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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한결 Mar 18. 2021

공존을 위해 양보가 필요하다

사람 하나 늘어남이 이토록 어렵다

사람 하나 늘어남이 이토록 어렵다.


신문에서 경남 함양 서하 초등학교가 연일 화제다. 한때 폐교 위기에 처했던 학교이건만, 2019년 14명이던 학생 수가 지난해 27명, 올해는 34명으로 늘었단다. 고작 전교생 34명일 뿐인데, 그게 뭐라고 그리 반가워하나 하는 분은 농촌의 인구 감소에 무딘 사람이다. 내가 다녀본 농촌은 생각보다 인구감소가 심각하다. 여기저기 폐교가 늘어난 현실은 멀리 가지 않아도 금방 확인된다. 유명 관광지 중 시골과 가깝다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농촌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이런 기사는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농촌이 살기 위해서는 인구 증가가 필요한 법이고, 시작은 아이에게서 비롯된다.


학교에 아이 한 명을 데려오기 위해서 지방 자치단체와 해당 학교 관계자가 얼마나 큰 노력을 했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장학 혜택을 더욱더 폭넓게 지원해야 하고, 복지 차원에서 도시 학교와 차별되는 요소를 제공해야 함은 필수다. 이는 곧 지방 자치단체의 재정과도 연결되는데 어느 한 부분이 삐걱대면 어긋난 박자로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된다. 아이 하나는 시골에서 사람 하나가 늘어남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 하나를 데려오면 이와 관련한 인프라도 함께 구축된다. 가족 구성원이 아이 하나 또는 둘이 전부인 요즘 세대를 생각해보면, 아이를 위해 부모가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도 가능하다. 그들에게 삶의 기본 요소인 집과 일거리를 제공한다면 얼마든지 인구 증대는 가능하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지금, 삶의 질을 위해서 시골행을 택하는 젊은 세대가 많을 테고, 이를 지방 자치단체가 활용한다면 허물어져 가는 시골 담벼락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테다. 지방소멸도 머지않아 사라질 단어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들판을 보는 것만으로 풍요를 느낀다.


감성의 영역은 삶의 터전과 직결되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숙성된다. 시골 풍경이 가져다주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감성이 어른이 되어 얼마나 많은 삶의 위로가 되는지 나는 안다. 도시의 삶에 지쳐 가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생각하며 올려다봤건만, 보이는 건 오로지 먹구름 가득한 검은 하늘과 희뿌연 도시 불빛뿐이던 허망함을 기억한다. 위로받고 싶은데 결국엔 상처만 늘어나던 나날들, 그럴수록 마음은 넓고 풍요로운 시골 들판으로 내달리곤 했으니. 하루가 짧게 느껴지도록 놀다가 지쳐 집에 돌아가면 반겨주는 굴뚝 위의 연기는 세대가 변한 지금에도 여전히 정겨운 모습으로 기억된다.


누렇게 익은 벼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인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치듯 누웠다가 다시 일어선다. 물결에 바람이 스치듯 가을 들녘에도 풍요의 신이 재주를 넘는다. 잘 익은 낱알을 입에 머금고 깨물면 그 옛날 기억 너머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공존을 위해 양보가 필요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한창이던 때에 도시에서 갓 전입해 온 젊은 부부, 아이 둘도 함께해 마을엔 모처럼 객지 사람이 들어왔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중요한 회의는 마을회관에서 결정되고, 모나지 않으려면 이때 결정된 사항에 잘 따라야 한다. 젊은 부부는 마을 일에 익숙하지 않아 눈치껏 자신의 할 일을 찾아서 하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게 서툴 수밖에. 부녀회장이 나서서 아이 엄마를 이끌고, 마을 이장이 솔선수범해 아이 아빠를 이끄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마을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부부의 아이 둘도 금방 마을 아이들과 친해져 오래도록 살 것이라는 기대가 넘쳤건만, 시골에서의 삶은 팍팍했는지 짧은 만남을 끝으로 이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당시엔 시골에서 먹고 산다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에.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마을 어른들이 나서서 전입세대의 삶을 도와주는 모습은 당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한 면이 있다. 마을 회의에서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하더라, 하는 소문은 금방 날개를 달고 온 마을로 번진다. 하나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에 맞서야 한다. 그런데도 쉽사리 그러지 못함은 함께 하는 이의 수적인 열세와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근거 부족이 원인이다. 타인을 내 편으로 이끌지 못함은 설득력이 있으나 이를 쉽게 믿지 못하는 마음에서 기인한다. 아마도 나고 자란 곳이 아니기에 시간이 쌓아주는 설득력과 신뢰를 구축하지 못했음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젊은 부부가 어떤 안건을 제안했고, 이 내용을 마을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감정의 골은 깊어졌고 결국은 누군가의 떠남을 전제로 마을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으니. 서로를 품었다면 지금 이 기억은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빛날 텐데, 공존을 위해 양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내 작은 소망은 모두 잘 사는 거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야 잘 사는 게 아니다. 돈이 많아도 불행한 사람, 반대로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은 많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사람 자체에 중점을 두고 만남을 지속한다면 오해는 곧 이해가 되고 공감하는 사이로 남는다. 살아오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이를 여럿 만났고,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사람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역시 삶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살아가야 제맛이다.


어쩌면 가장 큰 희망인지도 모른다. 내 작은 소망은 모두 잘 사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존이 필요하다.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양보하고, 이를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이 진심으로 남을 위하는 자세의 시작이다. 입에 머금던 낱알이 조금씩 입술을 비집고 빠져나온다. 서서히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빠져나올 때다. 떠나간 이가 찾아오는 동구 밖으로.



Written By The 한결

2021.03.18 대한민국 남해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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