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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ind Craft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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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y 22. 2020

왜 우리는 닥쳐야 공부할까

위기가 보이지 않을 때, 준비하는 사람 되기

우리는 주변에는 뭔가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떤 사람은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안한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생일에 선물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잘 작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반면 우리 주변에는 뭔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일이 실패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꾸중을 듣거나 처벌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손실을 입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뭔가 사고나 신체적 손상을 입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을 먹다 식중독에 걸리는 것, 배가 아픈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스마트폰이 고장 나거나, 문서를 작성하다가 저장하지 않고 날려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건대, 내가 우리 주변이라고 표현한 사람들은 바로 이글 글을 쓰고 있는 나이고,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이다. 우리 인간은 뭔가 긍정적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부정적인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습성이 있다. 이 습성은 우리 유전자가 각인되어 있는 것이기에 제거하고 싶어도 제거할 수 없다. 컴퓨터를 사면 깔려 있는 기본 프로그램처럼, 우리 뇌에 깔려 있는 디폴트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런 습성이 만들어진 것에는 나름의 진화적 기원이 있다. 구석기 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등 따습고, 배 부를 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에너지를 보존해야 했다. 등 따습고, 배 부를 때, 괜히 뭔가 하겠다고 에너지를 낭비해 봐야 맹수가 나타났을 때 도망갈 힘만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우리는 등 따습고, 배부르고, 아무 일이 없는 상황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즉 아무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두뇌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긍정적인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그저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에게 뭔가 실패하는 상황은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먹이를 구하러 나갔는데, 구하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고, 맹수를 피해야 하는데, 피하지 못한다는 건 죽음을 의미했으며, 식용 식물과 독성 식물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고, 밤에 잠을 잘 만한 동굴을 찾아야 하는데, 찾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고, 전염병에 걸린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우리는 나에게 피해를 입하는 상황, 나에게 손실을 입히는 상황, 심지어 손실이나 피해가 예측되는 상황에 대해 과도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쉽게 말해 내 눈에 아무런 위협이 보이지 않을 때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가만히 있고, 뭔가 위협이 눈 앞에 닥쳐오면,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유난을 떠는 시스템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런 습성 때문일까? 우리는 약간 불명예스러운 속담을 가지게 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다. 사실 소를 잃어버리기 전에 외양간을 잘 고쳐두었으면 좋겠는데, 잃어버리는 사건이 눈 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심지어 소를 잃어버리지 않는 상황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막상 소를 도둑맞으면 극도로 분노하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제야 원인을 분석하고, 외양간을 고친다.


유비무환이라는 좋은 사자성어도 있지만, 우리는 유비무환 하기보다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더 많이 한다. 공부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도 없을 때, 시간이 넉넉하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진도를 나갈 수 있을 때, 움직이고, 공부하고, 준비하면 참으로 좋으련만 이런 일을 잘 벌어지지 않는다. 시험 기간이 코 앞으로 다가오고, 위기의 냄새로 폴폴 풍겨야 준비를 시작한다. 벼락치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벼락치기 체질이다.

-나는 벼락치기해야 집중이 잘 된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약간 웃기다. '나'만 그렇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렇다. 인간은 원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벼락치기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그건 당신만의 스타일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습성이다. 문제는 이 기본 습성이 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앞일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준비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예상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시대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렵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시험공부를 예를 들어 보겠다. 사실 시험공부라는 것은 아무 일 없을 때 시작했어야 하는 거다. 대학생이라면, 방학 때 미리 수업계획서를 보면서, 시험 준비를 시작했어야 하고, 최소 학기가 시작하는 그 순간 이미 공부를 시작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험 기간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해야 준비를 하겠다고? 여전히 구석기 시대 시스템을 쓰겠다고? 과연 그러고서 좋은 성적을 받길 기대하는가?


아마 당신이 벼락치기를 시작하면 딱 이런 상태일 것이다. 1단원 공부를 시작한다. 너무 오랜만에 들여다본 것이기에 공부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집중도 잘 안 된다. 그래서 예상외로 1단원 보는 것에만 시간에 꾀 오래 걸린다. 1단원을 마스터하고 나니 시간이 이미 많이 흘러서, 남은 단원들은 대충 훑어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험장에 들어간다. 당신은 마스터한 1단원에서 문제가 많이 나오길 기대하겠지만, 교수들은 항상 다양한 단원에서 다양한 문제를 낸다. 그래서 당신은 중간에 대충 본 단원들에 대한 답은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오직 1단원에 대한 것을 좀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마지막 시간에 배운 것은 바로 지난주에 배운 것이기에 일부 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당신은 1단원과 마지막 단원을 제외하고는 답할 수 없다. 이런 것을 심리학에서는 초두 효과와 최신 효과라 부른다. 첫 단원(초두)은 그나마 공부를 좀 했기에 기억하고, 중간부는 전혀 기억이 안 나고, 마지막만 조금 기억난다(최신)는 뜻이다[1].


어떤까? 당신은 초두효과와 최신효과에서 자유로운 사람인가? 아니면, 여전히 구석기 시대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닥쳐야 뭔가를 하는 사람인가? 현대인의 적응력 차이는 바로 유비무환 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1] Murdock, B. B., Jr. (1962). The serial position effect of free recall.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64(5), 482-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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