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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원 Feb 27. 2023

공고생 장호

  장호는 냉면집 <부부칡냉면>의 늦둥이 아들이다. ‘부부칡냉면’이라고 해서 칡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은 아니다. 만두, 칼국수, 된장찌개, 김치찌개, 수제비 등등 메뉴가 다양하다. 부부는 일 년 열두 달 허리를 바싹 졸라매고 일한다. 쉬지 않고. 그래도 노상 돈에 쪼들리며 산다. 수년 전 된통 사기를 당해서 빚을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배움터’는 학생들에게 국어와 글짓기를 가르치는 학원이다. 배움터 원장과 장호 부모는 인연이 깊다. 원장은 칡냉면집 부부가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억울한 사연을 훤히 알고 있다. 이러저러한 사정 탓에 올해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장호는 그 흔한 학원도 다니지 못했다. 배움터 원장은 이런 장호가 안쓰러워서 학원에 나오게 했다. 원한다면 당분간 글짓기 수업을 들어보라고. 물론 학원비는 받지 않았다. 

  배움터학원은 아파트 상가 2층에 자리했다. 흡사 공부방 같은 분위기였고 그만큼 학생 수가 적었다. 초등학생, 중학생이 전부였다. J는 배움터학원에서 월요일에는 글짓기,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국어를 가르쳤다. 고등학생 장호는 중학생 틈에 끼어 글짓기 수업을 받았다. 학교 성적은 별로였다. 장호는 밉지 않게 넉살스러웠고 열등생 특유의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제 용돈도 벌어 썼다. 어쩌다 찌그러진 가정형편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독립심이 길러진 듯했다. 


  오늘은 글짓기 수업이 있는 날이다. 원래는 다섯 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인데 오늘따라 이런저런 이유로 결석을 많이 해서 J는 장호와 단둘이 있게 됐다. 장호가 시커먼 배낭을 둘러메고 나타났다. 지금 입고 있는 티셔츠를 동네 벼룩시장에서 천오백 원 주고 샀다며 히죽거렸다. 

  “오늘은 ‘어휘 정의 내리기’ 수업을 해보자.”

  “그게 뭐예요?”

  “내가 단어를 불러주면 너는 그 단어의 뜻을 써보는 거야. 사전적인 의미 말고 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예를 들면 어떤 학생이 원고지를 ‘생각의 통장’이라고 했어.”

  장호가 아,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글짓기 수업을 듣는 장호의 표정이 꽤 진지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뒤에 앉아 글은 쓰지 않고 책만 읽다 갔다. 아무래도 중학생 반이니 뻘쭘하겠지 싶어 그냥 내버려뒀다. 그러니까 오늘 처음으로 뭔가를 써보는 것이다. 질투, 아이스크림, 패배, 모기…… J의 입에서 단어가 튀어나올 때마다 장호의 손이 재깍재깍 움직였다. J가 장호의 공책을 슬쩍 쳐다봤다. 


  화장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공간

  아이스크림: 순간을 잃게 하는 망각제

  비둘기: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쫓는 문양

  잠: 휴식과 나태함을 안겨주는 양날의 검

  화분: 노력을 원하는 할머니

  가로수: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공기


  장호만의 ‘어휘 정의’를 볼 때 J의 머릿속에는 느낌표와 물음표가 섞여 들었다. 그럴 듯하기도,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했다. 그래도 화장실을 ‘대소변을 보는 곳’이라고 쓰는 것보다야 독창적이었다. 시적인 감수성이 살짝 엿보이기도 했고. 

  “장호는 책을 많이 읽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달에 한 권은 꼭 읽어요.”

  “글짓기 수업은 할 만해?”

  “이런 글은 처음 써보는데 정말 재밌어요. 학원에서 글짓기 수업을 듣는 것도 처음이고요. 저는 학교가 끝나면 만두를 팔았거든요.”

  “만두를?”

  “저희 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하시잖아요. 가게 출입구 옆에 만두만 파는 공간이 따로 있어요. 엄마가 만두를 빚어 쪄놓으면 제가 팔아요. 알바비 없는 알바죠.” 

  만두 이야기를 할 때 장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국화차 마실래?”

  “그래도 돼요?”  

  J는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앙증맞은 국화 몇 송이를 띄웠다. 머리가 맑아지고 불면증도 낫게 해준다면서 원장이 챙겨준 마른 국화다. J는 밀폐 용기에 수북하게 담긴 마른 국화를 즐겨 찾았다. 장호가 물 위의 꽃송이들을 입으로 살살 불자 냉큼 부풀어 올랐다. 

  “너희집 식당 간판을 보면 주인공은 칡냉면인데 가보니까 아니데?”

  “어? 저희 식당에 와 보셨어요? 원래는 냉면만 팔았는데 장사가 안 돼서 메뉴가 늘어났어요. 만두도 그때 생겼고요. 선생님, 저는 엄마의 만두를 보면 울적해져요.”

  “왜?”

  “모르겠어요. 그냥 마음이 그래요. 칡냉면보다 만두가 더 잘 팔려서 엄마는 틈만 나면 만두를 빚거든요. 길을 가다가도 만두를 보면 엄마의 구부정한 등이 떠올라요. 그래서 제가 만두를 파는 거예요.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려고요.”

  이 녀석 봐라, 제법인 걸. J는 전기포트를 들어 장호의 찻잔에 뜨거운 물을 조금 더 따랐다. 

  “엄마는 가정형편 때문에 제가 공고에 갔다고 속상해 하는데 꼭 그렇진 않아요. 저는 진짜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요. 근데 요즘 마음이 좀 왔다 갔다 해요. 졸업 후 바로 취업할까, 아니면 이제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갈까…….”

  글짓기 수업을 들으면서 문학과 친해져 봐라, 글만 잘 써도 대학에 갈 수 있다,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 한다, 글 잘 쓰는 엔지니어 멋있잖아?…… J는 기꺼이 장호의 기를 살려줬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장호. 

  “학원 마치면 뭐해?”

  “만두도 팔고, 책도 읽고요. 헤헤.”

  교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선생님, 저 고장 난 기기도 잘 고치고, 이삿짐도 잘 날라요.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만두 파는 알바도 값진 경험이야. 뭐든 허투루 보지 마라. 그게 글쓰기의 시작이니까. 지금 네 재능은 겨자씨만 해. 게으르면 그 겨자씨는 바로 썩어버린다. 작은 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네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본다. 물론 크고 작은 걸림돌이 많겠지만…….”

  지금 누구 앞에서 겨자씨 운운하는 거냐, J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네! 선생님! 열심히 굴러 보겠습니다!”

  장호가 익살스럽게 거수경례를 하더니 씩씩한 발걸음으로 학원을 나간다. J는 공고생 장호를 보면서 가슴 한구석에 뭔가가 뿌듯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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