 아무도 너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


아이를 붙잡고 저주인지 예언인지 훈계인지 모를 말을 퍼부었다. 이런 말을 하면 아이가 나를 미워하게 되겠지.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


아이가 못 주는 사랑을 진짜 짐승에게 받아보고 싶어서 따듯하고 작고 보드라운 햄스터를 한 마리 사 왔다. 잠깐 아이와 햄스터를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이가 햄스터를 손에 꽉 쥐더니 벽에 던졌다. 공을 던지듯이. 아이는 뼈가 부러져 죽은 햄스터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손뼉 치며 웃었다. 아이의 손에서 죽은 햄스터를 빼앗고 “네가 햄스터를 죽였어”라고 또박또박 알아듣게 말해주었다. 남편은 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힘조절도 안 되는 어린애라서 그런다고. 한창 공 던지고 노는 거 좋아할 때라서 공놀이하듯이 던졌을 거라고. 하지만 아무리 어린애라도 숨쉬고 따듯한 동물과 딱딱하고 차가운 공을 구별하지 못 한다고? 남편은 아들을 변호했다. 아들이라 좀 거칠다고. 내가 어릴 때 운동장 구석에서 개미들을  마리씩 발로 밟아 으깨 죽였듯이 내 아들도 햄스터를 죽인 걸까. 살인마는 동물학대부터 시작한다는데. 남편은 아들이 너무 일찍 어린이집을 가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 같다며 에너지를 발산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아들과 몸 쓰며 잘 놀아주는 편이었다. 퇴근 후 잠깐 거실에 미니골대를 놓고 '공 쫓아 달리기'도 하고 주말에는 차를 타고 옆도시 키즈카페에 가기도 했다. 그럴 때 나와 남편과 아이는 정상적인 가족 같았다. 나와 남편도 평범한 부부 같았다. 일상적인 대화도 하고 함께 때때로 섹스도 하고. 남편은 돈을 주지 않고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지만. 아이는 겉으로 보기엔 무난하게 잘 자라는 것 같아 보인다. 아이에게는 아빠가, 성인 남자가 있어야 한다. 이 아파트에 깔린 대출금을 다 갚고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돈을 주지 않는 남편과 이혼할 수 없다.


아들은 어린 것이 영악하게도 어린이집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앙 하고 눈물 없는 가짜 울음을 지어냈다. 노련한 선생님이 속아넘어가지 않자 그 작은 머리를 굴려서 소소한 말썽을 피워댔다. 다른 친구가 자기보다 높이 올라가는 게 싫다며 그네 타는 친구를 뒤에서 잡아당겨서 어린이집에서 내게 연락이 왔다. 포크 사건을 넘어갔더니 스케일이 커졌다. 나는 답을 보내지 않고 그대로 남편에게 메세지를 토스했다. 아이는 놀이터 출입을 금지 당하자 다른 반 교실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데리러 올 때까지 퍼질러 앉아 있었다. 아이는 선생님의 눈길이 다른 아이에게 가는 걸 못 견뎌 했다. 아이는 햄스터를 던졌던 손으로 자기 얼굴을 때리며 깜찍하게 자해를 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가정에서 양육자의 애정이 부족한 게 아닌지 물어 봤다. 남편은 그 말을 빼먹지 않고 내게 전했다. 나는 남편에게 아들과 더 열심히 놀아주라고 했다.


“애가 어린이집에서 거짓말을 한대. 엄마가 자기 때린다고. 어떻게 때리냐고 선생님이 물어 봤더니 막 꾹꾹 눌러서 숨이 막힌다고 했대.”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이가 기억하나 보다. 남편이 별 일 아니란 듯 손을 내저었다.


“선생님 말로는, 그 나이 대 애들 거짓말하는 거 흔한 일이래. 어떤 애는 집에 가서 선생님이 때린다고 해서 난리가 났는데, 원장 선생님이 뭘로 때렸냐고 물어보니까 웃으면서 '공주님 요술봉이요'이랬대. 차라리 거짓말이 낫지. 안 그래?”


직장 어린이집은 이래서 안 좋다. 아이가 어지간히 문제아였는지 보호자들 사이에 도는 소문이 회사까지 전해졌다. 야근하는 내게 팀장이 다가와 얼른 퇴근해서 아이를 봐야하지 않냐고 했다. 남편이 가정적이라서 칼퇴근해서 애를 잘 보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어차피 남편이 한 대 뿐인 차를 혼자 타고 퇴근하면 나는 러시아워를 피해 늦은 시간에 전철을 타고 환승해서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게 덜 피곤했다.


주말에 늘 그렇듯이 화목한 가족처럼 키즈카페에 다녀 왔다.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밀쳐서 다툼이 있었고 부모들끼리 시비가 붙으려 해서 내가 키즈카페 알바를 불러다가 기구가 균형이 안 맞아서 아이가 미끄러져서 이렇게 된 것 같으니 시설 점검 좀 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SNS에 아이가 다치는 사고영상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남편에게는 아들이랑 진빠지게 놀아주느라 피곤했을 테니 내가 운전하는 동안 집에 돌아오는 내내 조수석에서 푹 잠이나 자라고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작은 사고가 났다. 주차장이 좁아서 조수석의 남편이 먼저 내린 후에 주차를 하려고 했는데 순간 착각해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엑셀을 밟는 실수를 해서 남편을 살짝 치어 버렸다. 시동 걸기 전에 브레이크 밑에 캔이 있어서 치워두긴 했는데. 누가 그랬을까. YES, I CAN. 네, 나는 캔입니다. 캔이 스스로 그랬나. 블랙박스를 미리 꺼 놓았으니 실수인지 고의인지 알 수 없지만. 남편에게 버럭 화를 냈다.


“네가 맨날 운전하느라 내가 너무 오랜만에 핸들을 잡았더니 헷갈리잖아.”


남편은 택시를 불러 타고 병원에 갔다. 크게 다치진 않고 깁스나 좀 하면 될 정도 부상이었다. 아빠가 가만히 앉아서 책이나 읽어주니 아들은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 하고 심심해서 칭얼대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보란 듯이 벽에 머리를 콩콩 박았다. 그 꼬라지를 보고 있으려니 벌써부터 책은 싫어하고 노는 거나 좋아하니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면 어릴 때는 그나마 주위 어른들이 수습해 줄 수 있지만 어른이 되면 혼자 내면에서 충동을 억제해야 남들처럼 사람들 속에서 섞여 살 수 있는데. 남편 말대로 딸이었으면 조용히 책이나 읽고 인형놀이나 하고 수다나 떨었을까.


“네가 깁스 풀기 전에 애가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아서 에너지를 발산 시켜 줄 놀이 선생님을 찾아 봤어. 앱에서 스케쥴 보고 시간제로 선생님을 부르면 되는데, 우리 동네는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알바 하자고 차 끌고 여기까지 올 사람이 없어서 선택지가 별로 없네. 유아교육학과 학생인데 남자래. 남자애들이랑 신체놀이 잘 해 준대. 다음주부터 오기로 했어.”


아무나한테 내 애를 맡길 수는 없으니 하루 휴가를 내서 놀이 선생님을 면접을 보기로 했다. 남편은 내가 휴직이라도 하고 애를 봐야 엄마랑 애가 애착이 형성되어서 애가 정서안정이 되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자식을 방임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나는 애를 소아정신과에 데려가야 하지 않겠냐고 맞받아쳤다. 남편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정신병자로 만든다고, 정신과 약을 먹으면 애가 멍해지고 머리가 나빠진다고 근거 없는 헛소리를 해댔다. 내가 그냥 좀 예민한 아이한테 너무 과민반응하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확대해석을 한다고 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병원에 안 갈 거면 '내 돈으로' 놀이 선생님을 부를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부모가 모두 회사에 있는 평일 낮 시간에 놀이 선생님이 우리 집 문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우리 집 거실에 들어오는 게 싫다고 했다. 맞벌이하는 집은 다 가사 도우미, 등하원 도우미한테 현관 비밀번호 알려주고 빈 집에 타인을 들일 수 밖에 없는데 유난 떨지 말라고 남편에게 면박을 줬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꼭 해야할 말을 했다.


“아, 그리고 보험을 들어야 겠어. 부모 중에 하나가 깁스만 해도 아이가 저렇게 불안해 하는데 부모가 크게 다치거나 죽으면 보험금으로라도 애를 돌봐줘야지.”


보험은 내가 이미 다 알아봤다. 남편은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힌 약관을 대충 읽고 사인을 했다. 연애, 결혼, 육아가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기획하고 검토하고 지시하면 남편은 실행만 했다. 나는 사인을 하지 않았다.


월요일에 놀이 선생님이 오기로 했다. 남편은 깁스를 하고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고 출근하고 나는 휴가를 냈다. 정확한 시각에 딱 맞춰 온 놀이 선생님은 짧게 깎은 머리에 키가 크고 탄탄한 몸매의 젊은 남자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이 불편했죠?”


“아닙니다. 아버지 차를 운전하고 왔습니다. 거의 폐차할 때 다 된 중고차라서 제가 마음대로 쓰라고 빌려 주셨습니다.”


“학생이신데, 학교 다니시면서 이 알바 병행하시는 건가요?”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일 년 동안 학비 벌려고 하는 거라서 자주 불러주시고 여기저기 입소문 좀 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셔서 말투가 선생님이 아니라 군인 같으셨구나. 그런데 저희 애가 좀 유난스러운 데가 있어요. 좀 까다로운 편이죠.”


“그런 애들이 저를 좋아합니다.”


거실에는 아이와 햄스터가 있었다. 아이는 햄스터에 손을 뻗었다. 놀이 선생님은 공을 벽에 던졌다. 공이 벽에 튕겨 나왔다. 튕겨 나온 공에 아이가 맞았다. 놀이 선생님이 공을 자기 쪽으로 던지라고 손짓했다. 아이는 힘껏 공을 던져 놀이 선생님을 맞혔다. 놀이 선생님이 발라당 넘어졌다. 아이는 공을 또 던졌다. 이번에는 놀이 선생님이 민첩하게 공을 잡았다. 약이 오른 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다가 벽에 머리를 박으려고 하자 놀이 선생님이 아이를 꽉 잡았다. 아무 표정 없이 아이를 보면서 다리 사이에 아이를 끼우고 허벅지 근육에 힘을 주고 아이의 팔을 몸통에 붙여서 못 움직이게 고정시켰다. 아이가 어릴 적에 우는 아이를 눌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가 놀이 선생님 품에 갇혀서 한 시간 넘게 바둥거리고 악을 쓰다가 포기했다. 놀이 선생님은 눈썹 한 번 움직이지 않고 아이의 성질머리를 견뎌냈다. 나는 또 목석 같은 남자에 희망을 품는다. 저 사람은 내가 무슨 짓을 하건 나를 견딜 수 있을까. 아니, 다음에는 또 다른 방법으로 어른을 이겨 먹으려 하겠지만 일단 햄스터는 무사하다. 놀이 선생님은 한번도 '햄스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아이가 '정상'으로 보인다. 나도 저 품에 안겨 있으면 '정상인'이 될까.


“이제 착한 아이가 될 거야?”


놀이 선생님의 물음 아닌 협박에 아이는 끄덕이며 이제 화해하고 넘어가자는 투로 놀이 선생님을 안았다. 아이의 표정을 관찰하는 척 놀이 선생님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어플에 등록된 이름과 학교, 학과를 보고 SNS에서 그 이름의 학생을 찾아 냈다. 앱에 등록된 놀이 선생님과는 다른 얼굴이었다. 남편이 알았으면 수상한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다니 미친 짓이라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나도 머리가 있으니 믿을 수 없는 남자와 어린애와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게 위험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일상에 이 정도 스릴은 있어야 인생이 재미있지. 요즘은 진상 고객이 별로 없어서 따분하고 심심했다. 놀이 선생님을 슬쩍 떠 봤다.


“김규혁 교수님 수업 어때요? 제 친구도 그 학교 나왔는데. 학교 다닐 때 하도 과제가 많다고 불평을 해대서 그 이름은 아직도 기억나네요.”


“저는 그 교수님 수업은 안 들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개론이라서 1학년 때 듣는 전공 필수인데요?”


“제가 1학년 때 시간표를 잘못 짜서 복학해서 새내기들이랑 개론 수업 듣게 생겼습니다.”


그 학교 유아육학과에 '김규혁'이라는 교수는 없다. 내가 지금 막 지어낸 이름이다. 놀이 선생님은 아이가 자해 행동을 시도할 때마다 손가락이 길고 큰 손으로 막아주고, 내가 해 주지 않는 포옹을 원없이 해주고 토닥이고 아낌없이 쓰다듬어주었다. 아이는 그 손길을 귀찮아했다. 그제야 놀이 선생님은 아이를 놓아 주었다. 아이는 나에게 다가 왔지만 나는 아이를 밀어냈다.


“양육자가 사랑을 주지 않아서 아이가 건강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서 정서가 불안정해서 문제 행동을 하는 거죠?”


“저는 학부생이라서 잘 모릅니다.”


“그래도 전공 시간에 주워 들은 건 있을 거 아니예요.”


또 재미있는 거짓말을 해 봐.


“그냥 타고나는 겁니다. 그렇게 태어나는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기질로.”


“그러니까 제 잘못은 아니란 거죠? 전공자가 보시기에?”


“양육자의 기질과 아이의 기질이 서로 달라서 맞지 않을 뿐입니다. 아침에 어린이집 가야 하는데 신중해서 느린 아이는 신발 신는데 오래 걸리는데 양육자가 성격이 급하면 아이와 안 맞는 겁니다. 느긋한 성격의 양육자라면 기다려줄 수 있겠지만요.”


“닮은 사람들끼리 결혼해서 서로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저는 결혼생활은 모르겠고, 심리학적으로는, 자신의 어두운 면을 자식에게서 발견하면 자식을 미워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던데, 입대 전에 배운 거라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놀이 선생님이 돌아가자마자 앱에서 최고점을 주고 다음 예약을 잡았다. 아파트 앞 공터에 햄스터를 풀어 주었다. 길고양이가 포복으로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햄스터를 사냥했다. 그냥 타고나는 거다. 그렇게 태어나는 거다. 본능적으로 고양이는 사냥을 하고, 햄스터는 도망을 친다. 나도 아이도 그냥 이렇게 태어난 거다. 심리학적으로, 나는 아이를 미워하게 타고 났다. 이 아이는 그렇게 태어났다. 서로 기질이 안 맞는 거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아이는 점점 예쁜짓을 한다. 어린이집에서도 눈에 띄게 안정되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보호자나 하원도우미들이 어린이집에 올 때마다 배꼽인사를 한다. 어쩌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냐고 비결이 뭐냐고 회사에서 직장 어린이집 보호자들이 물어 봤다. 주 양육자는 아이 아빠인데 사람들이 자꾸 착각한다. 어쨌든 나는 남편 때문에 생긴 문제를 놀이 선생님이 해결해 줬다고 그들이 듣고 싶은 답을 주었다. 남편은 바꿀 수 없지만 놀이 선생님은 새로 들일 수 있으니까.


젊은 놀이 선생님이 지치지 않고 놀아줘서 진이 빠져서 여력이 없어서 사고칠 힘이 없나 보다. 아니면 강자를 알아 보고 복종하거나 착한 아이가 되면 엄마가 놀이 선생님을 부르지 않을 거라 기대하거나. 놀이 선생님 시간을 늘렸다. 이제 놀이 선생님이 낮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하원시키고 아이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와 놀아 준다. 놀이 선생님이 왔다 간 후 남편 앞에서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엄마.”


“아빠가 좋아 놀이선생님이 좋아?”


“턴탱니.”


“엄마가 좋아 놀이선생님이 좋아?”


“턴탱니.”


아이 아빠가 노골적으로 서운한 티를 냈다. '유아교육 전공'인 놀이 선생님이 알려 준 상식이었다. 이맘 때 아이는 아직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선택하는 질문을 던지면 제일 마지막 선택지를 고른다고 했다. 남편은 모르는 육아팁이다. 아빠가 나름 아이와 놀아준다고 놀아줬는데 아이는 돈으로만 육아하는 엄마, 생판 남인 놀이 선생님이 더 좋다고 했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아빠 좋아, 싫어?”


“시러.”


혼자 아들과 친근한 좋은 아빠인 줄 알았는데 거짓말 할 줄 모르는 순수한 아이가 망설임 없이 명확한 선택을 하니 어른스럽지 못 하게 시무룩해지는 남편이 꼴보기 좋았다. 이제 남편도 내가 육아휴직하고 혼자 신생아를 돌볼 때 내 손으로 먹이고 씻기고 재운 아기가 나를 엿먹이듯이 울어댔을 때 기분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을 거다. 놀이 선생님은 이제 평일 내내 오고 주말에도 종종 우리집에 온다. 놀이 선생님이 맡은 남자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나 집에서나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 착한 아이들이 되었다. 놀이 선생님에게는 예약이 꽉 차지만 언제나 내 예약이 1순위다. 남편도 나도 아이에 대해 궁금한 점은 놀이 선생님과 상의한다. 아이는 남편과 나 사이에 그나마 겹치는 대화 주제였는데 이제 남편과 나눌 대화가 없어졌다. 대화 상대의 자리에 남편 대신 놀이 선생님이 들어왔다.


회사에서 시달리고 사는 게 지겨운 어른들은 기운이 넘쳐서 늘 뭔가를 꾸미는 아이와 놀아주지 않고 놀이선생님만 기다렸다. 우리 아이는 이상하지 않고 완벽하게 정상이라고 했던 남편은 아이를 목욕시키면서 말을 걸지 않았다. 남편은 어린애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받아들이는 관대하고 성숙한 어른은 못 되었다. 나는 아이와 정서적 교류 없이 의식주만 책임졌다. 아이들은 혀짤배기 발음으로 매달리는 이 때가 일생에서 가장 귀여울 때라는데, 한창 이쁠 때라는데, 이때 추억으로 남은 육아를 견딘다는데 아이는 내 인생의 공백이 될 것이다. 아이는 사춘기 때 엇나가면서 “이럴 거면 왜 낳았냐”는 반항이나 하겠지. 벌써부터 인생이 시시하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남편은 아침 일찍 차를 타고 출근하며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는 비에 젖어 침울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대중교통을 타고 우울하게 출근했다. 자리에 앉아 숨 좀 쉬려는데 놀이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비가 오는데 키즈카페도 시설점검 때문에 휴업이라고 해서 집 안에서 놀아야 할 것 같은데, 아랫층에서 연락 안 오게 최대한 살살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아랫집 입주 안 해서 빈 집이에요. 하루종일 불 꺼져 있잖아요. 비밀번호도 기본세팅 그대로일걸요?”


놀이 선생님에게 쓸데없는 정보까지 던져 주었다. 그 보답인지 놀이 선생님이 회사 앞까지 '폐차 직전 고물차'를 끌고 마중나왔다. 남편은 비가 오건말건 먼저 혼자 차를 타고 퇴근했다. 이제는 어린이집 하원 핑계를 댈 수 없는데도. 아이에게 낯선 사람 차를 함부로 타면 유괴당해서 다시는 엄마아빠 못 보게 된다고 경고했는데도 나는 냉큼 조수석에 앉았다.


“아버님 퇴근하시는 거 보고 아이 인계하고 왔습니다. 비가 오는데 아직 퇴근 안 하셨다고 해서. 마침 저도 어디 가는 길인데 시간이 맞아서.”


“아이 아빠한테 여기 온다고 얘기했어요?”


“놀이 시간 후에는 어딜 가든 제 사생활입니다.”


“놀이 시간 외에 추가 노동을 요구하면 안 된다고 앱 서비스 약관에 나와 있던 것 같은데요? 저 이제 선생님 예약 못 하게 되나요?”


“제 '친절'입니다. 여기저기 홍보해주신 덕분에 앱에서 인기 순위도 많이 오르고 맡은 아이들도 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놀이 선생님을 소개해 준 아이들도 문제아일 것이다. 걔들 부모이자 내 회사 동료인 인간들은 일도 못하고 성질도 더러운 월급도둑들이니까. 내가 커뮤니케이션이 개판이라 지들끼리 하하호호하는 분위기를 망친다며 내게 동료평가 점수를 낮게 줘서 승진을 막는 새끼들. 놀이 선생님이 편히 쉬라며 조수석 각도를 조정해주는데 발에 뭐가 닿았다. 번개탄이었다.


“제가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지 않으려면 지금 경찰에 자살위험자가 여기 있다고 신고해야 하겠죠?”


글로브 박스를 열었다. 로프와 스위스 나이프가 나왔다.


“자살예방 상담전화는 109번이에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캠핑용입니다.”


놀이 선생님은 신도시의 공터에 차를 세웠다. 어느새 가는비가 그치고 별이 떠 있었다. 이 동네가 차가 별로 없어서 공기는 맑다. 트렁크에서 텐트부터 시작해서 캠핑 용품이 바리바리 나왔다.


“외박해보셨습니까?”


“애엄마가 외박하면 안 되죠.”


“야외에서 캠핑해보셨냐는 뜻이었습니다.”


“아뇨.”


“어렸을 때도 안 해보셨습니까? 아버지랑 같이 캠핑 안 가 봤습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랑스러운 아이는 아니었거든요. 아시잖아요. 제 아이 보시면.”


“모든 아이들은 다 사랑스럽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서 커다란 남자 점퍼를 걸치고 캠핑 의자에 앉아 번개탄으로 피운 불을 멍하니 보았다. 로프로 텐트를 고정시키고 나이프로 남은 로프를 잘랐다. 언제 이렇게 생각 없이 쉬었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살아서 얻은 결과들을 헤아려 보았다. 허허벌판 신도시의 집값이 오르지 않는 아파트, 돈 안 주는 남편, 내가 바라지 않았던 모습 그대로인 아이, 퇴사하고 싶은 회사.


“모든 여자도 다 사랑스러워요?”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남자는 다 사랑스럽다. 연애보다 불륜이 재미있다. 남편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남편을 미친듯이 사랑했어도 나는 기꺼이 새로운 자극에 부나방처럼 몸을 내던질 여자였다. 남편 몰래 비밀을 비상금처럼 가지고 싶다.


“말 편하게 해요. 막 제대한 군인 같은 말투 쓰면서 원래 말투 감추지 말고.”


“한 여자는 사랑스럽죠.”


내 말투를 따라하면서 씩 웃어보이는 남자와 체액을 나누어 비밀결사를 맺었다. 이 밤의 일은 둘만 알고 있기로. 블랙박스를 끄고 CCTV 없는 곳에서 나눈 대화들도. 놀이 선생님이 손을 들어 별을 가리켰다.


“소원 하나 비시죠.”


“별똥별도 안 떨어지는데요?”


“아무 별에나 빌면 뭐 어때요. 떨어지는 별보다는 떠 있는 별에 비는 게 낫죠.”


내 말투로 내가 안 할 말만 골라 하는 남자를 보니 웃겼다.


“나 좀 죽여줘요.”


연쇄살인범은 감옥에 갇히면 죽일 사람이 없어서 자기 자신을 죽인다고 했다. 대기업 직원, 수도권 중산층, 부모의 딸, 동생의 언니, 명문대 졸업생, 남편의 아내, 시부모의 며느리, 아이의 엄마인 내가 사람을 죽이는 건 너무 번거롭고 잃을 게 많은 비싼 일이었다. 평화롭게 일상을 유지하는 대가로 내 인생은 지루해졌다. 동물원의 호랑이는 사육사가 던져주는 닭고기만 먹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를 부수고 지나가는 관람객을 사냥하고 싶지 않을까. 개미를 밟고 햄스터를 아이에게 주는 것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욕망이 있었다. 회사에서 낮은 동료평가를 받고 남편에게 돈을 못 받고 아이에게 사랑을 못 받는 내가 사실은 대단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인정이, 확신이 필요하다.


“착한 아이가 될 거야?”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놀이 선생님이 팔을 벌렸다. 그 품에 폭 안겼다. 놀이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내가 바라고 원하던 포옹과 훈육과 화해가 여기 있었다.




“제가 오늘 좀 늦는데, 앱에는 정각에 출근한 걸로 체크 부탁드립니다. 어플에서 랭킹 떨어지면 다른 놀이 선생님들한테 밀려서...”


늘 성실하게 제 시간에 출근하던 놀이 선생님이 처음으로 지각을 했다. 그 날 회사에, 어린이집에 소문이 퍼졌다. 우리 아이와 같은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유괴되었다. 아이 엄마는 회의 중에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무시했다. 다른 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아이를 납치해서 데리고 있으니 오후 6시 전까지 불러주는 계좌로 돈을 입금하라는 기계음이었다. 만약 그 시간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십 분 늦어질 때마다 아이의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겠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아이의 이빨을 하나씩 뽑고. 물론 마취없이. 오후 5시 50분. 전화를 받은 아이 엄마는 아이가 “손이 아파”라며 징징대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엄마는 아이의 칭얼거림에도 이성을 잃는다. 아이 엄마는 바로 입금했다. 아이는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유괴범은 아이의 눈을 가리고 어떤 집에 데려 갔다. 소리가 울렸다는 걸 보니 텅 비어 있는 집이었나 보다. 유괴범이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천장이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철근 빼 먹다가 공사 중단된 아파트 옆 아파트가 좋은 바닥재를 썼을 리 없었다. 밤에 밖에 나가서 아랫집에 불이 켜져 있는지 보았다. 깜깜했다. CCTV에 찍히면 둘러댈 말이 없어서 비밀번호가 바뀌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유괴범에게 돈을 줘 버리면 범인이 재범을 저지를 거라고 프로파일러처럼 분석하던 회사 동료의 아이가 두 번째로 유괴되었다. 유괴범의 수법도 멘트도 똑같았다. 그 날도 놀이 선생님은 지각을 했다. 나는 기꺼이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었다. 유괴된 아이가 캠핑을 가지 않고 빈 집에 혼자 몇 시간이나 있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아이도 아이의 부모가 돈을 건넨 후 열 손가락이 잘 붙어 있는 아이를 돌려 보냈다.


아직 퇴근 전인데 퇴근한 남편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왠지 차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할 것 같아서 받지 않았다. 진동으로 해 놓은 스마트폰이 계속 울렸다. 옆자리에서 받으라고 눈치를 줬다. 부주의하게 아이를 잃어버려서 유괴나 당하게 해 놓고 남의 스마트폰 진동에 신경 쓸 정신머리는 있나 비웃으면서 복도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없어졌다고 했다. 어린이집에서 놀이 선생님이 하원 시켰다는데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아무도 없다고 했다.


놀이 선생님의 스마트폰은 꺼져 있다. 앱에서도 놀이 선생님이 삭제되어 있다. 아랫집 문 앞에서 키패드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초기세팅된 그대로다. 빈 집에는 아무도 없다.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유괴범의 전화가 오지 않는다. 이전 유괴사건에서 사용된 계좌는 대포통장이라 지금은 사라졌다. 신도시에는 미개발지구가 많아서 CCTV가 없는 곳도 많다. 놀이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도로를 벗어난 후로는 CCTV에 찍히지 않았다. 외박을 했던 곳으로 간다. 폐차 직전의 차, 아니 폐차되었다고 조회되는 차. 번개탄. 로프. 스위스 나이프. 이름도 주소도 모르는 남자. 텐트. 별. 소원.


“네가 아이랑 못 놀아주니까 놀이 선생님을 붙일 수 밖에 없었잖아. 네가 하원시켜 줬으면 이런 일 벌어졌겠어? 너 사실 애 안 좋아하지? 놀이 선생님한테 애 떠넘겼지? 내가 너한테 많은 걸 바랐니? 목돈이라도 달라고 했어? 애 예방주사를 꼬박꼬박 챙겨 맞히고 개월수 따라 기저귀와 분유를 떨어지지 않게 쟁여놓으라고 했어? 키링처럼 애 달고 다니면서 좋은 아빠 코스프레하는 게 뭐가 어려워? 어린애 하나 제대로 못 챙기고 너 대체 뭐 하러 살아?”


남편이 뭐라고 하기 전에 내가 아이를 잃어버려서 정신 나간 엄마처럼 선수를 쳤다. 누가 알아차리면 안 되겠지만, 아이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합법적으로 남편에게 폭언을 퍼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남편은 겨우 놀이 선생님에게 이상한 점은 없었냐고만 했다. 처음부터 이상했다. 위험신호는 계속 있었다. 놀이 선생님의 진짜 이름도 나이도 주소도 학교도 모른다. 대학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놀이 선생님이 유아교육에 대해 아는 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다 경고음이 아니라 걸음마하는 아이의 삑삑이 신발처럼 귀엽게만 들렸다.


남편은 아이를 경찰서에 데려가서 미아방지 지문등록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것까지 챙겨주진 않았다. 남편은 스스로 여기저기 육아정보를 찾아보진 않았다. 아이는 숫자가 들어가는 주소와 부모의 연락처를 외울 수 없었다. 유괴범이 아이를 신도시의 허허벌판에 풀어 놓고 가버렸다면 길고양이가 햄스터를 채 가듯 지나가던 차가 울며 헤매는 어린애를 치고 암매장해도 그 터에 아파트를 짓느라 땅을 파기 전까진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놀이 선생님이 아이를 차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매어 주고 캠핑을 하며 별에 소원을 빌게 할까. '착한 아이가 될게요. 엄마가 나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 라고 아이는 소원을 빌까. 아니면, 번개탄. 로프. 나이프.


경찰에 신고했다. 실종이 장기화되었다. 유괴범의 동기는 불명확하다. 이번에는 돈을 요구하지 않으니 금전 문제는 아니다. 복학에 필요한 학비는 앞선 두 건의 유괴로 이미 충분히 벌었다. 원한일까. 남편은 아빠보다 아이와 잘 놀아주는 놀이 선생님에게 내심 위협을 느껴서 놀이 선생님의 신경을 긁었을 수도 있다. 나에게 돈을 주지 않듯이 하원 시간에 번번이 이유도 대지 않고 늦어서 놀이 선생님에게 하원 도우미까지 떠맡겼으니까. 아니면 치정일까. 어린 대학생과 애엄마 사이에 대체 무슨 연상연하의 치정이 있겠냐고 남편은 비웃었다.


이 유괴사건에서 가장 이득을 얻는 사람은 나였다. 아들에겐 아빠가 필요해서 남편과 동거하는데 아들이 없어지면 아이 아빠도 필요 없어진다. 아이가 없어졌으니 '표준적인' 가정도 깨어졌다. 원래는 화목한 가정이었는데, 아이가 실종된 비극적인 사건을 부모가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려다가 결국 이혼한다고 하면 대외적으로 명분도 그럴듯 하다. 재산분할을 해야 한다며 아파트를 팔아 버리고 신도시를 떠날 수도 있다. 아파트 따위, 남편에게 줘 버리자. 남편이 나에게 주지 않고 모은 돈으로 남은 대출금이나 갚으라고 하자.


회사에선 조심스레 휴직을 권했다. 억지로 괜찮은 척 출근하지 말고 좀 쉬면서, 아니 길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SNS에 아이가 특별히 잘 나온 사진을 올리고 사연 팔이를 하고 언론에도 나와서 초췌한 민낯으로 인터뷰를 하다가 눈물도 좀 흘려줘야 하지 않겠냐며. 휴직을 하면 월급이 줄어드는데, 하고 대꾸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아이가 없으면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도 없어지니까 여윳돈이 생긴다. 그 돈으로 차를 한 때 뽑자. 차박을 해도 될 정도로 큰 캠핑카가 좋겠다. 캠핑카를 타고 집 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살다가 돈이 떨어지면 길 가는 아이를 납치해서 돈을 뜯어내며 살면 어떨까. 밤마다 별에 소원을 빌면서. 어쩌면 나는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아이를 잃기를 간절히 기도했는지도 모른다.


“당신 같은 것들이 경찰에 신고 안 하고 유괴범에 돈을 주니까 내 자식이 납치되었잖아! 지 자식만 소중하고 남의 자식은 범죄의 희생양이 되건말건 상관 없었지? 너네 때문에 내 아이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있는지, 아니 살아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사무실에서 마음껏 진상처럼 삿대질을 하며 먼저 아이가 납치되었던 동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 잃은 엄마는 눈이 좀 뒤집혀도 될 권리가 있다. 어차피 저들도 어린이집 등하원길에 나를 두고 뒷담화를 할 거니까 공평하다. 저들은 죄책감이 아니라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자기네 아이들이 돌아왔듯이 내 아이도 돌아올 거라며 나를 위로하는 척 하면서. 출산하고 육아휴직을 잠깐 쓴 후로 오랜만의 휴직이다. 휴직하고 뭘 할까. 아이 찾는 것만 빼고. 컴퓨터 전원을 끄고 자리를 정리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가족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휴직 신청 결재를 올리려는데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가 걸려 왔다.


“보고 싶어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기계음이었다.


“나도요.”


나도 모르게 망설임 없이 대답이 나왔다.




아이가 돌아왔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고양이를 안고서. 내가 유기한 햄스터를 잡아먹은 고양이일까. 모르겠다. 얼룩 고양이는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아이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남편이 아이를 박박 씻겼다. 아이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누구의 피일까. 피에 유괴범의 DNA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남편은 증거를 완벽하게 인멸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입을 벌렸다. 혀와 이빨은 말짱했다. 손가락도 열 개였다. 유괴범이 손톱을 깎아주었는지 열 손톱이 단정했다.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나는 불쌍한 엄마가 되었을 텐데 아이가 돌아와서 부주의한 엄마가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남편의 다그침에 아이는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누구와 있었냐는 나의 취조에도 아이는 누구와 약속이라도 했는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겁을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별님한테 소원 빌었어?”


아이는 그제야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원 빌었어?”


“음...차칸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해떠요. 엄마는요?”


고양이가 꼬리를 곧게 들고 다가오더니 내 다리에 머리를 콩콩 박고 몸을 비벼댔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고양이는 나가지 않고 집고양이가 되었다. 고양이가 나를 왜 좋아해주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내가 건조하게 책을 읽어주면 얌전히 내 무릎에 앉아 있다. 집 대출이 아직 남아 있고 신도시에는 전철역이 언제 들어올 지 모르겠고 지금 퇴사를 한다 해도 평판조회를 하면 안 좋은 소리가 나올 게 뻔한데 경력직 이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이에겐 엄마도 아빠도 필요하다. 남편은 깁스를 풀었다. 아이가 돌아 왔으니 휴직할 필요가 없어졌다. 스마트폰에서 놀이 선생님 앱을 삭제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낸다고 한다. 아무 일도 겪지 않았던 아이처럼. 남편은 돈을 주지 않는다. 남편이 아이를 등하원 시킨다. 유괴된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남편은 아이를 소아정신과에 데려가지 않는다. 부모에게 할 수 없는 말을 의사에게 할까봐 무섭겠지. 겁쟁이. 고양이가 집 안에 돌아다닌다. 아이처럼 내가 좋다며 골골대는 고양이가. 어느 날 고양이가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놀이 선생님을 찾지 않는다. 나도 남편도 놀이 선생님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주 심심해 한다.


아이가 집에 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일까. 남편은 나와 아이가 모르는 걸 안다. 아이는 나와 남편이 상상할 수 없는 걸 경험했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 나에겐 비밀이 아주 많다. 나는 절대로 이렇게 살 수 없다. 아이는 점점 자라고 키가 커지고 체중이 늘고 머리가 좋아지고 나는 나이들고 매력을 잃고 남편은, 모르겠다. 나는 미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사고뭉치에 골칫덩이였을 때가 그리웠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여자친구와 결혼식 놀이를 한다고 했다. 손 잡고 어린이집 복도를 웨딩로드처럼 걷는다고 했다. 아이답게 그 여자친구가 일주일마다 바뀐다. 아이는 자기 바지를 내리고 여자 친구의 치마 속에 손을 넣었다. 남편이 나를 비난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관심이 없으니 아이가 여자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거라고. 나는 그건 호기심이 아니라 타고난 범죄자의 기질이라고 나 자신을 변호했다. 이런 걸 유아교육학과에서 설명할 수 있는 논문이 있을 텐데. 남편은 내가 유난 떨어서 애를 망친다고 했다. 아이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데 내가 예민하다고 했다.


아이는 자기가 남자가 되었다고 느끼면 나를 어떻게 대할까. 아이의 흠 없는 몸에 상처를 내고 피와 멍을 보고 싶어서 아이의 목욕을 아이 아빠에게 미루는 나에게 맞기 전에 나를 먼저 때리지 않을까. 아니 주먹이나 발을 대지 않고 우아하게 나를 엿먹이지 않을까. 아이는 엄마를 그렸다면서 내 머리에 악마의 뿔을 그려왔다. 앙큼하게도 제일 좋아하는 엄마한테 엄청 좋아하는 고양이 귀를 달아줬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러면 내가 아이도 고양이를 좋아할 수가 없다. 나는 착한 아이를 사랑하지 못 한다. 착한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


나에게 아이가 있다. 나에게 구원도 해방도 없다. 아무도 내 아이를 데려가지 못 했다. 한밤중에 일어나 주차장으로 갔다. 집에는 남편과 아이와 고양이가 있다. 차에 탔다. 조수석에 번개탄. 글로브박스에 로프. 나이프. 유괴되었던 아이들의 부모가 보낸 돈이면 차를 한 대 살 수 있었다. 트렁크에 텐트. CCTV가 없는 곳으로 가면서 전화를 건다. 브레이크 페달 밑에 캔. 신호음이 간다. 별에 소원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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