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정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게 문제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모두가 쉽게 예상한 사실이 하나 있다.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불행해 졌을 것이라는 예측이 그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매일 접하다 보면, 코로나-19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예측은 더 이상 예측이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불행해졌다!'는 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이상하게 쳐보거나 깜짝 놀라서 펄쩍 뛸 사람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코로나-19가 전 세계인의 행복에 미친 영향이 별로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더 놀랄만한 일이고, 누군가 그럴 리가 없다면서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진심으로 미안하다. 미리 사과하는 바이다' 필자가 지금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벌써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을지 모를 당신을 위해 다시 이야기한다. '필자는 지금부터 코로나-19가 전 세계인의 행복에 미치는 효과가 거의 없거나, 있다고 해도 무시해도 될 정도로 미미하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도대체 뭘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필자가 명세기 과학자이고, 그것도 사회과학 분야 중에서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그 심리학 중에서도 인간의 정보처리 과정에 대한 핵심적인 이론들을 다루는 인지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아무 이야기나 하겠는가? 당연히 근거가 있다. 그것도 현재 행복과 관련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과학적인 보고서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1》 말이다!
《2021 세계행복보고서》는 코로나-19 특집이다. 특집 주제에 걸맞게 코로나-19가 전 세계인의 행복 변화에 미친 효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2021 세계행복보고서》가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전 세계인의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생활 평가(Life evaluations), 2) 긍정 정서(Positive emotions), 3) 부정 정서(Negative emotions)가 이 세 가지이다.
결과를 살펴보기 전에 행복의 세 가지 차원에 대한 측정과 분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필자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설문 문항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행복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 평가
생활 평가 점수는 '현재 자신의 삶이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휘하기에 충분히 좋은 삶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0점에서 10점 사이로 응답하는 것을 통해 측정된다. 흔히 (0점 칸부터 10점 칸까지 있는) 11칸짜리 사다리 그림을 주고 응답을 요청하기에 사다리 척도(Ladder)라고 불리는 것이다. 생활 평가 점수는 현재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행복 측정 도구이며, 정서에 비해 개인의 삶의 질을 정확하게 포착한다고 인정받고 있다. 세계행복보고서가 국가별 행복 순위를 도출할 때 사용하는 기준도 바로 이 생활 평가 점수이다.
■긍정 정서
긍정 정서는 '네/아니오'로 고르는 두 가지 설문 문항으로 조사가 이루어진다. 첫 번째 질문은 '어제 웃거나 미소 지을 일(smiled or laughed)이 많았습니까?'라는 질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어제 재미있는(enjoyment) 경험을 많이 했습니까?'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네'라고 응답하면 1점이 부여되고, 아니오라고 응답하면 0점이 부여되며, 두 가지 문항의 평균이 긍정 정서 점수가 된다. 쉽게 말해 두 문항 다 '네'라고 대답하면, (1+1)/2 해서 1점이 그 사람의 긍정 정서 점수가 되고, 한 문항에는 '네'라고 하고, 다른 문항에는 '아니오'라고 하면 (1+0)/2 해서 0.5점이 그 사람의 긍정 정서 점수가 된다. 당연하게 두 문항 모두 '아니오'라면 0점이다.
■부정 정서
부정 정서도 '네/아니오'로 고르는 문항을 통해 측정되며, 세 가지 문항이 존재한다. 첫 번째 질문은 '어제 걱정(worry)이 많았습니까?'이다. 두 번째 질문은 '어제 슬픈(sadness) 일이 많았습니까?'이다. 세 번째 질문은 '어제 화나는(anger) 일이 많았습니까?'이다. 부정 정서를 채점하는 방식은 긍정 정서를 채점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세 문항에 모두 '네'라고 답변하게 되면 (1+1+1)/3 해서 부정 정서가 1점으로 계산되는 식이다.
모든 조사는 갤럽(Gallup)을 통해 이루어지며, 보통의 경우엔 매년 150개국 국민의 생활 평가 점수, 긍정 정서, 부정 정서가 조사되는데, 2020년에는 아쉽게도 95개국 밖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유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응답을 할 수 있었던 나라들이 있었던 반면, 코로나-19 때문에 설문에 대한 응답을 전혀 할 수 없는 나라들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보통 한 나라 당, 2,500명 정도의 표본을 무작위로 설정하여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한 나라 당 1,000명 정도의 표본을 확보하는 것에 그쳤다. 그래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렇게 측정을 이어졌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고, 응답해주신 분들은 과학발전에 큰 기여를 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코로나-19는 이러한 행복의 세 가지 차원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혹시 '이런 것 말고 국가별 행복 순위나 알려주세요'라고 생각할까 봐 두 가지만 언급하자면, 일단 《세계행복보고서》의 핵심은 순위가 아니다. 순위는 전 세계인들에게 《세계행복보고서》라는 양질의 자료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음으로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순위 정보가 나오긴 하지만, 2021년의 행복순위 점수는 그 어느 때보다는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고? 앞서 말한 대로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에 갤럽에 행복 관련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었던 나라가 95개국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래 150개국이 응답을 제공했던 것과 비교할 때 데이터가 3분의 2밖에 모이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의 연장선 상에서 2020년 데이터를 수집하지 못한 나라의 2021년 순위는 2018-2019년의 2년 간의 평균을 통해 도출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2021년의 국가별 행복순위 데이터는 2020년 데이터가 포함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가 섞여 있으며, 그에 따라 순위 자체에서 어떤 의미를 도출하기가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2021년 보고서에서 순위가 상승했다고, 그것을 진짜 행복의 증가라고 보기 어렵고, 순위가 감소했다고, 그것을 진짜 행복의 감소라고 보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2020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153개국 중 6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62위를 기록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위가 하나 내려가면서 마치 한국 사람들이 불행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2021년 순위와 2020년 순위를 이렇게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2020년 데이터가 포함되지 않은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는 2020년 데이터가 수집된 나라들만 따로 묶어서 순위를 도출하였다. 그것에서 한국은 95개국 중 50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간혹 2020년 데이터가 수집된 95개국 중 50위를 기록했다는 것과 《2020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53개국 중 61위를 차지했다는 것에서 순위를 도출한 기준에 대한 정보는 쏙 빼놓고, 한국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행복 순위가 작년보다 11계단이나 상승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95개국 중 50위와 153개국 중 61위를 어떻게 동등하게 놓고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런 엉뚱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원본 데이터를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 이제 진짜 전 세계인의 행복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2020년에 데이터를 제출한 95개국의 데이터를 종합한 정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먼저 생활 평가 점수부터 살펴보자! 음... 차이가 없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3년 간 생활 평가 점수 평균과 비교할 때, 2020년의 생활 평가 점수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도 동일한 비교에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
다음으로 긍정 정서 점수는 어떨까? 음... 역시 차이가 없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최근 3년 간 긍정 정서 점수 평균과 2020년 긍정 정서 점수 평균의 차이 값이 정확하게 0이다! 생활 평가와 마찬가지도 한국인도 코로나-19 전후에 경험한 긍정 정서 점수에 차이가 없었다.
끝으로 부정 정서 점수는? 여러분의 기대와 같이 약간 증가했다. 그러나 증가폭은 크지 않았다. 0.023점이니 말이다. 물론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이기는 하나, 부정 정서가 엄청나게 늘었을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결과다. 코로나-19 전과 후에 한국인이 경험한 부정 정서 점수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그럼 이러한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 가지 정도로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코로나-19가 우리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코로나-19는 우리 삶에서 경험하는 부정 정서의 빈도를 증가시켰음에 틀림없다. 이는 코로나-19 전에 비해 후에 부정 정서 점수가 높아졌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이렇게 생활 가운데 부정 정서를 경험하는 빈도가 증가한다고 해서 긍정 정서를 경험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정 정서는 부정 정서고, 긍정 정서는 긍정 정서다. 그리고 전 세계인이 부정 정서보다 긍정 정서를 3배 정도 더 많이 경험한다는 익히 알려진 사실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
끝으로 부정 정서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부정 정서의 경험 자체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인간의 행복 혹은 불행에 더 중요해 보인다. 이는 코로나-19라는 부정 정서 유발요인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평가 점수, 즉 생활 평가 점수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세 가지 행복 점수 변화를 지역별로 비교한 데이터를 통해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지역별로 보면, 동아시아(East Asia: 한국이 포함되어 있음) 지역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생활 평가 점수가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긍정 정서 점수는 하락했고, 부정 정서 점수는 증가하였다. 필자가 잘못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상황 하에서 동아시아 지역은 긍정 정서 점수 감소하고, 부정 정서 점수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에 대한 평가 점수는 증가하였다.
바로 이어서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 지역의 결과를 보면, 라틴 아메리카 지역 사람들의 긍정 정서, 부정 정서 변화는 동아시아 사람들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생활 평가 점수 변화에 있어서는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과 동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앞서 살펴본 대로 동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생활 평가가 좋아진 반면,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코로나-19 전에 비해 생활 평가가 나빠진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이는 순간적으로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를 경험하는 것 자체보다는 그렇게 경험한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인간의 행복과 삶의 질에 더 중요함을 시사한다. 즉 우리는 부정 정서를 경험하더라도 그것을 잘 다루면, 최종적으로 내 삶에 대한 평가는 좋아질 수 있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인들의 긍정 정서 경험을 비슷하게 줄이고, 부정 정서 경험을 비슷하게 늘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정서적 변화를 잘 다루면 생활 평가 점수는 동아시아 지역처럼 증가할 수도 있고, 이를 잘 다루지 못하면 라틴 아메리카 지역처럼 생활 평가 점수가 감소할 수도 있다.
부정 정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