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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켠 Aug 29. 2024

별똥별, 지금 여기에

영원히 춤추고 노래하는 나의 아이돌. 이렇게 재회할 줄은 몰랐어.

휘경에게


오랜만에 네 소식을 들었어. 아니, 봤어. 내가 사는 동네에 온다며. 그걸 보고 남편이랑 싸웠어. 너 때문에 싸운 건 아냐. 나 때문에 싸웠어. 딸아이 피아노 학원 보내는 김에 디지털 피아노 건반 사 주러 가다가 네 소식을 봤어. 홧김에, 그리움에, 미련에, 아니, 나도 내 속에서 확 올라온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다. 하여튼 그 감정에 복받쳐서 어린애한테 피아노학원 수강 기념으로 크고 비싸고 기능도 많은 건반을 사 주려고 했거든. 남편은 어린애한테 멜로디언이나 실로폰 같은 거 사 주면 되지 뭐하러 그런 비싼 거 사 주냐고, 애가 망가뜨리기나 할 거라고, 우리 집엔 그런 거 놓을 공간도 없다고, 시끄럽다고 이웃집에서 항의 올 거라고, 구구절절 맞는 말만 골라 하더라. 너였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라고 했을 텐데.


아, 네게 연락이 안 닿아서 얘기 못 했는데, 나 몇 년 전에 결혼했어. 무난하게 소개팅으로 만나서 파스타 먹고, 무례하지 않게 지나가는 말처럼 서로의 스펙을 확인하고, 1년쯤 카페에서 수다 떠는 데이트를 하다가 나이도 결혼 적령기고 모아둔 돈도 있어서, 상견례하고, 예식장에서 후다닥 결혼식을 하고, 남들 가는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갔어. 그리고 남들처럼 아이를 낳았어. 그냥 그 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이라서 결혼했어. 그 때 네가 옆에 있었다면 너와 결혼했겠지. 작년엔 가진 돈에 맞춰 낡고 좁고 비싼 아파트를 샀어. 처음 내 집을 사면 감격스럽다는데, 나는 피아노 놓을 공간도 없고 방음이 안 되어서 기타도 칠 수 없다는 게 짜증 나더라.


남편은 좋은 사람이야. 착하고 성실해. 육아도 잘 하지. 나처럼 대기업 직원이야. 취미는 게임이고 특기는 없어. 그리고 음치야.한번도 이 사람에게 두근거린 적이 없어. 내가 이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없어. 아마 평생 이 남자에게 가슴 뛸 일은 없을 거야. 지금처럼 육아동지로 공동채무자로 하우스 메이트로 늙어가겠지. 결혼을 하는 데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기분이 들었어. 집 사느라 은행 빚을 낼 때 손에 수갑을 채우는 것 같았고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할 때는 목에 칼을 차는 것 같았지. 질식할 것 같았어. 이제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아서. 실망했지? 내가 너무 평범해 져서. 네가 알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아직도 널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해.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왕따 였어. 점심시간에 다들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급식을 먹으니까 앉을 자리가 없고 혼자 먹는 것도 눈치 보여서 급식비 내고 점심을 굶었어. 교실 안의 모든 눈이 나를 보고 모든 입이 내 뒷담화를 하는 것 같아서 혼자 있을 안전한 곳이 절실했어. 그 때는 한 학급에 50명씩, 한 학년이 500명이던 시절이어서 복도고 운동장이고 어디에나 학생들이 있었잖아. 찾다 찾다 찾은 곳이 옥상 앞에, 미술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예시로 쓸 작품들을 모아 둔 창고 같은 곳이었어. 아니, 사실은 옥상에 가고 싶었는지도 몰라. 다행히 옥상 문은 잠겨 있었고 그 공간에서도 나는 구석에 웅크려 있었는데 초상화 더미가 눈에 들어왔어. 그 때 미술 선생님, 기억 나지? 들어와서 예시작품 보여주고‘그려라’ 그러고 끝. 진짜 수업 편하게 했잖아. 지금 우리가 그 때 그 선생 나이가 되었어. 요새 회사 다니는 게 지겨워질 때가 있는데 그 선생 연차도 그럴 때였나 봐. 그 인간이 준비물 안 가져 온 애들은 초상화 모델 시켰잖아. 연예인 브로마이드처럼 눈에 힘 빡 주고 아이돌 같은 손가락 포즈를 하고 있는 네 초상화를 보니까 웃음이 나왔어. 그 때 연예인들은 왜 그렇게 ‘허세 쩌는’포즈를 ‘카리스마’라고 했는지 몰라. 그런데 그 때, 그림 속의 인물이 나타나니까, 마치 ‘도리안 그레이’ 같더라. 그 와중에 네가 너무 잘 생겨서.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후광이 비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너도 거기 누가 있을 걸 예상 못 했던지 잠깐 놀라더니 자물쇠를 열고 옥상으로 나갔어. 네가 문을 잡고 있길래 나도 널 따라 나갔지. 나중에, 열쇠는 어디서 났냐고 물으니까 너는 그냥 씩 웃기만 했어. 너는 옥상에서 마이클 잭슨의 춤을 추기 시작했어.나는 얼결에 관객이 되었지.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이 생중계 되었던 다음 날 교실 뒷편에선 남자애들이 바지춤을 잡고 그의 춤을 흉내 냈는데, 너도 그랬겠지. 네가 문워크를 하니까 콘크리트로 된 옥상 바닥이 달 표면이 되었어. 마치 세헤라자데처럼 너는 하루에 한 곡씩 춤을 추고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나눠 들었지. 등교할 때마다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는 상상을 했다가 너를 보면, 내일도 너를 만나고 싶어서,내일은 네가 어떤 근사한 춤을 출까 궁금해서 죽지 않았어.


나는 HOT를 좋아했고 너는 젝스키스 쪽이었지만 네가 “나 폼에 살고 죽고 폼 때문에 살고 폼 때문에 죽고 나 폼 하나에 죽고 살고” 가사에 맞춰 옥상 바닥이 트램펄린이라도 되는 것처럼 높이 점프할 때마다 젝스키스도 멋있단 생각을 했지. 어느 샌가 나도 널 따라 높이 뛰어오르고 있었어. 네가 노래할 때면 나도 같이 큰소리로 노래 불렀지. 너는 모범생이던 나를 노래방에 데려가고 펌프며 DDR이 한창 유행하던 오락실에도 같이 갔어.예전엔 집에 가면 학교에서 날 욕했던 목소리들이 환청처럼 들렸는데 DDR을 밟은 이후로는 눈감으면 화살표가 둥둥 떠다니더라. 우리 그 때 DDR에 중독되어서 네가 옥상 바닥에 분필로 DDR 발판을 그리고 노래 부르면서 수신호를 하면 거기에 맞춰 가상의 DDR을 밟았잖아. Ay, Ay, Ay, I'm your little butterfly. Green, black and blue, make the colors in the sky. DDR반주음악이었던 Smile의 butterfly는 지금도 흥얼거릴 수 있어. 네 수신호는 점점 터무니없이 현란해져서 도저히 박자를 맞출 수 없었고 나도 오기가 나서 네 차례가 오면 더 빠르게 팔을 휘둘렀지.


너는 춤과 노래는 유치원 다닐 때 이후로 처음이라는 내게 천재라고 했어. 내 목소리가 너무 좋다고, 내가 노래할 때 눈물이 난다고. 같이 오디션을 보자고 했어. 나는 그런 말을 해 준 게 네가 처음이라서, 믿지 않았어. 그러다가 공중전화기에 대고 노래를 하거나 데모테이프를 보내는 1차 오디션에 종종 붙으면서 네 말을 조금은 믿게 되었지. 막상 대면 인터뷰가 있는2차 오디션은 모조리 떨어져서 우울해 졌지만. 너는 아무 말 못 했지만 둘 다 알게 되었지. 내 외모 때문이라는 걸. 난 지금도 키가 작고 통통하고 팔다리도 짤똥하고 눈도 작고 평범하게 생겼거든. 넌 내가 귀엽다고, 사랑스럽다고, 매력 있다고, 봐도 또 보고 싶은 얼굴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할 때 네 눈이 반짝거려서 그 순간에는 깜빡 속았잖아. 있지, 내 딸도 나랑 판박이로 생겨서 네가 해 줬던 말들을 내 딸에게 그대로 들려주곤 해.


네가 같이 학교 축제에 나가자고 했을 때 난 싫다고 했어. 애들이 날 비웃을 거라고. 네가 관객으로 보고 있을 거란 말에 용기 내서 신청 했어. 나는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을 불렀지. 네가 맞았어.아무도 비웃지 않았어. 노래 한 곡 만큼의 시간 동안은 모두 내게 집중했어. 무대에 혼자 있는데, 조금도 외롭지 않았어. 노래가 끝나고 너는 누구보다 크게 환호했어. 그 후에 네가 진짜로 가수가 되었을 때 TV에서 너를 볼 때마다 무대에서 네가 이런 기분이겠구나, 알 수 있었어. 그래서 네가 지금까지도 무대를 못 떠났겠지.


인생은 만화나 드라마 같지 않아서 축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왕따였어. 공부만 하던 애가 노래방이며 오락실을 간다 오디션 보러 다닌다 학교 축제 무대에 올라간다 헛바람이 들었으니 당연히 성적이 떨어졌지. 엄마가 왜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 건 지 펄펄 뛰다가 독서실 안 간 거 알게 되고 분에 못 이겨 손찌검까지 할 때에서야 울면서 그랬지. 엄마는 내가 그 동안 왕따 당한 거 알지도 못 했으면서! 그랬더니 엄마가 뭐랬는지 알아? 왜 바보같이 당하냐고 했어. 바.보.같.이. 지금도 뭔가 잘못되면 머릿 속에서 그 때의 엄마가 왜 바보같이 당했냐고, 다 내 잘못이라고 혼을 내. 폭언은 하나만 들어도 문신처럼 남는데,그걸 지우려면 열 배, 백 배는 많은 사랑과 칭찬과 격려가 필요해. 나는 네가 필요했어. ‘애송이의 사랑’의 가사처럼‘조금만 더 가까이 내곁에 있어줘.널 사랑하는 만큼 기대쉴 수 있도록.’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 엄마한테서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을 때 물어봤어. 그 때 왜 그렇게 말했냐고. 그랬더니 엄마가 그랬어. 날 사랑해서 그랬다고. 생판 남이었다면 입에 발린 위로나 해 줄 수 있지만 엄마니까, 마음이 아파서, 정신이 나가서 그런 말도 한 거라고. 그 날 엄마한테 울면서 악을 쓰고 대들었어. 나에게는 그냥 들어주는 사람, 아니면 차라리 입에 발린 위로가 필요했다고. 엄마는 끝내 미안했다고 하지 않았어.나는 내 딸에게 내 엄마 같은 엄마가 될까 봐 한없이 두려워질 때가 있어.


내가 왜 왕따를 당했는지 너는 묻지 않았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새끼들 잘못이었으니까. 엄마한텐 얘기하지 않았지만 너에겐 다 말해 줄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게도, 내가 교실에서 책을 읽다가 “이 여자 가식적이다” 뭐 그런 혼잣말을 했나 봐. 근데 그걸 ‘이예지’란 애가 “이예지 가식적이다”로 잘못 듣고 내가 재수없다고 하고 다닌 거지. 그렇게 우습게 왕따를 당한 거야. 나중에 그 오해는 풀렸지만 그 다음엔 내가 다른 애들 발표할 때 비웃었다느니 하는 소문과 루머가 계속 붙었어.자기가 알아보지도 않고 내 뒷담화 하고 다닌 걸 인정하기 싫으니까 어떻게든 내가 잘못했다고 하고 싶었던 거지.치졸하지?


엄마는 다음날 바로 학교를 찾아가서 담임에게 촌지를 줬어.그러니까 담임, 그 생각 없는 새끼가 어떻게 했는지 너도 알지?날 그 가해자들 무리랑 짝지어서 앉혔잖아. 가까이 지내면서 내가 괜찮은 애란 걸 걔네가 알게 하고, 가까이 지내면 친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의도였대. 담임 새끼, 언젠가 화상 입고 뜨거운 쇳덩이로 화상 부위를 지지면서 치료하길 바라고 있어. 지 말대로 이열치열, 그래야 완치되겠지. 가까이에 있으니까 가해자 새끼들은 신이 났어. 쉬는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내 의자를 발로 차고, 화장실에 가면 쫓아와서 나올 때까지 문을 사정없이 두드리거나 화장실 칸 안으로 물을 뿌렸어. 비가 오는 날엔 내 우산을 가져가 버렸고. 어떻게 알았는지, 네가 우산을 들고 날 기다리지 않았다면,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우산을 받쳐 주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는 담임을 찾아간 날, 내가 축제 때 노래를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그 날, 부모는 내게 헛바람 들지 말라고 했어.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어른들은 왜 꿈을 주관식으로 묻는 걸까. 어차피 답은 객관식인데. 부모는 내게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했어. IMF이후에는, 적당히 공부해서는 취직할 수 없다고. 한 번 실패하면 끝이니까 안전하게 성공해야만 한다고. 여자는 교사가 최고라고. 연금 나오고 안 잘리고. 내가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게 학교였는데. 그런데 그 때는 그런 시절이었잖아.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고 어른들은 겁을 먹었지. IMF 사태가 터지고 나서 얼마 후에, 그 때 우리 반에 아빠가 회사 사장인 애가 있었는데, 걔가 무단 결석을 했어. 알고 보니 걔네 아빠가 부도나고 가족들 다 죽이고 자살했다더라고. 걔 책상에는 편지랑 과자가 놓였는데, 담임이 분위기 안 좋아진다고 얼른 치우라고 했어. 내 친구 하나는 바이올린을 그만 뒀지. 우리 아빠는 은행원이었는데 다행히 잘리진 않았어. 어느날 부터인가 한동안 아빠는 퇴근길에 치킨을 사왔어. 아빠의 동료가 해고 당하고 치킨집을 차렸대. 동료 대신 살아남은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건 치킨을 사는 것 뿐이었겠지. 얼마 후부터 아빠는 치킨을 사 오지 않았어. 그 치킨집은 망했고 아빠의 전 직장동료는 어디 지방으로 이사갔대. 나는 피아노 학원을 끊고 수학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 가끔 생각해. 그 때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나는 공부를 했고 너는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해서 연습생이 되었어. 나는 ‘좋은 고등학교’에 합격했어. 그 때는 아직 비평준화 지역이 남아 있었잖아. 너도 나랑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어. 중학교 졸업하던 날 교실에서 친한 애들끼리 서로 손잡고 있는 꼴이 보기 싫어서 옥상에 올라갔어. 너는 옥상에서 내게 기타를 선물했어. 내게 기타치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는데 내가 이제는 끝났다고, 싫다고 그랬지. 졸업앨범에는 네 사진이 없었어. 너는 그냥, 찍지 않았다고만 했어. 이사할 때 짐정리 하느라 졸업앨범을 다시 봤어. 주눅들고 불안해하는 열여섯 살 짜리 애가 다시 보니 가여워서, 근데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아서,내 사진을 찢어내고 나서 앨범을 버렸어. 딸아이가 나한테 혼나고서 내 눈치를 볼 때마다 그 때의 내 얼굴이 보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외면해버리곤 해. 그러면 안 되는데. 남편이 애하고 놀아주면서 애 기분을 풀어주긴 하는데 그런다고 아이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는 건 아닐 텐데. 너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곤 해. 나도 너처럼 졸업사진 같은 거, 찍지 말 걸. 생각난 김에 너랑 찍었던 스티커사진도 찾아 봤는데, 바래버려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더라. 심령사진 같더라고. 그것도 버렸어. 그 때 네가 준 기타는 언제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번도 손대지 않았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나는 공부만 했지. 다들 그랬어. 1년에 스무 명 남짓 서울대를 보내는 학교였어. 다들 공부하느라 왕따시킬 틈이 없었지. 너는 연습실 간다며 결석을 해서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았어. 데뷔를 했지. ‘김휘경’이라는 이름이 너무 세다고 ‘유성우’란 예명을 썼어. 탑 텐 안에는 못 들고 20위 안에는 들었어. 중간고사 끝나고, 공개방송을 딱 한 번 보러 갔어. 풍선을 흔들며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고 외치는 너의 팬들을 보면서 나는 왜 네게 그 말을 하지 않았을까 후회했어. 너는 무대 위에서 윙크를 하며 너의 팬들에게 사랑한다고 했지. 너의 팬들은 꺅꺅 소리지르며 발을 구르며 솔직하게 좋아했어. 나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


너는 점점 나와 멀어졌어. 나는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너는 사회생활이 어떤 지 알기나 하냐고 서로 더 힘들다고 날을 세웠지. 분명히 처음엔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냥 얼굴이라도 보려고 만났는데 나중엔 싸우기만 했어. 난 전 남친하고도 그렇게 싸웠어. 내가 직장인이고 걔가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네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전 남친에게 퍼부으면서 너를 떠올렸어.


너랑 대판 싸우고 나는 대학에 갔어. ‘좋은 대학’이었지. 부모님 말대로 사범대에 갔어. 갔더니, 전공 공부가 재미없더라. 우리 과에 나 같은 애들 많았어. 걔네들하고 교육직 공무원 행정고시를 준비했지. 2년 했는데 불합격했어. 왜 떨어졌는지 알아. 공부라는 걸 더 이상은 하기 싫었어. 너는 내게 왜 더 노력하지 않냐고 하지 않았어. 언젠가 잘 될 거라고 하지도 않았어. 그 때 너도 2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지. 트렌드가 바뀌었다고, 너는 짧게 말했어. 내 눈에, 내 귀에 너는 아직 너무나 멋지고, 황홀했는데.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했지.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우리가 되고 싶었던 어른은 이렇게 시시하고 비루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은 아니었는데. 너무 늦을까 봐 두려웠어. 중학생 때도 오디션장을 더 떠돌다가는 늦어버릴까 봐 접고 공부를 시작한 거고, 대학생 때도 나이제한이 걸릴까 봐 얼른 행시를 접고 취업을 준비했지. 너도 나이가 들면 밀려날까 봐 두려워했지. 우리는, 너무 젊은 나이에 너무 이르게 늙는 것을 걱정했었나 봐.


중학생 때는 고등학교에 가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고,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 가면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대학생 때는 취직하면 아무 걱정 없을 줄 알았는데. 취직을 했더니 결혼하고 집을 갖고 아이를 낳아야 정상적인 사람이 될 것 같았어.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내 아이는 자기 발로 서서 걷게 될 무렵에는 음악만 나오면 마이크 잡는 흉내를 내면서 씰룩씰룩 춤을 췄어. 애 아빠가 장난스레 “우리 딸 걸그룹 시킬까?” 하더라고. 나는 진지하게 애가 진짜로 기획사 들어가겠다고 하면 지원해 줄 수 있냐고 했어. 그랬더니 이 인간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자기나 나나 평범한데 애가 부모 닮지 누구 닮겠냐고, 얘는 그냥 지 부모처럼 공부 잘 하는 얌전하고 평범한 애가 될 거라고 했어. 아닌데. 나는 학교 축제 때 무대에 올라가 노래 불렀던 사람인데. 연예인이 되려고 했던 사람인데. 왜 이 사람하고 결혼했는지 솔직하게 말할게. 너랑 제일 안 닮은 사람이랑 결혼했어. 심심하고 지루한 사람. 무난하고 평범한 사람. 윤기도 광택도 없는 사람. 빛나지 않는 사람. 내가 내 남편을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 그도 알고 있을까.아니, 내 남편도 날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너는 서서히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 언제부터였을까, 그게.내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고 춤을 추지 않게 된 후부터 였을까. 네가 준 기타를 밀쳐내면서부터 였을까. 내가 그저 그런 사람이 되면서부터 였을까. 아니, 네가 없어서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도 몰라. 너는 나의 빛나는 거울이었으니까. 내 자존감을 위해 타인이 필요하다는 거, 우습지?


나는 ‘불후의 명곡’ 같은, 지나간 시절의 가수들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은 보지 않아. 혹시나 거기서 너를 마주칠까 봐. 너는 내게 영원히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조명을 받는 젊고 아름다운 아이돌이야. 우리가 그 때 옥상에서 따라했던 가수들은 어떻게 되었더라.  


예전에 ‘무한도전’에 90년대 가수들이 나오면서 여기저기서 과거가 화려했던 가수들이 나오더라. 악기가게를 가는 길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서 너를 본 것 같아. ‘추억의 가수’가 우리 동네 행사에 온다는. 악기가게에서 남편이랑 싸우고 결국 빈손으로 나오면서 다시 포스터를 봤어. 너는 없었어. 내가 잘못 본 거였겠지. 너는 거기 있을 사람이 아냐. 너는, 길 건너에서 귀에 에어팟을 꽂고 춤을 추고 있어. 아이돌처럼 해사한 얼굴로. 네 발밑에서 보도블럭이 달이 되고, 주변은 어두워 지고,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너만 보여. 너는 내게 수신호를 하지.발밑의 화살표를 밟으며 춤추듯 건너오라고. 나의 작은 나비. 하늘이 초록, 검정, 파랑의 나비떼로 가득 차. 남편이 나를 꽉 잡고 끌어당겼어. 끼이이익 하는 굉음이 늘어진 카세트 테이프처럼 들려. 안녕, 나의 비밀친구, 나의 영원한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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