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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Feb 17. 2021

강-인공지능의 조건: 인간의 조건

다트머스 회의(2): 강-인공지능이 가능할까?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계에 대한 집단적인 논의는 언제 시작된 걸까? 여기에는 분명한 정답이 있다. 바로 미국의 다트머스대학에서 1956년 5월 26일에 시작해 3개월 정도 이어진 다트머스 회의이다. 이 회의에 참석한 존 매카시(John McCarthy),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 너대니얼 로체스터(Daniel Rochester),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허버트 사이먼(Herbert Alexander Simon) 등 32명은 모두 컴퓨터 공학계의 거물들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들을 컴퓨터 공학계의 거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컴퓨터 공학계의 이단아들이었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역사는 이들의 논의가 왜 중요했는지를 증명해주고도 남았다. 이는 2006년 다트머스 회의 50주년을 맞이하여 50년 전과 동일한 장소에서 개최된 행사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으로 증명되고도 남는다. 1956년에는 이 회의를 취재하러 온 언론사도 시카고에 있는 언론사 밖에 없었다.


이 시카고 언론사는 이 회의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뇌, 브레인(Brain)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이 회의의 이름을 브레인 미팅이라고 칭하려고 했다. 그런데 왠지 너무 평범한 것 같고, 이 회의를 독점 취재한 것과 다름 없는 시카고 언론사의 특징을 담은 기사 제목을 뽑아내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다가 브레인이라는 말 뒤에 바람이 많이 부는 시카고의 특징을 담은 스토밍(storming)이라는 말을 붙여서 이 회의를 브레인스토밍 미팅(brainstorming meeting)이라고 부르는 기사를 쓴다. 즉 브레인스토밍이라는 말의 기원은 다트머스 회의였던 것이다.


그러나 2006년에 열린 50주년 기념 행사에는 수많은 언론사와 과학 저널, 공학 저널, 심리학 저널들에서 이 회의를 취재했고, 누구도 기사 제목을 독점할 수 없었다. 또한 이 50주년 행사 참가자 중에는 1956년 5월 26일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20대(맥카시와 민스키는 1927년 생), 30대(허버트 사이먼은 1916년 생)의 젊은 청년들이 이제는 70대, 80대의 노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은 여전히 20대 였다. 또한 살아 생전에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계에 대한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을 목도할 수 있게 된 것에 감격했다.


그리고 이렇게 첫 다트머스 회의 참석자들 중 살아 생전에 50주년 기념행사 참석자가 있다는 것은 첫 다트회의의 두 번째 결론이자, 예언이 적중했음을 의미한다. '이 회의 참가자 중 죽기 전에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볼 사람이 있다'라는 결론이다. 또한 세 번째 결론이 결실을 맺었음을 의미한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라고 부르자는 결론이다. 



물론 1956년 당시 죽기 전에 만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인공지능이 진짜 인간(Human; Homo Sapiens)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것임을 의미한 건 아니다. 공학자들 중에는 만화에 나오는 안드로이드 로봇처럼, 인간과 실질적인 구분이 불가능한 기계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 소위 강인공지능(Strong AI)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현실적인 상상에 불과하다. 기계가 인간처럼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기술 발달에 관계 없이, 그냥 불가능하다고 보여지는 것들이다.


첫째, 강-인공지능이 되려면 기계 스스로가 자신이 학습할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계는 자신 학습할 대상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한다. 인간 프로그래머가 짜준 명령어 안에서 검색을 하고, 학습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는 기계는 인간처럼 될 수 없다. 인간의 명령을 받아서 특정한 과업을 수행할 수는 있겠지만, 인간처럼 자발적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의사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강-인공지능이 되려면 기계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고,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두뇌는 가소성이 있다. 즉 인간의 두뇌는 변경가능하다. 더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개선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신경구조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기계는 아니다. 한번 회로를 만들어 두면 스스로 바꿀 수 없다. 한번 프로그래밍 코드를 짜두면, 스스로 그 코드를 바꿀 수 없다. 개선하고 싶다면, 인간이 개선시켜 주어야 한다. 인간이 계속 업데이트를 시켜주어야 하고, 버그를 잡아 주어야 하고, 업그레이드를 실시해주어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기계는 앞으로도 나오기 어렵다.


셋째, 강-인공지능이 되려면, 동력을 스스로 공급해야 한다. 인간은 전원장치가 없다. 사실 인간은 전기가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냥 다시 구석기 시대처럼 살면된다. 지금은 전기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기에 전기 없으면 어떻게 사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전기라는 녀석은 최근 100년 사이에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지, 원래 인간이 쓰던 것이 아니다. 인간은 더 오랜 시간, 수만년을 전기 없이 잘 살아왔고, 정말 다행이게도 인간의 뇌는 이러한 구석기 시대의 세팅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사실 전기 없는 세상이 되면, 인간은 굉장히 잘 살 수 있다. 금방 적응할 것이다.


그런데 기계는 아니다. 기계는 전기가 끊어지면, 그냥 올 스탑이다. 말 그대로 죽는다. 즉 기계는 동력을 인간이 부여하는 전기에서 공급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인공지능이 무서운가. 그냥 스위치 뽑으면 된다. 혹은 온오프 스위치를 오프로 하면 된다. 그럼 인공지능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 


사실 이 세 가지 조건은 인간의 본질에 해당한다. 인간은 스스로 학습할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스스로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동력을 공급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인간의 본질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인공지능은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다. 인간과 협력하여 인간의 일을 더 잘되게 해줄 존재이고, 인간의 생산성을 더 풍성하게 해줄 훌륭한 파트너이자, 친구이지, 인간의 일자리 뺏어갈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첫 다트머스 회의 참가자들은 강-인공지능이 갖춰야 할 조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인공지능이라는 비현실적 상상을 중요한 회의의 결론으로 채택하진 않은 것이다. 즉 첫 다트머스 회의 참석자들이 죽기 전에 볼 사람이 있다고 한 인공지능은 강-인공지능이 아니라, 약-인공지능이다. 인간의 신체 기능 중 일부, 인간의 인지 기능 중 지극히 일부를 흉내내거나, 특정 신체 및 인지 기능에 국한하여 인간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것들 말이다.



가끔 인공지능 개발자들을 원망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인간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악마들을 왜 자꾸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화를 낸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악마들이 아니다.

인간의 특정한 지적 능력을 도와주고, 보완해주는 친구이자 파트너이다.

그리고 인간이 강-인공지능의 조건, 즉 인간의 조건을 잘 지켜간다면,

기계 따위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염려는 없을 것이니 안심하자.


인공지능을 보기 전에

내가 인간의 조건, 호모 사피엔스의 조건을 총족하고 있는지를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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