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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한결 May 05. 2021

아픔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한다

아픔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한 존재의 사라짐은 부재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점점 늘어나는 그리움의 공간을 의식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는 슬픔의 시차. 부재의 시작이 나비가 일으킨 바람이라면, 부재가 주는 상실감과 애절함, 나아가 보고픈 마음의 그리움과 간절함은 슬픔과 고통의 태풍이 되어 우리를 덮친다. 온몸으로 맞서기엔 생각보다 충격이 크다. 어떤 징조나 준비도 없이 그런 순간은 다가오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저 멍하고 나중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숨조차 쉬기 어려워진다. 아픔에는 시차가 존재하고 우린 그 간극을 몰라 여전히 아프다.


인간이 느끼는 슬픔 중 혈육과 관련한 상실은 세상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낳아준 부모님, 형제자매로 구성된 탄탄한 가족관계에서 떨어져야 할 때가 되면 우리는 처음으로 홀로서기를 경험한다. 가족을 떠나 독립된 공간을 마련한다거나 새로운 가족 관계를 구성하게 될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무탈하기를 기원하는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과는 별개로 우리네 일상은 각종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순간의 실수로 발을 헛디디면 즐거운 놀이기구도 생사를 결정짓는 단두대로 돌변한다. 위험은 주위에 산재하고 우린 어쩌면 이 모든 것으로부터 무사하기 위해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이는지도 모른다.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든 이의 인사로 대체되고 있다.


사연에서 예외는 없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문득 가슴을 죄어오는 통증을 느껴본 사람은 누군가를 잃었거나 잃어가는 중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고 있지만, 의식하지 못한 멍한 순간에 닿아 까닭 없는 눈물로 하염없이 옷깃을 적시면 아픈 가슴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살아오면서 알게 된 많은 이들이 겉보기와는 달리 내면에는 다양한 상처를 품은 이들이 많았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픔의 크기는 문자로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다. 어떤 이라도 사연에서 예외인 경우는 드물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내가 아님에, 내 가족이 아님에 안도한 적이 있다. 끌어안기엔 너무 큰 고통이기에 그저 먼 발치서 안타까운 눈길로 발만 동동 구르던 경험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봤을 테다. 4월의 잔인한 어떤 날,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사건, 멀쩡하던 다리가 무너져 수많은 목숨이 사라진 서울의 성수대교 붕괴, 정신이 올바르지 않은 악마 같은 한 사람으로 인해 수도 없이 많은 생명이 불길에 쓰러진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이 모든 상실 앞에서 우린 온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나는 안녕한 건지, 당신은 또 얼마나 안녕히 잘 지내고 있는지를.


타인의 성공이 전부가 아니다.


서민 갑부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데 성공한 사업가의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다. 가난해서, 너무 가난해서 약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숨진 자식이 있었고,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노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지금 잘 사는 것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말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사연이 내 부모님에 관한 일과 비슷해 보여 더욱 공감이 간다. 시선은 텔레비전을 향해 있는데 어느덧 의식은 머나먼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후다.


시름시름 앓던 아이가 어느 순간 고개를 떨구고, 자그마한 심장이 어머니 품 안에서 멈출 때 아버지는 두 사람을 껴안는다. 1972년 가난한 대한민국, 오지 중의 오지인 데다 차도 귀한 시절이라 읍내까지 가려면 아이를 업고 오십 리는 달려야 한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보니 정신이 까마득하다. 가난한 데다 아이가 죽는 일이 흔한 시골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던,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전해 들은 어머니의 고백에 난 그저 눈물을 흘린 기억밖에 없다. 1968년생으로 추정되는 둘째 형님으로 겨우 만 4세에 숨졌다니 상상만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픔으로 숨이 가빠진다. 얼굴은 모르나 내 혈육이었기에, 내 부모님의 피붙이 자식이기에 더욱 큰 상실감이 휘돈다. 가끔 큰형님이 기억나는 대로 생김새를 이야기할 때면 귀 기울여 듣곤 한다. 정말로 잘생긴 사내아이였다는데.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한다.


시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년 후 또 하나의 생명이 꺼졌고, 겨우 꿰맨 부모님의 가슴이 더욱 크게 벌어진다. 상처란 원래 없던 곳에 처음 생기는 것보다 있었던 자리가 벌어지는 경우가 더 아프다. 1972년생으로 추정되는 넷째 형님도 겨우 만 2세의 나이로 같은 길을 떠났으니 내 아버지와 어머니 마음에 성한 곳이 있었을까? 부모가 자식을 잃으면 현실이 참혹해진다. 어느 순간 웃음이 사라지고 짙은 그늘이 집안을 감싼다. 암흑의 커튼으로 빛을 차단하고 모든 현실로부터 도망가게 된다. 아버지는 이때부터 아픔을 참을 길이 없어 술에 의지하는 나약한 가장으로 변한다. 가난한 게 죄는 아닐 진 데 그때 그 순간은 분명한 죄인이다. 두 아이의 생명이 허무하게 사라졌으니.


한 아이를 가슴에 묻고 채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 다른 아이를 그 상처 위에 엎어야 했던 심정. 그러곤 주어진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밤낮으로 몸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해야 했던 시골 촌부. 유일한 위안거리는 쓰디쓴 소주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주정을 부리던 모습이 보기 싫었고, 미웠으며, 이후에도 한참이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아버지를 제대로 바라본다. 그리고 늦었지만,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한다. 만약 그때의 아버지를 만난다면 내면에 깃든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못난 자식을 용서해주실지 묻고, 안아주고 싶다. 또다시 찾아온 슬픔에 가슴이 멘다. 아픔의 시차에 눈물이 흐른다.



Written By The 한결

2021.05.05 대한민국 남해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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