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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Oct 09. 2024

고통을 감수하는 의미있는 일이
우울과 불안을 치료한다

생산적인 삶을 위해 고통과 불편을 사서하는 사람에게 침범 못하는 불행

우리 뇌에는 행복 시소가 있다.

시소의 한 쪽에는 고통이 앉아 있고,

시소의 다른 쪽에는 쾌락이 앉아 있다.

보통의 경우 쾌락의 무게와 고통의 무게는 똑같고,

시소는 균형을 잡고 있다.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극적인 동영상을 보면서

쾌락쪽으로 무게를 쏠리게 하면 어떻게 될까?

시소가 쾌락쪽으로 기울어지고,

상대적으로 가벼워진 고통은 들려 올려갈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우리 뇌에게 있어 행복 시소의 균형이 파괴되는 일은 대형 사건이다.

쾌락쪽으로 무게가 실린 것이 무슨 대형 사건이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쾌락으로 지나치게 무게가 실린다는 것은

당신이 의미 있는 일을 하나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자,

생산성이 떨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니 대형 사고일수 밖에 없다.

자기계발도 안 하고 있고,

공부도 안 하고 있고, 일도 안 하고 있으면서

계속 돈을 써가며 쾌락만 추구하고,

시간을 써가며 쾌락만 추구하고 있으니 어찌 정상일 수 있겠는가.


우리 뇌는 이런 상황을 절대 좌시하지 않는다.

쾌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즉각적으로 조치에 들어간다.

어떻게 하냐고?

우리 뇌의 선택은 무척 단호하다.

여러분이 고통을 추구하지 않았지만,

고통을 경험하게 만드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고통 중에서도 쾌락만 추구하고 있는 상황이 위기상황임을 경고하기 위해

위협을 앞에 두고 있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인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게 만든다.

쾌락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의미 없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지금 위기라고, 불안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불안과 우울이라는 감정은

쾌락만 추구하는 인간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할 시간이라고,

생산적인 일을 할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우리 뇌의 목소리다.


그런데 말이다. 여러분은 과연 불안과 우울을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현대인들은 과연 우울과 불안을

고통을 감수하면서 생산적인 일을 하라는 우리 뇌의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우리 뇌가 짜릿한 동영상만 계속 보면서

쾌락을 얻고 있는 현대인에게

이제 균형을 잡을 시간이라는 의미로

불안과 우울이라는 감정을 선사하면,

현대인들은 이를 의미있고 생산적인 일을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쾌락과 더 큰 재미로

이 고통을, 이 불안을, 이 우울을 해소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스마트폰 중독, 알코올 중독, 에로틱한 영상 시청 중독,

각종 약물 중독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해석 오류는 더 큰 부작용과 악순환을 만들 뿐이다.

쾌락을 더 크게 경험할수록

당신에게 더 큰 불안과 더 큰 우울이 찾아오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이 글을 읽는 현대인들만이라도

우울과 불안에 대해 제대로 해석하고 대응하면 좋겠다.

불안과 우울이라는 고통의 정서는

쾌락을 추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불안과 우울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공부를 하라는 의미이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책을 읽으라고 의미이며,

고통을 감수하면서 연습하라는 의미이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글을 쓰라는 의미이다.


초조함과 긴장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운동을 하라는 의미이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도자기를 구우라는 신호다.


걱정과 근심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영어 공부를 하라는 의미고,

수학 문제를 풀으라는 뜻이며,

미리미리 발표 준비를 하고, 보고서를 미리미리 써두라는 계시다.


베짱이 생활을 지나치게 하는 사람에게

우리 뇌가 불안과 우울로 경고를 보내,

개미 생활로 돌아와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추운 겨울을 위해 미리미리 고생을 좀 해두라고,

식량을 저장해두라고,

개미처럼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라고 말해주기 위해

느끼는 감정이 불안과 우울임을 알면,

불안과 우울이 그렇게 나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현대인들이 이렇게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고통을 자처하면 우리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지 않은가?


말해주겠다.

우리 뇌의 행복 시소가 고통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리고 고통쪽으로 기울어진 불균형을 견디지 못한 우리 뇌가

재빠르게 작동을 시작하여 쾌락을 경험하게 만들어 준다.

고통을 감수하면서 한 생산적인 일로 인해

만족을 느끼게 하고,

고생을 자처하면서 한 의미있는 일로 인해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은 것이고,

글을 쓰고 나면 만족스러운 것이고,

자기계발을 하고 나면 행복한 것이다.


고통을 감수했더니

우울과 불안이 사라져버리고,

고생을 감수했다니

걱정과 근심이 없어진다.

고통을 자처해서 자기계발을 하니

즐거움이 밀려온다.

고생을 자처해서 공부를 하고, 훈련을 하니

뿌뜻함과 충만감이 나를 채운다.


생산적인 일을 하는 고통을 피하려고 할수록

우울해지고, 불안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일을 하는 고통을 자처하고,

고생과 불편을 감수할수록

우울, 불안, 걱정, 근심 없는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현대인이 경험하는

우울과 불안에 대한

최고의 치료법 혹은 최고의 치료약은

고생을 자처하면서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쾌락을 추구할 때는 순간 좋았으나,

뒷맛이 찝찝하고, 허무하고, 우울하고, 불안하지 않던가?

쾌락을 얻으려 할수록 쾌락이 도망가지 않던가?

우리 뇌의 행복 시소가 균형을 잡으려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오늘부터 이런 우리 뇌의 균형 잡기 신호를 제대로 해석하고,

반응해보자.


혹시 지금 우울하고 불안하신가?

고통을 감수하며

의미를 추구하라는 우리 뇌의 간절한 외침이다.


우리 뇌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자!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Giuseppe Argenz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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