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그때 귤 진짜 맛있었어

고마워

by 이생

내가 여섯 살, 오빠는 아홉 살 때의 일이다.

오빠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태권도를 다녔다. 우리 집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오빠는 학교가 끝나고 난 후면, 버스를 타고 태권도장으로 갔다. 겨울철이면 해가 어둑해져서야 오빠가 집에 오곤 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장면이 있다.

태권도를 다녀온 겨울날, 오빠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그때 안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도 한창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고, 언니들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거나 친구네 집에 놀러 가 있을 시간이었다. 오빠는 나를 이끌어 아랫목 구석에 몰아놓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너무나 예쁜 귤을 하나 꺼냈다.

- 얼른 먹어.

오빠의 손은 유달리 급해 보였다. 귤의 주황빛 껍질을 벗겨 내민 귤 한 조각이 내 입속으로 들어왔고, 나는 너무 맛있게 먹었다. 내가 다 먹을 때면, 또 다른 한 조각을 떼어주곤 했다.

그때는 '오빠도 먹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하나의 조각처럼 남아 있는 나의 기억을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 안방에 들어왔더니, 네 오빠가 너를 구석에 두고 귤 하나를 까서 네 입에만 넣어 주고 있더라. 자기는 한 조각 먹지도 않고.

- 그런데 왜 그렇게 엄마 몰래 준 거예요.

- 그때는 용돈도 많지 않았고, 용돈을 꼭 필요한 곳에만 쓰라고 하니까 혼날까 봐 그랬겠지.


사실 그 시절엔 누구도 용돈을 편하게 쓸 수 없었다. 첫째 언니는 500원을 한 달 동안 가지고 다녔다고 했다. 오빠는 용돈을 모아서 리어카에 탑처럼 쌓아 올린 귤을 보면서 나를 떠올렸던 것 같다. 유난히 귤을 좋아하는 동생 말이다. 어쩌면 며칠 고민하다가 사 왔을지도 모른다. 그 귤 하나를 사들고 나에게 닿기까지 얼마나 긴장하면서도 뿌듯했을지 그 마음을 짐작해 본다.


나는 예전부터 귤을 참 좋아했다. 심지어 중학교 졸업식 때 형부가 무슨 선물을 받고 싶냐고 해서 귤이라고 말했더니, 한 박스를 선물로 사가지고 오셨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감기에 걸려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아빠가 귤을 사주시곤 했는데, 희미한 기억 속에 한 개당 100원이어서 10개 정도를 검은 비닐봉지에 사가지고 와서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반찬도 넉넉히 사 먹기 어려웠던 시절이기에 과일을 사 먹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에게 줄 귤 한 개를 사들고 집에 돌아왔을 오빠, 오빠도 그 귤이 얼마나 먹고 싶었을지 생각하면, 참 미안한 생각이 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언니들보다는 오빠를 더 많이 따라다녔던 것 같다. 내 바로 위가 오빠였던 이유도 있지만, 그냥 오빠를 따라다니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언니들보다 유달리 유순한 성격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유순한 오빠에게 나는 그리 만만한 동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빠는 내가 귀찮았을지 모른다.

오빠는 가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만화 주제곡을 녹음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방해를 했다. 오빠가 아무리 조용하라고 해도 나는 조금씩 잡음을 섞어 놓곤 했다. 가끔 오빠는 화가 나서 나한테 뭐라고 싫은 소리를 하곤 했는데, 다 자란 후에 오빠의 녹음테이프에 그 소리가 다 담겨 있어서 함께 들으면서 엄청 웃었던 적이 있다.


그런 오빠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나 또한 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이 작은 파이 같은 간식을 줄 때면, 내가 먹지 않고, 오빠네 반 앞에 가서 오빠 친구들한테 오빠를 불러달라고 하고는 그 간식을 전해주곤 했다. 이상하게 내가 먹는 것보다 오빠한테 전해주었을 때 더 기분이 좋았다. 오빠는 안 먹는다고 계속 말해도 오빠 손에 억지로 전해주고 교실로 돌아오곤 했다.

오빠도 나도 이제 벌써 50대가 되었다. 시간은 참 빨리 흐른다. 하지만, 아직 마음은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늘 편하게 대해주는 오빠가 참 고마워지는 날이다. 유달리 눈이 많이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오늘 같은 날이면 추운 날씨에 귤 하나를 사들고 돌아왔던 오빠의 그 마음이 떠오른다.


나중에 오빠한테 꼭 그 말을 전해줘야겠다.

- 오빠 그때 귤 진짜 맛있었어.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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