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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Feb 10. 2021

인류는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가면서 발전했다

통제적 정보처리에서 자동적 정보처리로

누구에게나 시작이 있다. 그리고 시작할 때는 대개 좀 힘들기 마련이다. 처음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때를 생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씻고 옷 입고, 아침밥을 챙겨 먹고, 유치원 가방에 필요한 준비물이 다 들어 있는지 챙긴 후, 8시 30분에 오는 유치원 버스에 정확하게 올라타는 법을 배우는 것에는 고생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더 이상 어렵지 않다. 이것이 어렵지 않아 진 것은 인생 전체에 제법 큰 효과를 미친다. 한국의 청소년들의 경우, 10대 시절 전체가 유치원 때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일과표대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이것에 대한 적응을 이미 해버렸기에 웬만하면 그 일과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에 가도 아침 일찍 들어야 하는 수업(1교시)이 있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오전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에 대한 적응을 유치원 때 끝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래 한글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처음 문서를 작성하던 때가 생각난다. 키보드로 글씨를 입력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소위 말하는 독수리 타법(독수리에게는 미안하다)으로 더듬더듬 글씨를 입력했었다. 즉 키보드 한 번 보고, 모니터 한 번 보는 식으로 고생스럽게 하나하나 글자를 입력했던 것이다. 또 타자 연습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키보드 자판을 보지 않고, 모니터를 보면서 키보드의 한글 자음과 모음 위치, 영어 자음과 모음 위치를 훈련하는 것이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낱말 게임 같은 것도 있었다. 테트리스처럼 위에서 낱말들이 아래도 떨어지는데, 낱말이 땅에 닫기 전에 입력해야 하는 게임이다. 스릴도 있고, 타자 연습에도 좋았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제법 능숙하게 키보드로 문서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유치원 때 자동화시킨 규칙적인 생활과 어렸을 때 배운 아래 한글로 글 쓰는 능력은 군대에서 제법 도움이 되었다. 일단 군대의 규칙적인 생활이 나에게는 그렇게 어려움이 없었다. 그냥 늘 하던 일이니 말이다. 문서를 제법 익숙하게 자동적으로 작성하는 능력은 더 큰 기여를 했다. 군대에 입소해서 신병교육대 훈련을 받는 동안, 사단 사령부에서 행정병을 선발하려고 와서 실무 시험을 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당시 선발을 담당한 간부가 실제로 문서 예시를 주고, 그대로 작성하고, PPT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제법 체계적인 선발방식이었다. 구글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이 시험에서 나는 1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필자가 뽑혀서 사단 사령부 행정병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냥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좋은 결과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행정병으로 본격적인 군생활을 시작한 나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해야 했다. 같은 행정병 선임들이 업무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더니, 컴퓨터에서 마우스를 빼버리는 것이 아닌가! 헉! 나는 표를 만들려면 마우스를 써야 하는데, 저걸 빼버리다니 어쩌자는 거지! 순간 당황했다.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선임이 갑자기 받아 적으라면서 뭘 열심히 불러주었다. Alt + L 글자 모양, Alt + T 문단 모양, Cntl + N + T 표 만들기... 갑자기 막~ 불러주는데, 정신없이 받아 적는다고 했지만, 놓친 부분이 많았다. 그러더니, 지금 불러준 것이 단축키라면서 앞으로는 단축키만 사용해서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는 단축키와의 전쟁에 들어갔다. 단축키를 외우지 못하면, 혼날 것이 뻔했기에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아래 한글을 배울 때처럼 더듬거렸다. 그리고 한 2주가 지났을 무렵, 슬슬 자동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단축키가 흘러나왔다. 머리가 아니라, 단축키를 몸이 기억하듯이 반응하는 나를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문서든지 어렵지 않게 작성할 수 있었고, 문서 작성 속도는 계속 빨라졌다.



이러한 배움은 대학에 복학해서도 나에게 좋은 일들이 생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학교 안에 있는 행정부서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졌고, 교수님의 연구 보조원으로 들어가서 문서를 편집하거나, 학습에 필요한 유인물을 편집하는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때 자동화시켜 둔 편집 기술로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지금 이야기의 공통점을 발견했는가? 맞다. 뭔가 배우는 단계에서는 힘들여서 해야 하지만, 그것이 익숙해지고, 자동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면, 그 뒤에 개인적으로 성장할 기회가 많아지고, 실제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일을 배울 때, 과업을 처음 시작할 때,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힘들게 노력해야 하는 것, 끙끙거리는 그 시점을 통제적 정보처리라고 부르고, 통제적 정보처리가 끝난 후에 익숙해진 후, 이제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단계에 오른 것을 자동적 정보처리라고 부른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통제적 정보처리라는 단계를 거쳐서 자동적 정보처리로 넘어가게 되는데, 자동적 정보처리의 경지에 오른 것들은 한 개인의 사회적 경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자동화의 효과라고나 할까. 자동화시키는 과업을 늘려가는 것이 개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동화시킨 일이 많아질수록 새로운 일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새로운 일은 대개 인지적 에너지 소모가 큰데, 하루에 수행해야 하는 일들 대부분이 새로운 일이라면, 사실상 둘 다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렵다. 모든 것에 주의력을 쏟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냥 모든 것이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된다. 뭔가 열심히 했는데 성과가 하나도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런데 만약 10개 중 9개는 자동적으로 하고, 1개의 새로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9개의 일은 자동적으로 수행하고, 1개의 새로운 일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10가지 모두 좋은 성과를 낸다. 늘 하던 일들에서는 늘 하던 대로 좋은 성과가 나고, 새로운 일은 모든 인지적 자원을 집중시켜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과정 철학자 알프래드 노트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5 February 1861 – 30 December 1947))는 이렇게 말했던 모양이다.


문명은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의 수를 증진함으로써 진보한다.

Civilization advances by extending the number of important operations which we can perform without thinking of them.


나는 이것이 문명에도 적용되지만, 근본적으로는 한 개인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간은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의 수를 증진함으로써 진보한다.

A person advances by extending the number of important operations which we can perform without thinking of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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