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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원 Apr 11. 2023

87세 자퇴생

  멍!멍!멍!

  고요한 집에 울리는 기운찬 소리. 나는 강아지를 워낙 좋아해서 카톡 알림음도 ‘멍멍’으로 설정했다. 대개 혼자 있다 보니 어떤 날은 빈집을 지키는 순한 강아지가 된 듯한 착각이 드는데, 그럴 때 휴대전화에서 멍!멍!멍! 소리가 들리면 너와 내가 같은 종족이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카톡을 열어봤다. 평생교육원 소설창작반 반장이 소식을 전했다. ‘김학선님께서 보낸 메일 내용입니다’ 라는 문장 뒤에 이어지는 긴 사연을 읽는데 기분이 묘했다. 김학선님이 언젠가 이런 결정을 내릴 줄 알았고, 솔직히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는데도 어째 홀가분하지 않을까. 이내 떠오르는, 눈에 거슬렸다기보다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그 장면이 의문의 답인 것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올해 봄 학기 개강을 앞두고 평생교육원 과장한테 전화가 왔다. 소설창작반 정원이 찼으니 강의 준비를 하라는 용건이었다. 수강생이 열 명 미만이면 폐강인데 학기마다 가까스로 강의 개설의 문턱을 넘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강의실이 북적북적했으나 그 바이러스 전쟁을 계기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학기에도 얼굴을 뵐 수 있겠네요”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과장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 학기 소설창작반에 팔십이 넘은 분이 등록했어요. 소설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앞으로 나이 제한을 둬야 하나…….”

  그 순간 ‘팔십이 넘은 분’이라는 어감이 돌기둥으로 변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과장보다 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난감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신체 건강하고 열정이 넘치니 등록하셨을 테고, 그런 만큼 성실히 임하리라는 믿음은 있었는데 문제는 ‘강의자료’였다. 쓰기보다 읽기가 몇 배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확고해서 나는 수강생들에게 매주 2~3 편씩 소설을 읽혔다. 학기마다 해당 도서를 반장에게 넘기면 그녀가 미리 복사해서 수강생들에게 나눠줬다. 그들은 기성작가의 소설들, 또 막 데뷔한 신인작가의 당선작들을 골고루 읽으며 소설의 집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그 기술을 익혔다. 예를 들면 레이먼드 카버의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미야모토 테루의 <토마토 이야기>, 성석제의 <조동관 약전>을 읽고, 소설의 ‘공간’이나 ‘인물’에 대해 배우는 식이다. 팔십 세가 넘은 수강생이 과연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 공감할 수 있을까. 성석제가 즐겨 그리는 풍자와 해학의 맛을 음미할 수 있을까. 팔십 세가 넘지 않았어도, 현대소설은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비교적 젊은, 현대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수강생들이라면 작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고령의 수강생이…… 이런 생각이 부디 기우이길 바라며 개강을 맞았다. 

  개강하는 날은 보통 내가 강좌 소개를 하고, 기존회원과 신입회원이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나눈다. 이번 학기에는 삼십 대로 보이는 수강생이 네 명이나 등록했다. 그 중 세 명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절친한 동료였다. 평생교육원의 수강생은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인데 삼십 대가 여럿 앉아 있으니 확실히 강의실에 활기가 넘쳤다. 주저 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웃음도 인색하지 않았다. 김학선님 차례가 됐다. 살짝 긴장한 낯빛이었다. 희끗희끗한 머리, 금테 안경, 브라운 계열의 베레모. 삶의 관록이 묻어났다. 저쪽이 ‘확실히 활기’라면 이쪽은 ‘확실히 무게’였다. 

  “분위기가 젊어서 좀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국민학교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어요. 제 투박한 문장을 고치고 싶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젊은 분들 사이에서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당신이 구사하는 어휘와 말투에서 누구한테든 폐를 끼치기 싫어하고, 누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으면 반드시 보답할 것 같은 성격이 엿보였다.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됐다. 김학선님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우선 카톡이나 단톡방에 드나들 줄 몰랐다. 소설 복사본 외에 다른 강의 자료를 단톡방에 띄우는 터라 그걸 모르면 학업의 손발이 묶이는 꼴이었다. 이 난관은 애정 어린 반장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분은 항상 강의실 맨 앞에 앉아 있었다. 강의 도중 당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수시로 하품을 하면 수강생들이 흘깃흘깃 쳐다봤다. 저녁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진행하는 강좌라서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지는 체질이라면 견디기 힘들 터였다. 어떤 날은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크게 울려 강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강의 핵심 자료인 ‘소설’이었다. 반장이 복사해서 나눠줬는데 읽지 않는, 아니 그 서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 상태로 졸음을 참으며 두 시간을 버티는 게 얼마나 고역일까. 이건 순전히 그분한테 문제가 있는 건데 마치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 같은 자격지심 비슷한 감정이 들어 찜찜했다. 이와 반대로 내 눈이 휘둥그레진 적도 있었다. 개강 후 수강생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음식에 대해 써보라고 했다. A4 용지 한 장 이내로. 수강생들의 글솜씨와 문학적 감각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김학선님이 반장을 통해 전달한 글은 매끄러웠다. 제목이 <중앙시장과 선지국밥>이었는데, 아내와의 한때를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고 담백한 문장으로 펼쳐 놓았다. ‘투박한 문장을 고치고 싶어서’ 등록했다는 포부가 뒤늦게 떠올라, 강의실에서 만났을 때 충분히 격려를 해줬다. 


  소설창작반 반장이 단톡방에 공개한 김학선님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동안 바쁜 생활을 정리하고 나 자신의 소양 및 자질 향상을 위해 여러 가지 구상을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소설창작반 등록이었는데 수업을 들으며 무리한 욕심이었다고 느꼈습니다…… 너무 긴 세월, 나이가 들어 체력과 기력이 약해지고 젊은 세대와 근접할 기회가 없었던 단절된 생활로 인한 사고나 생활방식의 괴리감은 더 이상 감당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말없이 떠나려니 죄송하고 안타까워 이렇게 글로 인사를 대신 합니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이메일 편지를 읽었는데, ‘생활방식의 괴리감’에 자꾸만 눈길이 머물렀다. 꽁꽁 숨긴 무언가를 들켜버린 기분이랄까.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그냥 무시해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깨져버린 듯한 마음이기도 했다. 이번 학기에 새로 등록한, 같은 회사의 같은 부서에 근무한다는 의욕적인 젊은이들. 그들은 퇴근하면 강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움직이는 듯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이었다. 맨 뒤에 나란히 앉은 그 젊은이들이 책상 위에 먹거리를 펼쳐 놨다.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서 빵과 음료를 사온 것 같았다. 그런데 끝까지 자기들끼리만 먹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하며 이런 분위기를 처음 접한 터라 순간 좀 당황스러웠다. 회원들은 으레 먹거리를 가져오면 “이것 좀 드셔보세요” 라는 말을 곧잘 했다. 쉬는 시간이면 둥그렇게 모여 빵이랄지 김밥, 과일, 음료수 등을 나눠 먹으며 조금씩 친분을 쌓았다. 나는 그런 인정이 사라진 강의실이 어색해서 복도로 나가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문득 김학선님이 떠올랐다. 젊은이들 중에 누가 그분께 다가가 “이것 좀 드셔보세요” 라고  말하지 않을 게 분명해서 내심 마음이 쓰였다. 그들만의 군것질은 매주 이어졌다. 그들은 잘못한 게 없다. 퇴근 후 강의 시간에 맞춰 서둘러 달려왔고, 야간 강좌라 저녁밥을 먹지 못해 쉬는 시간에 군것질거리로 허기를 달랜 것뿐이다. 학기 초라서 낯설기도 하고, 무엇보다 수강생들을 생각해서 먹거리를 넉넉히 챙겨야 하는 자체를 이상하게 여길 지도 모른다. 

  학부생들도 마찬가지다. 제 책상 위에 음료수를 올려놓고 강의를 들으며 마시거나, 쉬는 시간이면 어울려 과자나 초콜릿을 먹는다. 그게 그렇게 먹고 싶은 날이 있다. 내가 어쩌나 보려고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면 빙그레 웃는다, 냠냠냠 맛있게 먹으면서. 내 생각이 촌스럽거나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어떤 목적을 갖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너희들은 먹고 나는 먹지 않는 상황이 어색하고, 외면당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때 어떤 학생이 “이것 좀 드셔보세요” 라고 말하면서 쿠키 한 조각을 건네면 나는 어린애처럼 기뻐할 것이다. 김학선님도 그렇지 않았을까. 하긴 내가 미주알고주알 떠들 입장이 아니다. 목이 칼칼해서 강의실에 가지고 들어간 뜨거운 자몽티를, 코앞에 앉아 있는 김학선님 앞에서 홀짝홀짝 마셨으니까. 김학선님은 소설창작반에서 정확히 한 달을 머물다 모습을 감췄다. 언제 피었다 졌는지 모를 밭두렁의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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