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엔 힘을 빼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by 이생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물론 혼자 뛰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운동도 혼자 하는 운동을 즐겨한다. 혼자 공기를 가로지르면서 뛰다 보면, 뭔지 모를 해방감이 밀려든다. 하지만, 학창 시절의 달리기는 그렇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만 되면 계주는 운동회의 하이라이트, 즉 꽃이었다. 나는 그런 계주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 참여하는 반별 달리기에선 3위 안에 들었던 것 같다. 그건 내가 달리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나보다 못하는 친구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의 달리기는 실력이 아니라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으로 등수를 매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90년대에는 고등학교 때의 체력장 점수가 대학 입시 내신으로 작용했었다. 달리기를 기본으로 해서 윗몸일으키기며 철봉 매달리기 등 무조건 좋은 점수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철봉 매달리기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려운 종목이 아니어서 쉽게 할 수 있었으며, 윗몸일으키기는 며칠 노력한 결과로 개수를 늘릴 수 있었지만, 달리기는 그렇지 못했다. 워낙 체력적으로 뛰어난 친구들이 있었고, 노력해도 금방 늘지 않았다. 그건 승부욕으로 이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승부욕은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고등학교 체력장 때의 일이다. 우리 반 대열에서 줄을 서서 귀가 아프도록 강렬했던 시작을 알리는 선생님의 출발총성이 들린 순간,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다. 그날은 달리기를 잘 못하는 친구들과 함께였던 것인지 내가 선두로 달리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조금 더 힘내서 결승점을 향해 달리던 순간, 2등으로 달리던 친구가 오른쪽 어깨 뒤로 나를 치고 올라오려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고, 갑자기 운동장에서 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나를 지켜본 사람들의 목소리인 줄 정신을 차리고서야 알 수 있었다.

뒤에서 뛰어오던 친구를 발견한 순간, 제어할 수 없는 힘이 작용하면서 다리 힘이 풀렸고, 나는 결승선을 앞두고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결승선에 계셨던 선생님도 안타까우셨는지 내가 결승선에 손을 대고 넘어졌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기록을 해 주신다고 하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 일 때문인지, 다음 해 체력장에서는 긴장하지 않기 위해 애쓰려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또 진정시켰다. 그런데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출발선에서 앞을 노려보며 의지를 다지고 있는 순간, 선생님의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보기 좋게 출발선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결국, 맨 뒤로 가서 다시 출발하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다른 멤버들과 달리기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 출발을 두 번 해보는 것이어서 그런지 두 번째는 다행히 결승선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는 선두가 되지 못했지만, 결승선을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긴장한다는 것은, 마음과 육체가 제대로 작용하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심리적으로 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긴장과 갈등의 연속선상에 있다. 때론 이러한 긴장과 갈등은 우리의 힘 밖에 존재하기도 한다. 해결할 수 조차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망쳐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자꾸 인식시키는 것이 유리하다. 그 방법이 그 일을 끝까지 할 수 있는 힘이라도 주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엔 힘을 빼는 방법을 몰랐다. 힘을 더 주고, 더 잘하려고만 했었다. 그로 인해, 출발하지도 못했고, 제대로 도착하기 어려웠다. 이젠 어떻게 힘을 잘 빼서 그 일을 완주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기 위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 조용히 걷는 방법을 택했다. 달리기는 혼자 있을 때만, 조용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앞서지 않아도 되는 달리기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어린 시절엔 깨닫지 못했었다. 어린 시절, 아마도 내 뒤에서 달리던 친구들 중에는 그런 이치를 이미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기려고 애쓰는 내 등을 보면서 얼마나 어리석어 보였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keyword
금요일 연재