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87세 자퇴생>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주인공은 김학선님. 평생교육원의 소설창작반에 등록했다가 감당하기 벅찬 강의 내용,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체력과 기력, 무엇보다 ‘생활방식의 괴리감’에 결국 무릎을 꿇은 87세 어르신의 이야기였다. 하필이면 전국적으로 강풍이 불고, 강릉에 산불이 무섭게 번져 나무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한 봄날에 들려온 소식이라 더 착잡했다. 그분이 내 마음에 얹어 놓은 돌멩이가 시간이 갈수록 몸집을 키웠다. 김학선님의 결정에 필요이상으로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꽤 오래 담당하고 있는 소설창작반에 잠깐이든 깊이든 발을 디딘 회원은 많다. 그 중에는 십 년 넘게 자리를 지키다 코로나를 계기로 당분간 발길을 끊은 회원도 있다. 그 터줏대감이 1년 째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어도 기분이 이렇지는 않았다. 가만히 내 마음을 진단해 보다가 그 집착의 이유를 어렵잖게 알아냈다. 내가 평소에 이랬으면, 하고 바랐던 행동을 김학선님이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을 인간적으로 섬기는 마음가짐.
소설창작반의 선생으로서 매번 느끼는 아쉬움은 떠나는 회원들의 ‘마지막’에 훈기가 없다는 것이다. 평생교육원은 대학처럼 한 학기 단위로 운영한다. 봄학기라면 3월부터 6월까지다. 등록한 회원들은 한 달만 수강하고 발을 빼거나, 한 학기만 듣거나, 1년 넘게 착실히 출석한다. 말하자면 입맛대로 강좌다. 그런데 소설창작반에서 문학공부를 하다가 어느 시기에 마침표를 찍는 회원들은 대개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없어진다. 한데 모여 소설을 읽으며 감동하고, 누군가는 속마음을 털어놓고, 더러 회식자리를 마련해 우의를 다지는데도 그렇다. 표현이 서툰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다음 학기에 등록하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에, 한두 번 강의를 들어보니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아니면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받아서…… 그들의 빈자리가, 아니 섬세하지 않은 끝맺음이 머릿속에 맴돌아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그게 어떤 이유든 ‘단톡방’이라는 요긴한 소통창구가 있는데 꼭 그렇게 바람처럼 사라져야할까. 더군다나 우리는 매주 어떤 아픔과 결핍을 지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간절히 글을, 소설을 쓰고 싶어 하지 않나. 그것과 이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인간에 대한 배려, 그 마음씀씀이가 창작의 ‘첫문장’이라고. 김학선님이 마지막을 대하는 모습은 남달랐다. 당신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지 않았다. 왜 한 달 만에 손을 놓아야 했는지, 소설창작반에 잠시 머물며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에 대해 꼼꼼히 써서 단톡방에 올렸다. 도와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 강의시간에 맞춰 출입문을 열었더니 뜻밖에도 김학선님이 강의실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끝까지 강의를 듣기로 생각을 바꿨나 해서 내심 반가웠다. 나랑 눈이 마주친 반장이 “회원들에게 인사하러 오셨대요” 라고 말했다. 김학선님이 손가방을 들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글로 인사를 대신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왔습니다. 회원들 얼굴을 보고 인사하려고요.”
김학선님이 수줍게 미소 지었다. 강의실은 썰렁했다. 하필 오늘 결석생, 지각생이 많았다. 본의 아니게 죄송스러웠다. 김학선님이 무슨 말을 꺼내려는 표정을 지어서 나도 의자에 앉았다. 그 분은 서 있었으므로 우리가 마치 노교수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달 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두 시간을 버티는데 괴롭더라고요. 나눠준 소설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사실 읽어봐야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선생님 강의는 내가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내용이고…… 무엇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도와주는 반장님을 보면 내 처지가 너무 딱했어요. 소설창작반에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바보죠, 바보.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충격이 컸습니다. 오죽하면 꿈까지 꿨을까요. 승용차를 몰고 부산을 내려가야 하는데 키가 없어서 우왕좌왕하며 찾는 꿈…… 게다가 일본어 강좌도 듣고 있는데 두 개를 한꺼번에 하려니 더 주눅이 들고…… 그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젊은이들과 공부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내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젊은이들과 어울려 보겠습니까. 내가 느낀 젊음을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는데, 아무튼 나로서는 큰 수확이에요. 아참, 그리고 저번에 내가 글을 썼잖아요. 선생님이 음식 이야기를 써보라고 하셔서요. 그즈음 아내랑 재래시장에 갔어요. 옛날 시골 장터에서 가마솥 걸어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에 고기와 뜨거운 국물을 부어 먹던 추억이 떠올라서요. 아내를 앞세우고 시장 구경을 하는데 마침 선지국밥을 파는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습니다. 푸짐하니 맛있데요. 맛에 놀라고, 값이 사천 원이라 더 놀랐어요. 요즘 전기, 가스, 농산물 가격이 인상됐는데 사 천 원이라니, 식당 주인의 마음이 국밥만큼이나 따뜻하잖아요. 식사를 마치고 길을 걷다가 붕어빵 포장마차도 들어갔어요. 나는 붕어빵을 아주 좋아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해요. 두 마리 천원인데 네 마리 사서 아내랑 맛있게 먹었습니다. 길거리에 서서요. 그날 귀가하는데 논어 술이 편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베개 삼아도 즐거움은 그 가운데 있다…… 그날의 재래시장 풍경을 글로 써봤어요. 선생님이 칭찬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때까지는 뭐든 열심히 배워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젊고 앞날이 창창하잖아요. 많이 배우세요.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니 잘 알아서 하시겠지만요. 아이쿠, 내가 선생님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 버렸네요…….”
김학선님은 우리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서둘러 강의실을 나갔다. 당신도 모르게 말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미안해하는 몸놀림이었다. ‘말씀을 더 하셔도 되는데요……’ 나는 속으로 웅얼거리며 그분의 왜소한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강의실은 조용했다. 어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강의하기가 싫어졌다. 내가 두 시간 동안 떠들어 댈 말들이, 또 강의시간에 분석할 완성도 높은 소설들이 그분의 진솔한 고백 앞에서 빛을 잃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봄밤의 10분 특강을 함께 들은 회원들을 데리고 나가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으나 냉정을 찾아야 했다. 뒤늦게 들어온 지각생이 ‘강의실 분위기가 왜 이렇지?’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흘깃흘깃 쳐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