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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원 Apr 04. 2023

난 이렇게 살고 있어

  스케일러 팁이 치아 사이사이에 닿을 때마다 치석이 떨어져 나온다. 입술 안쪽에 걸쳐 놓은 일회용 석션이 타액과 치석을 빨아들인다. 어둠이 내리면 어디선가 밀려와 떠다니는 상념의 조각들 때문에 건밤을 샜더니 눈이 아리다. P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눈을 깜빡거렸다. 지금 P 앞에서 입을 벌리고 누워 있는 편선화 씨. 조용히 나타났다가 묘한 여운을 남기고 돌아가는 단골 환자라서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P는 편선화 씨의 혓바닥에 핀셋을 댔다. 붉은 살덩이에서 어떤 긴장감이 느껴진다. 스케일링에 필요한 기구가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환자들의 혀는 잔뜩 움츠린다. P는 그 혀들의 감촉을 느낄 때면 이상하게 해삼이 떠오르곤 했다. 물속에서 건져 올릴라치면 탱탱하게 오므라드는 생명체. 

  “이 물로 입안을 헹구세요.”

  P는 자동의자에 딸린 플라스틱판으로 손을 뻗어 화살표 버튼을 눌렀다. 의자가 부드럽게 움직인다. 따로 빚어서 붙여 놓은 듯한, 눈과 입 사이에서 유별나게 도드라져 보이는 코를 씰룩거리며 편선화 씨가 물을 뱉었다. 


  편선화 씨는 지난 겨울 어느 IT 기업의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다가 미끄러졌다. 그날 스케일링을 하러 와서 혼잣말처럼 아쉬움을 토해냈다. 벌써 아홉 번째 도전이라고 말하며 멍한 표정으로 낄낄거리는데 순간 좀 섬뜩했다. P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몰랐다. 사실 자기가 누구를 위로할 처지도 아니었다. 솔직히 그때나 지금이나 어느 누구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으면 무덤덤했다. ‘그래도 나보다 당신이 훨씬 낫다’, 이런 생각만 고여 들었다. 그날 이래저래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꿔놓은 건 뜻밖의 먹거리였다. 스케일링을 마치고 나가던 편선화 씨가 “아차!” 하며 멈춰 서더니 크로스백에서 뭔가를 꺼냈다. 

  “제가 취업 준비하면서 즐겨 먹는 건데 쫀득쫀득하니 맛있어요.”

  뭔가 하고 봤더니 ‘당근쫀득이’였다. 주황색 당근을 실물 크기로 디자인한 포장이 입맛을 돌게 했다. 당근 몸통에 새겨진 ‘제주서 만들어수다’, 라는 글씨를 보며 P는 오랜만에 미소 지었다. 개별 포장한 당근쫀득이는 일곱 개였다. 편선화 씨가 P의 몫으로 챙겨온 것 같았다. 그 무렵 P는 도통 뭘 먹지 못했다. 하루에 두세 잔씩 달게 마시던 커피조차 쓰디썼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먹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살아 있으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고역이었다. 

  당신의 ‘미각장애’를 알고 있다는 듯 편선화 씨가 손에 쥐어준 당근쫀득이는 P의 입에 들어오는 다른 먹거리처럼 버석거리지 않았다. 오렌지 빛깔의 알맹이를 가늘게 쭉 찢어서 입에 넣으면 치아들이 반기듯 절구질을 했다. 당근쫀득이는 질겼지만 폭신폭신해서 금세 단맛이 스며들었다. P는 당근쫀득이를 비워낸, 폴리에틸렌 재질의 미끌미끌한 포장지를 앞뒤로 살펴봤다. 뒷면에는 제품명부터 유통기한까지를 굵거나 가는 글씨로 빼곡하게 적어 놨다. 내용량 18그램. 밀가루, 백설탕, 당근농축액, 물엿, 정제소금, 옥수수분말, 베이킹파우더, 마가린, 자몽종자추출물……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게 재료를 골고루 섞어 맛깔난 모양새로 태어나게 했구나. 예쁜 이름과 품목보고번호를 보란듯 내세우고서. 나는 뱃속의 너를 온몸으로 빚었는데 도대체 뭐가 넘치거나 적었기에 첫울음을 터트리지 못했을까. 어쩌다 그 고유한 이름과 생일을 놓쳐 버렸을까. P는 당근쫀득이를 먹으며 울컥하면서도, 유산 후 뭔가를 입에 넣어 씹으며 처음으로 맛있다, 고 느꼈다. 


  “이쪽 부위에 음식찌꺼기가 많이 끼죠? 충치가 생겼을 지도 몰라요. 송곳니도 좀 흔들리네요.”

  P는 환자의 잇몸 상태를 체크했다. 출혈의 흔적이 보였다. 출혈은 잇몸병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다음에 오시면 잇몸 검사를 받아 보세요. 자, 치료 끝났습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P는 스케일링 기구를 정리했다. 편선화 씨가 자동의자에서 꾸무럭거린다. 어째 낯빛이 어두웠다. 

  “치아가 반듯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아랫니가 뒤로 쑥 밀려났어요.”

  편선화 씨가 입을 벌려 문제의 치아를 손으로 가리켰다. 과연 아랫니 중간에 박힌 치아가 삐딱하게 물러서 있었다.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치아는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자기들끼리 붙으려는 습성이 있거든요.”

  “양치질을 할 때마다 혼자만 뒤쳐진 치아를 보면 우울해져요. 그게 꼭 나 같아서요. 어제 용기를 내서 그 사람한테 전화했는데 받지 않더라고요.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고, 카톡도 읽지 않아요. 그새 나를 깨끗이 지워버렸나 봐요…… 그 남자랑 헤어지고 체중이 오 킬로그램이나 불었어요. 이별 후 잘 먹지도 못하는데 왜 살이 찌는지 모르겠어요.” 

  편선화 씨가 삼 개월 만에 내원했는데 그 사이 애인과 헤어진 모양이었다. 취업도 연애도 그녀에게 발길을 돌렸다. 편선화 씨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자동의자에서 내려왔다. 


  몸이 녹작지근하다. 벽시계의 뭉툭한 시곗바늘이 오후 1시 35분을 가리키고 있다. 잠시 한눈을 팔 수 있는 시간이다. 오후 2시가 지나면 초등학생 환자들로 치과가 소란스러울 것이다. P는 가방에서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영화는 꼭 영화관에 앉아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하고, 음악은 오디오나 CD 플레이어로 듣기, 이게 P의 취향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게 음식을 먹은 것 같았다. 데니스 브레인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감미롭게 머릿속을 적셔준다. P가 아이를 가졌을 때 출퇴근하면서 태교음악으로 듣던 곡이다. 뱃속의 아이에게 ‘엄마가 옛날부터 좋아하는 음악이야’, 라고 속삭이면서. 

  데니스 브레인은 서른여섯 살에 세상을 떴다. 교통사고였다. 연주를 마치고 이슥한 밤에 아내가 있는 런던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가로수와 충돌했다. 그는 남달리 가정적이었다. P는 유산 후 한동안 태교 음악 때문에 아이를 영영 잃어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아내를 세상에 남겨 두고 저승길을 밟은, 명이 짧았던 남자. 그가 연주하는 호른 협주곡을 뱃속에서 듣다가 밀양에 산불이 번지던 그날 엄마에게 오던 발길을 되돌렸을까…… 그런데도 나는 날마다 데니스 브레인의 호른 협주곡을 듣는다, 뱃속에 고이 잠겨 있던 너를 아무래도 잊지 못하겠어서…… 누군가는 뒤로 밀려난 치아를 보며 아파하고 때가 되면 스케일링을 하지……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제1악장이 끝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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