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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r 10. 2021

피카소와 더 넥스트 램브란트

인공지능이 새롭게 만든 것들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표절 혹은 짜깁기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남긴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2016년 4월.

인간을 놀라게 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모두가 놀랐지만, 가장 놀란 것은 미술가들, 그중에서도 렘브란트 전문가들이었을 것이다.


렘브란트(Rembrant: 1606. 7. 15 - 1669. 10. 4)는 중세 네덜란드의 화가이다. 렘브란트 조명으로 알려진 특별한 조명법을 사용한 그림을 주로 그렸고, 특히 초상화들이 유명하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렘브란트라는 미술가가 있는 것은 알 정도이니, 이 사람의 유명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렘브란트가 대중적으로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풍부하게 발견되었고, 경매에서 비싸게 팔린 적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렘브란트의 작품은 거의 다 발견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실제로 한 동안 새로운 작품이 발견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2016년 4월 13일 렘브란트 전문가들과 미술계를 흥분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한 동안 뜸했던 렘브란트의 새로운 작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렘브란트 전문가들은 그 작품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다. 해당 작품이 전시된 곳에 도착한 렘브란트 전문가들은 깜짝 놀랐다. 한눈에 봐도 렘브란트의 진품으로 보이는 '40대 중년 남성의 초상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는 법! 전문가들은 마음을 차분히 가란 앉히고, 캔버스에 그려진 초상화를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흘렀다. 전문가들은 이미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들의 얼굴에 긍정적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에 부합하는 결론이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초상화는 렘브란트의 진품이 맞습니다."


다들 환호했다. 그동안 렘브란트의 작품이 나오지 않아 내심 섭섭했는데, 이렇게 멋진 진품이 이 세상에 등장하다니!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쁨을 나누고 있는 그 공간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곧이어 그들의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렘브란트 전문가들에게 잠시 진정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는 이렇게 운을 띄웠다.


"여러분 초상화를 잘 감상하셨습니까? 진품이라고 결론 내리셨죠? 지금도 그 의견에는 변함이 없으실 겁니다. 그런데요. 제가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다소 불편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 전문가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나 궁금했다. 그때 그가 이어서 말했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진품이 아닙니다. 사실 저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공학자들인데요. 최근 저희가 더 넥스트 렘브란트라는 인공지능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저희가 개발한 인공지능이 3D 프린터를 통해 그려낸 것이며, 렘브란트의 작품이 아닙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리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작품은 그동안에 발견된 렘브란트의 어떤 작품들보다 가장 렘브란트스러운 작품으로 절대 가짜가 아닙니다. 이 작품이 가짜라는 증거를 내놓시오!"


라고 말이다.


MS의 공학자들은 당연히 증거를 준비했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영상을 보시죠!"


*관련 영상 1

https://www.youtube.com/watch?v=IuygOYZ1Ngo


*관련 영상 2

https://www.youtube.com/watch?v=Xdw-yX3y2fk


*관련 홈페이지: 더 넥스트 램브란트

https://www.nextrembrandt.com/


영상을 본 렘브란트 전문가들은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이제 미술가를 넘어 예술가 집단 전체로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제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까지 정복하였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정말 인공지능에게 예술의 영역까지 정복당한 것인가?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예술까지 이제 인공지능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하는가? 예술가들도 이제는 실업자의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건가?


이런 질문들에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전에 잠시 생각을 해보자. 그리고 더 넥스트 렘브란트라는 인공지능을 제대로 바라보자. 이 그림 정말 창의적이고, 새로운 그림이 맞는가? 물론 렘브란트의 작품 중에 없는 그림이고, 우리 인류에 그동안 없었다는 의미에서는 새로운 게 맞다. 그런데 새롭다는 게 정말 이런 뜻인가? 창의적인 예술이라는 것이 정말 이런 건가?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더 넥스트 렘브란트는 그냥 렘브란트의 작화 스타일을 흉내 낸 것이지, 인공지능 스스로 창조해 낸 건 '1'도 없다.


더 심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더 넥스트 렘브란트는 그냥 렘브란트의 작화 스타일을 표절한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 넥스트 렘브란트는 그냥 렘브란트를 열심히 배워서 렘브란트를 표절했다. 자신이 창조한 스타일도 없고, 예술계에 한 획을 그은 것도 없으며,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낸 것도 없다. 예전부터 있던 렘브란트 조명을 사용한 작품을 얼굴만 바꿔서 제시한 게 전부다.


어떤가? 이래도 예술가들이 인공지능에게 밀려서 실업자가 될 것 같은가? 나는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다. 예술가들은 여전히 예술가로서 가치가 있고, 우리 인류에 꼭 필요한 존재이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공동체로부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창조와 예술은 인공지능 따위가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피카소의 초기작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렘브란트가 너무 좋아서 렘브란트 따라 그리기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다. 렘브란트 스타일로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렸던 사람이다. 위는 이 사람의 초기작 중 하나이다. 어떤가? 얼굴에 들어간 조명법이 더 넥스트 렘브란트 인공지능이 그린 '40대 중년 남성의 초상화'와 굉장히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연령대별 피카소의 작화 변화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런데 이렇게 10대와 20대 시절 렘브란트 따라쟁이를 자처하던 사람이 30대 무렵부터는 갑자기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같은 사람이 그린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림들이다. 때로는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누군지 알겠는가? 그렇다. 이 사람은 바로 렘브란트 따라쟁이였다가 입체주의를 창조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 10 25 - 1973. 4. 8)이다!


이런 것이야 말로 인간의 창의성이다. 렘브란트 공부를 하다가 렘브란트 표절로 나아가는 인공지능과는 다르다. 렘브란트 공부를 열심히 한 인간은 입체주의를 창조한다.



파블로 피카소와 동시대를 살았던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1912. 1. 28 - 1956. 8. 11)도 마찬가지다. 고전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예전에 있었던 미술들을 열심히 공부한 후, 그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린 그림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그러더니 페인트통에든 잉크를 붓에 찍어 뿌려버리거나, 페인트통에 구멍을 뚫어서 여기 저리 뿌리고 다닌다. 인공지능이라면 그냥 과거를 학습한 후, 과거에 있던 것들을 짜깁기했겠지만, 인간 잭슨 폴락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고전적인 풍경화나 인상파 화가, 렘브란트 스타일의 초상화를 못 그려서 그렇게 한 게 아니다. 다 할 줄 알지만, 자신만의 영역으로 진정한 창의성의 세계로, 진정한 예술의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 8. 6 - 1987. 2. 22)은 더 굉장하다. 고전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예전에 있었던 미술들을 열심히 공부한 후, 그는 인간이 스스로 붓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경지에 나아간다. 예술은 머릿속에서 완성되며, 머릿속에 있는 이상을 끄집어내는 순간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직접 붓을 잡아서는 안 되며, 머릿속의 이상을 그 이상에 가깝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기술자들에게 콘셉트를 설명만 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엔디 워홀은 엔디 워홀 팩토리(공장)를 만들어서 직원을 고용하고, 자신은 콘셉트만 잡으며, 실제 작업은 직원들이 하게 시킨다. 콘셉트 디자인이라는 개념도 앤디 워홀에게서 나왔다. 인공지능이라면, 그냥 과거에 머물렀겠지만, 앤디 워홀은 자신의 창조적인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 광고, 영화 등등 모두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은 아무리 잘 봐주어도 표절이자, 조잡한 짜깁기에 불과하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콘셉트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다. 인공지능도 짜깁기해서 새로운 곡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어떤 가수가 선보이고 싶은 새로운 이미지에 부합하는 신곡을 만들 수는 없다. 그 새로운 이미지는 인공지능의 데이터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번역기도 과학 논문을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에게 익숙할 뿐 아니라, 딱 맞는 그 학계의 용어로 번역하는 건 그 분야 전문인 사람 번역가만 할 수 있다.


구글 번역기도 한국 영화 안의 대사를 그냥 대충 영어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한국말을 미국 문화권 사람들의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양쪽 문화를 다 아는 사람 번역가만이 할 수 있다.


구글 번역기도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면서 한 소감을 그냥 대충 통역할 수 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말을 그 문화권 사람들의 귀에 착착 붙게 통역하는 것은 양쪽 문화를 다 알 뿐 아니라, 영화계의 용어를 알고 있는 사람 번역가(샤론 최, Sharon Choi)만이 할 수 있다.


빅데이터에 기반하여 학습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이상 기계는 창의적일 수 없다.


진짜 창의적인 것은 결국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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