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국희 Mar 03. 2021

이세돌과 알파고

진짜 창의적이고 추상화를 잘하는 건 여전히 인간이다.

2006년 다트머스 대학에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초대형 행사가 개최되었다. 1956년에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최초의 인공지능 회의를 기념하고, 지난 50년 간 이루어진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상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대규모 행사였다. 사실 이런 대규모 행사는 학교 재정이나 참가비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 그래서 보통 주최자들은 관심 있는 기업의 후원을 요청한다. 다트머스 회의 50주년 기념행사 주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참가비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는 걸 직감하고 후원 기업 물색에 나선다.


후원 기업의 첫 번째 후보는 2006년 당시 최고의 IT기업인 모토로라였다. 정보통신 업계의 선두주자인 만큼 당연히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우선적으로 후원을 요청했다. 필요하다면 모토로라가 원하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필요한 인재를 모집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할 마음도 있었다. 즉 각국에서 몰려들 인공지능 인재들을 대상으로 마음껏 모토로라를 홍보라고, 모토로라에 데려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모토로라는 이 후원을 거절했다.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냥 딱 잘라서 거절했다. 다른 데 알아보라고 말이다. 주최 측은 고민에 빠졌다. 모토로라 같은 IT업계의 1등 기업이 후원을 거절했기에 다른 기업들도 거절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실리콘벨리에서 한 기업이 찾아온다. 그들은 자신을 검색 엔진을 계발하는 기업이라고 소개했고,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다고도 말했다. 그러더니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다트머스 회의 50주년 기념행사를 전액 후원하겠다고 말이다.


주최 측에게는 정말 반가운 말이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이 주최 측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장본인은 바로 레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었다. 누구냐고? 구글 설립자다! 그렇다. 모토로라가 거절한 다트머스 회의 50주년 기념행사 후원을 한 기업이 바로 구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2006년을 기준으로 구글과 모토로라의 IT 업계에서의 위상은 역전된다. 2006년 당시 별거 아니었던 구글은 이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글로벌 대기업이 되었지만, 2006년 인공지능을 거부한 모토로라는 한 마디로 망했다. 2006년에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각이 기업을 흥망을 좌우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6년 3월 구글은 이미 공룡과 같은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 그리고 구글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내디딘 큰 한걸음을 전 세계에 생중계한다. 다트머스 회의 6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인, 2016년에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인공지능 이벤트를 개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세돌과 알파고 바둑 대국이다!


우리는 이 대국의 결과를 알고 있다. 이세돌이 1승 4패(알파고 4승 1패)로 졌다. 그리고 모든 인류(특히 한국인)가 충격에 휩싸였다. 인공지능 체스 선수가 인간 체스 챔피언을 이겼을 때도 이세돌이 질 때처럼 충격을 받진 않았다. 체스는 바둑에 비하면 경우의 수도 적고, 인공지능이 공부할 것이 적지 않은가. 또한 체스는 적을 전멸시키거나, 왕이나 여왕을 잡으면 이긴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고 할 때, 사람들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바둑은 달랐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한대다. 그리고 집을 짓는다(경계선을 만들어서 땅을 공터를 넓힌다)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추상화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졌으며, 알파고 전까지는 실제로 그랬다.


알파고는 이렇게 추상화가 필요한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우리가 놀란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첨단기술이 인간의 일자리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졌다. 공장 자동화로 인해 노동 집약적 일자리는 이미 기계가 많이 대체했지만, 지식 집약적 일자리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지식 집약적 일자리도 기계가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런데 잠시 냉정해져 보자.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졌다. 알파고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을 닮은 것이다. 인간이 알파고를 닮은 게 아니라, 알파고가 인간을 닮았다. 그리고 사실 이세돌이 바둑에서 늘 이겼던 것은 아니다. 진 적도 있다. 물론 이긴 횟수가 진 횟수보다 많지만, 아무튼 이미 다른 인간들에게 수없이 져봤다. 그런데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에게 졌다고 해서 그걸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있을까? 물론 좀 신기하긴 하다. 그런데 이 사건 하나로 모든 지식 집약적 일자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거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알파고는 바둑을 위해서 태어난 인공지능이다. 이기는 바둑이 무엇인지, 이기는 수가 무엇인지 확률을 학습한 녀석이다. 첫 수를 어디에 두어야 이길 확률이 높은지, 상대방이 흑돌이나 백 돌을 어디에 두었을 때, 그다음수는 어디에 두어야 최종적으로 승리를 하게 될 확률이 높은 지를 학습한 녀석이란 말이다. 또한 수많은 반복 학습을 통해서 이기는 수에 대한 확률과 오차를 줄여왔다. 그리고 이세돌을 만난 것이다. 이세돌을 만난 알파고는 말 그대로 바둑의 신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이세돌은 알파고를 모르지만, 알파고는 이세돌의 바둑을 너무 잘 안다. 이세돌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왔고, 이세돌이 바둑을 둘 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미 분석을 하고 왔다. 그런데 이세돌은 알파고를 알 수가 없다. 이세돌이 알파고가 바둑 두는 장면을 사전에 보았다고 해서 알파고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알파고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가장 이길 확률이 높은 수를 둘 뿐이기에 어떤 패턴이 없다. 사람은 어떤 패턴이나 스타일이 있을 수 있지만, 알파고는 그게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1번 이긴 것이 신기하다. 사실 이세돌이 5번 모두 지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세돌은 이러한 절대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1번 이겼다. 나는 이게 더 놀랍다. 어떻게  바둑만을 위해 태어났고, 이세돌을 이기기 위해서 태어난 녀석을 1번 이겼을까? 우리는 사실 여기서 시사점을 얻어야 한다. 여기서 인간의 우수함을 다시 한번 느껴야 한다.


이세돌이 이긴 대국은 바로 네 번째 대국이었다. 서로 70수를 주고받기 까지는 팽팽한 공방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세돌이 78수를 두는 순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세 역전! 분위기가 이세돌에게 돌아왔고, 바둑의 초고수였던 알파고는 이세돌의 78수 이후 계속 실수를 연발하더니, 결국 이세돌에 패한다. 도대체 이세돌의 78수가 뭐였길래 알파고가 실수를 계속했을까? 바둑 전문가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세돌의 78수가 묘수 중의 묘수였다고 평가했다.


왜 묘수냐고? 그 이유가 좀 독특하다. 알파고가 모르는 수였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이세돌의 78수는 알파고의 학습 데이터에 없었던 수였다는 말이다. 알파고가 학습한 수천억 개의 패턴에 없는 수가 바로 이세돌의 78수였다! 놀랍지 않은가? 나는 정말 놀랐고,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알파고가 학습한 수천억 개의 데이터에 없는 수를 둘 수 있지? 사실 알파고의 학습 데이터를 벗어난 수를 두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4번이나 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세돌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알파고가 학습한 수억 개의 가능성, 과거에 있었던 거의 모든 가능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수를 두었다. 그리고 이겼다.


여기서 다시 질문하려고 한다. 바둑을 진짜 진보시킨 건 누구인가? 과거에 있었던 수천억 개의 가능성을 학습한 알파고인가? 아니면, 과거에 없는 새로운 수로 알파고를 1번 이긴 이세돌인가? 진짜 창의적이고, 추상화를 잘 시키는 건 누구인가? 이세돌을 이기기 위해 이세돌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국에 임한 알파고인가? 아니면 전혀 모르는 알파고를 1번 이긴 이세돌인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세돌이 바둑 발전에 더 기여한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세돌이 알파고보다 창의적이고 추상화를 잘하는 것 같다(물론 여러분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도 알파고를 이세돌하고 비교하는 건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알파고를 인간하고 비교하지 말았으면 한다. 사실 비교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알파고는 그냥 바둑밖에 모르는 바보 기계다. 알파고는 바둑밖에 모르지만, 당신은 미술도 감상할 줄 알고, 음악도 감상할 줄 안다. 알파고는 바둑밖에 모르지만, 당신은 수학도 좀 한다. 알파고는 바둑 밖에 모르지만, 당신은 축구도 좀 하고 농구도 좀 한다. 알파고는 바둑 밖에 모르지만 당신은 장기도 좀 두고, 오목도 좀 두고, 카드 게임도 좀 한다. 알파고는 바둑 밖에 모르지만 당신은 요리도 좀 한다. 이런 말을 정말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알파고 따위가 인간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겠는가!


진짜 창의적이고, 진짜 추상화를 잘하는 건 인간이다. 무언가를 위해 태어난 인공지능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건 인간이 아니다. 그냥 그걸 위해서, 태어났을 뿐이다. 그냥 그걸 잘하라고 인간이 만들었을 뿐이다. 진짜 창의적인 건 인간이고, 진짜 모든 걸 다 잘하는 건 역시 인간이다.

이전 21화 당신은 지금 기계와 대화했나요? 인간과 대화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