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트머스 회의(3): 튜링 테스트와 약-인공지능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에 '인공지능'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1956년 5월 26일 다트머스 회의 이후, 인공지능 기술에는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인공지능 비서를 자신의 옆에 하나씩(때로는 하나 이상)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추가적인 질문을 해볼 수 있다. 현대인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라는 인공지능을 최초로 생각한 사람은 누구일까? 구체적으로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누굴까? 1956년 다트머스 회의는 분명 아니다. 다트머스 회의 참가자들도 결국 그 앞에 있었던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바로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쓰진 않았지만,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계'에 대한 개념을 세상에 제공한 사람, 알렌 튜링(Alan Turing)이다. 튜링은 '기계가 실제로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뭔가 연산해낼 수 있다. 그럼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말 뛰어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0과 1로 된 이진법 체계를 통해 연산을 하고, 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기계는 분명 인간과 다르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튜링은 영국 사람이었고, 캠브리지 대학의 수학과 교수였다. 그리고 교수로 재직한 지 얼마 안돼서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은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튜링의 개념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튜링에게 기회가 왔다. 승승장구하고 있던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군을 이에 대항하는 연합군이 물리치기 위해서는 독일군의 암호인 애니그마를 반드시 해독해야 했다. 연합군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도 이 암호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풀 수 없었다.
최고의 수학자, 최고의 암호학자, 최고의 언어학자, 영국 최고의 체스 챔피언 등으로 팀을 꾸려 도전해봤는데, 풀리지 않은 것이다. 나름 암호와 퍼즐을 좀 풀어봤다는 사람들이 다 도전해 봤지만, 하는 족족 실패였다. 하루 24시간 동안 단 1개의 암호도 풀지 못했고, 다음날이 되면, 애니그마의 암호 체계가 바뀌어 버렸기에 그나마 알아낸 단서들조차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답답한 상황을 참지 못한 영국군의 한 지휘관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애니그마를 풀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을 계산해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계산 결과는 절망이었다. 2천 만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이런 순간에 등장한 것이 튜링이다. 튜링은 애니그마를 해독하는 팀에 들어오자마자, 뭔가 기계를 만드는데 전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애니그마는 기계다. 애니그마라는 기계를 이기기 위해서는 애니그마를 뛰어넘는 기계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3개월 간의 노력과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애니그마를 해독할 수 있는 기계가 완성된다. 애니그마의 연산을 따라잡는 기계를 완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컴퓨터, 튜링 기계(Turing machine)이다! 그리고 이 튜링 기계가 바로 최초의 인공지능인 것이다. 그리고 이 튜링 기계는 사람이 해독하면 2천만 년이 걸릴 거라고 하던 그 애니그마를 45초에 하나씩 풀어버린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은 바로 이때부터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게 되었고, 마침내 연합군이 승리한다.
이처럼 튜링 기계는 튜링이 말했던,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의 시작이었다. 여기서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이고, 튜링의 뜻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다트머스 회의도 개최했던 것이다. 어쩌면 다트머스 회의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튜링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2차 세계대전을 끝낸 최고의 공로자 튜링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다트머스 회의가 있기 2년 전에 1954년 자살을 한다. 사실 튜링은 동성애자였다. 문제는 당시 영국이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를 하다가 적발되면, 엄격한 처벌을 가해졌다. 튜링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성애를 했다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당했고, 그 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것이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느냐?'는 튜링의 질문은 소수자였던 자신과 다수(이성애자)를 차지하는 대중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인공지능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인재가 이렇게 가버린 것은 역사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튜링이 살아서 다트머스 회의에 참석했다면, 2006년 다트머스 회의 50주년 행사 때 나왔을 성과들이 20년은 당겨졌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것은 그냥 상상해 불과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튜링의 뛰어난 업적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튜링은 기계가 진정 인간처럼 될 수는 없지만, 특정 영역에서 인간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방법을 제안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튜링 테스트다(Turing test)다. 튜링 테스트의 기본은 이렇다. 당신은 지금 컴퓨터를 활용하여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 채팅을 하는 것이다. 한 10분 정도 이 얘기 저 얘기를 한다. 그리고 10분이 지나면, 한 가지 질문이 등장한다. '지금 당신과 대화한 상대방은 기계입니까? 인간입니까?'
만약 대화가 너무 자연스러웠다면, 당신이 이것에 대해 인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뭔가 부자연스러웠다고 느낀다는 당신이 기계라고 답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답하고 나면, 결과가 제시된다. 그리고 이 결과가 바로 튜링 테스트의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당신의 정답률이 100%라면, 이건 무슨 의미일까? 즉 인간을 인간이라고 맞추고, 기계를 기계라고 맞추는 상황이다. 이건 기계가 아직 인간 수준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당신의 정답률이 50% 이하로 내려간다면, 이건 무슨 의미일까? 즉 인간인지 기계인지 슬슬 혼동된다면? 그래서 기계라고 했는데, 인간이고, 인간이라고 했는데 기계라면 이건 어떤 뜻일까? 그렇다. 이건 기계가 마침내 인간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언어 사용이라는 영역에서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따라잡았다고 결론 내리고, 언어 영역에서 기계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인공지능 번역기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 대화 수준에서는 이제 인공지능 번역과 인간의 번역을 구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는 번역이라는 특정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따왔으며, 즉 번역 부분에서의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번역뿐 아니다. 현대 사회는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튜링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고, 실제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고 있다. 체스에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인간 체스 챔피언을 이기는 경우가 발생했고, 바둑에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인간 바둑 챔피언을 이기는가 하면, 작곡과 미술, 광고 같은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진짜 인간 같은 것은 아니다. 진짜 인간이라면, 번역만 해서는 안 되고,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바둑도 하고, 미술도 하고, 수학도 하고, 과학도 하고 그래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또 진짜 인간이라면 체스만 해서는 안 되고, 장기도 두고, 오목도 두고, 가끔은 음식도 만들고, 게임도 하고 그래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것들은 진짜 인간 같은 강-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의 특정 능력을 흉내내거나, 인간의 특정 능력만 극대화시킨 약-인공지능(weak artificial intelligence)이니까 말이다.
약-인공지능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파트너이다. 당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면서 당신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훌륭한 친구이자, 동료이자, 가족이다. 튜링의 튜링 기계, 즉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가 인류를 나치 독일에서 구원한 것처럼,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계들은 우리 인류를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할 동반자이다. 물론 인간의 정체성, 즉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굳건하게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겠지만 말이다.
앞으로 또 어떤 분야에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계들이 나올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