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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pr 21. 2021

코로나-19와 국가별 행복 순위

코로나-19가 국가적 행복 및 개인의 행복에 주는 의미

2021년 3월,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가 발간되었다. 2012년부터 연 1회 3-4월 중에 발간되었으니, 이번이 아홉 번째 보고서이다. 그리고 이 아홉 번째 보고서는 그 어느 때의 보고서와 다르다. 바로 2019년 11-12월 경,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어 2020년의 시작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간 코로나바이러스감염병-19(이하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인의 삶의 뒤흔들었고(shaken), 빼았았고(taken), 재구성(reshaped)했다. 우리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속에 질문이 가득하다. 도대체 코로나-19는 전 세계인의 행복에는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특히 한국인의 행복은 코로나-19 이전 시대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바로 이 질문에 답하고 싶지만, 필자가 제시하는 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가져야 할 사전 지식이 몇 가지 필요하기에 그것부터 설명하도록 하겠다. 먼저 세계행복보고서의 국가별 순위 정하기에 사용되는 점수은 0-10점 사이로 측정되는 생활 평가(life evaluation: 생활만족도 혹은 삶의 만족도라고도 불림)이다. 국제적인 사회조사 전문기관 갤럽에 의해 국가별 표본이 모집되고, 측정이 이루어진다.


측정은 자신의 삶이 11칸으로 된 사다리(Cantril's ladder)의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표시하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0점은 개인의 잠재력(가능성) 혹은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어려운 최악의 삶이고, 10점은 개인의 잠재력(가능성) 혹은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삶이다.


다음으로 세계행복보고서 순위는 최근 3년 치 생활 평가 점수의 평균으로 도출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2020년 세계행복보고서의 국가별 행복순위는 2017년, 2018년, 2019년 생활 평가 점수의 평균으로 도출되었다.


배경지식이 생겼으니, 이제 필자가 하는 이야기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코로나-19 전과 후의 세계인(한국인)의 행복 변화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어떻게 하면 이것을 알 수 있을까?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치기 전인 2017년, 2018년, 2019년 생활 평가 점수와 2020년 생활 평가 점수를 비교하면 되겠는데?'라는 생각 말이다. 좋은 생각이다. 필자도 동의한다.


가만! 그런데 2017-2019년 생활 평가 점수가 종합된 좋은 보고서가 이미 있지 않은가? 뭐냐고? 바로 WHR 2020 말이다! 그렇다. 2020년 세계행복보고서가 바로 2017-2019년 데이터의 평균을 담고 있으니, 2020년 보고서에 수록된 2017-2019년 생활 평가 점수 평균과 그 후에 수집한 2020년 생활 평가 점수를 비교해보면 되겠다!


결과를 보기 전에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아쉽게도 모든 국가(150여 개국)에서 이러한 비교를 수행하기는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데이터를 수집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많았기에 생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5개국에서 2020년 생활 평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고, 이를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생활 평가 순위와 비교할 수 있었다.


95개국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전과 후의 국가별 행복 순위 차이를 비교한 결과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출처: World Happiness Report 2021)


결과는 어땠을까? 너무 충격적일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냐고?


순위에 큰 변화가 없었다! 2017년부터 2019년 생활 평가 평균 점수로 도출되었던 2020년 보고서 순위와 2020년 단독 생활 평가 점수로만 도출한 순위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것을 상관관계라고 하는데, 상관관계가 0.99로 나타났다. 상관관계는 -1부터 +1 사이의 값을 가지는데, 절댓값이 0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약한 것이고, 절댓값이 1에 가까울수록 강한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보라. 0.99라니! 개인적으로 이런 상관관계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이 상관관계 계수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코로나-19 이전의 행복(생활 평가) 순위와 이후의 순위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말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데이터 비교가 가능한 95개국 중 2020년 생활 평가 점수로 도출된 순위는 50위로 딱 중간이었고, 2017년과 2019년 평균 생활 평가 점수로 도출된 순위도 49위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여기까지 살펴봤다면, 이제 이런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겠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왜 국가적 수준의 행복 순위에는 큰 차이가 없을까?


이는 생활 평가 점수에 숨어 있는 요인들, 즉 생활 평가 점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생활 평가 점수와 높은 관련성을 가지는 일인당 국민소득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순위에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부자 나라들은 여전히 잘 살고, 중간인 나라들은 여전히 중간이고, 가난한 나라들은 여전히 가난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적으로 마찬가지일 수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잘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잘 살고, 중간인 사람들은 여전히 중간이고, 못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못 산다. 큰 차이가 없다.


둘째, 생활 평가 점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회적 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회적 지지는 위급할 때나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그럼 코로나-19 상황에서 국가별 행복 지수 순위 변동이 없는 것과 사회적 지지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코로나-19 상황은 그 자체로 위험이나 곤경이다. 그런데 평소에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나라에 살았던 국민들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여전히 적절한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평소 적절한 도움을 제공받지 못하는 나라에 살았던 국민들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여전히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순위에 큰 차이가 없는 거다.


셋째, 생활 평가 점수와 높은 관련성을 보이는 자율성의 욕구 충족 차원에서 살펴보자. 자율성은 시간과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그럼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율성과 변동 없는 행복 순위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마찬가지다. 평소 자율성이 높은 나라의 국민들은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율성의 욕구를 충족했지만, 평소 자율성이 낮은 나라의 국민들은 코로나-19에서 여전히(어쩌면 더 심하게) 자율성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다.


넷째, 생활 평가 점수와 상당한 관련성을 가진 건강한 기대수명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건강한 기대수명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그럼 코로나-19 상황에서 건강한 기대수명과 변동 없는 행복 순위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는 평소 보건의식이 높고(손 씻기를 잘하고),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들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잘했지만, 평소 보건의식이 낮고,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나라들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잘 못했다는 것이다.


끝으로 코로나-19가 국가적 행복 순위 미치는 효과가 미미했다는 것이 개인의 행복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코로나-19가 국가적 행복 순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부정적인 환경 또는 부정적인 상황 자체가 인간의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인간은 부정적인 환경 혹은 상황 자체에 영향을 받기보다 그 환경이나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부정적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적절히 대응한다면, 오히려 성취감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고, 만족과 의미를 느끼면서 행복해질 있다. 그러나 부정적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그때는 정말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고, 무의미하을 느끼면서 불행해질 수 있다. 즉 코로나-19 자체가 개인의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아니다.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개인의 행복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다음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국가적 행복 순위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잘 적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응을 잘하는 국가에 사는 국민들은 그 국민들대로, 대응을 잘 못하는 국가에 사는 국민들은 그 국민들대로, 적응을 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는 것은 국가적 시스템이 아니다. 각 나라의 국민이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견디고, 이기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남았고,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인류의 저력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력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을 좋게 보려는 시도도 있었고, 인간을 나쁘게 보려는 시도들도 많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인간은 적응의 화신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빙하기를 이겨낸 저력이 있고, 과거에 수많은 전염병과 위기를 이겨낸 저력이 있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19도 이겨낼 것이다.


<참고문헌>

Helliwell J. F., Huang, H., Wang, S., & Norton, M. (2021). In J. F. Helliwell, R. Layard, J. Sachs, & J. De Nevem (Eds.), World Happiness Report 2021 (pp.13-56). New York: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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