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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 Feb 10. 2024

<찰리와 초콜릿 공장>, 2005

Clever & Gross

가볍게 쓰는 영화 후기


"가볍게 쓰는 영화 후기"라는 카테고리로 브런치 글 발행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브런치는 항상 아주 정제되고 새로운 것의 이야기만 써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이 있어서 잘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오늘 설 특선 영화 겸 <웡카> 개봉 기념으로 TV에서 이 영화를 해주는 걸 보고 난 후에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대충 제 뇌를 가감 없이 글로 옮겨 둔 창고라고 생각하고 읽으시면 될 것 같아요.

즉흥적이고 비격식적으로 쓰는 영화 후기, 시작!


아... 일단 이 영화를 보고 딱 든 생각은 "clever & gross"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리하고도 역겨운 이야기여... 이 "이야기" (not "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해보자면,


CLEVER 01.

초콜릿이라는 소재야말로 정말... 자본주의의 극치를 표상한다고들 이야기를 하죠.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는 소재 선정이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합니다. 달달한 맛에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삶에 달달함을 더해주는 맛 좋은 간식임과 동시에,... 이걸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그들의 이를 썩게 할 수 있으며, 이걸 생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 (역시나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노동 착취가 아주 심각하게 벌어지죠. 코트디부아르 같은 카카오 재배지에서 아이와 여성들이 얼마나 착취를 당하고 그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며 노동 환경 또한 열악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겉보기에는 달콤하고 매혹적이지만,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

라는 자본주의의 모습과 아주 잘 매치되는 초콜릿의 모습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가볍게 흘러나오는 대로 쓰는 후기라서 글이 정제되지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ㅎㅎ) 그런 면에서 자본이라는 현대적 가치 대신 가족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택하는 이 이야기를 쓰기에 아주 적합한 소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공장이 얼마나 많고 그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데 왜 하필 초콜릿을 고르셨겠어요. 물론 그냥 초콜릿을 좋아하셔서 쓰신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너무 많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가끔 혹은 종종 있습니다. 역시나 쓸데없이 주절대는 대목이니 신경 쓰지 마시길

그리고 이 이야기는 책에서 끝나지 않고 (제가 아는 것만 따지자면) 무려 세 편의 영화로 탄생되어 전 세계에서 팔린다는 점까지도 아주 자본주의적입니다. 그 영화를 보기 위해 대형 영화관 3사 중 한 군데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점까지도 아주 자본주의적이고, 그런 자본주의적인 소비를 하고는 "하, 자본주의란!" 하는 짧은 한탄을 할 것이라는 것도, 그러고 나서는 며칠은 무슨 몇 시간, 아니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자본주의의 또 다른 산물을 소비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까지도 이 영화를 완성시키는군요.


& 01.

기괴하지만 잘 만들어진 동화

하면 저는 단번에 떠오르는 두 영화감독이 있는데요. '기예르모 델 토로'와 '팀 버튼'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또 기괴한 장면들(움파룸파족의 춤부터 시작하여 아이들을 대하는 웡카의 태도 등등)을 보다 보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떠올랐는데요.

두 감독의 영화를 제가 당연히 다 본 건 아니고 그렇게 많이 본 것도 아니지만, 제가 본 영화들에 한정을 지어서 이야기하자면, 저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아주 좋아하는 편에 속하지만, 팀 버튼의 영화는 그렇지만은 않은 편에 속하는 것 같았어요. 영화의 분위기 탓도 있고 그냥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것이 더 취향에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도 그렇고,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도 그렇고, <판의 미로>도 그렇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어쨌든 아름다운 결말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파시즘부터 시작해서 오만 사회 이야기가 머릿속을 꽉 채우게 되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든 얕은 해석적으로든(저는 어떤 영화가 아주 마음에 들면 깊게 해석하며 생각해 보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적당히 영화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고 감독의 의도가 어느 정도 보이는구나 하는 걸 파악하는 선에서 그치는데, 이걸 '얕은 해석'이라고 저 혼자서 부릅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그리 취향이 아닐 때에만 얕은 해석을 한다는 것은 아니고, 당연히 깊은 해석과 감상을 위해 표면> 얕은 해석> 깊은 감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죠.

그런데 팀 버튼의 이야기들을 보고 나면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특히 이번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더욱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는 뭐랄까... 아름답지 못한 큰 요소를 몇 개씩 공들여 끼워두고는 최대한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주려고 하는 느낌? 그런데 팀 버튼 영화는 아름다운 개별 요소들을 최대한 가져와서 최대한 기괴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느낌이랄까요.

<셰이프 오브 워터>를 생각해 봅시다. 수상 생명체는 사람들이 언뜻 보았을 때 단박에 '귀엽다', '사랑스럽다', '예쁘다'와 같은 이미지를 주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외모지상주의자, 얼평에 미친 사람, 따위가 된 기분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괴한 요소를 하나 공들여 끼워둔 것이죠. 그렇지만 영화 전체를 보았을 땐 아름다워요. 서사가 전개되는 내내 물속에 있는 듯한 습한 푸른빛 영화 때깔에 음악까지 아름다운 요소들 천지입니다. 샐리 호킨스가 수상 생명체와 사랑에 빠지고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내 영상미가 빼어나다는 생각이 들어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돌아와 볼까요. 아이들이 초콜릿 강에 빠지는 장면 이전까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추한 시각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오프닝부터 '기괴함'의 잔치가 벌어집니다. 바로 자본주의의 기계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 공장의 모습이죠. 초콜릿이 찍어져 나오고, 트럭에 실려서 각을 맞추어 출발하고... 팀 버튼 역시나 이후 장면에서 기괴한 요소들을 잔뜩 넣기는 합니다. 움파룸파족 역시나 <셰이프 오브 워터>의 수상 생명체와 외형적으로 비슷하게 기괴한 효과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와 달리, ‘밝고 예쁜 분위기 속에서 기괴한 행동을 하는 것’을 통해 그 기괴함의 아이러니를 더 강화한다고 느껴진달까요…

언급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세 영화 모두 아름답기는 하지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밝지 않아요. <셰•옵•워>도 눅눅하고 습한, 일반적으로 ‘불쾌함’의 이미지로 떠올릴 법한 색감을 주로 쓰고 있고 음악도 슬픈 사랑의 분위기를 잔뜩 담아낸 것처럼 느껴지고, <피노키오>도 극 중 노래마저 슬프고 캐릭터들의 대화에 힘/기운이 조금씩 빠져 있는 느낌이죠. 그런데 그 캐릭터들이 이상하고 기괴한 ‘행동’을 하나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괴한 모습이지만 행동만큼은 그저 보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처럼 평범하게 해요. 하지만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떠올려 보면 조금 다르지 않나요? ‘부모‘라는 말을 제대로 발음조차 못 하고 역겨워하는 듯한 모습을 취하는 윌리 웡카의 모습, 소름이 돋도록 각을 맞춰 춤을 추는 움파룸파족의 모습, 아이가 초콜릿 강에 빠지고 거대 블루베리로 변해 즙을 짜겠다고 하고 엿가락처럼 뽑겠다고 하는 모습… 반면에 아주 쾌활한 화면으로 가득 찬 알록달록한 화면이 계속해서 비추어집니다.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가 되실는지 모르겠네요.

요약하자면 제 생각에는,

기예르모 델 토로 > 기괴하고 음습한 분위기 + 기괴한 요소 + 평범한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

팀 버튼 > 쾌활하고 화려한 분위기 + 기괴한 요소 + 기괴한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


GROSS 01.

세계 각국의 아이들이 골든 티켓을 갖고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견학을 갈 '무작위 한', 그래서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지만, 영화 속 아이들은 모두 백인이라는 것도 조금은 코미디입니다. (그렇지만 뭐 따지고 보면 전 세계에서 백인이 약 50%가량을 차지하니 고작 5명 무작위 추출에서 백인 아이 다섯 명이 걸리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냥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괘씸한 심보이니 역시나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GROSS 02.

이건 그냥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영화 속에서 자본주의와 현대 사회의 어떤 부정적 요소의 표상으로 나오는, 그래서 벌을 받는 이들이 ‘아이들’이라는 게 전 가장 역겹게 느껴졌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어… (물론 제가 모르는 걸 수도) 알겠는데 왜 아이들한테 이런 시련을 주어야 하지?

라는 거죠. 아이들은 흔히 이야기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의 표상으로 등장합니다. 이런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 부분을 더 역겹게 생각한 것도 같아요.

어쨌든 자본주의라는 것도 현대 사회라는 것도 어른들이 만들어낸 거고, 아이들은 그저 그 자본주의 프로파간다 속에서 교육을 받는 수동적 과정에 있는 건데… 영화 속 다섯 명의 아이들 중 찰리를 제외한 네 명의 아이들에게는 결함이 있지만, 그 결함은 모두 각자의 부모의 것에서 기인하죠. 즉, 그 아이들의 그 모든 특성은 그들 부모의 산물이라는 건데, 처벌을 받는 건 다 커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죠. 전 여기에서 왜? 어째서? 굳이?라는 의문이 드는 겁니다. 물론 영화의 전개 특성상 그게 자연스럽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이 영화가 “버릇없는 나쁜 아이는 이렇게 벌을 받아요!”를 보여주는 영화인가요? 아니죠. 지금껏 이 글 하나에서 몇 번이나 언급되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는 “자본주의의 이런 이면, 나빠요!”를 보여주는 영화이죠. 전자의 주제를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려고 했다면 그건 영화를 잘못 만든 게 되겠죠. 아이들은 보면서 끔찍하다고 무서워하느라 정신이 없을 영화에 착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넣어 놓는다는 게 어떤 효과가 있기나 할지요. 언제나 나약한 존재들에게는 잘못이 없어요.

그렇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당연히 아이가 아닌 부모(어른)를 욕하고 있는 건 맞아요.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 사랑하는 아이 어떡해 살려주세요’라는 모습을 보이는 대신, ‘우리 아이는 대회에 나가야 하는데’와 같은 기괴하고 멍청한 반응을 보이고 있죠. 그러니까 어쨌든…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역겹다’는 생각을 한 건,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역겨워서 드는 거부감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대충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다 정리를 한 것 같네요. 기회가 되면 <웡카>나 <초콜릿 천국>을 본 후에 정제된 글을 들고 와보겠습니다. 난잡스러운 글 끝까지 읽으셨다면, 정말 수고가 많으셨고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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